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古典

[스크랩] 곡돌사신(曲突徙薪)

감효전(甘曉典) 2012. 5. 14. 21:13

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爲上客
(곡돌사신무은택 초두난액위상객)


"굴뚝을 구불구불하게 하고 아궁이 근처의 땔감을 옮기도록 충고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대가가 없고, (불을 끄느라) 머리를 그을리고 이마를 덴 사람만 큰손님으로 모시더라"는 뜻이다. "화근(禍根)이 될만한 일은 사전에 싹을 잘라 후환을 없애라"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 ≪한서열전(漢書列傳)≫ <곽광(霍光)>전 

 

※ 서한 무제(武帝) 때 곽광(霍光)은 황제를 잘 모시고 업무처리에 빈틈이 없어 큰 신임을 받았다. 또한 이복형인 곽거병(霍去病)이 흉노를 정벌하는데 큰공을 세워 곽광의 집안은 일시에 권문세가(權門勢家)로 발돋음했다.

 

얼마 후 무제(武帝)가 죽고 선제(宣帝) 즉위하자 곽광이 어린 선제를 대신해 국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곽광은 집정 후 한동안 좋은 정사를 베풀었으나 갈수록 교만해져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버렸다.


이때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이 선제(宣帝)에게 글을 올려 곽광을 탄핵했다. 곽광의 권세가 지나치게 커져 문제가 많으니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때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며 세 번이나 글을 올렸으나 황제의 반응은 시쿤둥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곽광이 죽은 지 3년 만에 곽씨 일가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여 모반을 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곡절 끝에 진압되기는 했으나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황제는 곽씨 일가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두루 상을 내렸다. 그러나 서복에게는 아무런 상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한 신하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의 불공평함을 들어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우연히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곧장 위로 치솟아 불이 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위험천만하게도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수북히 쌓여있었습니다.

 

나그네는 집 주인에게 굴뚝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다행히 이웃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꺼줌으로써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집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불을 꺼준 이웃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굴뚝을 고치고 땔감을 옮기라고 충고했던 나그네에게는 아무런 사의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애초에 불이 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술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요. 정작 굴뚝을 고치고 땔감을 옮기라고 했던 나그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고, 머리를 그을리고 이마를 데며 불을 끈 사람들만 귀빈 대접을 받는군요(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爲上客). 이게 무슨 경우랍니까?'"

 

선제(宣帝)는 이 글을 읽고, 즉시 서복에게 상을 내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다.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소요유逍遼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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