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약립사의(?笠蓑衣)

감효전(甘曉典) 2012. 1. 12. 21:01

※ 청대(淸代) 화가 심수(沈燧)의 <연파조수도(煙波釣叟圖)>

 

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
靑箬笠    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
(서새산전백로비 도화유수궐어비
 청약립   녹사의 사풍세우불수귀)


서새산(西塞山) 앞에는 백로가 날고
복사꽃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찌네
푸른 댓잎 삿갓에 초록 도롱이 두르고
비끼는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줄 모르네


☞ 장지화(張志和), <어가자(漁歌子)>

※ <어가자(漁歌子)>는 일명 <어부사(漁父詞)>라고도 하는 당대 교방곡(敎坊曲)의 하나. ※ 鱖魚(궐어/궤어): 쏘가리 

 

※ 청대(淸代) 화가 비이군(費以群)의 <桃花流水 魚肥> 선편(扇片)
 

※ 청말근대 화가 마기주(馬企周)의 <桃花魚> 성선(成扇>  

 

※ 근현대 중국서화가 소한(蕭嫻)의 <예서(隸書) 어가자(漁歌子)>

 

※ 장지화(張志和)는 당(唐)나라 때 은사(隱士)로 초명(初名)은 장구령(張龜齡), '지화'는 나중에 숙종(肅宗)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그는 신선술을 익혀 술을 서말(三斗)이나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눈위에 누워서도 추위를 몰랐다 한다.

 

그는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문집≪畵旨(화지)≫에서 "옛 사람들은 일품(逸品)을 신품(神品)보다 위인 맨 꼭대기에 놓았으니 역대로 오직 장지화(張志和)만이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昔人以逸品置神品至上,歷代唯張志和可無愧色)라고 했다.


그는 강호(江湖)에 은거하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 또는 현진자(玄眞子)라 자호(自號)했다.  늘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미끼를 달지 않았으니 그 뜻이 물고기에 있지 않았다(每垂釣 不設餌 志不在魚也). 사람들은 그를 연파조수(煙波釣叟)라 불렀다.  

 

※ 청대(淸代) 화가 진숭광(陳崇光)의 <연파조도(烟波釣徒)> 성선(成扇)

 

그는 태호(太湖)와 오흥(吳興)의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를 오가며 고기잡이하며 은거했다. 그가 이곳에 이르러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와 삽계 사이를 오가기를 바란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之間)고 했다는 고사(故事)는 유명하다.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는 절강(浙江)성 오흥현 남쪽에 있는 강이다.

 

임포(林逋)가 서호(西湖) 고산(孤山)에서 매화(梅花)를 아내로, 학(鶴)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은거했다면, 장지화(張志和)가 나무꾼을 계집종으로 삼고, 어부를 사내종으로 삼아 은둔생활을 했다. 이로부터 초비어노(樵婢漁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 청말근대 중국화가 유명(兪明)의 <연파수조(烟波垂釣)>  

 

- 훗날 송나라 때 대문장가 소식(蘇軾)은 "장지화의 이 사(詞)는 매우 곱고 아름답지만 애석하게도 그 곡보가 전하지 않는다"며 몇 구절을 덧붙여 <완계사(浣溪詞)> 한 수를 지었다. 또 소식의 <완계사(浣溪詞)>를 본 그의 문인 황정견(黃庭堅)도 소식의 <완계사(浣溪詞)>를 고쳐 다시 <완계사> 한 수를 쓰기도 했다.


- 연파(煙波)는 아스라이 연기(煙氣)나 안개가 낀 수면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연파조도(煙波釣徒)란 연파에 낚싯대나 드리우는 무리, 곧 강호에 숨어사는 은일고사(隱逸高士)라는 뜻이다.

 

강호(江湖)는 강하호박(江河湖泊) 또는 삼강오호(三江五湖)를 줄인 말로 복잡한 도회나 세속과 멀리 떨어진 자연을 의미하며 '은사(隱士)의 거처(所居之處)'를 가리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천하(天下)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기도 했다.

 

일례로, 강호라는 말을 불교, 특히 선불교(禪佛敎)의 발전과 결부짓는 설이 있다. 선불교는 남북조시대 달마의 출현과 함께 배태되어, 당나라 때 크게 꽃을 피웠다. 선불교는 걸출한 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선풍을 드날리면서 크게 융성했다.


그 가운데서도 강서(江西)의 마조도일(馬祖道一)과 호남(湖南)의 석두희천(石頭希遷)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다. 불교에 관심 있거나 공부하려는 이들은 다투어 두 선사의 회상으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강서와 호남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강호(江湖)라는 말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 명대(明代) 화가 조린(趙麟)의 <어부도(漁父圖)>. 장지화(張志和)의 삶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오늘날 남양주시 와부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 능내리는 달리 소내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초천(苕川)이라 쓴다. 


그는 평소 고향으로 돌아가 산수간에 어부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키웠다. 이를테면 배 하나를 사서 일종의 수상가옥인 부가범택(浮家汎宅)으로 삼고 수종산(현재 운길산)과 소내를 오가면서 고기잡고 낚시질하며 유유자적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장지화(張志和)의 풍모를 듣고 흠모하여 '초상연파조수지가(苕上煙波釣叟之家)'라고 쓰고, 장인을 시켜 이것을 나무에 새겨서 방(榜)을 만들어 간직한 지 몇 년이 되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오청하(吳靑霞)의 <도화궐어도(桃花鱖魚圖)>

 

※ 청말근대 화가 정보서(丁寶書)의 <도화궐어도(桃花鱖魚圖)> (1931年作)

 

※ 청대(淸代) 화가 호철매(胡鐵梅)의 <桃花流水魚肥>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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