※ 청말근대 화가 왕진(王震)의 <일위도강(一葦渡江)> (1935年作)
江水流湯湯 江風吹浪浪
獨遺一履去 枯葦亦可杭
佛法說无邊 普同日月光
薰沐敬艁像 供養惟心香
(강수류탕탕 강풍취낭랑
독유일리거 고위역가항
불법설무변 보동일월광
훈목경조상 공양유심향)
강물은 콸콸 흐르고
강바람 살랑살랑 부네
홀로 신발 하나 남기고 가는데
시든 갈대 잎 또한 타고 건널만 하네
불법은 끝이 없어
해와 달처럼 누구에게나 비친다지
몸을 깨끗이 하고 화상을 만들어
오로지 마음의 향을 공양한다네
☞ 왕진(王震), <일위도강(一葦渡江)> (1935年作) 화제(畵題)
- 艁: 造의 고자(古字).
- 薰沐: 향료를 옷에 뿌리고 머리를 감아 몸을 깨끗이 함.
※ 왕진(王震)의 <一葦渡江>
- 보리달마(菩提達摩)는 석가모니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이어받은 서천의 28조이자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추앙받는다.
남인도 향지국 왕자(度王의 셋째 아들) 출신인 그가 어려운 항해 끝에 중국 광주(廣州)에 도착한 것은 남조(南朝) 양(梁) 무제(武帝) 보통(普通) 원년(520) 9월이었다고 한다.
광주자사 소앙(蕭昻)이 이 사실을 곧장 무제에게 알렸고, 무제는 흥미를 가지고 달마를 궁궐로 초청하였다.
≪전등록(傳燈錄)≫에 따르면, 무제는 즉위 이래 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경전을 출간했으며, 스님들을 널리 공양했다. 스스로 반야경과 열반경을 강의할 정도로 학식 또한 높았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황제보살'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렀다.
무제가 달마에게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달마는 "아무 공덕도 없다"(無功德)고 말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인가?" 달마는 "모르겠습니다"(不識)라고 답했다.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두 사람의 짤막한 대화가 끝난 뒤, 달마는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 一葦渡江) 숭산 소림사로 들어갔다 한다.
※ 왕진(王震)의 <一葦渡江> (1923年作)
※ 왕진(王震)의 <一葦渡江> (1929年作)
※ 왕진(王震)의 <一葦渡江> (1933年作)
※ 청말근대 화가 오창석(吳昌碩)의 <一葦渡江> (1915年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