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최면심리 -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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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그리고 보고 듣고 알아채고 하는 의식은 현재의식이고, 현재의식 아래 깔려 현재로서는 숨어있는 의식이 있는데 이를 잠재의식이라고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잠재의식을 두고 무의식이라고도 표현한다. 무의식이란 말은 문자그대로 의식이 없다는 말인데 사실상 인간이 죽었다면 의식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의식이 없을 수가 없다. 누가 갑자기 주먹으로 배를 치려는 자세를 취하면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즉각 배에 힘을 주고 움츠리게 된다. 어떤 의식이 순간적으로 신경에 명령하여 움츠리게 한 것이다.
우리가 잠잘 때에도 심장은 뛰고 호흡하며 먹은 음식물은 대장으로 이동된다.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이 명령하여서인가?
자율신경이? 최면으로 맥박의 빈도를 줄일 수 있고 호흡을 천천히 할 수 있게 하며 소화가 잘 안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의식이 자율신경에 명령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런 의식이 바로 잠재의식이다.
먼 길 여행을 떠날 사람이 다음날 아침 몇 시에 일어나겠다고 마음먹고 자면 자명종이나 컴퓨터에 시간을 소리로 연결시켜 입력한 것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을 깨워 주는 것은 잠재의식이 한 일이다. 우리가 현재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때에도 잠재의식은 언제나 작용한다.
잠재의식의 발견
이 잠재의식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프로이트인데 그는 현재의식을 물위에 뜬 얼음에 비유하였고 잠재의식은 물아래 갈아 앉아 뜬 얼음과 같다고 했다.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현재의식보다 잠재의식이 훨씬 크다고 했다. 프로이트가 20세기 초두에 이 잠재의식을 발견한 후 문학, 철학, 미학, 심리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큰 변화를 주었다. 잠재의식의 발견은 대단한 공적이다.
잠재의식은 자극을 주는 데 따라 반응한다.
잠재의식을 '영(靈)'이라 할 때, 영이란 특수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잠재의식은 그냥 놔둔다면 창조 시 주어진 역할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전기만 넣고 그냥 놔둔 컴퓨터처럼 가만히 있는 멍청이다. 생각하는 컴퓨터가 나와 에러를 스스로 처리 할 수 있는 시대가 될지라도 인간의 잠재의식은 놔둔 대로 그냥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재의식에 자극을 가하여 가능성을 심어주면 주는 대로 발휘한다. 불가능성을 심어주면 주는 대로 퇴보한다. 이 심어주는 것, 이것은 자신이거나 타인이거나 간에 현재의식의 역할이다. 생각하는 컴퓨터란 말에서 이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현재의식에 해당된다.
잠재의식은 믿는 대로 결과가 나온다. - 히스테리성 앉은뱅이가 일어설 수 있다고 믿고, 일어서면 일어선다. 히스테리성 장님이 눈을 뜰 수 있다고 믿으면 사물이 보이고,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낫는다고 믿으면 낫는다.
잠재의식의 비유
잠재의식은 토양과 같다. 여기에 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나고 약초를 심으면 약초가 난다. 잠재의식은 처음에는 백지와 같았는데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온갖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듣고 보고하여, 이 백지 위에 온갖 나쁜 그림을 그리게 되어 병들고 못된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기도 하고, 유익한 언행으로 좋은 그림을 그려 훌륭한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기도 한다.
나쁜 그림이란 부정한 경험으로 불안, 갈등들의 심리가 심어지고 때로는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게 자신을 고착(固着)시키기도 하고 미숙(未熟) 상태로 방치하기도 한다. 독초를 심은 듯한 과거 경험이 열매를 맺어 터지는 행위가 병적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여도 되겠다. 호주머니에 넣어둔 송곳 끝이 밖으로 쑥쑥 빈번히 나오듯이 잠재의식으로 숨겨진 문제점이 현재의식으로 쑥쑥 불거져 나와 고통을 일으킨다.
잠재의식의 기능
잠재의식은 자율신경을 지배한다. 심장의 고동이나 땀을 흘리게 하거나 몸에 호르몬을 분배시키는 일은 자율신경이 하고, 이 자율신경은 잠재의식에 의하여 지배받으며, 이 잠재의식은 말, 생각, 감정에 의하여 지배받는다. 최면술을 써서 심장의 맥박 수를 줄일 수 있고 늘일 수 있으며, 땀을 흘리게 할 수 있으며, 출혈을 그치게 할 수도 있으며, 몽정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으니, 이는 잠재의식에 암시를 주어서 자율신경을 지배하였다는 뜻이다.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은 별개의 것이다. 잠재의식은 현재의식이야 고통을 받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식으로써 가능하다.
어떤 문제로 몰두하는 과학자에게 훌륭한 아이디어나 해결점이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도 잠재의식에 대하여 현재의식이 생각해 내도록 수시로 알게 모르게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서 영특한 시상이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의식이 잠재의식 한 귀퉁이로 약간 들어갈 수는 있고 또한 잠재의식 역시 현재의식 속으로 잠시 나올 수는 있어도 이들이 통일되거나 통합될 수는 절대로 없음을 프로이트가 이미 잘라 말했다. 그러니 인간은 어차피 두 개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돼 있다. 현재의식이 동적이라면 잠재의식은 정적이다. 잠재의식은 일차적이고 직선적이고 순종적이고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다.
잠재의식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식으로 심어진 결과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공동의 삶을 위하여 만들어진 양심(良心)-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자기 밖의 것으로 초자아(超自我)라 한다. 여기에 현재의식으로 경험한 반칙이 부딪혀 가책이 일어나고 이 가책으로 인하여 감정적으로 부끄러움을 타게 된다. 이런 현상을 자기처벌이라 한다. 이런 불쾌한 경험을 현재의식이 잊으려 하면 잠재의식은 이를 받아들여 현재의식으로는 잊어버리게 처리하나 잠재의식 내에서는 기록된다.
사실상 현재의식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자극 받는 이 모든 것이 이 안에 기록된다. 잠재의식은 현재의식을 인격이 전혀 다르게 하여 둘로 나누어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무슨 일에 이랬다 저랬다 하면 이중인격자라고 우리는 흔히 말한다. 이런 경우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런 식의 말이 아니라 심리학에서나 정신의학(정신병리학)에서 말하는 이중인격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몸뚱이를 보면 하나의 인간인데 사고와 행동은 완전히 두 인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 어떤 귀부인이 갑자기 다른 인간으로 변하여 술집여자 행세를 할 때 귀부인 인격(주 인격) 인간과 술집여자 인격인간과는 서로가 잘 모른다. 귀부인은 희미하게 또는 좀더 자세히 술집 여자 인격 인간을 기억할 수 있으나 술집여자 인격 인간은 귀부인 인격 인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서로의 사이는 남남 관계다. 귀부인은 또 다른 제3의 인격 인간으로 행세하는 수도 있다. 이때는 3중 인격이라 한다. 이런 3중 인격도 잠재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잠재의식에는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가 있다
이 기록된 모든 것을 최면술로 다 캐낼 수는 없다. 그 중 특별한 기억이나 오래되지 아니한 기억은 캐 낼 수 있다. 특별한 기억일지라도 잠재의식은 발각되지 않게 방어하려는 짓을 할 때가 많다.-이를 방어기제(防禦機制)라 한다-
방어함으로 하여 불쾌했던 경험이나 부끄러움을 다시 또 상기시키지 않도록 현재의식이 이미 심어놓았던 결과로 그럴 수도 있고, 양심의 가책에 대한 자기 처벌이 아직 계속되는 중이기도 하다. 범인에게 범죄행위를 했느냐고 적당하게 묻는 형사에게 바른 대로 얼른 대답해 줄 범인이 없듯이 최면사가 캐려해도 이 방어기제가 계속되는 수가 허다하다. 민완형사가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며 심리 유도하여 범인에게서 자백 받듯이 유능한 최면술자라면 이를 제거할 줄 안다.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이 방어기제를 제거하여야만 병 만든 원인과 그 동기를 알 수가 있다.
잠재의식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한번 잠재의식에 심어진 감정은 그것과 반대되는 전보다 더 큰 감정으로 심으면 먼저의 감정은 비켜나고 더 큰 후자의 감정이 들어앉는다. 토양에서 독초보다 약초에 더 많은 태양 빛을 주고 물을 주어 더욱 무성하게 자라게 하면 함께 있던 독초가 힘을 못쓰는 것처럼- 위에서 말한 두 개의 감정은 그대로 기록되어있는 것이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잠재의식은 조건반사로 행동한다
최면 중에 피술자가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은 이미 입력되어있는 조건에 의한 반사행동이다.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자전거를 타고 가라 하면 목적지까지 간다. 술 취한 사람이 제 집을 찾아갔으나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아 필름이 끊겼다고 말하듯이 잠재의식으로 눈에 보이는 위험물을 피해 가는 행동은 위험의 판단력으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형성된 조건의 반사행위로 피해 가는 것이다. 로봇이 입력된 대로 위험물을 피해 가는 것과 같다.
개한테 고기를 보이면 침을 흘린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선천적인데 이는 무조건 반사이다. 벨을 울린 후 고기를 주는 것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벨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후천적인 것으로 조건을 주어 일어난 반사라고 하여 조건 반사라 한다. 개를 매달아두고 철판 위에 올려놓고 철판을 차츰 달구어 뜨겁게 하면 개는 발바닥이 뜨거워 춤추듯 펄쩍펄쩍 뛰게 된다. 이럴 때 음악을 들려주고 이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그 음악만 들려주어도 개는 춤춘다. 이 조건 반사는 러시아인 파블로프가 실험하여 알아낸 것으로 인간도 선천적인 것 말고는 조건 빈사로 일어난 행동이 대부분으로, 조건이 계속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화되기도 하고 조건을 주지 않으면 소거(消去)되기도 한다.
잠재의식은 시공에 얽매이지 아니한다.
잠재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최면에서 각성시키고 나서 최면 중에 있었던 사실을 후최면 암시로 망각암시를 주지 않았으면 거의 기억한다. 그러나 그 동안 외부에서 일어난 사실 즉 최면실에 누가 들락날락 했는지 현실적인 시간은 몇 시쯤이었던지 장소가 어디였던지 생각하거나 알고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그 생각은 없었고 몰랐다고 대답한다. 마음 병이 오래가는 것도 시공과 관계없기 때문이다. 최면 중에는 지금 몇 시냐? 여기가 어디냐? 하고 물으면 안다. 그러나 잠재의식 자체는 시공의 개념이 없다.
연령퇴행 시킬 때 20대 청년에게 보통 경우에는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시절로 점차적으로 퇴행시키지만 고교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학교 입학하던 날로 퇴행시켜도 된다. 컴퓨터에 입력된 기록 중에 필요한 부분만 단번에 찾아내는 것과 같다. 수많은 컴퓨터 화면을 한 장면에서 정지시킬 수 있듯이 최면 중에 장면을 정지시켜 볼 수 있다. 이 때는 전파방해를 입은 TV 화면처럼 영상이 흔들린다. 이런 방법을 범죄수사 때 목격자에게 쓴다.
컴퓨터에 기록을 저장할 때는 순서가 있으나 저장하는 내용물이 순서대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구석에 무엇이 저장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뽑아 쓸 때는 컴퓨터 자체가 알아서 화면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잠재의식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잠재의식은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우주적인 잠재의식이 있을 것 같다. 텔레파시는 영상 휴대폰과 같다고 나 할까. 심기가 통하는 사람끼리 잘 통한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상황을 알아낸다.
잠재의식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잠재의식에 사물을 판단하라고 하면 판단한다. 그러나 잠재의식 자체는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을 식별하지 않는다. 현재의식이 죽기를 원한다면 잠재의식은 그 자체가 의탁해 있는 자기육신을 죽여주기도 한다.
잠재의식은 꿈과 현실을 모른다. 구별하라면 할 수 있으나 그냥 있을 때는 꿈꾼 것은 현실적으로 실행해본 것과 같이 학습되어 조건 반사가 심화된다. 각성된 피최면자에게 최면중의 사건들을 물어보면 그 때는 모든 것이 총 천연색으로 보이고 꼭 현실과 같아서 현실로 알았는데 깨고 보니 또 하나의 현실이 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꾼 꿈은 흑백 꿈이 보통인데 최면을 통하여 꾸게 된 꿈은 천연색이다. 최면 중에는 보이고, 들리고, 행하는모든 것들이 현실인 것으로 여긴다. 깨고 나서 보면 또 하나의 현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최면의식은 자연 꿈보다는 현실, 현실보다는 꿈에 가까운 중간상태이다.
잠재의식을 활용할 때
그렇다면 우리가 잠재의식을 현재의식으로 보고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과연 조종할 수 있을까?
꿈을 꾸고 나서 막 잠을 깰 때나 방금 막 잠들려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순간이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의렴풋이 알 수 있는 선잠에 들어있을 때가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의 방문이 약간 열려 있을 때이다. 이 때가 잠재의식을 활용할 좋은 기회다. 이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희미하나마 현재의식으로 유익한 명령을 반복적으로 하면 명령하는 대로 잠재의식은 결과를 낳아줄 것이다.
학생이라면 공부가 잘 되된다는 암시를 넣어주고, 환자라면 해당되는 고통이 사라진다는 암시를 넣어주고, 꼭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았다면 그 목표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의 심상화를 하라. 이렇게 성공으로 가는 자기최면을 반복하여 실행한다면 잠재의식이 응답할 것이다.
이렇게 노력하여도 사람에 따라 역효과가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미 남을 믿지 않고 의심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게 된다. 이미 잠재의식에 받아들인 부정적인 요소가 크면 그만큼 큰 에너지를 형성하여 암시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반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노력하나 역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 노력 역효과 법칙이라 하는데 프랑스인 에밀 꾸에가 발견하였다. 평지에서는 너비 30cm되는 긴 판자 위를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어도 빌딩과 빌딩사이 고공에 걸쳐두고 건너려 하면 미리 겁을 먹고 못 건넌다.
그 이유는 못 건넌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건널 수 있다는 긍정적이 마음보다 크기 때문이다. 건너보려 하여도 실패하는 것과 같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역효과가 나타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하건 간에 역효과가 나타나기 일쑤다. 자신이 긍정적인 마음을 심으려해도 결과가 역효과로 나타난다면 문제가 크다. 자신이 해결하기에는 벅찰 것이다. 성공에 대한 상상을 하면 다소 효과가 나타날 것인데 상상은 잠재의식 편으로 의지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매일 자기전 자신의 바램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성공으로 가는 자기최면을 생활화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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