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대사 재조명

[스크랩] "가장 치열한 항일투쟁, 김원봉 정당한 평가를"

감효전(甘曉典) 2012. 2. 6. 22:35

<약산 김원봉 평전> 펴낸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을 만난 것은 지난 26일이다. 89주년 3·1절을 앞두고 있기도 했지만 그의 특별한 이력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4년 <백범 김구 평전>을 시작으로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등을 잇달아 출간했다. 또 최근에는 일제강점기 일제와 맞서 의열단 및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폭렬투쟁(暴烈鬪爭)을 벌였던 <약산 김원봉 평전>을 펴냈다.

 

김 관장은 여섯 번째 평전 인물로 약산(若山) 김원봉 선생(1898~1958?)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일제와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도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며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방법에 대해 "올해는 김원봉 선생이 사망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라며 "남한에서는 재평가 작업과 독립운동 서훈을 인정하고 북한에서는 김원봉 선생의 활동과 죽음의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방 후 친일파들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껴 망명하듯 월북했는데 이를 이유로 독립운동 서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관장은 내년에는 안중근 의거 100주년에 즈음해 <안중근 평전>, 2009년에는 일본과 청나라간 간도협약 100주년에 맞춰 <잃어버린 간도 100년사>를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89주년을 맞는 3·1절과 관련 "삼천리 강산에서 220만 동포가 4천년 역사를 지키겠다고 일어선 날"이라며 "이후 모든 항일운동은 3·1운동이라는 저수지에서 발원했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평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3·1절을 맞아 최초로 우리나라 국기로 지정된 박영효의 태극기의 원형이 재현해 공개한 데 이어 3·1절에는 독립기념관에 이를 게양할 예정이다.

 

김 관장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인명사전편찬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인물 평전외에 <친일정치 100년사> <해방 후 양민학살사> <한국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등이 있다.    

 

다음은 김 관장과의 일문일답.

 

 
독립기념관이 발굴한 최초의 태극기 원형본. 3·1절에 독립기념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 올해 89주년 3·1절을 맞는데?

"삼천리 강산에서 220만 동포가 4천년 역사를 지키겠다고 일어섰다. 이는 민족 초유의 거사다. 거의 민족적으로 계층 성별 지역 종교를 초월한 것으로 세계사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중국은 물론 인도, 터키 등 세계 각국의 피압박 저항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모든 항일운동은 3·1운동이라는 저수지에서 발원했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크고 깊다. 독립기념관에서는 3·1운동 90주년이 되는 내년부터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는 <3·1운동 총서> 100권을 펴낼 계획이다."         

 

- 우리나라 국기의 원형을 126년만에 처음으로 발굴해 공개할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박영효가 제작한 국기를 실사(實寫)하고 애초 크기까지 기입한 그림이 동봉된 일 외무성의 문서를 이달 초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했다. 영국 유학생 한승훈씨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제보받은 뒤 독립기념관이 한철호 동국대 교수와 함께 검증해 이를 확인했다.

이는 우리 국기의 본 모습을 찾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독립기념관은 당시 문서에 적힌대로 정확하게 재현하고 3·1절을 맞아 독립기념관에 게양할 예정이다.       

 

- 때 맞춰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평전>을 출간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을 평전 인물로 선택한 이유는?

"김원봉 선생은 일제감정기 일제와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또 투쟁과정에서 일관된 애국심

을 보여줬다. 해방 후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해방 후 남과 북

모두로부터 홀대받아왔다. 늦었지만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하는 노력에 일조하고 싶었다"

 

  
미소공동위원회 환영시민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원봉.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발췌
 

- 많은 독립운동가 중 김원봉 선생을 '일제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인물'로 단언한 이유는?

"의열단은 다른 조직단체의 외교론이나 실력양성론 등과는 달리 독립운동의 방안으로 직접 무력항전을  택했다. 단원들의 생명을 내걸고 폭압통치기구, 요인 암살 한다는 것 자체가 치열한 것이다.

 

또 그가 조직한 의열단은 1920~30년대 민족운동단체 중 임시정부를 제외한 가장 긴 활동단체다. 다만 열악한 무기로 인해 투쟁에 비해 성과가 미약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치열하고 엄청난 투쟁을 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 북한에서 김원봉 선생을 숙청한 것으로 봤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여러 근거가 있다. 하나는 김원봉 선생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남에서는 사회주의자로 평가했지만 그는 사회주의자와 입장을 달리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 또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해방 후 박헌영 등 남로당을 숙청한 후 김원봉은 마지막 남은 라이벌 같은 존재였고 이 때문에 김원봉을 배제시켰을 개연성이 크다.

 

실제 김원봉은 평화통일중립화방안을 주장했다. 해방 직후 황용주 전 MBC 사장이 중국 상해에서 김원봉 선생과 상당히 긴 얘기를 나눴는데 증언에 따르면 그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북 애국열사릉에 김원봉 단장의 묘소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능을 방문해 보니 대부분의 월북, 납북 독립운동가들이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A급 항일투사인 김원봉 선생의 묘소는 없었다. 1947년 <약산과 의열단>을 쓴 작가박태원 선생의 묘소와 심지어 친일파로 낙인된 이광수 가묘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이는 김원봉 선생을 북 정권이 숙청했음을 반증한다."

   

-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 남과 북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떼고 항일투사라는 진면목을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또 서훈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김원봉의 활동과 죽음의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 '서훈'과 관련 국가보훈처에서는 월북해 북한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다는 점을 들어 서훈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해방 후 친일파들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껴 망명하듯 월북했는데 이를 이유로 독립운동

서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천왕을 처단하려 했던 박열 선생의 경우 해방 후 북한 조국통일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서훈이 인정됐다. 또 박열 선생의 경우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선생의 아들은 우리나라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준장까지 지냈다.

 

다른 한편 북에서 배제된 독립운동가에 대해 서훈을 줌으로써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과 포용력을 확인시키는 것도 국익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남에서도 배제하면 북한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약산 김원봉 평전>

- 개인적으로 김원봉 선생 평전을 쓰면서 안타까운 점을 꼽자면?

"중국공산당이 조선의용대 주력과 김원봉 선생을 갈라 놓은 점이다. 만약 김원봉 선생이 조선의용대 주력을 모두 데리고 임시정부에 합류했다면 한국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은 앞당겨졌을 것이다. 

 

A급 항일투사가 정작 해방조국에서 총독부 악질 경찰 출신인 노덕술에게 체포돼 갖은 수모와 고문을 당한 것은 민족사의 아픔이다."

 

- 기존에도 김원봉 연구서가 여럿 있었다. 이번 평전에는 새롭게 발굴된 사료가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안다. 새로 발굴된 사료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꼽자면?

"<민족혁명당보> 창간호다. 이 속에는 김원봉의 연설문이 들어있다. 또 일본총독부가 수집한 '사상정세시찰보고서'와 이 속에 들어있는 <민족혁명당 창당선언문>도 새로 발굴한 사료다. 이외에도 다수 사료가 있다."

 

- 자료수집은 어떻게 했나?

"신문사 재직할 때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해외여행을 다니며 일본 고서점, 중국 북경과
길림성 등 당안관(국가기록보관소) 등에서 자료를 입수했다. 30여년간 꾸준히 모은 자료들이다. 지금까지 모두 2만권 정도의 자료를 수집했는데 그 중 인물관련이 4000권 정도다."

 

- 내년에는 <안중근 의사 평전>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의병조직과 일제와 싸우고 안중근 의거 100주년에 즈음해 <안중근 평전>, 2009년에는 일본과 청나라간 간도협약 100주년에 맞춰 <잃어버린 간도 100년사>를 출간할 예정이다."

 

- 최근 들어 매년 평전을 출간하고 있다. 어떻게 매년 책 출간이 가능한가?

"과거 민주화운동·언론개혁운동·시민운동 등을 하며 60대까지 역사에 올 곧게 뚜렷한 족

적을 남긴 20명의 평전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았다. 일본 관련

자료의 경우 2만권 분량의 자료를 모았다. 남들은 어떻게 1년에 한 권씩 인물평전을 쓰느냐고 반문하지만 실상은 30년 간 축적해 놓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 진정한 힘의 행복
글쓴이 : 진정한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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