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일고(伯樂一顧): 백락이 한 번 돌아보다.
≪전국책(戰國策)≫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백락(伯樂)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백락은 그 사람을 따라 시장으로 나갔다. 말을 보니 백락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래서 은연중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고, 말을 둘러보고는 아깝다는 안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좋은 말을 몰라봤다는 생각에 다투어 말을 사려고 했다. 말 값은 순식간에 껑충 뛰었고, 결국 말 주인은 당초 팔려고 했던 값의 열 배를 받고 말을 팔았다.
천하의 명마(名馬)·준마(駿馬)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능력과 진가를 알아보고 천거하여 큰일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다.
시정(市井)의 필부(匹夫)들 틈에 섞여 허드렛일을 하거나 초야(草野)에 묻혀 하릴없이 인생을 마칠 뿐이다.
※ 현대 중국화가 위효용(尉曉榕)의 <백락련재(伯樂憐材)>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잡설(雜說)>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춘추시대 진(秦)나라에 손양(孫陽)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남다른 안목과 감식안이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말도 그의 눈길이 지나가고 나면 명마로 부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백락(伯樂)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락은 원래 천마(天馬)를 다스린다는 별의 이름이다.
결국 천리마는 백락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인재는 현명한 군주가 있음으로 해서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백락이 있고서야 천리마가 있다"(世有伯樂然後 有千里馬)는 말은 뒤집어 보면 "백락이 죽으면 천리마도 없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伯樂旣沒 驥焉程兮(백락기몰 기언정혜) "백락이 죽었으니 천리마가 있은들 누가 알아주랴"라는 말도 생겼나 보다.
※ 근현대 서화가 은재상·조숙유(殷梓湘 趙叔孺)의 <백락세마(伯樂洗馬) 행서(行書)>(成面)
중국 전한(前漢)시대 정치가이자 문인인 가의(賈誼)는 <조굴원부(弔屈原賦)>에서 驥垂兩耳 服鹽車兮(기수량이 복염거혜: 천리마가 두 귀를 드리우고 소금 수레를 끄네)라고 읊은 바 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라도 백락(伯樂)처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헛되이 소금수레를 끄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를 기복염거(驥服鹽車)라고 한다. 여기서 복(服)은 "(수레를) 끌다"라는 뜻이다.
오추마(烏騅馬)가 항우(項羽)를 태우고 달리고, 적토마(赤土馬)가 관우와 함께 중원을 누볐듯이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태우고 다녀 마땅할 천리마가 필부를 태우고 다니며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처럼 한심한 일도 없으리라.
- 적토마(赤土馬)는 원래 동탁(董卓)의 소유였다. 동탁은 여포(呂布)를 회유하기 위해 적토마를 여포에게 주었다. 여포는 이에 감격하여 의부(義父)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의 막하로 들어간다.
나중에 여포가 조조(曹操)에게 잡혀 죽은 뒤, 조조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다가 관우에게 주었다. 이후 적토마는 관우와 함께 전장을 누비다가 관우가 마충(馬忠)에게 생포되어 죽은 뒤 마충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먹이를 거부하고 따라 죽었다. 시시하게 마충을 태우고 다니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죽음도 예사롭지 않으니 명마는 명마였던 모양이다.
※ 근현대 중국 서화가 조숙유(趙叔孺)·제건추(諸健秋)의 <백락상마도(伯樂相馬圖)>
※ 청말근대 화가 김용(金榕)의 <백락상마(伯樂相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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