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대(明代) 화가 대진(戴進)의 <위빈수조(渭濱垂釣)>
落花不返枝 覆水不返盆
(낙화불반지 복수불반분)
떨어진 꽃잎은 가지로 되돌릴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네
☞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몰아내는데 큰공을 세웠고, 후에 齊나라의 시조왕이 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는 고사를 남긴 주인공이자 낚시꾼(釣人)의 대명사가 된 강태공이 바로 그다.
그가 아직 벼슬하지 아니하였을 때다. 그의 아내 마씨(馬氏)는 남편이 학문에만 열중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데 반발하여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뒤 강태공이 문왕에게 등용되어 공을 세우고 제나라 왕이 되자 마씨가 강태공 앞에 다시 나타나 거두어 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그는 물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여 마씨에게 그 물을 땅에 쏟게 한 뒤 다시 담아 보라고 했다. 물론 마씨는 담지 못했다.
이에 강태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는 없노라"(若能離更合 覆水定難水)고 했다.
마씨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 왕가(王嘉), ≪습유기(拾遺記)≫
※ 근현대 중국화가 제백석(齊白石) 진반정(陳半丁)의 <위빈이조도(渭濱理釣圖)> (1944年作)
비슷한 얘기가 한(漢) 무제 때 승상을 지낸 주매신(朱買臣)의 인생역정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의 입지전적 인물의 상징과도 같은 매신이 입신하기 전, 그러니까 40대 때의 일이다.
매신은 땔감을 해 내다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의 궁핍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책 읽기를 좋아해 비가 와서 곡식 멍석이 빗물에 둥둥 떠다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독서삼매에 빠져 그랬는지, 집안 일에 무관심해서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 남편과 사는 아내는 오죽했으랴. 사서에는 그의 아내가 이런 꼴을 참다못해 집을 나가버리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나이 마흔 넷이 부족해 오십이 되면 출세할테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말은 아내에게 "배째라"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 청말근대 화가 왕진(王震)의 <부신도(負薪圖)>
훗날 엄조(嚴助)라는 사람이 매신을 무제(武帝)에게 추천하여 중대부(中大夫)로 임명되었고 나중에 회계(會稽)의 태수로 승진하였다. 매신이 태수(太守)로 부임하는 길에 고향인 오현(吳縣)을 지나게 되었다.
관리들이 그를 영접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해 길을 쓸게 했다. 거기에 재혼해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 버린 그의 아내도 끼어 있었다.
신임 태수가 매신임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아내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으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내가 매신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며 다시 거두어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매신은 물 한 동이를 가져오게 해 수레 앞에 쏟은 뒤 그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재결합하겠다고 말했다. 엎질러진 물을 어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러움과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그의 아내는 그 길로 목을 매고 말았다 한다.
시선 이백(李白)은 그의 시 <대별정인(代別情人)>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흘러간 구름은 되찾기 어렵다네"(覆水不可水 行雲難重尋).
※ 조선 후기 화가 유운홍(劉運弘)이 주매신을 소재로 그린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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