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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茶山詩 80수

감효전(甘曉典) 2012. 1. 19. 07:46

다산 소개



1762(영조 38) 경기 광주~1836(헌종 2).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동상, 서울 남산공원

정약용 묘,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 생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유형원(柳馨遠)·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 소자는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자호는 다산(茶山)·탁옹(翁)·태수(苔)·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 당호(堂號)는 여유(與猶).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에서 태어났다.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정은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따른 유배를 전후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그의 사회개혁사상 역시 이에 대응되어 나타난다.


먼저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는 주로 관료생활의 시기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고 15세에 서울로 올라온 후 이가환(李家煥)과 자신의 매부인 이승훈(李承薰) 등으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했다. 이미 이때부터 이익과 같은 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그의 제자인 이중환(李重煥)·안정복(安鼎福)의 저서를 탐독했다. 이처럼 유교경전과 선학의 학문을 연구하는 한편 과거에 응시할 준비를 하여, 1783년(정조 7)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었다. 이무렵 이벽(李檗)을 통하여 서양의 자연과학과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서양서적을 접했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이듬해 검열이 되었으나 공서파(攻西派)의 탄핵을 받아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가 10일 만에 풀려났다. 곧이어 지평·수찬을 지내고 1794년 경기도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동부승지·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사건(周文謨事件)에 연루되어 금정찰방(金井察方)으로 좌천되었다. 그뒤 다시 소환되어 좌부승지·병조참지·동부승지·부호군·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규장각의 편찬사업에도 참여했다.

다산은 30대초까지는 아직 젊은 중앙관료로서 경학사상 등 학문체계는 물론 사회현실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깊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도암행어사를 비롯하여 금정찰방 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농촌사회의 모순과 폐해를 직접 목격하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이를 실천해보고자 했다. 1799년 중앙정계에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응지진농서 應旨進農書〉의 검토를 통해 토지문제를 농업체제 전반과 연결시켜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는데, 이후 기본 생산수단인 토지 문제의 해결이 곧 사회정치적인 문제 해결의 근본이라고 인식하고 현 농업체제를 철저히 부정한 위에 경제적으로 평등화를 지향하는 개혁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1799년에 저술한 〈전론 田論〉의 여전제(閭田制)는 이같은 논리가 가장 강렬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여전제의 내용은 토지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지주제를 부정하고 토지 국유를 원칙으로 하는 기초 위에, 향촌을 30가구의 여(閭) 단위로 재편성한 다음 여장(閭長)의 통솔하에 공동노동을 통해 경작하고 농민의 투하노동력을 기준으로 생산물을 분배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관련된 조세제도 개혁책으로서 정액제(定額制)를 취하고, 역제(役制)의 경우 재편성된 향촌제도와 관련시켜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원칙으로 하면서 호포제(戶布制)로의 개혁을 고려했다. 이러한 여전제의 보급을 위해서 여내(閭內) 농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무위도식하는 선비들에게 실생활에 필요한 직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처럼 여전제는 농민경제의 균산화(均産化)와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통한 사회적 부의 증대를 위해 노동력의 기능을 강조한 공동농장·협동농장적 경영론이다. 이는 종전의 한전론(限田論)·균전론(均田論) 등 토지분배에만 초점을 맞춘 개혁론에 비해 농업생산의 사회화 문제 등 농업생산이나 농업경영 전반의 변혁까지도 포괄하는 논리였다. 그러나 시행의 전제가 되는 국유화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될 수 없었던 토지개혁방안이었다. 특히 〈전론〉에서 농업생산의 사회화 문제와 연결하여 공상(工商)을 농업에서 완전 분리시켜 독립적 사회분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당시 상품화폐경제와 수공업 발전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견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농업생산에 주력하는 중농정책(重農政策)이 견지되어 사족의 상업·공업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의 사회개혁론과 궤를 같이하여 혁신적 정치개혁론으로 제시된 것이 〈원정 原政〉·〈원목 原牧〉이다. 여기에서 그는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원정〉에서 "토지의 균등한 분배를 왕정의 제일책으로 삼고 물화의 유통과 교환을 촉진하며 지방생산력의 불균등 발전을 완화하고 정치적 권리를 균등하게 해야 한다"고 하여 파격적인 체제개혁론을 주장했으며 이는 만년에 저술한 정치권력론·역성혁명론으로서의 〈탕론 湯論〉과 이념적 기초를 같이한다. 그는 〈원목〉에서 태고 이래 민(民)의 자유의사와 선거에 의해 이장(里長)·면정(面正)·주장(州長)·제후(諸候)·천자(天子) 등 각 계층의 통치자들이 발생했음을 지적하고 이들이 만약 민의 이익에 부합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행동하는 경우, 민은 자신들의 자유의사로써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발생에 관한 학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자본주의 발생 초기 유럽의 사회계약설과 유사한 논리가 되며 해석에 따라서는 정치의 민주주의적 합의제, 선거제, 법치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경우와 달리 당시의 역사발전 사실과 부합되지 않으며, 다만 극도로 부패한 봉건사회에 대한 반기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같은 정치개혁론은 그의 사회 경제개혁론과 함께 당시의 현실 속에서 혁명을 수반하지 않고는 실현불가능한 이상론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은 밝혔으나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지니면서 체제 전반에 대한 개혁론으로 체계화되기는 어려웠다.


그의 학문과정과 생애 후기는 주로 유배생활의 시기이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죽은 후 정권을 장악한 벽파는 남인계의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1801년 2월 천주교도들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끌어들이고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을 내세워 신유사옥을 일으켰다. 이때 이가환·이승훈·권철신(權哲身)·최필공(崔必恭)·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 그리고 형인 약전(若銓)·약종(若鍾) 등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2월 27일 출옥과 동시에 경상북도 포항 장기(長)로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전라남도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특히 1808년 봄부터 머무른 다산초당은 바로 다산학의 산실이었다. 1818년 이태순(李泰淳)의 상소로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했다. 61세 때에는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을 지어 자서전적 기록으로 정리했다. 그는 유배생활에서 향촌현장의 실정과 봉건지배층의 횡포를 몸소 체험하여 사회적 모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유배의 처참한 현실 속에서 개혁의 대상인 사회와 학리(學理)를 연계하여 현실성있는 학문을 완성하고자 했다. 〈주례 周禮〉 등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독자적인 경학체계의 확립과 '일표이서'(一表二書)를 중심으로 한 사회전반에 걸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사회개혁론이 이때 결실을 맺었다(→ 다산학).


먼저 〈경세유표 經世遺表〉는 "나라를 경영하는 제반 제도에 대하여 현재의 실행 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경(經)을 세우고 기(紀)를 나열하여 우리 구방(舊邦)을 새롭게 개혁해보려는 생각에서 저술했다"고 하여 당시 행정기구와 법제 및 경제제도를 대폭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것이다. 〈경세유표〉의 구성은 경전에서의 이념적 모델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제도의 변천과정을 아울러 참조하여 개혁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목민심서 牧民心書〉는 "고금의 이론을 찾아내고 간위(奸僞)를 열어젖혀 목민관에게 주어 백성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마음씀이다"라고 하여 현 국가체제를 인정한 위에서 목민관을 중심으로 한 향촌통치의 운영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흠흠신서 欽欽新書〉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옥사에 대해 "백성의 억울함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통치자의 인정(仁政)·덕치(德治)의 규범을 명확히 하고자 저술되었다. 제도개혁에 있어서 〈경세유표〉가 전국적 범위에서 국왕·국가가 집행할 것을 모색한 데 비해 〈목민심서〉는 군현의 범위에서 목민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흠흠신서〉는 〈목민심서〉의 형전(刑典)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같이 일표이서는 저술동기와 내용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상호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1817~22년에 기초, 완성되어 후기 개혁론의 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표이서의 개혁론은 경학사상체계와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면서 체계화되었다. 정약용은 〈주례〉 속에서 '호천상제'(昊天上帝)의 개념을 원용한 상제관(上帝觀)을 형성하여 전통적인 천명사상(天命思想)을 매개로 이를 군주와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천명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바뀌어 항상 유덕(有德)한 사람에게 옮겨진다는 것이다. 덕의 유무는 민심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므로 군주권의 근원은 결국 민의에 달려 있는 것이며, 천명 그 자체가 통치권의 궁극적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다산은 군주를 정점으로 한 통치질서를 회복하여 치세(治世)의 근본을 확립하고자 했지만 그와 동시에 군주의 우월성은 민의에 의해 한계가 규정된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상제와 직결된 왕권과 상제와 직결된 민의 자주권 회복에 의해 하나의 통일된 통치체계를 수립하려 할 때 그 모습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으로 나타나며 사적 중간지배층의 배제는 필수적인 사안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표이서에서 표방되는 개혁론은 전기에 비해 훨씬 온건한 것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현실을 크게 고려하면서 실현 가능한 점진적인 방안, 단계론적 시행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경세유표〉의 〈전제 田制〉에서는 우선 토지국유제하 농민의 개별적 점유를 원칙으로 하는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지국유의 실현이 불가능한 상태를 전제하여 차선책으로 정전제에서 동시에 시행되었던 구일세제법(九一稅制法)만이라도 원용하려는 방안을 제기했다. 이는 토지제도의 개혁보다는 국가재정과 밀접한 조세제도의 개혁, 일체의 중간수탈 배제를 목적으로 한 운영의 합리화를 통해서 현안을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서 점진적이고 과도기적인 개혁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다산은 사민구직(四民九職)의 직업분화와 직업의 전문화를 강조하고 사회분업을 통한 경제발전의 길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먼저 상업의 경우 농업과 완전히 분리시켜 대등하게 발전시키며 상업적 이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조세개혁을 통해 상인들을 보호하며 해외 상업을 발전시키려 했다(→ 이용후생학파). 이를 위해 동전의 유통을 촉진시키고 금화·은화와 같은 고액화폐의 발행으로 원격지간 교역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즉 상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되 특권적 대상인은 억제하고 중소상인은 보호하는 방식을 도모했다. 다음으로 수공업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기술도입론을 강조했다. 〈목민심서〉에서는 지방 차원에서 민간 직물업에 관련된 기술도입을 역설했고 〈경세유표〉에서는 토목공사기술 등을 국가 차원의 제도개혁을 통해 적극 도입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중앙관제 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즉 기술도입의 주체인 국가기구가 강력하게 민간산업을 보호·통제하고 기간산업을 관장함으로써 대상인의 횡포에서 중소수공업자를 보호하려 했다. 국영광산론 역시 천연의 부에 대한 특권층의 자의적 이용을 배제하여 국가 통제하에 두며 그 이익을 공전(公田) 매입에 돌림으로써 전체적으로 소농민의 이익이 되게 하는 방안이었다. 이밖에 도량형의 전국적 통일, 물화유통을 촉진하기 위한 교통수단의 정비를 제안했다. 이는 18세기말과 19세기초 유통경제의 발전과정을 염두에 둔 논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체제 전반에 걸친 개혁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기한 개혁론의 철학적 기초에는 주자학과 대비되는 면모가 있었다. 첫째, 주자학이 천인합일(天人合一)에 기초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일리(一理)로서의 태극이 관통하고 있음을 주장한 데 비해 다산은 천도(天道)와 인간세계를 분리하여 각각 존재의 법칙과 당위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주자학의 계급성과 불평등한 인간관을 비난하고 인간세계의 질서는 변화 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요순 3대의 제도에서 그 규범을 찾으려고 했다. 한편 그는 천인분리를 상정하면서도 절대적인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천의 존재를 별도로 언급했다. 이때 천은 모든 인간과 개별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모두 존엄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기질에 따른 인간성의 차등설을 비판하고 우수한 능력자는 특정 신분에서만 배출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의 능력주의는 신분제에 입각한 국가의 교육, 과거, 인사제도에 대한 개혁론으로 연결되었다. 셋째, 욕망관[人心道心說]에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되 적절한 통제가 병행되어야 함을 말했다. 무제한적으로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특권층의 입장과 통하는 것이라 본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외적 환경에 좌우된다고 보아 구체적인 사회제도의 정비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주관적 심성 문제에 치중한다거나 도덕적인 호소에 의한 해결방안을 내세우는 주자학과 대별되는 주장이다. 그는 전통적 관념론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론적 세계관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천문·기상·지리·물리 등 제반 자연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그의 자연과학 사상의 기초는 우주관에서 비롯되는데, 전통적인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논박하고 서학과 지리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원설(地圓說)에 관해 논증했다. 물리학적인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 볼록 렌즈가 태양광선을 초점에 집중시켜 물건을 태우는 원리, 프리즘의 원리를 이용한 사진기 효과 등을 밝혀냈다. 또한 종두법(種痘法)의 실시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종두심법요지 種痘深法要旨〉를 저술했고, 각종 약초의 명칭·효능·산지·형태 등을 조사 검토하여 생물학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은 구체적인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개발로 연결되어 농기계, 관개수리시설 및 도량형기를 발명하고 정비했다. 또한 한강의 배다리[舟橋]를 설계하고, 수원성의 축조시 거중기·고륜(鼓輪)·활차(滑車) 등의 건설기계를 창안했다. 이와 함께 〈기예론 技藝論〉에서는 방직기술·의학·백공(百工)기술을 발전시킬 것을 강조했으며 〈원정〉에서는 수리관개사업·식수(植樹)·목축·수렵·채광기술 및 의학을 깊이 연구해야 농민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과학정책론을 제시했다.





















다산 시80수


1. 동악을 그리며[懷東嶽]을미년. 소내[苕川]에서


동악은 여느 산과 너무도 달라 / 東嶽絶殊異

붉은 벼랑 푸른 봉 겹쌓였다네 / 紫崿疊靑㟽

새기고 깎은 공이 극히 섬세해 / 雕鍥入纖微

조물주 묘한 솜씨 드러냈다네 / 神匠洩機巧

선경의 구경거리 해변에 있어 / 仙賞委瀛壖

맑은 자태 유달리 아름다운데 / 幽姿獨窈窕

깨끗하게 속세를 활짝 벗어나 / 惜無棲隱客

은거하는 객 없어 애석하여라 / 瀟洒脫塵表

당시에 부친께서 금강산으로부터 금방 돌아오셨으므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주C-001]동악을 그리며[懷東嶽] : 다산 14세 때인 영조 51년(1775)의 작품이다. 동악은 금강산을 가리킨다.



2. 수종사에 노닐며[游水鐘寺]


담쟁이 험한 비탈 끼고 우거져 / 垂蘿夾危磴

절간으로 드는 길 분명찮은데 / 不辨曹溪路

응달에는 묵은 눈 쌓여 있고 / 陰岡滯古雪

물가엔 아침 안개 떨어지누나 / 晴洲散朝霧

샘물은 돌구멍에 솟아오르고 / 地漿湧嵌穴

종소리 숲 속에서 울려퍼지네 / 鍾響出深樹

유람길 예서부터 두루 밟지만 / 游歷玆自遍

유기를 어찌 다시 그르칠 수야 / 幽期寧再誤



[주C-001]수종사에 노닐며[游水鍾寺] : 이 또한 다산 14세 때의 작품이다. 수종사는 다산의 고향인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의 조곡산(早谷山)에 있는 절 이름으로, 그곳에서 공부할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주D-001]유람길……수야 : 유기는 밀회(密會)의 약속으로, 곧 다시 만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을 뜻한다. 다산이 집을 떠나 객지에 있는 생활이 수종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장차 수없이 돌아다닐 것이지만 이곳 수종사에 다시 찾아와 지내겠다는 마음속의 다짐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3. 봄에 막내숙부를 모시고 배를 타고 한양으로 가면서[春日陪季父乘舟赴漢陽]병신년 2월 15일에 관례를 올리고 16일에 서울로 가서 22일에 혼례를 치렀다. 이 시는 서울에 갈 때 배에서 지은 것이다.


아침 햇살 받은 산 맑고도 멀고 / 旭日山晴遠

봄바람이 스친 물 일렁거리네 / 春風水動搖

도는 기슭 만나자 키를 돌린 뒤 / 岸廻初轉柁

여울 빨라 노 소리 울리지 않아 / 湍駛不鳴橈

옅푸른 풀 그림자 물위에 뜨고 / 淺碧浮莎葉

노오란 버들가지 하늘거린다 / 微黃着柳條

차츰차츰 서울이 가까워지니 / 漸看京闕近

울창한 삼각산이 높이 솟았네 / 三角鬱岧嶢



[주C-001]봄에 막내숙부를 모시고 배를 타고 한양으로 가면서[春日陪季父乘舟赴漢陽] : 다산 15세 때의 작품인데 이하 6수도 마찬가지이다. 숙부는 정재진(丁載進)을 가리킨다.



4. 회현방에서 홍운백과 함께 술을 마시며[會賢坊同洪雲伯飮]진사(進士) 홍영한(洪英漢)으로 자는 운백인데 뒤에 인호(仁浩)라고 이름을 고쳤다.


치악에서 일찍이 이름 날리고 치악은 선성(宣城)에 있는데 곧 홍씨의 본관이다. / 雉嶽蜚英早

우계에서 깊숙이 자취 숨겼네 / 牛溪隱跡深

낯익은 사이처럼 친교 두터워 / 交歡如宿面

허여하여 속마음 드러낸다오 / 許與見中心

도포의 술자리에 함께 모여서 / 共聚陶匏席

문필의 숲 도리어 이루었구나 / 翻成翰墨林

하삭음을 우리가 마다할쏘냐 / 不辭河朔飮

꽃과 버들 온 성에 그늘졌거늘 / 花柳滿城陰


[주C-001]회현방에서 홍운백과 함께 술을 마시며[會賢坊同洪雲伯飮] : 회현방은 오늘날의 서울 중구 회현동 일대이다. 홍인호는 이름을 고치면서 자 또한 이름에 맞춰 원백(元伯)이라 고쳤는데, 본관은 풍산(豐山)이고 봉조하(奉朝賀) 수보(秀輔)의 아들이다. 다산보다 9세 연상의 선배로 다산과의 교제가 밀접하였다.

[주D-001]도포의 술자리 : 도포는 뚝배기와 바가지로, 조촐하고 검소한 술자리를 뜻한다.

[주D-002]하삭음(河朔飮) : 피서하면서 어울려 취하도록 마시는 술. 또는 어울려 즐겁게 마시는 술을 말한다. 《初學記 三 魏文帝 典論, 藝文類聚 五 南朝 梁 何遜 苦熱詩》

5. 여름에 읍청루에서 목 정자 조영 등 제공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夏日挹淸樓陪睦正字 祖永 諸公飮]


물가의 누각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 臨水紅樓縱目初

푸른 물결 띠처럼 도성을 감고 도네 / 綠波如帶繞王居

저 뱃길로 옛적에는 장요미를 바쳤는데 / 湖漕舊貢長腰米

갯가 저자 오늘날 축항어를 사온다오 / 浦市新賖縮項魚

장수부의 군사 훈련 옛 재상의 덕분이고 훈련도감은 곧 유성룡(柳成龍)이 설치한 것인데, 누각이 그 별영(別營)에 소속되어 있다. / 帥府練兵須宰相

호조 관원이 된 것은 상서 힘을 입었구나 당시에 부친께서 채제공(蔡濟恭)에게 초빙되었다. / 倉曹辟屬賴尙書

난간 기대 약간 취함 예에 뭐가 손상되랴만 / 憑欄小醉何傷禮

친지들은 성남에서 나물죽만 마시는걸 / 知故城南盡喫蔬



[주D-001]장요미 : 몸통이 좁으면서 긴 쌀로, 질이 좋은 쌀을 가리킨다.

[주D-002]축항어 : 목이 짧은 고기로 축경편(縮頸鯿)이라 하는데, 곧 병어를 가리킨다.



6. 원릉만사(元陵輓詞) 


횃불이 궁중 길에 늘어섰을 제 / 蠟炬連宮陌

상여가 대궐 도랑 건너가누나 / 龍輴度御溝

산봉우리 멍하게 혼자 서 있고 / 山巒猶自立

강물은 목이 메어 흐르질 못해 / 江漢不能流

덕택은 궁한 백성 흠뻑 끼치고 / 德澤涵窮蔀

신선 생활 능침으로 돌아가셨네 / 眞游屬寢丘

오호라, 진정으로 영주이시니 / 嗚呼信英主

계책 업적 천추에 길이 비추리 / 謨烈照千秋

영(英)자에 대한 설은 《국조보감(國朝寶鑑)》에 나와 있다.



[주C-001]원릉만사(元陵輓詞) : 영조(英祖)의 능호이다.





7. 운산으로 귀양가는 장인 홍 절도 화보를 전송하다[送外舅洪節度 和輔 謫雲山]8월 15일이다.


이별길에 가을빛 일어나는데 / 別路生秋色

이정에서 호가가 터져나오네 / 離亭發浩歌

터벅터벅 학령을 걸어서 넘어 / 靡靡踰鶴嶺

아스라이 용하를 벗어나시리 / 沓沓出龍河

남해에는 진주도 지천이련만 / 南海明珠賤

서관에는 흰 눈만 휘몰아치리 / 西關白雪多

빙산의 한때 권세 오래 못 가니 / 氷山未可料

장차 풍파 만날 줄 어찌 알 건고 / 安意度風波



[주C-001]운산으로 귀양가는 장인 홍 절도 화보를 전송하다[送外舅洪節度 和輔 謫雲山] : 운산은 평안북도의 군 이름이다. 홍화보는 자는 경협(景協)인데 영조 때 파주 목사(坡州牧使)·동부승지·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이때 운산으로 귀양갔다가 이듬해 11월 26일 풀려났다.

[주D-001]이정에서……터져나오네 : 이정은 길가의 역정(驛亭)인데 멀리 떠나는 사람과의 작별은 주로 역정에서 이뤄지므로 인용한 것이고, 호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비분 강개한 뜻에 겨워 부르는 노래이다.

[주D-002]빙산의……건고 : 빙산은 얼음 산으로, 아무리 크고 단단하더라도 태양을 만나면 금방 녹아버린다 하여 한때 혁혁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는 권세에 비유한다. 곧 당시 권세를 휘두르는 자들에 대한 장래의 몰락을 말한 것이다.




8. 팔월 한가위 달밤에 홍원백 운백(雲伯)이 그의 자를 고쳤다 의 못가에서 홍복원 낙정ㆍ최계장 수경 등 제공과 함께 술을 마시며[中秋月夜於洪元伯 雲伯改其字 池上同洪復元 樂貞 崔季章 粹絅 諸公飮]


도성 하늘 찬 구름 멀리 떠가고 / 城闕寒雲逈

못물 속에 가을달 휘영청 밝네 / 池塘秋月明

좋은 자리 호걸이 많이들 모여 / 芳筵多俊物

통쾌하게 술 마셔 풍채 보이니 / 痛飮見風情

혜강이며 완적과 뜻이 같고요 / 嵆阮元同志

육기 육운 형제와 이름 어울려 / 機雲實竝名

청고한 얘기 아직 이어지는데 / 高譚猶未了

새벽이라 종소리 들려오누나 / 已報曙鍾鳴


9. 시골집에서 병석에 누워[田廬臥病] 당시에 이헌길(李獻吉)이 구해준 약을 먹고 병을 앓은 지 30일 만에 나았는데, 11월이었다.


당초에 남은 책을 끝내렸더니 / 始爲殘書至

한이로세 질병이 몸을 감았네 / 翻嗟一病纏

누런 나뭇잎 속에 문을 닫고서 / 閉門黃葉裏

푸른 소나무 앞에서 약을 달이네 / 煮藥碧松前

산란한 머리 손질 남을 빌리고 / 髮亂從人理

이뤄진 시 입으로 전할 뿐이네 / 詩成只口傳

서쪽으로 가는 길 일어나 보니 / 起看西去路

눈바람이 찬 하늘 휘몰아치네 / 風雪滿寒天




10. 입춘일에 용동집의 벽에 제하다[立春日題龍衕屋壁] 정유년이다. 소룡동(小龍衕)은 명례방(明禮坊)에 있는데 병신년 여름 부친이 이곳에 임시로 옮겨 살았다.


인생이란 하늘땅 중간에 처해 / 人生處兩間

타고난 자질 구현 바로 그 직분 / 踐形乃其職

우매한 자 본연의 천성을 잃고 / 下愚泯天良

평생을 의식 위해 몸을 바치네 / 畢世營衣食

효제는 다름 아닌 인애의 근본 / 孝弟寔仁本

학문은 여력으로 닦으면 그만 / 學問須餘力

만약에 명심하여 아니 힘쓰면 / 若復不刻勵

그럭저럭 그 덕을 끝내 잃으리 / 荏苒喪其德



11. 봄날에 최씨의 계상초당을 찾아가다[春日過崔氏溪上草堂] 최씨의 이름은 홍중(弘重)이다.


남쪽 시내 굽이의 한적한 곳에 / 窈窕南溪曲

쓸쓸히 자리잡은 움집이 하나 / 蕭然一草廬

문앞에 마주한 건 천길 바위산 초당이 자각봉(紫閣峯)을 정면으로 대하고 있다. / 門臨千丈石

인중방에 팔분서 붙어 있다네 / 楣著八分書

외진 마을 꽃나무 풍성하고요 / 僻巷饒花樹

척박한 밭 남새가 여유롭기만 / 殘田足菜蔬

방안에는 언제나 술이 있으니 / 室中常有酒

생활은 그런대로 궁하진 않아 / 生理未全疏




12. 최 주서 현중 의 난곡서루에서 최치도 홍중ㆍ사서 양중 등 제공과 함께 술을 마시며[崔注書 顯重 蘭谷書樓同崔穉度 弘重 士舒 養重 諸公飮]


여기 있는 최씨의 한 가문 안에 / 崔氏一門內

시에 능한 인물이 대여섯인데 / 能詩五六人

종유한 자 먼 지방 객이 많고요 / 從游多遠客

사귀는 벗 반드시 진귀한 사람 / 結納必嘉賓

지필에다 벼룻돌 풍류 담박코 / 筆硯風流澹

오이나물 찻잔에 호쾌한 천진 / 茶瓜謔浪眞

우리 집은 너무도 누추하거니 / 吾廬太卑隘

어찌하면 이웃이 되어나 볼꼬 / 那得接比隣



13. 이벽에게 주다[贈李檗] 자는 덕조(德操)이다


음양은 고쳐지지 않는 거지만 / 二儀雖不改

칠요가 번갈아 진퇴를 하니 / 七曜迭舒卷

새봄 되어 초목들 생기 넘치나 / 嘉木敷春榮

무성함도 얼마 후 쉬이 변하네 / 華滋亦易變

몰리는 신세 되어 곤궁해지면 / 倥傯被驅迫

약간의 동정마저 하소연 못해 / 不能訴餘戀

온갖 사물 공정해 편파 없거니 / 庶物無偏頗

부귀 영달 그 어찌 부러워하랴 / 貴達安所羨

현인 호걸 기운은 서로 맞는 법 / 賢豪氣相投

친근하고 도탑게 정을 나눠야 / 親篤欣情眄

미덕을 애써 일찍 닦아야 하니 / 令德勉早修

강개한 빛 얼굴에 항상 보이네 / 慷慨常見面






14. 족부 주부공술조 의 종부시 숙직하는 처소를 찾아가다[過族父主簿公 述祖 宗簿寺直廬]


주부의 벼슬살이 좋기도 하니 / 主簿官居好

들녘 밖의 소박한 정자로구나 / 天然野外亭

박달 그늘 조그만 난간 침범코 / 檀陰侵小檻

솔방울은 빈 뜨락 떨어져 있다 / 松子落空庭

어첩에 구름기운 서리었는데 / 御牒留雲氣

황족 갈래 수경과 비슷하다오 / 天潢接水經

벼슬 낮아도 또한 박봉이 있어 / 位卑猶斗祿

산중집 그리워할 것이 없다네 / 不必戀巖扃




15. 이른 가을 제용감 못가에서 제공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早秋濟用監池上陪諸公飮] 부친께서 당시에 판관이 되었다


높은 집에 서늘한 기운 이는데 / 高館迎涼遠

못가에 처음으로 모셔 앉았네 / 芳池命坐新

버들의 짙은 그늘 말고삐 맬 만하고 / 柳深容繫馬

연잎 맑아 사람을 잡아두누나 / 荷淨解留人

염국에선 백관의 물자 제공코 / 染局支官簿

행주에선 빈객들을 자주 접대해 / 行廚引客頻

크나큰 관서라서 직무 많으니 / 膴司多職務

맑고 소박한 정신 어찌 기르리 / 那得養淸眞


[주D-001]염국 : 옷감에 물감을 들이는 관서. 곧 제용감을 가리킨다

[주D-002]행주 : 길을 가는 도중에 임시로 음식을 만드는 곳. 역시 제용감을 가리킨 듯하다.



16. 장차 화순으로 가려면서 가군을 모시고 소내로 와 여러 숙부ㆍ형들과 작별하다[將赴和順 陪家君至苕川 留別諸父諸兄] 이때 부친께서 현감이 되셨는데 10월이다. 아내도 따라서 소내로 함께 왔다


남쪽 고을 수레를 따라가는 날 / 南縣隨車日

동산에 이별 술잔 기울이는 때 / 東岡飮餞時

머언 여행 즐겁지 않을까마는 / 遠游非不快

오랜 이별 그리움 어찌 견딜꼬 / 久別奈相思

일찍이 보던 서책 어른거리고 / 書憶曾抽卷

전에 기댄 소나무 생각나겠지 / 松憐舊倚枝

호시의 뜻을 살려 길을 떠나세 / 行哉弧矢志

민간의 풍속 또한 두루 알아야 / 謠俗合周知



[주D-001]호시의 뜻 : 호시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뽕나무활과 쑥대화살을 말한다. 쑥은 어지러움을 막는 풀이고 뽕나무는 모든 나무의 근본이라 하여 상고 때 사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에 쑥대화살 여섯 개를 천지와 동서남북에 쏘아 보내 장부의 뜻이 원대하여 천지 사방에 있음을 표시하였다 한다. 곧 장부의 원대한 포부를 말한다. 《禮記 內則》



17. 흥원창에 머물러 밤에 한 감찰 광전 장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다[行次興元倉陪韓監察 光傳 丈夜話]


저물녘 흥원포에 와서 머무니 / 暮次興元浦

차가운 산 눈발이 한창 날리네 / 山寒雪正飛

청정한 방 보전을 꾀한 이유로 / 直緣期靜室

신선 집 찾아가길 아니 허락해 / 未許叩仙扉

나그네길 호남 땅 아득히 멀고 / 客路湖南遠

친근한 벗 해내에 드물다마다 / 親交海內稀

풍류를 가슴 가득 우러렀는데 / 風流滿瞻仰

언제나 또다시 찾아뵐는지 / 何日更摳衣



18. 족부 승지공 범조 의 법천리 산중집을 찾아가다[過族父承旨公 範祖 法泉山居]


차가운 산골짜기 초가집에서 / 草屋寒山裏

오건차림 묵묵히 앉아 계시어 / 烏巾坐窅然

시로써 해와 달을 넘겨보내고 / 以詩消日月

흥취 따라 구름 연기 감상하시네 / 隨意弄雲煙

해변 고을 방금 전 인끈 던졌고 / 海郡新投綏

호당에서 지난날 배를 띄웠지 / 湖堂舊汎船

문장 또한 모범을 지니셨으니 / 文章有模楷

옛날 인물 사모할 필요 없어라 / 不必慕前賢

19. 하담에서 유숙하며[宿荷潭]


서글퍼라 서로 돌아온 배는 / 惆悵西歸櫂

어느새 칠년 세월 까마득한데 / 微茫已七年

이제는 치포관을 드높이 쓰고 / 緇冠今突爾

당당할사 화개가 펄펄 나네 / 華蓋獨翩然

해묵은 풀 첫눈에 얽히어 있고 / 宿草纏初雪

저녁 연기 삼나무 감싸 덮었다 / 高檆冪暮煙

깃들인 참새들이 짹짹거리니 / 啁啾有棲雀

흐르는 눈물방울 어찌 거두리 / 那禁涕漣漣



[주C-001]하담 : 충청북도 충주(忠州) 가차산면(加次山面)에 있는 지명으로, 다산의 조부모와 부모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주D-001]화개 : 호화로운 일산으로, 흔히 높은 관리가 이용하는 물건으로 인용된다.



20. 공주에 당도하여 이장을 만나 함께 길을 가면서[行次公州逢李丈偕行] 이장은 소암(蘇巖)이다


금릉을 향해 가던 도중에 / 知向金陵道

금강이라 강변에 함께 만나서 / 相逢錦水邊

바람 앞에 한쌍의 검정색 일산 / 風前雙早蓋

흰 눈 속에 하나의 붉은 배로세 / 雪裏一紅船

꾸준히 길을 걸어 쉬지를 않고 / 行邁仍無倦

시를 지어 스스로 읊음도 좋아 / 詩篇好自傳

병속에는 죽력이 들어 있기에 / 壺中有竹瀝

돈을 쓰지 않고도 실컷 마시네 / 取醉不須錢



[주C-001]이장 : 이름은 동욱(東郁)으로 자는 유문(幼文), 본관은 평창(平昌), 광직(光溭)의 아들이자 승훈(承薰)의 아버지이다. 정조 때 참판·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역임했는데 순조 1년(1801) 아들이 천주교도로 사형되자 관작이 추탈(追奪)되었다.

[주D-001]금릉 : 경상북도 김천(金泉)의 옛 이름이다.

[주D-002]죽력 : 대나무를 불에 구워 받아낸 대나무 진액으로, 담(痰)을 녹이고 열을 내리는 약으로 쓰인다.




21. 전주를 지나며[過全州]


큰 나라라 왕 자취 환희 빛나고 / 大國昭王跡

이름난 성 길손 눈 휘둥그레져 / 名城壯客眸

들판은 거발에서 멀리 트였고 거발은 백제의 성 이름이다. / 野從居拔遠

산맥은 대방 닿아 끝이 안 보여 유인궤(劉仁軌)가 대방주자사(帶方州刺史)로 남원(南原)에 머물러 다스렸는데 그 뒤로 남원을 대방이라 불렀다. / 山接帶方幽

누각 궁궐 서울을 옮겨 놓았고 / 樓闕移京邑

의관 문물 사류와 다름없고녀 / 衣冠擬士流

임금 위엄 만백성 가슴 놀래고 / 王威驚萬衆

사당 모습 천년토록 엄숙하구나 전주에 조경묘(肇慶廟)와 경기전(慶基殿)이 있다. / 廟貌肅千秋

옥신발 구름 기운 일어나는데 / 玉躞生雲氣

붉은 활로 달밑에 노니셨으리 태조께서는 항상 붉은 활과 깃 화살을 차고 계셨다. / 彤弓想月遊

아름답네 풍패의 거룩한 이름 / 洵哉豐沛號

두 문의 머리 위에 휘황찬란해 / 輝赫二門頭



[주D-001]아름답네……휘황찬란해 : 풍패는 중국의 풍현(豐縣) 패읍(沛邑)인데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고향이라 하여 제왕의 고향을 가리킨다. 전주는 조선 이 태조의 선대 고향이다. 두 문은 조경묘와 경기전 두 문으로서 문 위에 조경묘와 경기전이라 쓰여진 현판이 빛난다는 뜻으로 보이나 자세치 않다.



22. 담양에 당도하여 이 도호 인섭 장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 [次潭陽陪李都護 寅燮 丈飮]


우거진 대나무 숲 가장 깊은 곳 / 竹樹最深處

눈 속에 관가집이 활짝 트였다 / 官齋雪裏開

꿩이 길든 교화를 이미 이루고 / 已成馴雉化

애오라지 큰 재주 시험하시네 / 聊試割牛才

기생에게 분부해 고기를 굽고 / 命妓前燒肉

아이 불러 술잔도 권하는구나 / 呼兒對勸杯

타향의 벼슬살이 오래됐거니 / 異方遊宦久

찾아온 옛 친구가 응당 기쁘리 / 應喜故人來



[주D-001]꿩이……이루고 : 이인섭이 수령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치적(治績)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후한 장제(章帝) 때에 각 지방의 벼가 멸구의 피해를 입었으나 노공(魯恭)이 수령으로 있는 중모(中牟) 지방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소문이 나자, 하남 윤(河南尹) 원안(袁安)이 감찰관 비친(肥親)을 보내 그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노공은 그를 맞아 함께 들길을 가다가 뽕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꿩이 날아와 그들의 곁에 앉았는데 때마침 아이가 함께 있었다. 비친이 아이에게 묻기를 "아이야, 왜 잡지를 않느냐?" 하니, 아이가 "꿩은 지금 새끼를 데리고 있습니다." 하였다. 비친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노공과 작별하며 말하기를 "내가 온 것은 당신의 정사 현황을 살펴보려 한 것인데, 이제 보니 해충이 고을을 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의 이적(異迹)이고, 교화가 새짐승에게까지 미친 것이 두 가지 이적이고, 어린아이가 어진 마음이 있으니 세 가지 이적입니다. 오래 머무르면 당신에게 폐만 끼칠 뿐입니다." 하고, 돌아갔다 한다. 《後漢書 卷二十五 魯恭傳》



23. 금소당에서 조 진사 익현 와 함께 짓다[琴嘯堂同曹進士 翊鉉 作] 당은 곧 화순현(和順縣)의 자사(子舍)이다


쓸쓸하고 고요한 대숲의 집에 / 蕭寥竹裏館

야인이 찾아오니 너무 즐거워 / 頗喜野人來

호쾌한 선비 이제 만나봤으니 / 快士如今見

관가 문 이제부터 열어두려네 / 官門自此開

진진하게 육경을 얘기 나누고 / 淋漓譚六籍

통쾌하게 석잔 술 들이켠다오 / 牢落倒三杯

나이 잊은 우의를 즐겨 맺으니 / 好結忘年契

흉금이 이로 인해 넓어질 것만 / 襟期賴漸恢



24. 봄날 오성에서 지은 잡시[春日烏城雜詩] 무술년이다. 화순(和順)은 오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이 오니 자죽은 녹음을 드리우고 / 慈竹春來長綠陰

작은 동산 곳곳에서 새들이 지저귀네 / 小園無處不啼禽

상자의 책 뒤져보니 거의 낡아 해어져 / 篋書檢點多陳腐

산해경을 골라 잡아 글자 음을 풀이하네 / 閒取山經注字音

춘분이 지난 뒤에 이성이 나타나니 / 春分過後見犂星

산중 백성 송사하러 다시 아니 들어오네 / 不復山氓入訟庭

묵객이며 시승이 차츰 자주 찾아오니 / 墨客詩僧來漸數

차군정에 정아한 풍류 많이 있다오 차군정은 곧 현의정사당(政事堂)이다. / 風流多在此君亭

서석산 남쪽에 나한산이 서렸는데 서석산은 광주(光州)에 있다. / 羅漢山蟠瑞石南

이 속에 좋은 가람 여기저기 보이네 / 此中多見好伽藍

그윽하고 깊기로는 동림사가 으뜸이니 / 幽深最是東林寺

보일락말락 황홀함 성주암과 어떨는지 / 縹緲爭如聖住菴

소대라 골짝 어귀 작은 시내 뻗었는데 / 蘇台谷口小溪長

희디흰 은어 떼들 두세 치가 조금 넘어 / 白白銀魚數寸强

삼태그물 통발이며 종다래끼 가져와서 / 雜取罾罺與笭箵

아전이 어부 되어 잡아봄도 좋겠구나 / 好敎椽吏作漁郞

들녘 물이 담을 뚫고 작은 못에 흘러들어 / 野水穿墻入小池

푸른 부들 붉은 마름 맑은 물에 일렁이네 / 綠蒲紅藻漾淸漪

초정이 깊숙하여 보이는 사람 없는데 / 艸亭深窈無人見

거문고를 가져다가 한두 가락 퉁기는구나 환취정(環翠亭)에서 지은 것인데 차군정(此君亭) 서쪽에 있다. / 彈取枯琴一兩絲

산차의 푸른 새잎 물이 올라 싱싱한데 / 山茶新葉綠初肥

잎 속의 붉은 꽃이 나그네 옷에 비치네 / 葉裏丹華照客衣

꽃과 잎 겸키 어려움 뿔과 이빨 마찬가지 / 花葉難兼如角齒

이 세상에 이 꽃과 같은 것은 드물리라 / 世間能似此花稀

호남땅은 장기 짙어 비가 계속 내리는데 / 湖南地瘴雨連綿

고운 초목 봄이 되어 하나같이 무성하네 / 嘉木春來竝蔚然

치자나무 그늘에선 바둑판을 벌이고 / 梔子樹陰投簙簺

석류나무 가지에 그네 매어 뛴다오 / 石榴枝上繫鞦韆



[주D-001]자죽 : 대나무 이름으로, 의죽(義竹)·자효죽(慈孝竹)·자모죽(子母竹)이라고도 한다. 사계절 죽순이 나오고 새대와 묵은대가 빽빽하게 어우러져 노소(老少)가 서로 의지한 것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2]이성 : 별자리 이름. 이 별자리가 나타나면 봄갈이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D-003]가람 :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준말로, 중이 살면서 불도를 닦는 절간을 가리킨다.

[주D-004]꽃과……마찬가지 : 뾰족한 뿔이 달린 짐승은 예리한 이빨이 없듯이 꽃이 아름다운 초목은 대체로 잎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산차는 이와 같은 통상적인 이치와 달리 꽃과 잎이 다 아름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5. 차군정 아래에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얽히고 꼬부라져 사랑스러웠다. 조 사마와 함께 솔 밑에서 술을 마시며 이 소나무를 읊었다[此君亭下有古松一株 蟠曲可愛 與曹司馬松下飮酒 仍賦此松]


현의 정자 둘러싼 것 모두가 대나무인데 / 縣亭四圍皆脩篁

마당 앞의 한 소나무 우뚝 솟아 드높구나 / 庭前一松特昻藏

빽빽한 잎 긴 가지 태양을 가렸고 / 密葉蔽白日

꾸불꾸불 얽힌 가지 찬 서리를 이긴다네 / 蟠柯崛凌淸霜

그 어찌 일산되어 더운 기운 막을 뿐인가 / 豈唯繖蓋屛炎熱

또다시 생황되어 맑은 가락 들려주네 / 復有笙竽奏淸絶

달빛 아래 차를 끓여 중과 함께 맛을 보고 / 月下烹茶僧共澹

흰 눈 속에 고기 구워 손님 함께 즐긴다오 / 雪中燒肉賓俱悅

이 소나무 나이는 기억하는 이가 없고 / 此松年壽人不記

노인들이 아이 적에 푸르른 빛 보았다나 / 故老童時見蒼翠

작은 고을 궁벽하여 쓸모 있는 물건 없어 / 小邑貧僻無長物

다만 이걸 자랑삼아 금옥같이 여긴다네 / 只此藉手如圭瑞

섬돌로써 단 만들고 잔디를 깔아주며 / 砌石爲壇莎作茵

스물 넷의 기둥으로 용비늘을 받쳐주네 / 二十四柱擎龍鱗

그대 위해 애오라지 감당시를 외우거니 / 爲君且誦甘棠句

그대 가면 여기 이곳 오성 백성 잊지 마소 / 君還戒此烏城民



[주C-001]차군정 아래에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얽히고 꼬부라져 사랑스러웠다. 조 사마와 함께 솔 밑에서 술을 마시며 이 소나무를 읊었다 : 차군정은 화순현 관아에 있던 정자의 이름이고 조 사마는 당시 화순현 사람인 조익현(曹翊鉉)을 가리킨 듯하다. 사마는 진사의 별칭이다. 이 시는 운자의 구성으로 보아 네 수의 절구로 보이며 아래쪽의 두 수는 시의 내용으로 볼 때 다산 본인의 작품이 아니고 조씨의 것으로 사료되나 자세치 않다.

[주D-001]감당시 : 감당은 팥배나무로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인데, 주(周)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을 기린 노래이다. 흔히 지방관의 선정을 말할 때 인용한다. 이 절구가 조씨의 작품이라면 당시 화순 현감으로 있던 다산의 부친인 정재원의 선정을 뜻한 말일 것이다.




26. 동림사에서 글을 읽으며[讀書東林寺] 11월인데 중형과 함께 있었다


서석산 남쪽에 절이 많은데 / 瑞陽多修院

그중에 동림사가 가장 그윽해 / 東林特幽爽

산골짜기 이 흥취 사랑스러워 / 愛此林壑趣

잠시 잠깐 신혼의 봉양 중단코 / 暫辭晨昏養

맑은 시내 뗏목을 놓아 건너고 / 橫槎渡碧澗

푸른 뫼 나막신을 신고 오르니 / 躡履躋靑嶂

하얀 눈 응달 비탈 살짝 깔리고 / 淺雪糝陰坂

상수리나무 위엔 마른 잎사귀 / 冷葉棲高橡

좌우로 둘러보자 번뇌 사라져 / 顧眄散塵煩

문에 들자 맑은 생각 일어났다네 / 入門發淸想

부지런히 애써서 글을 읽어야 / 黽勉讀書傳

아버님의 소망을 달랠 판이라 / 庶足慰親望

새벽까지 함부로 잠들지 않고 / 未敢眠到曉

함께 앉아 풍경 소리 들으니 / 同聽木魚響

세상 영달 반드시 위함 아니라 / 非必慕榮達

허랑방탕 그보담 오히려 나아 / 猶賢任放浪

소년시절 재주만 믿고 있다간 / 英年恃才氣

나이들면 대체로 무능하렸다 / 及老多鹵莽

이를 경계 조금도 소홀히 말자 / 戒之勿虛徐

가는 세월 참으로 허무하거니 / 逝景眞一妄



[주D-001]신혼의 봉양 : 신혼은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자식이 부모의 곁에 있으면서 효성으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27. 눈 내리는 밤에 조 사마와 함께 술을 마시며[雪夜同曹司馬飮]


남쪽 지방 내리는 눈 눈 오다가 비 오다가 / 南雪或雪或霏微

대나무에 쌓인 눈꽃 바람에도 아니 날려 / 雪花壓竹風不飛

검은 홰나무 반쪽엔 명주필이 걸리었고 / 槐身半駮素練挂

둥그런 소나무 머리 푸른 바늘 듬성듬성 / 松頂一羃靑針稀

깊은 집에 큰 석쇠로 쇠갈비를 불에 굽고 / 深堂大丳燒牛肋

소주 부어 따르니 붉은 노을 빛이로세 / 火酒倒寫紅霞色

취기 돌자 목이 말라 자꾸 더 마시고픈데 / 酒酣喉焦思復飮

귤이며 유자 배 석류 이것저것 먹어보네 / 橙橘梨榴恣所噉

김생은 젓대 불고 최생은 노래 부르자 / 金生吹笛崔生唱

조공은 박자 치며 감탄 소리 비장타가 / 曹公擊節聲悲壯

갑자기 노기 등등 흰자위를 부라리며 / 忽作白眼怒睢盱

공경 재상 질타하길 오랑캐와 종놈저럼 / 叱呵公相如虜奴

공이시여 망언 말고 잠이나 한숨 자소 / 公無妄言且安睡

밝은 창 앞 참새들 짹짹 서로 부르네 / 牕明雀噪還相呼










28. 순창에서 못가의 누각에 올라[登淳昌池閣]


대숲 속에 단청한 누각이 있는데 / 綵閣脩篁裏

버드나무 물가엔 붉은 놀잇배 / 紅船臥柳邊

모래톱이 따스해 물오리 졸고 / 沙暄容鴨睡

마름이 움직이자 고기 헤엄쳐 / 藻動任魚穿

큰 읍이라 거두는 세금이 많아 / 大邑饒租賦

부잣집엔 풍악을 즐겨 노는데 / 豪家嗜管絃

술잔 따라 돌리는 나이 어린 기생 / 傳觴有小妓

치맛자락 연달아 펄럭이누나 / 裙帶自翩翩




29. 염암에 머무르며[行次鹽巖]


산골짜기 염암의 객사에 오니 / 峽裏鹽巖店

촌가 사립 물가에 나란히 섰네 / 村扉傍水齊

술과 국물 조촐한 저자 열렸고 / 酒漿開小市

그림 글씨 걸리어 은거지 같다 / 書畫似幽棲

푸른 돌빛 진하여 가지고 놀 만 / 石翠濃堪挹

시냇물 아름다워 손에 잡고파 / 溪流嬾欲提

나그네 침상에 곤히 잠들어 / 客牀眠得穩

새벽닭 울음소리 듣지 못했네 / 到曉不聞鷄



30. 용계산 비탈길을 넘으며[踰龍谿阪]


우뚝 솟은 용계산 삼백 굽이 꺾였는데 / 龍谿巀嵲三百曲

좁은 길에 높은 나무 울창하게 들어섰네 / 夾路森竦多高木

구름 사다리 돌 층계 아득하여 못 오르고 / 雲梯石磴杳莫攀

늙고 이상한 덩굴만 부질없이 의지하네 / 壽藤怪蔓漫相屬

숲 속에 숨은 것은 승냥이와 호랑이뿐 / 林中隱伏盡豺虎

구름 속에 노복들 소리 높이 서로 불러 / 雲裏相呼有僮僕

나무 향해 채찍 치자 날다람쥐 보이고 / 仰樹鳴鞭看飛鼯

비탈 임해 돌 굴리니 놀란 사슴 도망가네 / 臨厓碾石調駭鹿

꼭대기에 당도하니 초연한 생각 일어나 / 行到厜㕒覺超然

일천 산 일만 골짝 마음과 눈 툭 트이네 / 千山萬壑恢心目

희미한 적상산은 성곽 빛이 외로웁고 / 赤裳縹緲城光孤

깊고 험한 백치는 바위 형세 쭝긋쭝긋 / 白峙㟹嶆石勢簇

봄바람에 곳곳마다 푸른 연기 피어나니 / 春風處處熂爐靑

외진 곳에 노동 생활 순박한 풍속 지녔네 / 僻居食力懷淳俗

무턱대고 이 속에서 가족들과 숨고프니 / 徑欲携家此中隱

혼탁한 길에 작록을 구함보다 낫고말고 / 勝向塵途丐爵祿



[주D-001]구름 사다리 : 높은 산의 돌길을 형용한 것이다.



31. 연기 지방을 지나면서[燕岐途中作]


지난 겨울 포근함 처음 느끼니 / 始識前冬煖

아무래도 이월의 날씨 아닐레 / 殊非二月天

보리이삭 곳곳에 돋아 허옇고 / 麥芒隨地白

꽃기운은 온 산에 불이 붙은 듯 / 花氣滿山燃

유향이 마음쓴 일 고달팠을 뿐 / 劉向心徒苦

경방이 닦은 학문 아니 전하네 / 京房學未傳

천지가 맑은 빛을 한껏 머금어 / 乾坤含淑景

그야 물론 풍년이 있을 거구만 / 應是有豐年



[주D-001]유향이……뿐 : 유향은 한 종실이자 대유학자로 성제(成帝) 때 외척 왕씨가 정권을 독단하고 큰 재변이 자주 일어나자, 재변이 일어난 이유가 외척의 세력이 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을 지어 천자에게 올림으로써 왕씨의 권력을 빼앗도록 유도하였는가 하면, 왕릉의 규모를 너무 사치스럽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잘못을 간하는 등 여러 번 충언을 올렸으나 천자가 나약하여 한 번도 그의 말을 시행하지 못했다. 곧 천지 자연의 기수(氣數)에 관계된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안 된다는 뜻인 듯하다. 《漢書 卷三十六 劉向傳》

[주D-002]경방이……전하네 : 경방은 한(漢) 나라 동군(東郡) 사람으로 초연수(焦延壽)에게 《주역》을 배웠는데 자연의 현상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것으로 원제(元帝)의 총애를 받다가, 조정을 비방하며 천자에게 악을 뒤집어씌운다고 권신(權臣) 석현(石顯)이 모함하여 41세 때 처형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역전》 3권만 세상에 전할 뿐, 나머지는 유실되어 그의 전체적인 학문은 알 수가 없다. 여기서는 다산이, 자연의 풍물과 기후 변화를 보고 점을 치는 경방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아 그 진수를 모르므로 2월달 연기 지방의 화사한 풍물 앞에 그 미래를 분명히 점을 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어 끝구에서, 하지만 분명히 풍년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자신의 소견을 말하였다. 《漢書 卷七十五 京房傳》




32. 소내의 집에 돌아오다[還苕川居]


뜻밖에 고향 마을 이르렀는데 / 忽已到鄕里

문 앞에는 봄물이 흘러가누나 / 門前春水流

흐뭇하게 약초밭 내려다보니 / 欣然臨藥塢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들어와 / 依舊見漁舟

꽃잎이 화사한데 산가 고요코 / 花煖林廬靜

솔가지 늘어져라 들길 그윽해 / 松垂野徑幽

남녘 땅 수천 리를 노닐었으나 / 南遊數千里

이와 같은 지역은 찾지 못했네 / 何處得玆丘




33. 한양에 들어가[入漢陽] 3월이었다. 병이 들어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고 성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짓다


남녘 땅 삼년 길손 이제 와보니 / 南土三年客

봄 도성 일만 나무 꽃이 피었네 / 春城萬樹花

문에 드니 화사한 기색 넘치고 / 入門多氣色

돌아보니 연하가 아련하기만 / 回首杳煙霞

객지 배움 그 어찌 벗 없으랴만 / 遊學那無友

헤매다가 가정을 차리지 못해 / 棲遑未有家

한적한 시골 땅에 되돌아가서 / 何如隴畝上

뽕밭 삼밭 일굼이 낫지 않을까 / 歸與種桑麻




34. 심유첨 등 벗들과 함께 약초밭에서 저녁 경치를 구경하며[同沈孺瞻諸友樂園晩眺]


옷소매는 봄바람 속이라면 / 衣袂春風裏

숲동산은 고운 해 가운데로세 / 林園麗景中

냇물 빛 들판 뻗어 희게 비치고 / 川光橫野白

꽃기운은 성 가득 붉게 빛나네 / 花氣滿城紅

원례 명망 당초에 드높았는데 / 元禮名初重

휴문 시부 다시금 웅장하여라 / 休文賦更雄

경물 구경하자는 여행 아니고 / 旅滂非玩物

갈고 닦는 공부에 도움 받고자 / 深藉琢磨功



[주D-001]원례……드높았는데 : 원례는 후한 말기의 명사 이응(李膺)의 자이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환제(桓帝) 때 사예교위(司隸校尉)까지 지냈는데, 태학생(太學生) 우두머리 곽태(郭泰) 등과 서로 연합하여 환관(宦官)의 권력 독점을 반대하여 태학생들이 그를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라고 칭찬하였고, 그의 접견을 받은 자를 '용문(龍門)에 올랐다'고 지칭하였다. 여기서는 심유첨 등을 이응에게 견주어 말한 것인 듯하다. 《後漢書 卷六十七 李膺傳》

[주D-002]휴문……웅장하여라 : 휴문은 남조(南朝) 양(梁) 나라 심약(沈約)의 자이다. 당시 문단의 영수로서 사조(謝朓)·왕융(王融) 등과 함께 영명체(永明體)를 창출하여 후세 격률시(格律詩)의 서막을 열어 놓았다. 역시 심유첨 등의 문장을 찬미하는 뜻으로 보인다. 《南史 卷五十七 沈約傳》




35. 여러 벗들과 서쪽 동산에 노닐며[同諸友遊西園]


서쪽 동산 저무는 빛이 애석해 / 昔惜西園暮

북쪽 물가 봄빛을 제쳐두고서 / 仍違北渚春

문 나서자 꽃들이 눈 안에 가득 / 出門花滿眼

물가 임해 잔디를 깔고 앉았네 / 臨水草成茵

말 자취는 교외라 흔하지 않고 / 馬跡過郊少

꾀꼬리 소리 골짝에 맑게 들린다 / 鶯聲入谷新

난정이라 필연이 남아 있고요 / 蘭亭遺筆硯

기상이라 의건은 옛날 그 모습 / 沂上舊衣巾

술 권하는 질서가 정연하다면 / 命酒威儀整

주객 나눠 읍양이 진지하다네 / 分階揖讓眞

농담도 잘하지만 심하지 않고 / 善諧無至虐

넓은 사랑 인자를 더욱 가까이 / 汎愛必親仁

복희 신농 풍속을 애써 붙잡고 / 力返羲農俗

맹자님 공자님을 길이 사모해 / 長懷鄒魯人

자유가 마침내는 예를 전했고 / 子游終傳禮

원헌은 가난함을 걱정 안 했네 / 原憲不憂貧

향그런 난초 마음 어우러지니 / 蕙苣芳心傡

다북쑥도 덕택을 고루 받았네 / 菁莪德澤均

깊어라 일천 성인 남기신 뜻은 / 淵哉千聖旨

다름 아닌 천륜을 후히 하잔 것 / 終是篤天倫



[주D-001]난정이라……모습 : 난정은 중국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던 정자의 이름인데, 동진(東晉) 때 회계 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왕희지(王羲之)를 비롯하여 손작(孫綽)·사안(謝安) 등 당시의 명사 42인이 그곳에 모여 계제사(禊祭祀 :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액을 막고 복을 비는 풍속)를 행한 뒤에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기상은 기수(沂水)의 물가인데,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은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자 오륙 인에다 동자 육칠 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다음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다산이 날씨가 화창한 춘삼월에 물가에서 여러 문사(文士)와 어울려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청아한 모임을 가진 것을 진 나라 때 난정의 그 모임과 증점의 고상한 뜻을 인용하여 그에 비유한 것이다. 《蘭亭考 卷一》《論語 先進》

[주D-002]자유가……했네 : 자유는 춘추시대 오(吳) 나라 사람으로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이고, 원헌 또한 같은 시대 노(魯) 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사(子思)인데, 모두 공자의 제자이다. 자유는 공자에게서 학문을 배운 뒤에 노 나라 무성 읍재(武城邑宰)가 되어 그 지방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렸고, 유약(有若)의 장례 때 상례를 맡았다. 원헌은 공자가 죽은 뒤에 궁벽한 시골로 들어가 살고 있을 때 위(衛) 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子貢)이 그를 찾아가니 남루한 옷차림으로 만나주었다. 자공은 그의 행색이 수치스러워 말하기를 "혹시 병이 들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나는 들으니, 재물이 없는 자를 가난하다 말하고 도를 배우고서도 능히 행하지 못하는 자를 병들었다고 말한다 하였습니다.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은 아닙니다." 하자, 죽을 때까지 자기의 실언을 부끄럽게 여겼다 한다. 곧 공자의 가르침이 후세에 전해진 것을 말한 것이다. 《史記 卷六十七 仲尼弟子列傳》《禮記 檀弓下》




36. 웅진에서 고적을 회상하며[熊津懷古] 공산(公山)은 백제의 옛 도읍지이다


서리맞은 숲 너머 하얀 성이요 / 粉堞霜林外

금강이란 강에는 붉은 배로세 / 紅船錦水中

들판은 넓디넓은 금마 잇닿고 / 地連金馬闊

산봉우리 웅장한 계룡 마주해 / 山對碧鷄雄

서글퍼라 도읍지 자주 옮기어 / 都邑悲遷變

나라의 지도 서적 어지럽기만 / 圖書憶混同

공연히 천험 요새 버려 던지어 / 無端棄天險

용을 낚는 공적을 이루게 했네 / 成就釣龍功



[주D-001]공연히……했네 : 백제가 공산에 있던 도읍을 부여로 옮김으로써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을 낚았다는 것은 당 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 날 대왕포(大王浦) 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바위나루에서 낙화암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 나라 병선(兵船)이 뒤엎어지는 변고가 일어났는데, 소정방은 이것을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의 짓이라 하여 강 가운데에 있는 바위에서 백마(白馬)를 미끼로 그 용을 잡았다 한다. 그리하여 강 이름이 백마강이 되고 용을 낚았다는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 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37. 장성에 당도하여[次長城]


험난한 모천 길을 지나온 뒤에 모천은 정읍(井邑)에 있는데 송문정공(宋文正公)의 서원이 있다. / 路過茅川險

아름다운 갈령을 따라 넘으니 / 山從葛嶺娟

누런 잎의 수목들 두 줄로 섰고 / 兩行黃葉樹

푸른 대밭 천 이랑 우거졌어라 / 千畝綠筠田

기러기는 날다가 다시 모이고 / 宿雁飛還集

고기는 올라오다 도로 내려가 / 寒魚泝却沿

남쪽 오니 날씨가 차츰 따뜻해 / 南來氣漸煖

이 때문에 물산이 풍부하다네 / 民物故裒然




38. 광주를 재차 지나가면서[重過光州]


언제나 광산부를 지나갈 적엔 / 每過光山府

가슴속에 정금남 생각이 나네 / 長懷鄭錦南

신분은 종직처럼 미천했으나 / 地如從直劣

재주는 이순신과 견줄 만했지 / 才比舜臣堪

옛 사당엔 풍운의 기운 서렸고 / 古廟風雲氣

남은 터엔 부로들 전설 전한다 / 遺墟父老談

웅장할사 서석의 드높은 진산 / 雄哉瑞石鎭

정기 모아 기남자 탄생시켰네 / 亭毒出奇男



[주D-001]정금남 : 금남은 정충신(鄭忠信)의 봉호이다.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본관은 나주(羅州), 윤(綸)의 아들로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석주(錫柱) 때부터 병영(兵營)의 서리를 지낸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지모가 뛰어나고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여 임진왜란 때는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갑자년에 이괄(李适)의 반란을 진압하여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이 되었으며, 정묘호란 때는 부원수로서 적과 싸우는 등 전후에 걸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광주의 경렬사(景烈祠)에 제향,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주D-002]종직 : 성은 구(丘), 자는 정보(正甫), 본관은 평해(平海), 양선(揚善)의 아들이다. 세종 때 식년 문과에 급제, 세조 때 공조 판서 등을 지냈고 성종 때 좌찬성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는데,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易學)·경학(經學)에 밝았다.




39. 성주암에 올라가[登聖住菴] 나한산(羅漢山) 꼭대기에 있는데 만연사(萬淵寺)에 소속된 암자이다


비탈진 푸른 돌길 타고 오르니 / 側徑緣蒼磴

절간이 산봉우리에 붙어 있구나 / 禪樓寄碧巒

의관은 나뭇가지 스쳐 지나고 / 衣巾行樹抄

뱉은 침 구름 끝에 떨어지누나 / 咳唾落雲端

냇물 빛 선명하게 일렁거리고 / 的歷川華動

땅줄기 얼키설키 서려 있다 / 縈廻地脈蟠

끓인 찻물 목마름 풀지 못하여 / 茶湯未解渴

차가운 옹달샘을 시험해 보네 / 重試石泉寒




40. 월파정에 올라[登月波亭] 낙동강 위에 있는데 곧 선산(善山) 땅이다


누관은 인물 따라 세워졌는데 / 樓館從人設

풍연은 지방마다 서로 다르네 / 風煙逐地殊

빈 강물엔 옥토가 잠기어 있고 / 水虛涵玉兎

솟은 산은 금오와 잇닿았고녀 금오산성(金烏山城)은 부상(扶桑)과 약목(若木) 사이에 있다. / 山聳接金烏

뱃길은 남쪽 바다 멀리 통하고 / 舟楫通南海

관방되어 도성을 보호한다네 / 關防護上都

아내가 그런대로 정분이 있어 / 細君頗有分

산천 유람 어울려 함께 한다오 / 遊覽與之俱



[주D-001]옥토 : 달의 별칭이다.







41. 나의 하소연[述志] 2수


소년시절 서울로 나가 노닐어 / 弱歲游王京

교제하는 수준이 아니 낮았네 / 結交不自卑

속기 벗은 운치가 있는 그걸로 / 但有拔俗韻

충분히 속마음을 통할 수 있네 / 斯足通心期

힘을 다해 공맹의 도를 따르고 / 戮力返洙泗

두 번 다시 시속을 묻지 않아서 / 不復問時宜

예의는 비록 잠깐 새로웠으나 / 禮義雖暫新

허물 후회 이에서 또한 생겼네 / 尤悔亦由玆

지닌 뜻 확고하지 않다면 / 秉志不堅確

가는 이 길 그 어찌 순탄할쏘냐 / 此路寧坦夷

언제나 두려워라 중도에 변해 / 常恐中途改

뭇사람 웃음거리 되지 않을지 / 永爲衆所嗤

우리나라 사람들 애닯다마다 / 嗟哉我邦人

주머니 속에 처한 듯 궁벽하거니 / 辟如處囊中

삼면으로 바다가 에워쌌는데 / 三方繞圓海

북방에는 산맥이 누르고 있어 / 北方縐高崧

사지 삭신 언제나 펴지 못하니 / 四體常拳曲

욕망 염원 그 어찌 채울 수 있나 / 氣志何由充

성현은 만 리 밖에 멀리 있거니 / 聖賢在萬里

뉘 능히 이 어둠을 밝혀 주려나 / 誰能豁此蒙

고개를 들어 온 누리 쳐다보아도 / 擧頭望人間

보이는 것 없어라 정신만 흐려 / 見鮮情瞳曨

남의 것 모방하기 급급하느라 / 汲汲爲慕傚

흠은 미처 정밀히 못 따지는데 / 未暇揀精工

뭇 바보가 한 천치 치켜세우고 / 衆愚捧一癡

왁자지껄 다 함께 받들게 하니 / 唅令共崇

순박한 옛 풍속을 간직하였던 / 未若檀君世

단군의 세상보다 못하다는 거야 / 質朴有古風




42. 압구정에 올라 목공의 운에 화답하다[登狎鷗亭和睦公韻] 정자는 독도(纛島)의 남쪽에 있는데 고(故)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별장이다


승상이라 공명은 청사에 빛나는데 / 丞相勳名國史靑

풍류 즐겨 압구정 그 이름이 자자하네 / 風流尙說狎鷗亭

삼한의 주옥 비단 자리에 전부 쌓였고 / 三韓玉帛全堆席

팔부의 가수 악기 뜰에 모두 있었다오 / 八部歌鍾盡在庭

가련할사 뜬세상은 흐르는 물 똑같은데 / 浮世可憐同逝水

고깃배는 어인 일로 빈 물가에 떠 있나 / 漁舟何意汎空汀

지는 꽃 향그런 나무 찾을 만한 곳은 없고 / 落花芳樹無尋處

석양빛만 낡은 난간 쓸쓸하게 비추누나 / 唯有殘暉照古欞

세 번째 구는 어떤 본에는 '큰 과 일산 항상 자리를 다투고[大邦冠盖常爭席]어 있다.


43.  배를 띄우다[放船]


한점 두점 노을이 일어나는데 / 片片初霞起

강변에 새벽 기운 맑기도 하다 / 汀洲曉氣淸

절벽은 묵은 빛이 그대로이고 / 懸厓猶宿色

삐걱삐걱 뱃소리 다시 새롭네 / 鳴版更新聲

기울며 나는 제비 물결을 차고 / 側燕依波掠

해를 향해 물고기 솟구치누나 / 潛魚向日擎

사립문에 기대 선 마을 늙은이 / 倚扉村叟立

사람 구경 흥취를 지는 듯하네 / 如有玩人情

배꼬리 강물 따라 돌아가는데 / 船尾逶迤轉

들 정자의 나무빛 맑기도 하다 / 園亭樹色新

강둑에는 송아지 편히 누웠고 / 芳堤安臥犢

여울에는 물고기 바삐 헤엄쳐 / 洄渚敏游鱗

담소는 문단 어른 뒤를 따르고 / 談笑從詞伯

진퇴는 사공에게 물어본다네 / 行休問榜人

강시에서 가져온 한 병의 술로 / 一壺江市酒

거침없이 천진함 다시 드러내 / 重肯露天眞


  



44.  광나루에 당도하여[次廣津]


종횡으로 엇갈린 수륙의 길목 / 縱橫川陸道

강가 버들 도성 문 연이었다네 / 岸柳接都門

마소는 배가 작아 서로 다투고 / 牛馬爭船小

어룡은 시끄러운 물이 싫으리 / 魚龍厭水煩

마음이 툭 트이네 드넓은 들판 / 曠心方大野

눈이 크게 뜨이네 모두 큰 정원 / 駭矚盡名園

붉은 누각 저 멀리 어른거리니 / 紫閣依然見

떠들썩한 도회지 소리나는 듯 / 如聞市陌喧


45.  섬촌의 이 선생 옛집을 지나며[過剡村李先生舊宅] 이때 안산의 선영을 참배하였다


도맥이 후대에야 동국에 전해 / 道脈晩始東

설총이 그 시초를 열어놓았고 / 薛聰啓其先

그 맥이 포은 목은 몸에 미치어 / 傳流逮圃牧

높디 높은 충의를 이루었다네 / 忠義濟孤偏

퇴옹은 주자 진수 드러내시어 / 退翁發閩奧

천년 뒤에 그 도통 이어 받으니 / 千載得宗傳

육경은 다른 뜻이 있지를 않아 / 六經無異訓

백가들이 다 함께 받들었다네 / 百家共推賢

맑은 기운 마침내 동관에 모여 / 淑氣聚潼關

밝은 문장 섬천에 환히 빛나니 / 昭文耀剡川

주된 뜻은 공맹에 가깝게 되고 / 指趣近鄒阜

주석은 공융 정현 뒤를 이었네 / 箋釋接融玄

몽매한 나 한 줄기 빛이 보이어 / 蒙蔀豁一線

깊이 잠긴 자물통 열고 싶어도 / 扃鑰抽深堅

짐작을 못할레라 지극한 뜻을 / 至意愚莫測

그 운용 오묘하고 또한 깊다네 / 運動微且淵

성호 선생(星湖先生)은 벽동군(碧潼郡)에서 태어났다.


46.  여름밤에 달을 마주하고[夏夜對月]


저녁 무렵 찌는 더위 견디기가 어려워 / 向夕苦遭炎熱侵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창가에 취해 있을 때 / 醉倒窓間忘夜深

시원한 바람 우수수 불어 나를 일으키고 / 涼風蕭蕭吹我起

동산 달 솔숲 위에 두둥실 떠올랐네 / 東峯月吐雲松林

기울어 처진 솔가지 지붕을 가렸고 / 松枝側垂蔭屋瓦

달 그림자 뜰 그늘 가로질러 지나간다 / 月影橫飛過庭陰

찻그릇에 흰 물결 잔잔하게 일어나고 / 茶鍾瀲瀲微波動

대자리에 쏟아지는 금빛이 빛나누나 / 竹簟炯炯迸碎金

문득 보니 옷섶이 백설처럼 새하얗고 / 却看衣裾皎如雪

창문으로 비친 빛에 널린 서금 빛나네 / 房櫳照耀羅書琴

몇 차례 거닐다가 홀로 앉아 있노라니 / 徘徊數匝成獨坐

옥토끼 중천 향해 드높이 달려가네 / 玉兎高騰向天心


47.  취가행(醉歌行)


그대 보지 못했는가 강변 고을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 君不見澤國高飛鴻

굶주리면 내려와서 들밭 벼를 쪼아먹고 / 飢來啄稻野田中

또한 보지 못했는가 넓은 숲 속 거침없이 치달리는 저 말을 / 又不見長楸逸奔馬

우리 속 콩 회상하며 찬바람에 울어대네 / 回思棧豆嘶悲風

태창의 쌀곡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 太倉之米如可得

농사지어 밥먹기를 어느 누가 원할 거며 / 何人更願畊田食

금화에다 옥당을 오를 수만 있다면 / 金華玉堂如可登

그 어찌 숲 속 향해 구차하게 살아가리 / 肯向林樊取棲息

타향살이 십 년에 뜻을 못 이뤘는데 / 客游十年不稱意

재주 높아 남의 시기 받을 것이 두렵구나 / 恐汝才高被物忌

유생의 광절교론 통쾌하게 읽은 뒤에 / 快讀劉生廣絶交

말술을 들이마셔 금방 취해 버렸다네 / 痛飮一斗徑取醉

눈앞의 온갖 사물 가을 털처럼 하찮아 / 眼前百物如秋毫

베개 높이 베고서 애들 보며 껄껄 웃네 / 高枕大笑看兒曹

일어나 멀리 용문산 북쪽으로 숨으련다 / 起來遠遯龍門北

아이들은 섭섭하여 마음만 수고롭다 / 兒曹悵望心徒勞



[주D-001]태창 : 양곡을 저장하는 도성의 큰 창고.

[주D-002]금화에다 옥당 : 금화는 신선 적송자(赤松子)가 도를 얻었다는 산 이름이고 옥당은 옥으로 꾸민 집으로 신선이 산다는 집인데, 여기서는 대궐을 뜻한 듯하다.

[주D-003]유생의 광절교론 : 유생은 양(梁) 나라 유준(劉峻)이고, 광절교론은 그가, 한때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지냈고 당대의 대문장가였던 임방(任昉)의 아들들이 몰락하여 떠돌아다녀도 평소의 친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을 보고 한탄하여 지은 글이다. 한(漢) 나라 주목(朱穆)이 절교론을 지었는데 그것을 부연한다는 뜻에서 광절교론이라 이름한 것이다. 《文選 卷五十五 廣絶交論》







48. 남원 광한루에 올라[登南原廣寒樓]


층층 성벽 굽은 보루 강을 베고 누웠는데 / 層城曲壘枕寒流

만마관을 지나오니 광한루 여기 있네 / 萬馬東穿得一樓

유수의 진영에는 정전 이미 묵히었고 백제말에 유인궤(劉仁軌)가 이곳에 정정(井田)을 개척하였다. / 井地已荒劉帥府

대방의 나라 요새 예로부터 철벽이라 남원은 대방이 아니었는데 특별히 유인궤로 인해 이름을 얻었다. / 關防舊鞏帶方州

쌍계의 푸른 풀에 봄 그늘 고요하고 / 雙溪草綠春陰靜

팔령의 만발한 꽃 전장 기운 걷혔네 / 八嶺花濃戰氣收

봉홧불 들 일 없고 노래와 춤 성하거니 / 烽火不來歌舞盛

수양버들 가지에다 배 매고 머무노라 / 柳邊猶繫木蘭舟




49. 황산대첩비를 읽고 나서[讀荒山大捷碑]


시냇가 팥배나무 가지에다 말을 매고 / 溪邊繫馬杜棠枝

단장 짚고 올라가 황산비를 읽으니 / 杖策上讀荒山碑

삼엄하고 강한 필치 호랑이가 숨죽이고 / 鐵畫巉巖伏虎豹

번쩍번쩍 현란한 빛 도깨비가 도망가네 / 璘霦煜霅遁魈魑

빛나는 위력 무섭기 어제와도 같은데 / 赫赫神威凜如昨

그 당시에 몸소 만난 자들이야 어쨌겠나 / 何況當年身値之

사마귀도 존경할 만 개구리도 대견하다 / 螳螂可敬蛙可式

아기발도 그 또한 기특한 남아로세 / 阿只拔都奇男兒

사람 나이 열다섯은 어리기 짝이 없어 / 人年十五眇小耳

파피리 불어대고 죽마 탈 시절인데 / 蔥笛堪吹竹堪騎

감히 규염 자부하고 길리가 되어서는 / 敢與虯髥作頡利

만리 바다 넘어 대장기를 휘둘렀네 / 越海萬里專旌麾

붉은 활로 백보에서 항아리 끈 떨구었고 태조(太祖)는 항상 붉은 활을 지녔는데 일찍이 퉁두란(佟豆蘭)과 무예를 겨룰 때 항아리의 끈을 쏘아 떨어뜨렸다. / 彤弓百步落甖苴

나무 등지고 활 쏘아 안위를 다투었네 / 負樹發箭爭安危

요망한 별 떨어지자 뭇 혜성이 넘어져 / 妖星旣隕衆彗倒

시냇돌에 천년토록 검붉은 피 배어 있네 / 澗石千年殷血滋

정공은 무모하고 화상은 버릇없으니 / 鄭公無謀和尙媟

천심 이심 마땅히 뉘에게로 돌아갈꼬 / 天意人心當屬誰

이 한 일로 밤중 골짝 배 이미 자리 옮겨 / 此擧夜壑舟已徙

위화도 회군할 때 기다릴 것 없었다네 / 不待威化回軍時



[주C-001]황산대첩비 : 이성계(李成桂)·이두란(李豆蘭) 장군이 고려 우왕 6년(1380)에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적 아기발도(阿只拔都)군을 물리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세운 승전비(勝戰碑)로, 전라북도 남원군 운봉면(雲峯面) 화수리(花水里)에 있었는데 왜정 때 파괴되고 지금은 파편만 남아 있다 한다. 김귀영(金貴榮)이 비문을 짓고 송인(宋寅)이 글씨를 쓰고 남응운(南應雲)이 각자(刻字)하였다.

[주D-001]사마귀도……대견하다 : 앞발을 들어 수레를 막는 사마귀와 우물 안에서 뛰어노는 개구리가 힘이 미약하고 소견이 좁기는 하지만, 강한 적에 대항하는 의기와 양양자득한 뜻은 높이 살 만하다는 것이다. 곧 15세의 소년 적장 아기발도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2]감히……되어서는 : 규염은 당 태종(唐太宗) 때 부여에 침입하여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전설상의 인물로 성은 장씨(張氏)라 하고, 길리는 역시 당 태종 때 돌궐족(突厥族)의 왕인데 강한 군사력으로 해마다 중국을 침공하여 괴롭히다가 병부 상서 이정(李靖)에게 패하여 장안(長安)으로 압송된 뒤 귀순하여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을 지냈다. 모두 아기발도를 비유한 것이다.《虯髥客傳》《唐書 卷二百十五上 突厥上》

[주D-003]정공은……버릇없으니 : 정공은 정몽주(鄭夢周), 화상은 신돈(辛旽)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치 않다.

[주D-004]이……옮겨 : 《莊子》 大宗師의 "배를 산골짝에 감추고 산을 못 속에 감춘다면 단단히 감췄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밤중에 힘이 있는 자가 그것을 짊어지고 달아나 버리는데 어리석은 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에서 나온 말로, 이성계가 황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 때 나라를 차지하는 대세는 이미 그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50. 추풍령을 넘으며[踰秋風嶺]


태백산 소백산이 산세도 장하구나 / 二白飛騰脊勢强

달리던 용의 머리 여기에서 수그려 / 神龍於此地中藏

북쪽으로 통한 시내 황간으로 달려가고 / 溪通北地趨黃澗

서쪽으로 뻗은 산은 적상산을 에워쌌네 / 山出西枝繞赤裳

봉마다 우뚝우뚝 성벽은 쌓았다만 / 每向高峯增塹壘

이 재가 요새란 걸 어느 누가 안단 말고 / 誰知平陸是關防

청주 고을 큰 들판 천리에 트였으니 / 淸州大野開千里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 / 一據秋風便搤吭





51. 너를 그리는 노래[憶汝行] 어린 아들 구장(懼牂)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었다. 4월 초에 종기로 죽었는데 기유년 12월생이다


지난날 네가 나를 떠나보낼 때 / 憶汝送我時

옷자락 부여잡고 놓지 않았지 / 牽衣不相放

돌아오자 네 얼굴 기쁜 빛 없어 / 及歸無歡顔

원망하는 생각을 품은 듯했네 / 似有怨慕想

마마로 죽는 것은 어찌하랴만 / 死痘不奈何

종기로 죽었으니 억울타마다 / 死豈不枉

악성 종기 잘 낫는 웅황 썼다면 / 雄黃利去惡

나쁜 균이 그 어찌 자랐겠는가 / 陰蝕何由長

인삼 녹용 이제 막 먹일 판인데 / 方將灌蔘茸

냉약이 어찌 그리 황당한지 원 / 冷藥一何佞

지난번에 네 모진 고통 겪을 때 / 曩汝苦痛楚

나는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지 / 我方愉佚宕

푸른 물결 속에서 장구를 치고 / 撾鼓綠波中

붉은 누각 위에서 기생을 끼어 / 携妓紅樓上

마음이 빗나가면 재앙 받는 법 / 志荒宜受殃

어찌 능히 징계를 면할까보냐 / 惡能免懲創

내 너를 소내 마을 떠나보내어 / 送汝苕川去

서산의 기슭에다 묻어주리라 / 且就西丘葬

내 장차 그 속에서 여생 보내어 / 吾將老此中

너에게 의지할 곳 있게 하려마 / 使汝有依仰


52.  나비그림에 쓰다[題蛺蝶圖]


해당화 언저리에 두 마리의 저 나비 / 野棠花畔雙蛺蝶

교묘하게 꽃술 안고 바짝 서로 붙었는데 / 巧抱花鬚密相貼

가녀린 꽃술 보소 버텨내지 못하여 / 花鬚纖弱不能支

거꾸로 길게 걸린 채 쓰러질 듯 아슬아슬 / 倒挂裊裊危欲跕

원문 4구 빠짐.

하얀 날개 너울너울 힘을 한층 더 쓰고 / 粉翅栩栩愈用力

날렵할사 고운 허리 먹을거리 노리누나 / 玉腰翕翕方貪食

진하디 진한 꽃향기 아찔하게 풍기니 / 花香馥郁暈薰醲

꽃가지에 빽빽하게 돋은 가시 보지 못해 / 不見花枝森萬棘

쭝긋쭝긋 가시끝 날카롭기 창끝인데 / 棘刺如戟復如矛

꽃과 함께 어울려 한층 더 촘촘하다 / 與花俱生還更稠

살갗 파고 살을 찔러 독기를 품었으니 / 抓膚砭肉含毒楚

잎사귀 밑 꽃마음 은밀한 꾀 지녔구나 / 葉底花心潛蓄謀

나비야 나비야 너 믿을 것이 뭐가 있나 / 蛺蝶蛺蝶爾何恃

전갈 이빨 벌 독침 본디 없지 않은가 / 本無蠆尖與蜂尾

부디 그저 꽃 밖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 但可翩花外行

꽃술을 사모하여 맴돌지를 말아라 / 愼莫遲徊戀花蕊




53. 취가행(醉歌行) 


긴긴 날에 한 동이 술 / 長日一尊酒

마주 대한 두 광객 / 相對兩狂客

마시면 미치고 미치면 더욱 마셔 / 飮酒成狂狂益飮

재물 많은 부자가 더 많은 재물 탐하듯 / 如財旣富愈貪獲

묻노라 그대 어인 일로 미치는고 / 問君緣何狂

높고 넓은 저 하늘 보라 / 視彼天宇闢

서쪽으로 해가 지면 / 白日西逝

동쪽에서 달이 떠 / 明月東來

지고 뜨고 또다시 지고 뜨지만 / 西逝東來來復去

그 사이에 영웅호걸 한번 가면 안 돌아와 / 其間俊傑去不回

경도선 사만 오천 리 / 經線四萬五千里

위도선 사만 오천 리 / 緯線四萬五千里

이 속에 한바탕 놀이판 벌여 / 設此一戲場

뭇 사람들 어지러이 노는데 / 紛然衆戲子

금방 크게 드러나서 신명나게 놀다가도 / 倏爾現身馳驤驤

갑자기 자취 숨겨 적막하게 사라지네 / 忽爾匿跡寥寥藏

적막하게 한번 가면 다시는 아니 나와 / 寥寥藏遂不出

곱고 예쁜 처자식 영영 잃어버리니 / 艶妻美子渾相失

적막하게 사라지면 무슨 소용 있으랴 / 寥寥藏可奈何

백 말 술이 있어도 소용이 없고 / 有酒百斗當奈何

수십 마리 말 있어도 탈 수가 없고 / 有馬十乘能騎跨

천금이 있어도 만져볼 수 없어라 / 有金千鎰能摩挲

농부가 소 끌고 와 무덤을 갈아 엎어도 / 有夫挈牛來耕面上土

벼락 같은 소리 질러 꾸짖지도 못한다네 / 何不一聲霹靂嚴叱呵

이러니 성인이 금방 안 된다면 / 若非猝成聖

그 본성을 잃을 수밖에 / 無乃失其性

그 본성을 잃었다면 너 또한 미친 거고 / 失其性汝亦狂

네가 만약 미쳤다면 진정 나의 벗이거니 / 汝若狂眞我友

우리 함께 십만 잔을 마셔보지 않겠는가 / 何不與我二人共飮百千觴

54. 화폭에 쓰다[題畫] 5수


물가에 초가 정자 한 칸이 서 있는데 / 臨水茅亭只一間

그대 집 어디길래 돌아가려 하지 않나 / 君家何在欲無還

서책만 널려 있고 읽을 생각 없어 뵈니 / 攤書不見看書意

시냇머리 두세 점 산봉우리 있어선가 / 爲有溪頭數點山

옷자락 두건 날리며 산장으로 들어설 제 / 衣巾飄拂入山莊

하늘 아득한 물가에 바야흐로 석양이로세 / 天遠汀洲正夕陽

들다리를 다 지나서 풀과 나무 만나자 / 行盡野橋逢草樹

작은 노새 즐거워 네 발굽이 허둥지둥 / 小驢欣悅四蹄狂

긴 바람 몰아치는 서늘한 빈 누각이 / 泠泠虛閣受長風

절반은 버들 속에 절반은 물에 잠겼네 / 半入垂楊半水中

사람이 온 듯하지만 사람 아니 보이고 / 若有人來人不見

굽은 난간 동편에 술병만 놓였구나 / 酒壺留在曲欄東

한 동이 맑은 술을 고송 뿌리 놓아두고 / 一尊淸酒古松根

머리 위에 부는 바람 소리 없이 상쾌하다 / 頭上颼飀爽不喧

이 늙은이 앉은 뜻 물어보지 말아라 / 莫問此翁何意坐

아무 뜻 없는 것이 이 늙은이 높은 경지 / 絶無意處此翁尊

들 절간 낡은 누대 몇 층 탑이 서 있고 / 野寺荒臺塔數層

어슴푸레한 동문에 돌아가는 중이로세 / 洞門曛黑見歸僧

우거진 산림 속에 빗줄기가 쏟아지니 / 蒼蒼積雨穹林內

칡이며 머루덩굴 분간할 수 없어라 / 不辨垂蘿與古藤



55.  금정역에 이르러[到金井驛] 역은 홍주(洪州)에서 남쪽으로 40리 지점에 있다


말 울음소리 앞에 오서산빛 푸르른데 / 烏棲山色馬嘶前

땅의 도수 별자리 모든 것이 묘연하다 / 地紀星躔兩杳然

관청집들 해변가에 쓸쓸하게 놓이었고 / 官閣蕭條臨海上

서울 도성 까마득 구름가에 멀어졌네 / 王城迢遞隔雲邊

그나마 남은 대나무 꽃언덕을 이웃했고 / 猶殘竹樹隣花塢

옛날 꽂은 울타리 남새밭을 둘렀구나 / 舊挿樊籬護菜田

밤이 오면 피리소리 뉘와 함께 들을꼬 / 到夜笛聲誰共聽

주렴 가득 은하수 시름겨워 잠 못 이루리 / 滿簾河漢耿無眠


56.  지는 해를 바라보며[觀日入]


어슴푸레 동정이 수평선에 걸리어 / 翳翳銅鉦挂海門

한 덩어리 흔적이 구름 끝에 명멸하네 / 雲端明滅一團痕

거꾸로 잠긴 노을빛 황금물결 부서지고 / 霞光倒碾金波闊

길게 뻗은 산 그림자 평야 거두어 어둡네 / 山影平收鉅野昏

어느 누가 왕래하여 밤과 낮이 되게 하나 / 誰遣往來爲晝夜

홀연 능히 열고 닫아 하늘땅이 갈라졌네 / 頓能開闔此乾坤

해 지는 곳 다름 아닌 연제 지역에 있으니 / 桑楡却在燕齊境

현묘한 분야 방향을 곰곰이 따져보고파 / 幻界東西欲細論



[주D-001]동정 : 구리로 된 종 모양의 북으로 상고 때 전쟁에서 군대의 진격을 중지시키는 신호로 치던 것인데, 여기서는 바다의 수평선 위로 넘어가는 태양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연제 : 춘추시대 때 산동지방에 있었던 두 나라의 이름으로 산동지방을 가리킨다.



57. 요즘 마음을 조용하고 맑게 가지는 시간이 차츰 오래되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늘 산기운이 자꾸 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따금 앞서의 시를 읊을 때마다 부끄럽기 그지없어 마침내 다시 절구 두 수를 지어 구봉산에게 사과하였다[近日習靜漸久 每日夕覺山氣益佳時誦此詩 不勝愧怍 遂更作二絶句 以謝九峯山云]


아침마다 맑은 기운 얼굴 펴기 충분하니 / 朝朝爽氣足怡顔

번화한 도회지에 있음보다 낫고말고 / 勝在芬華市陌間

어찌하면 원량 같은 담박한 자 얻어서 / 安得澹如元亮者

태연히 구봉산을 마주 대해 앉아볼꼬 / 悠然坐對九峯山

가슴 펴면 얼굴 펴지 못할 곳이 없거니 / 寬懷無處不開顔

넓은 바다 높은 하늘 이곳에도 있고말고 / 海闊天空亦此間

만물은 절로 나고 또한 절로 있는 건데 / 萬物自生還自在

한림은 어찌 굳이 군산을 깎으려 했나 / 翰林何必剗君山



[주D-001]원량 :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살면서 시와 술로 낙을 삼았던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자이다.

[주D-002]한림은……깎으려 했나 : 자연으로 생겨난 산을 굳이 없앨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군산은 중국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한림은 당 현종(唐玄宗) 때 공봉한림(供奉翰林)을 지낸 적이 있는 이백(李白)을 가리킨 듯하나, 이백은 군산을 아름다운 그림 같다고 찬미한 시만 있을 뿐 깎아버리고 싶다고 말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더 많은 연구가 요망되는 문제이다.




58. 충주로 가기 위해 도성 동문을 나오면서 짓다[將赴忠州出國東門作] 4월 6일


흥인문 밖에 늘어선 버드나무 무성한데 / 興仁門外柳濛濛

멀리 산천 바라보니 하나같이 말끔하다 / 極目川原霽色同

구불구불 들 시내 밝은 해가 흐르고 / 野水逶遲流白日

피어나는 성 구름 실바람을 견디누나 / 城雲澹蕩耐輕風

싯누런 연한 잎들 도성 교외 무성하고 / 糝黃嫩葉迷芳甸

푸르른 벼포기들 아스라이 깔리었네 / 漲綠新苗沒遠空

말 한 마리 노복 둘 간소하기 그지없어 / 一馬二童頗簡略

동쪽이건 서쪽이건 내맘대로 길 간다오 / 我行隨意適西東


59.  고향집에 이르러 감회를 쓰다[到舊廬述感]


안개 빛 그 가운데 물가의 누각 / 水閣煙光內

누런 고사리 저녁빛 깊어가는데 / 黃薇晩色深

논밭 동산 오히려 눈에 익었고 / 田園猶慣眼

예전의 꽃과 나무 마음 흐뭇해 / 花木舊怡心

처마밑의 제비도 새끼 품었고 / 樑燕亦新乳

숲 속의 꾀꼬리는 즐거운 노래 / 林鶯空好音

때를 얻은 사물들 부럽다마다 / 得時堪羨物

지팡이 의지하여 서글피 읊네 / 倚杖一悲吟




60. 어부의 집을 지나며[過漁家]


파사성 아래는 모두가 어촌인데 / 婆娑城下盡漁村

밤새 비로 모래톱에 물 불었던 흔적 있네 / 夜雨沙磯見漲痕

물가에 풀과 꽃들 너무너무 좋아서 / 渚草汀花無限好

장대 하나 넓이 물을 아침 저녁 건넌다오 / 一篙春水度朝昏



[주D-001]파사성(婆娑城) : 여주(驪州)의 소산(小山) 임강(臨江)에 있는 성. 선조(宣祖) 때 승려 의엄(義嚴)이 수축한 것이라고 함.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七》

61. 달을 보고 붓을 갈겨 남고에게 부치다[對月走筆寄南皐]


바다 위 달 얼굴을 비치고 / 海月照顔白

하늘 바람 머리털을 불어 헤치네 / 天風吹髮疏

차는 석 잔을 다 마셨고 / 茶傾三椀後

종소리 구가에 막 울리는데 / 鐘動九街初

펄럭이는 뜰 가운데 나무 / 旖旎庭中樹

또록또록한 벽에 붙은 글 / 分明壁上書

옷을 털고 다시 거닐면서 / 振衣還散步

적적히 마을터를 보노라네 / 寂歷見村墟

일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 見事頗遲鈍

주위 한가하여 시 좋은 걸 처음 알았지 / 居閒始好詩

강호가 오히려 살 만한 곳 / 江湖猶有世

낭묘에 오를 기회 아마 없으리 / 廊廟恐無時

버림받는 것 나는 그게 좋아 / 擯棄吾斯樂

나라 살림 맡으면 대중이 다 비웃지 / 經綸衆共嗤

고관대작도 결국은 다 썩는 것 / 大官終亦朽

뿔을 먹은들 필경 누가 알 것인가 / 飧角竟誰知


62.  여러 벗들과 함께 용산 정자에서 놀다[同諸友游龍山亭子] 윤이서(尹彝敍)ㆍ 이주신(李周臣) ㆍ한혜보(韓徯甫)ㆍ채이숙(蔡邇叔)ㆍ심화오(沈華五)ㆍ이휘조(李輝祖) 등 몇 사람이었고 때는 7월 16일이었음


검양이 저 멀리 광릉과 닿았는데 / 黔陽遙接廣陵東

산과 강 그림자가 석양빛을 띠고 있네 / 山影江光帶晩風

항구에는 사람들이 갯버들 위로 가고 / 港口人行蒲柳上

밀물 때는 고기들이 대울 속으로 들어온다 / 潮頭魚入竹籬中

나무숲에 연기 엉겨 집집마다 푸르르고 / 煙生樹裏千家綠

구름 사이로 햇빛 나니 돛들이 다 붉네그려 / 日出雲間萬帆紅

누선 타고 북 울리는 오늘 밤 저 달빛에 / 畫鼓樓船今夜月

금물결이 곧바로 해문에까지 일고 있네 / 金波直與海門通

승상의 누대는 온종일 맑기만 하고 / 丞相樓臺盡日淸

백조가 높이 날아 석양빛이 훤하고나 / 翻飛白鳥夕陽明

제아무리 무더위라도 바람 앞에선 맥 못쓰고 / 九天炎熱當風散

거친 파도라도 바다에 닿으면 잠잠하지 / 三峽波濤近海平

마주 대한 언덕 사이로 소금장이 늦게 서고 / 野岸對開鹽市晩

솟아오르는 물결에 낚싯배가 흔들린다 / 柳浪穿出釣船輕

조정과 강호와는 그 거리가 얼마인가 / 巖廊自與江湖遠

술 마시고 시 읊는 것 후생들 차지라네 / 文酒風流付後生


63.  죽란사에 국화가 활짝 피어 몇몇 사람과 함께 밤에 마시다[竹欄菊花盛開 同數子夜飮] 주신(周臣)ㆍ혜보(徯甫)ㆍ무구(无咎)였음


철은 가을인데 쌀은 더 귀하고 / 歲熟米還貴

집이 가난해도 꽃은 많다네 / 家貧花更多

가을빛 속에 꽃이 피어 / 花開秋色裏

다정한 사람들 밤에 서로 찾았지 / 親識夜相過

술 딸며 시름까지 보태 딸고 / 酒瀉兼愁盡

시가 지어지면 즐거운 걸 어떻게 해 / 詩成奈樂何

한생은 꽤나 단아하더니 / 韓生頗雅重

요즘 와선 역시 미치광이 짓이야 / 近日亦狂歌

기러기는 날아날아 강남 섬을 가는데 / 飛飛歸鴈向江洲

발을 걷고 홀로 앉아 시름에 잠겨 있네 / 獨捲寒簾生遠愁

귀밑머리 세려 하니 아마도 늙는가 봐 / 蓬鬢欲疎無乃老

국화는 피었건만 가을 농사는 어이할까 / 菊花雖發不禁秋

선비질하다 신세 망쳐 책은 다 던져 버리고 / 儒名誤世抛經卷

고향 꿈이 마음에 있어 낚싯배를 물었다네 / 鄕夢關心問釣舟

식량을 좀 비축하여 일 년 날 계책이 서면 / 約略甁儲爲歲計

내년 봄엔 가솔 데리고 양주로 내려갈 거야 / 春來提挈下楊州



[주D-001]한생(韓生) : 혜보(徯甫)를 이른 것임.






64. 일찍 일어나다[早起] 단옷날 읊은 것임


목어가 소리 내자 독경하는 중 일어났는데 / 木魚纔動起經僧

산봉우리 구름 창창 아직 이른 새벽이다 / 雲巘蒼蒼曉氣澄

돌무더기 해 비추니 이상한 빛이 나고 / 日照石林生異色

산언덕에 연기 둘러 층계가 또 생겼구려 / 煙橫山阪有餘層

긴 숲을 뚫고 다니며 노는 사슴 보이더니 / 漸看游鹿穿脩杪

이윽고 우는 새가 다래덩굴에 또 모이네 / 復放啼禽集古藤

멀리서 생각하네 서경의 학사들이 / 遠憶西京諸學士

활발하게 원릉에서 돌아오고 있을 것이야 / 翩翩歸騎自園陵



[주D-001]목어(木魚) : 불가(佛家) 에서 쓰는 법기(法器) . 나무를 조각하여 둥그런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속은 파서 비게 한 다음 독경(讀經) ·예불(禮佛) ·죽반(粥飯) 기타 무슨 일이 있어 승려를 모이게 할 때 이것을 두들겨 소리를 냄. 주희(朱熹)의 시에, “죽과 밥 어느 때나 목어를 함께 할까.[粥飯何時共木魚]" 하였다.




65. 산길을 가면서 생각나는 것을 쓰다[山行書懷]


따뜻한 날씨 훈훈한 바람 보리가 자라는 계절 / 暖日薰風養麥天

산중의 사월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 山中四月正幽姸

꽃다운 숲 구름 속의 나무에다 말을 매두고 / 芳林馬繫雲間樹

비 지나간 절벽에서 사람은 밭을 가네 / 絶壁人耕雨後田

깨진 마을 줄을 이어 모두가 안호인데 / 破塢延緣皆鴈戶

작은 시내 모여들어 그물 치는 배도 있어 / 小溪廻合有罾船

채마밭과 오막살이 용문산 북에 있건마는 / 菜園茅屋龍門北

뉘와 함께 거닐면서 한 백 년 살아볼까 / 誰與消搖度百年



[주D-001]안호 : 정처 없는 떠돌이 백성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집.《正字通》








66. 고의(古意) 검남(劍南) 운에 차운하다


한강수 흘러흘러 쉬지 않고 / 洌水流不息

삼각산 높아높아 끝이 없는데 / 三角高無極

산하는 차라리 변할지언정 / 河山有遷變

무리진 못된 것들 깨부실 날이 없네 / 朋淫破無日

한 사람이 중상모략을 하면 / 一夫作射工

뭇 입들이 너도 나도 전파하여 / 衆喙遞傳驛

편파스런 말들이 기승을 부리니 / 詖邪旣得志

정직한 자 어디에 발붙일 것인가 / 正直安所宅

봉황은 원래 깃털이 약해 / 孤鸞羽毛弱

가시를 이겨낼 재간이 없기에 / 未堪受枳棘

불어오는 한 가닥 바람을 타고서 / 聊乘一帆風

멀리멀리 서울을 떠나리라네 / 杳杳辭京國

방랑이 좋아서는 아니로되 / 放浪非敢慕

더 있어야 무익함을 알기 때문이야 / 濡滯諒無益

대궐문을 호표가 지키고 있으니 / 虎豹守天閽

무슨 수로 이내 충정 아뢰오리 / 何繇達衷臆

옛 분이 교훈 남기지 않았던가 / 古人有至訓

향원은 덕의 적이라고 / 鄕愿德之賊



[주D-001]향원은… … 적 : 향원(鄕愿)은 신조와 주견 없이 그때그때 세태에 따라 맞추어서 주위로부터 진실하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을 말함. 그의 사이비한 행동이 사람으로 하여금 진위(眞僞)를 판단하는 기준을 흐리게 만들므로 공자(孔子)는 그를 일러, 덕의 적이라고 하였음.《論語 陽貨》

67. 고시(古詩) 27수


편안히 살던 십 년 전에는 / 安坐十年前

십 년 동안 할 일을 헤아리며 / 商量十年事

나가거나 들어앉거나 도에 맞게 하고 / 行藏與道揆

전원에다 자리를 잘 잡았지 / 田園整位置

하는 일들 모두 조리가 있어 / 鑿鑿有條理

밤중까지 기뻐 잠이 안 왔는데 / 中宵欣不寐

금년에 한 가지 일 잘못 판단하고 / 今年一計誤

명년에는 사건 하나 만나고 / 明年一事値

뜬구름 변하듯 모든 게 바뀌어 / 變幻如浮雲

이상한 일들이 뜻밖에 벌어지네 / 神怪出不意

풋내기 바둑이 고수를 만났으니 / 拙棋對高手

그 속임수를 무슨 수로 당하리 / 安能測詭祕

황홀하여 응수할 겨를도 없고 / 恍忽未暇應

멍한 게 푹 취한 것만 같아 / 瞢騰似沈醉

예부터도 현인 달사들이 / 自古賢達人

그 때문에 많이들 미끄러졌다네 / 以玆逢顚躓

좋은 꽃이 한창 예쁠 때야 / 好花方艶時

누가 꽃되기를 바라지 않으랴만 / 誰不願爲花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하면 / 迨其萎而隕

갓 자라난 풀싹만도 못하단다 / 不如凡草芽

서쪽에 와 이십 년 노는 동안 / 西游二十年

성쇠를 거듭하기 몇 집이런가 / 盛衰知幾家

눈앞에 분명히 본 일인데 / 分明在眼前

어디 간들 전거가 없을 것인가 / 何處無前車

고동목을 다잡아 매두지 않고 / 金柅不蚤繫

기름통을 자랑만 하면서 / 膏方自夸

멋대로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는 / 翔徊俟其便

눈 깜짝할 사이 걱정거리 사고 말지 / 轉眄離虞羅

어린 시절부터 늘 경계하여 / 戒之在嬰稚

일찍이 이런 마음 갖지 않게 해야지 / 早使此心遐

하늘 땅은 넓고도 가이 없어 / 二儀廓無際

만물로도 채울 수가 없다네 / 萬物不能實

작디작은 일곱 자 몸이야 / 眇小七尺軀

사방 한 발 방이면 살 수 있지 / 可容方丈室

새벽에 일어날 때 머리통은 찧더라도 / 晨興雖打頭

밤에 누우면 무릎은 펼 수 있어 / 夕偃猶舒膝

작은 빈궁은 동정하는 벗이라도 있지만 / 小窮有友憐

되게 궁하면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네 / 大窮無人恤

태평연월의 전야 백성들 / 熙熙田野氓

몸놀림 얼마나 걸림새없이 편하던가 / 動作何豪逸

당파 싸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아 / 黨禍久未已

그거 참으로 통곡할 일이로세 / 此事堪痛哭

낙촉 후예들은 소식도 없고 / 未聞洛蜀裔

지보 살붙이들만 가리고 있다네 / 遂別智輔族

싸움 등살에 양심마저 다 흐려져 / 爭氣翳天良

티끌만 마음에 걸려도 막 죽인다 / 纖芥恣殺戮

순한 양들 짹소리 못하고 죽어도 / 羔羊死不號

승냥이와 범은 눈알을 부라리고 / 豺虎尙怒目

높은 자는 뒤에서 조종을 하며 / 尊者運機牙

낮은 자는 칼과 살촉을 간다네 / 卑者礪鋒鏃

그 뉘라서 큰 잔치를 열어 / 誰能辦大宴

화려한 집에다 장막을 둘러치고 / 帟幕張華屋

천 항아리에 빚어넣은 술과 / 千甕釀爲酒

만 마리 소 잡아 만든 전골로 / 萬牛臠爲肉

함께 앉아 옛 폐습 다 버리기로 하고 / 同盟革舊染

평화로운 복을 맞게 하려나 / 以徼和平福

동녘 잿마루에 피어오른 흰구름 / 白雲出東嶺

처음에는 소담하기 모란꽃 같다가 / 初如牧丹花

점점점 산더미처럼 부풀어 / 轉作峯巒勢

금방이라도 천둥벼락이 떨어질 듯 / 硉矹藏雷車

뭉게뭉게 하늘을 가득 메운 / 溶溶滿碧虛

기이한 빛이 온 누리에 비치면 / 奇光照邇遐

그 모습 왜 아름답지 않으랴만 / 豈不美可愛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떻게 할까 / 風吹當奈何

별들은 붙어있는 자리가 있고 / 星曜有躔絡

초목도 뿌리와 싹이 있지만 / 草木有根芽

너는 한 곳에 못 있는 게 탈이어서 / 念汝不能住

나를 길이 탄식하게 하누나 / 使我長咨嗟

못 안에서 활기차게 뛰노는 고기 / 撥剌池中魚

발랄하게 못 속을 다니면서 / 撥剌池中行

연잎 사이에서 놀기도 하고 / 游戲蓮葉間

오물대고 쪼아먹고 제멋대로였는데 / 呷唼常適情

무단히 멀리 놀고 싶은 생각으로 / 矯然思遠游

흐름 따라 큰 바다로 들어갔다네 / 隨流入滄瀛

양양한 바다 갈 곳을 잃고 / 望洋迷所向

거센 물결에 넋이 도망갔으며 / 蕩潏魂屢驚

가까스로 교룡 악어를 피했더니 / 崎嶇避蛟鰐

필경에는 큰 고래를 만나 / 至竟値長鯨

고래가 들이켜면 빨려들어가 죽었다가 / 倏鯨吸而死

고래가 뿜어내면 다시 살아났다네 / 忽鯨歕而生

자나깨나 옛 못이 그리워서 / 耿耿思故池

시름시름 걱정만 하던 차에 / 圉圉憂心縈

그 고기를 불쌍히 여긴 용왕이 / 神龍哀此魚

세찬 비를 소리나게 내려주었다네 / 雷雨會有聲

풀이면 다 뿌리가 있는데 / 百草皆有根

부평초만은 매달린 꼭지가 없이 / 浮萍獨無蔕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 汎汎水上行

언제나 바람에 끌려다닌다네 / 常爲風所曳

목숨은 비록 붙어있지만 / 生意雖不泯

더부살이 신세처럼 가냘프기만 해 / 寄命良瑣細

연잎은 너무 괄시를 하고 / 蓮葉太凌藉

행채도 이리저리 가리기만 해 / 荇帶亦交蔽

똑같이 한 못 안에 살면서 / 同生一池中

어쩌면 그리 서로 얼그럭덜그럭 할까 / 何乃苦相戾

제비가 처음 날아와서는 / 鷰子初來時

쉬지 않고 비비배배 비비배배지 / 喃喃語不休

무슨 말 하는지 뜻은 잘 몰라도 / 語意雖未明

집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만 같애 / 似訴無家愁

늙은 고목나무 구멍도 많은데 / 楡槐老多穴

왜 거기서 안 사는가 했더니 / 何不此淹留

다시 날아와 비비배배하는 소리 / 燕子復喃喃

사람이 한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데 / 似與人語酬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먹고 / 楡穴鸛來啄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 / 槐穴蛇來搜

가지 늘어진 정원 속의 대나무 / 冉冉園中竹

말쑥한 자태 너무나도 소박한데 / 修節擢澹素

지방사람들 대가 중한 줄 모르고 / 土人不重竹

대 베어 채마밭 울타리 만든다네 / 伐竹爲樊圃

네가 북쪽 지대에만 났더라면 / 苟汝生北方

사람들이 왜 널 사랑하지 않으리 / 豈不人愛護

잎 하나라도 혹시 다칠세라 / 一葉疑有損

갔다가도 다시 와서 보살피련만 / 旣去復來顧

바다 장사치들 많은 이득을 노려 / 海賈射重利

사나운 파도도 마다 않는데 / 不避風濤險

높이 날 앞길만 트인다면야 / 前程有騰翥

영해 귀양살인들 왜 마다하리 / 安辭嶺海貶

서릿발 같은 탄핵 글발에 / 彈文凜如霜

정기는 위세가 꺾여버렸다네 / 正氣凌威燄

꿰뚫어지게 보는 눈 숲 속에 있거니 / 林下有慧眼

그 속셈을 무슨 수로 가린다던가 / 肝肺何能掩

뜰 중심에 있는 푸르른 파초 / 庭心綠芭蕉

피어나는 잎 그 빛 너무 곱지 / 展葉何光絢

우유초는 가을 들면 씨알 따고 / 牛乳待秋摘

봉미초는 바람결에 간들대지만 / 鳳尾含風轉

아침에 피는 한 송이 꽃은 / 朝來吐一花

차마 볼 수 없는 꼴불견이지 / 陋恣不堪見

만물이 좋은 점은 하나씩인 것 / 萬物各一美

뿔과 어금니를 독차지할 수 있는가 / 齒角寧得擅

달관이 시 쓰기도 좋아한다면 / 達官好作詩

궁천한 자는 무얼 차지할 것인가 / 何以待窮賤

이상하게도 융만 시절의 시는 / 異哉隆萬詩

껄끄럽기 마른 장작개비 같아 / 枯澁如槁木

원서가 설루를 깔아뭉개면 / 袁徐轢雪樓

매도하기 마치 종 다루듯 했지 / 罵誶如奴僕

청 나라 시대에는 또 한 번 변하여 / 淸人又一變

예쁘장하게 뼈와 살이 알맞았기에 / 嫩艶勻骨肉

비록 뼈대 있게 독특하진 못했어도 / 雖乏崛强態

그런대로 함축미는 있었지 / 猶能有涵蓄

그 성쇠도 세상 따라 좌우되는 것 / 盛衰隨世運

봄은 따스하고 가을은 쌀쌀하기 마련이야 / 春溫必秋肅

수리부엉이도 밤중에 날면 / 茅鴟中夜飛

빠르기 순풍 만난 기러기나 같다네 / 翼若鴻遇風

속일 수 없는 것이 공리이며 / 公理不可誣

어디서나 통해야 그게 달도이지 / 達道皆相通

친구 팔아먹는 사람은 없고 / 未有賣友人

임금 섬기는 데는 그래도 충성이라네 / 猶能事君忠

막야는 철이라도 척척 끊고 / 鏌釾利食鐵

금잠은 벌레를 되는 대로 먹는다네 / 金蠶恣啗蟲

섶을 비록 산더미같이 쌓은들 / 抱薪雖如山

제 어찌 하늘을 불태우리 / 何能焚太空

벗이여 달 아래서 마시려거든 / 友欲月下飮

오늘밤 달을 놓치지 말게나 / 勿放今夜月

만약에 내일로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바다에서 구름이 일 것이며 / 浮雲起溟渤

또 내일로 더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둥근달이 이미 이지러질 거야 / 圓光已虧缺

숲 속에 표범이 엎드려 있으면 / 文豹伏林中

나무 위에서 까막까치가 짖어대고 / 烏鵲樹頭嗔

울타리에 긴 뱀이 걸렸으면 / 長蛇掛籬間

참새 떼가 조잘조잘 사람에게 알리며 / 瓦雀噪報人

개백장이 올가미 차고 지나가면 / 狗屠帶索過

뭇 개들이 요란하게 짖지 / 群吠鬧四隣

새 짐승은 곧이곧대로기에 / 禽獸不藏怒

그 아는 것이 귀신 같다네 / 其知乃如神

마음이 포학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법 / 內虐必外著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어떻게 속일 것인가 / 何以欺愚民

사덕이 물론 다 아름다운 것이나 / 四德雖竝美

군자는 늘 인을 우선으로 치지 / 君子每先仁

산 풀도 밟지 않는다니 / 生草猶不履

그 기린 얼마나 어진가 / 賢哉彼麒麟

태양이 빛나기 수정덩어리라도 / 太陽赫光晶

준오가 별처럼 속에 널려 있고 / 踆烏乃星羅

밝은 달이 저리도 교교하지만 / 明月皎如彼

계수나무가 늘 너울거리듯 / 桂樹長婆娑

몸 깨끗이 갖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 潔身雖自勵

생기는 오점을 누가 없애주리 / 玷汚將誰磨

깨끗이 씻어버릴 뜻 왜 없을까만 / 豈無洗濯志

약한 힘으론 바다를 끌어올 수 없어 / 弱力莫挽河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가는데 / 冉冉天色暮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어찌할까 / 徘徊當奈何

우리 정원에 한 그루 뽕나무가 / 吾園一株桑

하필이면 서루 기둥 가까이 있어 / 苦近書樓楹

아기종이 가지를 쳐버리면 / 小奴剪其枝

새 가지가 더 많이 돋아나고 / 新條益暢榮

사랑방 객이 몸통을 베버려도 / 舍客伐其榦

봄이면 등걸에서 움이 돋아 / 槎蘖又春萌

해마다 치고 벰을 당하고도 / 年年受剪伐

해마다 늘 자라나기만 해 / 年年也自生

그 마음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서 / 苦心良可感

북돋우어 주고 잘 자라게 했더니 / 培壅使其成

거년 봄에는 상마상으로 하여 / 前春上馬桑

더위와 추위 모르고 살았다네 / 免使吳楚爭

좋은 나무는 버릴 수가 없는 법 / 良木不終棄

가시나무 따위가 감히 겨룰 수 있으랴 / 樲棘敢相嬰

솥은 오물 버리기 위해 엎고 / 鼎顚利出否

자버러지는 펴기 위해 굽히지 / 蠖屈本求伸

악인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고 / 惡人事上帝

우리 길은 가지 발전이 제일이야 / 吾道貴自新

들리는 명성 태산 같아도 / 聞名若泰山

가까이 대하면 진짜 아닌 게 많고 / 逼視多非眞

듣기에는 도올처럼 들려도 / 聞名若檮杌

보면 볼수록 가까이할 만한 이도 있어 / 徐察還可親

칭찬은 수많은 입 거쳐야 하지만 / 讚誦待萬口

훼방은 한 입으로도 족한 것 / 毁謗由一脣

금방 기뻐하고 걱정할 게 뭐라던가 / 憂喜勿輕改

눈 깜짝할 사이 재요 먼지인 것을 / 轉眼成灰塵

만물은 제각기 분수가 있고 / 萬物各有分

힘이나 숙명이 서로 틀린 게 많아 / 力命多不敵

청학은 높은 소나무에서 살고 / 靑鶴巢喬松

황작은 갈대에다 둥지 틀어야지 / 黃雀巢葦荻

황작이 높은 소나무에서 살다간 / 黃雀巢喬松

바람 불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아 / 風吹遭蕩析

난쟁이 주제에 짧은 옷 주웠대서 / 僬僥受短襦

불평을 품을 것이 뭐라던가 / 胡爲銜戚戚

조절을 꼭 그리워할 것 없이 / 藻梲何須慕

진창길이 바로 제격인 것이지 / 泥塗方自適

천고의 인물 두루 골라봐도 / 歷選千古人

내가 바라는 건 진미공이야 / 但願陳眉公

곤산 속에다 오막살이 짓고는 / 結廬崑山內

도서에 파묻혀 일생을 보냈다네 / 棲身圖史中

오와 월에 궁한 선비들이 많아 / 吳越多窮儒

서로 필연으로 도우며 상종했기에 / 筆硯相磨礱

고물고물 끝이 없는 비급 총서를 / 紆餘秘笈書

엮어내는 데 별 힘 들지 않았다오 / 薈蕞不費功

우산의 풍자를 받기는 하였지만 / 縱被虞山刺

시원한 맑은 바람이 일지 / 蕭然有淸風

장저 걸익은 따라가기가 어렵고 / 沮溺邈難企

또 생각나는게 소운경이야 / 且憶蘇雲卿

정원 가꾸며 기이한 행적 감추고 / 灌園晦奇跡

외 팔면서 높은 명성 숨겼었네 / 賣瓜鞱高名

참외는 크기가 항아리만 하고 / 甘瓜大如甕

물외는 길이가 술단지만 하였다 / 苦瓜長如罌

우스워라 장씨라는 사람 / 可笑張氏子

옛 정이 그리워 옥백 보냈으나 / 玉帛存故情

하룻밤에 전가족이 도망가고 없어 / 盡室一夜逃

사마가 마구 울어댔다네 / 駟馬啾交鳴

흰구름은 어딜 가나 일어나는 것 / 白雲處處起

그 즐거움을 누가 있어 다투리 / 此樂誰與爭

절인 고기는 썩은 냄새가 없고 / 鮑魚無敗臭

자버러지는 색이 따로 없다네 / 尺蠖無異色

안자(晏子)가 이르기를, “자버러지는 누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누렇게 되고, 푸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푸르게 변한다." 하였음.

권세있는 집안에는 충객도 많지만 / 熱門多忠客

사랑과 그리움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 / 愛慕由悃愊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세력이 부러워서이겠지 / 無乃羨勢力

사실은 그 사람이 현명한 거야 / 斯人實賢明

문장이 높고 큰 덕을 닦으면 / 高文修大德

눈알이 벌써 희끄무레하여 / 眼珠已迷昧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른다네 / 自心不自識

뭇 선이 골짝을 메우듯 몰려오면 / 衆善趨如壑

찬미의 노래가 하북에 가득하련만 / 謠誦滿河北

갈바람에 벽오동 잎이 지고 / 秋風摧碧梧

둥우리 제비도 들보를 하직한다 / 巢鷰辭雕梁

문정에는 참새 떼 모여드는데 / 鳥雀集門庭

찾던 객들 잊어버린 듯 조용하네 / 舊客如相忘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염량이 달라서이겠지 / 無乃殊炎涼

그 사람 사실로 오만방자해 / 斯人實傲妄

뭇 헐뜯음도 모두 아랑곳없이 / 衆毁皆滄浪

자신 대의명분을 지킨다면서 / 自辭負義名

은근히 상대로 하여금 드러내주게 하는데 / 微令彼過彰

뭇 악은 하류로 모여드는 법 / 衆惡歸下流

여러 입들 야단법석을 한다네 / 羣喙如蜩螗

노수가 도를 강론하면서도 / 魯叟講斯道

그 절반이 왕도정치에 관한 것이며 / 王政居其半

회옹이 누차 올린 바른 상소도 / 晦翁屢抗章

그 내용은 모두 조정 당면 문제였지 / 所論皆廟算

지금 선비들은 공리공담만 좋아하고 / 今儒喜談理

실제 정치에는 빙탄처럼 용납하지 못하니 / 政術若氷炭

감히 못 나가고 깊이 들어앉았지 / 深居不敢出

나갔다간 남의 노리갯감 되니까 / 一出爲人玩

그리하여 거칠고 경박한 사람들이 / 遂令浮薄人

발벗고 나서 국사 맡게 만든다네 / 凌厲任公幹

수 양제 때 시작된 과거제도 / 詞科自隋煬

그 독이 이 나라에도 유전되었다네 / 流毒至洌浿

논리 정연한 생원론이야말로 / 粲粲生員論

무릎 치며 쾌재를 부를 만하지 / 擊節成一快

피어오른 뭉게구름 같은 재주라도 / 才俊如霞雲

모두 그 속에 들어가 패하면서 / 盡向此中敗

늙어빠져 백분이 되면서도 / 龍鍾到白粉

지칠 줄 모르고 새기고 그린다네 / 雕繪猶未懈

소인배들 벼슬 한자리 해보려고 / 細人巧爲宦

밤낮없이 남의 맘을 재면서 / 揣摩窮夜晝

단 한 번도 까닭이 있어 움직이지만 / 一動皆有因

백 가지 짓이 하나도 맞는 게 없어 / 百爲無一偶

열성스런 벗 따라 꽃구경하고 / 看花趁熱友

채소 먹으며 원래 청백한 체하지 / 喫菜示素守

오활한 유자들만 생각 잘 못하고 / 迂儒少商量

비바람 맞아가며 무단히 쏘댄다네 / 風雨浪奔走

벌레들도 제 몸 방어는 다 잘하고 / 昆蟲盡自衛

발톱 어금니 발굽 뿔도 골고루지 / 爪牙蹄角毒

평화롭다고 군대 접어두었다가 / 時平不講兵

적이 오면 제멋대로 맡겨둬서야 / 寇來任隳觸

명장은 송골매와 같아서 / 名將如蒼鷹

날쌔고 보는 눈도 촛불 같지만 / 驍邁眸如燭

비대한 자가 장단에 오르면 / 胖夫輒登壇

한다는 소리 지장불여복장이란다네 / 云智不如福

요즘 들어보면 홍이포라는 것이 홍이포는 오랑캐 나라의 병기임. / 近聞紅夷礮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섭다는데 / 創制更殘酷

앉아서 태고풍이나 지키면서 / 坐守太古風

활 화살 따위나 익힌대서야 / 弓箭有課督



[주D-001]전거(前車) : 후인이 경계해야 할 지나간 일들. 《순자(荀子)》성상(成相)에, “앞 수레가 이미 전복되었는데도 뒤에 가는 수레가 그것을 모른다면 깨달을 때는 언제일 것인가." 하였음.

[주D-002]낙촉……없고 : 정직한 학자들은 다 없어졌다는 뜻. 송 철종(宋哲宗) 때 낙양(洛陽)의 정이(程頤)을 선두로 한 낙당(洛黨), 촉(蜀)의 소식(蘇軾)을 선두로 한 촉당(蜀黨)이 있었음. 거기에 삭방(朔方)의 유지(劉摯)를 선두로 한 삭당(朔黨)을 합쳐 원우삼당(元祐三黨)이라고 불렀다.《小學紺珠 名臣類 下》

[주D-003]지보……있다네 : 자기들 가까운 쪽만 찾음. 지씨(智氏)와 보씨(輔氏)는 전국(戰國) 시대 진(晉)의 공족(公族)이었음. 《尙友錄》

[주D-004]우유초(牛乳蕉) : 파초의 일종. 닭알 만큼한 씨알이 소의 젖모양으로 생겨 얻어진 이름.《本草 甘蕉》

[주D-005]봉미초(鳳尾蕉) : 상록목본(常綠木本)의 식물 이름. 여름에 꽃이 피는데 단성(單性)이며 화피(花被)도 없다고 함.《本草 無漏子》

[주D-006]융만 시절 : 명(明) 나라 중엽, 즉 융경(隆慶)·만력(萬曆) 시절. 융경은 명 목종(明穆宗, 1567~1572) 연호이며, 만력은 신종(神宗, 1573~1620) 연호임.

[주D-007]원서가……다루듯 했지 : 명 나라 중기의 학풍(學風)을 말한 것. 명 세종(明世宗) 때 이반룡(李攀龍)이 이선방(李先芳)·사진(謝榛)·오유악(吳維岳)·왕세정(王世貞) 등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일대를 풍미하여 소위 왕리지학(王李之學)이라는 이름으로 시문(詩文)에 있어 당대의 종장(宗匠)이었다. 그러나 신종(神宗) 대에 와서는 원굉도(袁宏道) 형제가 왕·리의 학풍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고, 서위(徐渭)는, 왕세정·이반룡이 당초의 동사인(同社人)이었던 사진을 뒤에 와서 배척했다 하여, 맹세코 그들 둘이 이끄는 당(黨)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음. 원서(袁徐)는 원굉도와 서위이며, 설루(雪樓)는 이반룡을 가리킨 것임.《明史 卷二百八十七·二百八十八》

[주D-008]막야 : 고대 오(吳)에 있었다는 유명한 보검(寶劍) 이름.

[주D-009]금잠 : 벌레 이름. 금잠충(金蠶蟲)이라고 하는 독충(毒蟲)임.

[주D-010]준오 : 태양 속에 있는 세 발이 달렸다는 까마귀.《淮南子 精神訓》

[주D-011]상마상 : 말에다 싣고 다니는 뽕. 원호문(袁好問)의 〈추잠(秋蠶)〉 시에, “……아침에 그것들에게 상마상을 먹였더니, 대밭에 빗소리가 잠박 너머에서 들려오네.[朝來飼却上馬桑 隔簇仍聞竹間雨]" 하였음.

[주D-012]조절 : 동자기둥에다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것. 왕공귀인(王公貴人)의 거소.

[주D-013]진미공 : 명(明) 나라 진계유(陳繼儒). 미공(眉公)은 그의 호임. 어려서부터 영오하고 문장에 능하여 그 명성이 동기창(董其昌)과 막상막하였고, 왕세정(王世貞)으로부터도 매우 인정을 받았다. 후에는 오직 저술에만 몰두하여 경사제자(經史諸子)는 물론, 술기(術伎)·패관(稗官)과 노·불(老佛)의 설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를 비교 핵실하였으며, 심지어 쇄언(瑣言) 벽사(僻事)에 이르러서도 그를 모두 추려 기록으로 남겨 이른바 《진미공정정비급(陳眉公訂正祕笈)》이라는 총서(叢書)를 내놓기에 이르렀음. 《明史 卷二百九十八》

[주D-014]우산(虞山) : 우산종백(虞山宗伯)으로 청(淸)의 전겸익(錢謙益)을 말함. 시에 능하였고, 《열조시집(列朝詩集)》을 만들었는데, 고종(高宗) 때에 와서 비방(誹謗)의 내용이 많다 하여 책판[版]을 불태워버리고 간행을 금했다가 청 나라 말기에 와서야 다시 간행되었음. 《淸史 卷四百八十三》

[주D-015]장저 걸익 : 춘추 시대의 두 은자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論語 微子》

[주D-016]소운경 : 송대(宋代)의 사람. 일년 내내 해진 옷 한 벌 짚신 한 켤레로 채소 심고 신 삼아 팔아 그것으로 자급자족하고 틈이 있으면 온종일 문 닫고 누웠거나 아니면 무릎꿇고 하루를 보내 주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 장준(張浚)과 다정한 사이였는데, 그 후 장준이 재상이 되어 끊임없이 서한을 보내고 많은 선물이 답지하자 다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음. 《宋史 卷四百五十九》

[주D-017]장씨라는 사람 : 장준(張浚)을 말함. 앞의 주 58) 참조.

[주D-018]노수(魯叟) : 공자(孔子)를 이름.

[주D-019]생원론 : 청(淸) 나라 고염무(顧炎武)가 쓴 생원에 대한 논(論).

[주D-020]백분(白紛) : 어려서부터 한 가지 재주를 익히기 시작하여 머리가 다 희도록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어지럽기만 한 것. 《法言》




68. 홀로 앉아서[獨坐] 2수. 신유년(1801) 3월 장기(長鬐)에 있을 때임


쓸쓸한 여관에 홀로 앉아 있을 때면 / 旅舘蕭寥獨坐時

대 그늘도 끄덕 않고 왜 그리도 해는 긴지 / 竹陰不動日遲遲

일어나려는 향수를 그대로 주저앉히고 / 鄕愁欲起須仍壓

익어가는 시구나 마무리를 짓는다네 / 詩句將圓可遂推

잠시 갔다 다시 오는 꾀꼬리는 미더운데 / 乍去復來鶯有信

제비는 무슨 생각에 말을 하다 입 다물까 / 方言忽噤鷰何思

다만 하나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은 / 只饒一事堪追悔

소동파를 배우느라 바둑을 못 배웠어 / 枉學東坡不學棋

간들간들 버들가지 주위는 적막한데 / 裊娜煙絲寂歷中

봄 잠을 깨고 나니 들빛이 어둑하다 / 春眠起後野濛濛

산에 구름 멀리 걷히니 달이 뜬 양 훤하고 / 山雲遠出强如月

숲에 잎이 흔들리는 것 바람 있어서 아니라네 / 林葉自搖非有風

녹음방초 찾아서 눈은 가고 있지마는 / 眼向綠陰芳草注

마음은 마른나무 죽은 재와 똑같구나 / 心將槁木死灰同

집으로 돌아가게 나를 비록 놔준대도 / 縱然放我還家去

기껏해야 그 모양의 한 늙은이일 뿐이리 / 只作如斯一老翁

69. 둑 위에서[堤上]


늦개인 날을 따라 둑 위를 거니노니 / 堤上消搖趁晩晴

짙푸른 봄 산이 참으로 맘에 드네 / 春山濃翠正怡情

무자맥질 즐기는 오리 물을 끌며 쌍쌍이 가고 / 浴鳧曳水必雙去

숲에 숨은 새끼꿩들 한 번씩 때로 운다 / 乳雉伏林時一鳴

흰구름을 만나서는 혼자 서 있고 / 偶値白雲成獨立

우거진 풀을 보니 부생이 가엾구려 / 忽看芳草感浮生

어느 때나 산골에 가 밭을 갈며 숨어살까 / 峽中耕隱知何日

오늘 보니 어느새 흰머리가 몇 개인데 / 衰髮今朝已數莖




70. 담배[煙] 


육우가 남긴 다경도 좋고 / 陸羽茶經好

유령의 주송도 특이하거니와 / 劉伶酒頌奇

담바고가 지금 새로 나와서 / 淡婆今始出

귀양살이하는 자에게 제일이라네 / 遷客最相知

가만히 빨아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 細吸涵芳烈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이 되어 간들간들 / 微噴看裊絲

여관 잠자리가 늘 편치 못하여 / 旅眠常不穩

봄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 春日更遲遲



[주D-001]육우 : 당(唐)의 경릉(竟陵) 사람. 차를 즐겨 다경(茶經) 세 편을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온 세상이 다 함께 차를 즐기는 풍속을 이루었고, 후세에는 그를 다신(茶神)이라하여 제사까지 지냈음. 《唐書 卷一百九十六》

[주D-002]유령 : 진(晉)의 패국(沛國) 사람. 완적(阮籍) 등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서 술을 좋아하여 항상 술을 지니고 다녔으며 주덕송(酒德頌)을 지어 술을 예찬하였음. 《晉書 卷四十九》









71. 밤[夜] 


병이 낫고 나니 봄바람은 가버렸고 / 病起春風去

시름이 많아 여름밤도 길구나 / 愁多夏夜長

잠깐잠깐 잠자리에 들었다가 / 暫時安枕簟

금방새 고향을 그린다네 / 忽已戀家鄕

불을 붙이면 솔그을음이 침침하고 / 敲火松煤暗

문을 열면 대나무가 시원하게 느껴져 / 開門竹氣涼

아마 저멀리 소내 위에는 / 遙知苕上月

달그림자가 서편 담을 비치련만 / 流影照西墻


72.  시름을 달래다[遣悶]


비 못오게 구름만 살짝 뒤이어 해가 돋아 / 輕陰閣雨日曈曨

울을 뚫고 물을 끌어 채마밭에 대었다네 / 小圃穿籬接水筒

상추잎이 푸르를 때 제비는 날아들고 / 萵葉綠時飛鷰母

겨자 새움 돋는 곳에서 장닭은 졸고 있다 / 芥臺黃處睡鷄翁

흙을 먹는 농민이 어찌 낙을 알거나 / 野氓食土寧知樂

남다른 군자라면 빈궁 한하지 말아야지 / 君子畸人莫恨窮

산 속에서 밭매도록 집안 단속 그리하고 / 山裏鋤園作家戒

괴롭게 경전 알 생각 말라고 해야겠네 / 不敎辛苦一經通

계옹(鷄翁)이라는 말은 《산경(算經)》에서 나온 말이며, 육방옹(陸放翁)의 가계(家誡)라는 것이 있었음.




73. 시름[愁] 


산에 칡덩굴 푸르르고 대추잎 돋아나고 / 山葛靑靑棗葉生

장기성 바깥은 바로 작은 바다라네 / 長鬐城外卽裨瀛

바위로 눌러두려도 시름은 다시 일고 / 愁將石壓猶還起

꿈길은 연기처럼 언제나 희미하기만 / 夢似煙迷每不明

늦게 밥을 더 먹는 것 구미 있어 아니고 / 晩食强加非口悅

봄옷이 도착하면 몸이 한결 가벼울 거야 / 春衣若到可身輕

생각 생각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로세 / 極知想念都無賴

하늘이 왜 내게다 칠정을 주셨을까 / 良苦皇天賦七情

74. 기분풀이[遣興] 


제각기 제가 옳다 아옹다옹 싸우는 꼴 / 蠻觸紛紛各一偏

객창에 누워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솟네 / 客窓深念淚汪然

산과 물은 고작해야 삼천 리가 한정인데 / 山河擁寒三千里

비바람 일으키며 이백 년을 싸우다니 / 風雨交爭二百年

길을 잃고 슬퍼했던 영웅호걸 몇 명이며 / 無限英雄悲失路

밭을 두고 다투는 형제 어느 때나 철이 들까 / 幾時兄弟耻爭田

저 은하수 퍼내려서 말끔히 씻거드면 / 若將萬斛銀潢洗

밝은 햇살 밝은 빛이 온누리에 비치련만 / 瑞日舒光照八埏


75.  장마비[苦雨歎]


괴롭고 괴롭게도 자꾸만 비가 내려 / 苦雨苦雨雨故來

태양도 뜨지 않고 구름도 안 걷히네 / 白日不出雲不開

보리는 싹이 돋고 밀은 쓰러지는데 / 大麥生芽小麥臥

돌배와 산앵도만 토실토실 살이 찐다 / 只肥鼠梨與雀梅

아이들은 따먹고 신 기운이 뼈에 배도 / 村童食之酸沁骨

쓰러진 보리들이야 누가 있어 알 것인가 / 麥臥不起誰知哉


76.  아가노래[兒哥詞] 지방 사람들이 자기 며느리를 가리켜 아가라고 불렀음


실오라기 몸에 하나 안 걸친 아가가 / 兒哥身不着一絲兒

맑은 연못 들락거리듯 짠 바다를 들락이네 / 出沒鹺海如淸池

꽁무니 들고 머리 처박고 곧장 물로 들어가서 / 尻高首下驀入水

오리처럼 자연스럽게 잔물결을 타고 가네 / 花鴨依然戲漣漪

소용돌이 무늬도 흔적 없고 사람도 안 보이고 / 洄文徐合人不見

박 한 통만 두둥실 수면에 떴더니만 / 一壺汎汎行水面

홀연히 물쥐같이 머리통을 내밀고서 / 忽擧頭出如水鼠

휘파람 한 번 부니 몸이 따라 솟구치데 / 劃然一嘯身隨轉 물쥐[水鼠]는 《운선잡지(雲仙雜志)》에 나와 있음.

손바닥같이 큰 아홉 구멍짜리 전복은 / 矸螺九孔大如掌

귀한 양반 부엌에서 안줏감으로 쓰이는데 / 貴人廚下充殽膳

때로는 바위 틈에 방휼처럼 붙어 있어 / 有時蚌鷸粘石齒

솜씨꾼도 그때는 죽고야 만다오 / 能者於斯亦抵死

아가가 죽는 거야 말할 것은 없지마는 / 嗚呼兒哥之死何足言

벼슬길의 열객들도 모두가 보자기라네 / 名途熱客皆泅水



[주D-001]방휼(蚌鷸) : 대합조개와 물총새. 전하여 각기 자신의 이해에 집착하여 서로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을 이름. 《戰國策 燕策》


77.  해랑행(海狼行) 해랑을 방언으로는 솔피(率皮)라고 함


솔피란 놈 이리 몸통에 수달의 가죽으로 / 海狼狼身而獺皮

간 곳마다 열놈 백놈 떼지어 다니면서 / 行處十百群相隨

물속 동작 날쌔기가 나는 듯 빠르기에 / 水中打圍捷如飛

갑자기 덮쳐오면 고기들도 모른다네 / 欻忽揜襲漁不知

고래란 놈 한 입에다 고기 천 석 삼키기에 / 長鯨一吸魚千石

고래 한 번 지나가면 고기가 종자 없어 / 長鯨一過魚無跡

고기 차지 못한 솔피 고래를 원망하고 / 狼不逢魚恨長鯨

고래를 죽이려고 온갖 꾀를 다 짜내어 / 擬殺長鯨發謀策

한 떼는 고래 머리 들이받고 / 一群衝鯨首

한 떼는 고래 뒤를 에워싸고 / 一群繞鯨後

한 떼는 고래 왼쪽을 맡고 / 一群伺鯨左

한 떼는 고래 바른편 맡고 / 一群犯鯨右

한 떼는 물에 잠겨 고래 배를 올려치고 / 一群沈水仰鯨腹

한 떼는 뛰어올라 고래 등에 올라타서 / 一群騰躍令鯨負

상하사방 일제히 고함을 지르고는 / 上下四方齊發號

살갗 째고 속살 씹고 어찌나 잔인했던지 / 抓膚肌齧何殘暴

우레같은 소리치며 입으로는 물을 뿜어 / 鯨吼如雷口噴水

바다가 들끓고 청천에 무지개러니 / 海波鼎沸晴虹起

무지개도 사라지고 파도 점점 잔잔하니 / 虹光漸微波漸平

아아! 불쌍한 고래가 죽고 만 게로구나 / 嗚呼哀哉鯨已死

혼자서는 뭇 힘을 당해낼 수 없는 것 / 獨夫不遑敵衆力

약빠른 조무래기들 큰 짐을 해치웠네 / 小黠乃能殲巨慝

너희들아 그렇게까지 혈전을 왜 했느냐 / 汝輩血戰胡至此

원래는 기껏해야 먹이 싸움 아니더냐 / 本意不過爭飮食

가도 없고 끝도 없는 그 넓은 바다에서 / 瀛海漭洋浩無岸

너희들 지느러미 흔들고 꼬리 치면서 서로 편히들 살지 못하느냐 / 汝輩何不揚鬐掉尾相休息



78. 장난삼아 그려본 소계도[戲作苕溪圖]


소자첨은 남해에서 귀양살이하면서 / 子瞻謫南海

아미도 때문에 병이 나았기에 / 愈疾峨嵋圖

나도 지금 소내를 그려서 보고픈데 / 我今欲畫苕溪看

세상에 화공 없으니 그 뉘에게 부탁하랴 / 世無畫工將誰摸

시험삼아 수묵으로 초벌 그림 그려보니 / 試點水墨作粉本

수묵 자국 낭자하여 먹탕이 되고 말아 / 墨痕狼藉如鴉塗

늘 갈아서 그렸더니 손은 점점 익숙해도 / 粉本屢更手漸熟

산 모양과 물빛이 그래도 흐릿하데 / 山形水色猶模糊

그것을 당돌하게 비단에다 옮겨 그려 / 唐突移描上綃面

객당의 서북 쪽에다 걸어두었더니 / 掛之客堂西北隅

푸른 산줄기 휘감긴 곳에 철마가 서 있고 / 翠麓縈廻立鐵馬

산 위에 철마(鐵馬)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거기에다 제를 지내기 때문에 그곳을 일러 마현(馬峴)이라고 함.

깎아지른 기암에서 금부가 날아가며 동편에 쌍부암(雙鳧巖)이 있음. / 奇巖矗削飛金鳧

남자주 가에는 방초가 푸르르고 / 藍子洲邊芳草綠

석호정 북쪽에는 맑은 모래 깔렸으며 / 石湖亭北明沙鋪

저 돛은 필탄을 지나는 배 분명하고 / 風帆遙識筆灘過

나룻배는 귀음을 가면서 부르는 듯 / 津艓似趁龜陰呼

검산은 절반이나 구름 속에 들어 있고 / 黔山半入碧雲杳

백병봉은 저멀리 사양을 지고 섰으며 / 白屛逈立斜陽孤

하늘 가에 높다랗게 보이는 절과 함께 / 天畔岧嶢見僧院

물 모이는 곳 지세가 잘도나 어울리네 / 水鍾地勢尤相符

백병(白屛)은 양근(楊根)에 있는데 귀음(龜陰) 등 여러 봉우리와 함께 십여 리나 연이어 있음.

소나무 노송나무 덮고 있는 것 우리 정자이고 망하정(望荷亭)임. / 松檜蔭門吾亭也

뜰에 가득 배꽃 핀 곳 저건 우리 집이지 / 梨花滿庭吾廬乎

우리 집이 저기 있어도 갈 수가 없어 / 吾廬在彼不得往

날로 하여 저걸 보고 서성대게 만드네그려 / 使我對此空踟躕



[주D-001]소자첨은……나았기에 : 송(宋)의 소식(蘇軾)이 호주(湖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 그곳 하남성 겹현(郟縣)에 있는 아미산(峨眉山)이 자기 고향 촉(蜀)에 있는 아미산과 모양이 닮았다 하여, 작은 아미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아미산을 그리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함. 그 산 위에 삼소사(三蘇祠)가 있음.





79. 전원(田園) 


전원에서 함께 살자 마음을 굳혔더니 / 田園偕隱結心期

생각잖게 인간에는 이별이 있네그려 / 不意人生有別離

봄이 가니 부질없이 송엽주가 생각나는데 / 春去空懷松葉酒

달 밝은 때 목란사를 듣는 이 뉘라던가 / 月明誰聽木蘭詞

외따론 꾀꼬리 나무에 앉아 기다리는 게 벗이겠지 / 孤鶯坐樹應須友

제비 쌍쌍 집을 지어 제 새끼 잘 기르고 / 雙燕營巢好養兒

쓸데없는 수심으로 백발을 재촉 말자 / 莫把閒愁催白髮

수시로 서찰 써서 그리움을 달래야지 / 時將手札慰相思



[주D-001]목란사 : 옛 악부(樂府) 이름. 목란(木蘭)이라는 여인이 늙은 아버지 대신 남장(男裝)을 하고 그 아버지 이름으로 12년을 종군(從軍)한 사실을 기록한 내용의 가사임. 《古樂府 木蘭辭》




80. 살짝 취함[薄醉]


얼근하여 무더운 장기는 모르겠으나 / 薄醉排炎瘴

바람 잘 닿는 수정이 그리워 / 長風憶水亭

호방한 성품 매 수리가 가엾고 / 性豪憐鷙鳥

매여있는 몸 부평이 부러웁네 / 身繫羨浮萍

병들었기에 장기 학설을 익히고 / 病習張機論

배가 고파 육우의 경은 버렸었다 / 飢抛陸羽經

고향 생각 그리고 나라 걱정에 / 鄕愁與國計

아침 저녁 바다만 바라본다네 / 朝暮視滄溟



[주D-001]장기 학설 : 의서(醫書)를 이름. 동한(東漢) 영제(靈帝) 때의 장기(張機)는 자가 중경(仲景)이었는데, 자기 일가들이 당시 상한병(傷寒病)으로 많이 죽어갔기 때문에 의학을 전공하여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세상에 내놓았음. 《四庫提要 卷一百三》


출처 : 한국 네티즌본부
글쓴이 : 송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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