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의 여백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으며
그 그림들 속에 스며있는 선인들의 서정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즐긴다.
일천한 지식으로 감히 선인들의 작품을 논한다는 자체가 죄스럽긴 하지만
이걸로 라면 한그릇 얻어 먹은 적 없으니 누가 뭐란들 어떠랴.
지금의 글들은 左에서 右로 가로로 쓰고 읽어나가듯
옛그림들도 左에서 右로 읽게되면 중간에서 막혀버리게된다.
세로로 쓰여진 옛글들이 右에서 左로 세로로 쓰고 읽듯이
옛그림도 옛글과 마찬가지로 右에서 左로 읽는 것이 그림을 이해하기가 쉽다.
시화전이나 서화전 등 전시회장을 가보면
전시된 주 작품들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관람객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마련해 놓은 것을 간혹 접한다.
가로로 많이 쓰여진 시화전은 시계방향으로..
세로로 많이 쓰여진 서화전에서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동선을 마련해주는 배려가 아쉬울때가 많았다.
김득신의 야묘도추도를 모델로 돌팔이 방식으로 읽어보자.
兢齋 金得臣 野猫盜雛 [긍재 김득신 야묘도추] 종이에 수묵담채. 22.5 x 27.2 cm. 간송미술관 소장
어느 한적한 농가의 앞뜰에서 일어난 한 순간의 정경을 담은 그림으로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와 당황하여 날개치는 어미닭,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병아리,
그리고 병아리를 안 빼앗기려 하는 주인 부부의 본능적인 모습 등을
작가는 실감나게 그렸다.
이게 뭔 일이다냐?
한가로운 시골집의 고요와 평화를 깨는 난리법석이 나부럿다.
"오늘 점심 메뉴는 야들야들한 영계로 몸 보신 쬐깨혀야 쓰긋써."
검정 들고양이 한 마리가 오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병아리를
그만 잽싸게 물고 달아난 것이다.
깜짝 놀란 어미 닭이 눈에 시뻘겋게 독이 올라
날개를 파닥거리며 고양이에게 덤벼들고,
나머지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달아나기 바쁘다.
"꼬꼬댁 꼭꼬꼬꼬~~꾸여운 내 새끼를 워쪄~~~"
화급한 암탉의 비명소리에 한가롭게 자리를 짜던 주인 영감이 벌떡 일어나
긴 담뱃대를 내뻗어 후려치려고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굳을 대로 굳은 몸이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대로 고꾸라지며 쓰고 있던 탕건과 일하던 자리 틀까지 땅바닥에 나둥그러진다.
정작 놀란 건 방안에 있던 마나님이다.
"어메~~어쩌끄나~~
울 영감 허리뽀사지게 생겼어야~
추야장청 기나긴밤을 나는 우짜락꼬~~~"
허겁지겁 방안에서 뛰쳐나오느라 맨발 바람으로 쿵쾅거리며
엎어질 듯 영감을 붙들어보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고 종쳐부럿다.
공중에 부~~웅~~ 떠 있는 영감을 워쩔긋이여.
들고양이는 여유있게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며
"히히히히 그리 동작이 느려터져서리 날 잡겠다고라?"
일부러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긴 꼬리를 휘두르며 영감을 얄밉게 돌아다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화면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급하기 짝이 없지만
작가는 그림을 감상하는 이가 작품 이전의 상황부터 이후의 결과까지를
한눈에 알아 볼수 있게 모두 한 장면에 담았다.
여백을 중시하는 다른 옛그림들에 비해
이 그림은 등장 모델들이 많아 그림의 구성 요소들이
어디라 초점없이 화폭 전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산만하게 보이지만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대각선으로 읽어보면
그림에 담긴 정황들이 바로 한 눈에 들어온다.
마나님은 영감을 보고,
영감 앞에는 벗겨져 떨어지는 탕건이,
탕건 앞에는 암탉이 있고,
암탉은 다시 고양이를 쫓고,
고양이는 영감을 놀리듯 뒤돌아본다.
뒷뜰의 나무가지도 이 방향으로 뻗어 있을 뿐만 아니라
등장 모델들이 전부 이 대각선을 기준으로
右上에서 左下로 흐르게 구성이 되어있다.
어디던 주인공은 있기 마련인지라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굴까?
야묘도추(野猫盜雛) :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간다...
작품명을 보면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보이지만
그림은 암탉이 주인공이라는걸 말을 해준다.
암탉을 중심에 둔 가상의 사각형에
右上에 벗겨진 탕건을 그려 넣었고,
右下에 세마리의 병아리를....
左上에 고양이를....
左下에 병아리 한마리를 더 그려넣으므로써
중심에 선 어미 닭의 안타까운 모정이 절로 표현되었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채가는 그림인 야묘도추도의 매력은
이렇듯 난리법석인 흥미로운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한낮의 소동을 멋들어지게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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