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정조대왕의 행서시축

감효전(甘曉典) 2012. 3. 12. 19:39

                (정조대왕의 행서시축)

 

 

▲ 정조어필, 정민시를 위한 송별시, 조선 1791년,75.1 x 158.3cm, 국립진주박물관

 

정성 어린 이별의 자리 여러 순배 돌리어라 / 欵欵離懷酒屢巡
그대 보내는 명일에는 동작진을 나가겠지 / 送君明日出銅津
지금 복잡한 일은 민생 복지가 필요하고 / 卽今盤錯須民部
예로부터 순선의 직은 측근 신하 의지하였네 / 從古旬宣仗近臣
가벼운 옷차림의 새 자사를 다투어 볼 게고 / 裘帶爭瞻新刺史
대부인의 기거는 항상 탈이 없으리로다 / 起居無恙大夫人
누대의 명칭 공북은 참으로 우연이 아니니 / 樓名拱北良非偶
몇 밤이나 누대에 올라 대궐을 바라볼런고 / 幾夜登樓望北宸

 

 

석봉 한호의 글씨를 비롯한

서예 작품 20건, 40점이 보물로 새로 지정됐다.

 

안동 진성이씨 종가의 퇴계 이황 필적,

서산대사 행초서, 황기로(黃耆老)초서,

안성 칠장사의 인목황후 칠언시

그리고 숙종, 정조의 어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보, 보물로 지정된 서예 작품은 11점에 지나지 않아

국가지정 동산문화재(1287점)의0.8 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

 

조선시대 4대 명필인 안평대군, 봉래 양사언,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의 작품 한 점 이상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는 "일괄 공모" 지정이 낳은 성과다.

 

그동안 문화재 지정에는 절차상의 모순이 있었다.

 

국보가 되려면 먼저 보물이 되어야 하고,

보물이 되려면 소장자가 지방 자치단체에 신청해야 한다.

 

신청하지 않은 유물은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로인해 아직 신청조차 하지 않은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일괄 공모" 방식이 도입되었다.

일정 분야의 유물들은 한자리에 모아놓고 심의하는 것이다.

 

이미 백자달항아리 5점, 조선시대 초상화 33점,

조선시대 고지도 35점이 보물로 지정됐고,

그중 두어 점이 국보로 승격됐다.

 

이와 같은 "일괄 공모"를 통한 지정 방식은

공개되지 않던 문화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또 합리적인 상대 평가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이번에 실시된 서예 작품 일괄 공모는

"조선 전기 대표적인 명필 11명의 작품 및 왕과 왕비의 글씨"로

100건, 184점이 출품됐고, 신청되지 않았지만

이미 중요한 유물로 알려진 18건, 55점이 직권 조사로 함께 심의됐다.

 

이 중 정조대왕이 호남으로 부임하는

정민시(鄭民始 1745 ~ 1800)를 위해 송별시로 써준 행서 칠언율시

<신제학 정민시 출안 호남贐提學 鄭民始 出按 湖南>은 정조대왕의

서예적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작이다.

 

정조대왕은 본래 행서에 능하기도 했지만

특히 이 시고는 임금을 대신해 지방으로 떠나는

신하를 송별하는 술자리에서 쓴 것이어서

행서의 흐드러진 멋이 더욱 살아나 있다.

 

대왕의 40세 때의 작품으로,

모란과 구름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분홍 비단 바탕에

윤기 나는 좋은 먹으로 씌어 있어 어필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이 역력히 살아 있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출처 : 한국 네티즌본부
글쓴이 : 백합향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