琉璃鍾 琥珀濃
小槽酒滴眞珠紅
烹龍炮鳳玉脂泣
羅屛繡幕圍香風
吹龍笛 擊鼉鼓
皓齒歌
細腰舞
況是靑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君終日酩酊醉
酒不到劉伶墳上土
(유리종 호박농
소조주적진주홍
팽룡포봉옥지읍
나병수막위향풍
취룡적
격타고
호치가
세요무
황시청춘일장모
도화난락여홍우
군종일명정취
주부도유령분상토)
유리잔에 호박 빛 진한 술
작은 술통에는 술 방울 진주처럼 붉구나
용을 삶고 봉황 구우니, 옥
같은 기름 눈물 흘리고
비단 병풍 수놓은 장막에는 향기로운 바람 우리를 둘러싼다
용무늬 새겨진 피리를 불고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니
하얀 이의 미인이 노래 부르고, 가는 허리 미녀가 춤을 추네
어느덧 청춘도 저물어가고
복사꽃 어지러이 붉은 비처럼
떨어지누나
그대여 종일토록 흠뻑 취하여 보세나
술이 유령(劉伶)의 무덤까지 이르지는 못하리니
☞ 이하(李賀), <장진주(將進酒)>
※ 명(明)나라 화가 서분(徐賁)의
<봉하취음도축(峰下醉吟圖軸)>
※ 당대(唐代) 시인 이하(李賀)는 시귀(詩鬼)로 통했을 정도로 뛰어난 시재(詩才)를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불우(不遇)의 연속이었다. 특히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다.
그의 부친은 이름이 진숙(晉肅)이었다. 사람들은 진(晉)과 진(進)의 발음이 같은 것을 구실로 그의 출사를 막았다. 즉 "부친의 이름이 진숙이니 아들은 진사에 급제할 수 없다"(父名晉肅 子不得擧進士)는 것이다.
이에 한유(韓愈)가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한유는 <휘변(諱辨)>이라는 글에서 "만약 부친의 이름이 인(仁)이면 아들은 사람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若父名仁 子不得爲人乎)라며 이하를 변론했다.
하지만 이도 별무소용(別無所用). 이하(李賀)는 과거에 응시조차 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고향에 정착해 세월을 보내다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실로 가인박명(佳人薄命)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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