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대(淸代) 화가 심수(沈燧)의 <연파조수도(煙波釣叟圖)>
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
靑箬笠 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
(서새산전백로비 도화유수궐어비
청약립 녹사의 사풍세우불수귀)
서새산(西塞山) 앞에는 백로가 날고
복사꽃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찌네
푸른 댓잎 삿갓에 초록 도롱이 두르고
비끼는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줄 모르네
☞ 장지화(張志和), <어가자(漁歌子)>
※ <어가자(漁歌子)>는 일명 <어부사(漁父詞)>라고도 하는 당대 교방곡(敎坊曲)의 하나. ※ 鱖魚(궐어/궤어): 쏘가리
※ 청대(淸代) 화가 비이군(費以群)의 <桃花流水 魚肥> 선편(扇片)
※ 청말근대 화가 마기주(馬企周)의 <桃花鱖魚> 성선(成扇>
※ 근현대 중국서화가 소한(蕭嫻)의 <예서(隸書) 어가자(漁歌子)>
※ 장지화(張志和)는 당(唐)나라 때 은사(隱士)로 초명(初名)은 장구령(張龜齡), '지화'는 나중에 숙종(肅宗)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그는 신선술을 익혀 술을 서말(三斗)이나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눈위에 누워서도 추위를 몰랐다 한다.
그는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문집≪畵旨(화지)≫에서 "옛 사람들은 일품(逸品)을 신품(神品)보다 위인 맨 꼭대기에 놓았으니 역대로 오직 장지화(張志和)만이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昔人以逸品置神品至上,歷代唯張志和可無愧色)라고 했다.
그는 강호(江湖)에 은거하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 또는 현진자(玄眞子)라 자호(自號)했다. 늘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미끼를 달지 않았으니 그 뜻이 물고기에 있지 않았다(每垂釣 不設餌 志不在魚也). 사람들은 그를 연파조수(煙波釣叟)라 불렀다.
※ 청대(淸代) 화가 진숭광(陳崇光)의 <연파조도(烟波釣徒)> 성선(成扇)
그는 태호(太湖)와 오흥(吳興)의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를 오가며 고기잡이하며 은거했다. 그가 이곳에 이르러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와 삽계 사이를 오가기를 바란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之間)고 했다는 고사(故事)는 유명하다.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는 절강(浙江)성 오흥현 남쪽에 있는 강이다.
임포(林逋)가 서호(西湖) 고산(孤山)에서 매화(梅花)를 아내로, 학(鶴)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은거했다면, 장지화(張志和)가 나무꾼을 계집종으로 삼고, 어부를 사내종으로 삼아 은둔생활을 했다. 이로부터 초비어노(樵婢漁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 청말근대 중국화가 유명(兪明)의 <연파수조(烟波垂釣)>
- 훗날 송나라 때 대문장가 소식(蘇軾)은 "장지화의 이 사(詞)는 매우 곱고 아름답지만 애석하게도 그 곡보가 전하지 않는다"며 몇 구절을 덧붙여 <완계사(浣溪詞)> 한 수를 지었다. 또 소식의 <완계사(浣溪詞)>를 본 그의 문인 황정견(黃庭堅)도 소식의 <완계사(浣溪詞)>를 고쳐 다시 <완계사> 한 수를 쓰기도 했다.
강호(江湖)는 강하호박(江河湖泊) 또는 삼강오호(三江五湖)를 줄인 말로 복잡한 도회나 세속과 멀리 떨어진 자연을 의미하며 '은사(隱士)의 거처(所居之處)'를 가리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천하(天下)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기도 했다.
일례로, 강호라는 말을 불교, 특히 선불교(禪佛敎)의 발전과 결부짓는 설이 있다. 선불교는 남북조시대 달마의 출현과 함께 배태되어, 당나라 때 크게 꽃을 피웠다. 선불교는 걸출한 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선풍을 드날리면서 크게 융성했다.
※ 명대(明代) 화가 조린(趙麟)의 <어부도(漁父圖)>. 장지화(張志和)의 삶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 근현대 중국화가 오청하(吳靑霞)의 <도화궐어도(桃花鱖魚圖)>
※ 청말근대 화가 정보서(丁寶書)의 <도화궐어도(桃花鱖魚圖)> (1931年作)
※ 청대(淸代) 화가 호철매(胡鐵梅)의 <桃花流水鱖魚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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