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귀은시(歸隱詩)

감효전(甘曉典) 2012. 1. 12. 21:02

※ 청대(淸代) 화가 탕이분(湯貽汾)의 <귀은도(歸隱圖)> 수권(手卷) (1846年作)

 

十年蹤跡走紅塵  回首靑山入夢頻
紫陌縱榮爭及睡  朱門雖貴不如貧
愁聞劍戟扶危主  悶聽笙歌聒醉人
攜取舊書歸舊隱  野花啼鳥一般春
(십년종적주홍진 회수청산입몽빈
 자맥종영쟁급수 주문수귀불여빈
 수문검극부위주 민청생가괄취인
 휴취구서귀구은 야화제조일반춘)


십년의 발자취 홍진 속에 빠져 있는데 
청산을 돌아보며 자주 돌아가는 꿈 꾸었네
도성의 번잡한 길 영화롭지만 어찌 졸음에 미치겠으며
화려한 저택 비록 귀하지만 가난만하리
위태한 임금을 창칼이 보호한다는 말 걱정스레 들으니
생황소리 노랫소리, 술취한 사람의 떠들썩한 소리 듣기조차 민망하네
옛날 서책들 챙겨서 옛 은거지로 돌아오니
들꽃 피고 새우는 봄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구나


☞ 희이(希夷) 진단(陳摶), <귀은시(歸隱詩)>

 

※ 청말근대 화가 왕진(王震)의 <귀은도(歸隱圖)> (1923年作)

 

※ 紫陌: 천자가 있는 도성의 거리/ 縱: 비록(雖)/朱門: 지위(地位)가 높은 벼슬아치의 집, 고관대작의 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聒: 떠들썩한, 시끄러운

 

※ 문헌에 따라 紫陌이 紫綬로, 爭及이 怎及으로 나오기도 한다. 紫綬는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리가 차는 호패의 자줏빛 술실이나 술띠. 곧 높은 관직을 의미한다.

 

※ 그림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그림에는 아래와 같은 제시(題詩)가 쓰여져 있다.  

 

希夷何事忽鞍徙  非醉非眠別有喜
夾馬徵祥眞主出  從今天下可無悝 
(희이하사홀안사 비취비면별유희
 협마징상진주출 종금천하가무리)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요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천하에는 근심이 없으리라

 

※ 夾馬는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태어난 낙양(洛陽)의 夾馬營(협마영)을 말한다. 조광윤의 어머니 두부인(杜夫人)이 이곳에서 그를 낳았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호(號)를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 하는 진단(陳摶)이다. 희이(希夷)란 송 태조가 내린 호로 希는 視而不見(시이불견),  夷는 聽而不聞(청이불문)에서 유래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여도 보지 못하고, 들려도 듣지 못한다)는 ≪대학(大學)≫(傳七章)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진단은 당(唐)나라 말에서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난세 중에 여러 왕조가 번갈아 일어서고 새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여러 날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 그것은 저들이 참된 군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흰 나귀를 타고 개봉(開封: 송나라의 수도)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는 사람으로부터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우고 태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그를 황제의 재목으로 생각해왔던 그는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좋아하다 그만 안장에서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서도 "천하는 이제 안정되리라"고 외쳤다 한다.


이것이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우지 못했던 까닭이며 과연 태조는 진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청대(淸代) 화가 당대(唐岱)·진매(陳枚)의 <송태조출순도권(宋太祖出巡圖卷)> 수권(手卷)

 

조광윤은 이른바 '진교(陳橋)의 변란(變亂)'을 통해 송(宋)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른 사람이다. 서기 960년 요(遼)와 오대(五代)의 북한(北漢)이 연합하여 후주(後周)를 공격하자 조정은 전전도점검(殿前都點檢) 조광윤을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출전 도중 개봉(開封) 근교 진교(陳橋)에서 조광윤이 잠깐 잠든 사이 군사들이 그를 천자로 옹립하고 황포(黃袍)를 입힌 뒤 개봉으로 회군했다. 그리고 나이 어린 공제(恭帝)로부터 제위를 선양(禪讓) 받아 송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니까 조광윤은 얼떨결에 황제가 된 사람이다.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 해야할지, 기막힌 운명에 휩쓸린 사람이라 해야 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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