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동맹 [建國同盟]
한국 독립운동단체1944년 8월 10일 여운형(呂運亨)의 지도 아래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불문(不問)·불어(不語)·불명(不明)을 철칙으로 결성한 조직.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은 일제의 전시통제 아래 대부분 침묵을 지키거나 1944년에 결성된 공산주의자협의회처럼 소그룹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민족주의자들도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드러내놓고 친일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건국동맹은 "각인각파(各人各派)를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로 일본제국주의 제세력을 구축하고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일, 반추축(反樞軸) 제국과 협력하여 대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세력을 박멸할 일, 건설부면에 있어 일체 시위를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거하고 특히 노농대중의 해방에 치중한다"는 강령에 따라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경 여운형을 중심으로 내무부, 섭외부 등의 부서와 각 도 책임자를 결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후방교란과 자주적인 독립쟁취를 위해 조동호(趙東祜)·이석구(李錫玖)·이걸소(李傑笑) 중심의 군사위원회, 이정구(李貞求) 중심의 식량대책준비위원회, 장권(張權)을 대장으로 한 치안대, 김용기(金容基)를 중심으로 한 여주·양평 지역의 농민동맹 등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또한 건국동맹은 좌·우를 묻지 않고 해외에 존재하는 조선인 반일단체와의 조직적 결합을 모색했다. 즉 여운형은 건국동맹 결성을 전후한 시기부터 박승환(朴承煥)·이광민(李光敏)·이영선(李永善)·이상백(李相栢)·최근우(崔謹愚) 등을 해외에 파견한 결과, 이영선·이상백을 통해 연안의 화북조선독립동맹과 연락하고 있었다. 이는 결정적 시기에 해외 조선인 반일무장역량과의 조직적인 결합을 통해 해방을 자주적으로 쟁취하려는 의도의 일환이었다. 1945년 8월 4일 이석구·조동호 등 간부들이 체포되었으나, 8·15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할 수 있는 모체가 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역사 > 현대사 재조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연재> 통일운동가 안재구 자서전 ‘어떤 현대사’ (49) /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서거 (0) | 2012.02.05 |
---|---|
김대중전대통령의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사 [1] (0) | 2012.02.05 |
[스크랩] 윤봉길 의사 상하이 폭탄 의거 실제 동영상 (0) | 2012.02.03 |
[스크랩] 윤동주..문익환..나운규.귀한사진 (0) | 2012.02.03 |
[스크랩] [간도의 한국인] 김재홍씨 수집자료 (0) | 201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