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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랑 위에서

감효전(甘曉典) 2012. 1. 11. 11:49


고랑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필(畢)하고 쉬이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太陽)은 내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恩惠)여, 살아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恩惠)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세계(世界)의 끝은 어디? 자애(慈愛)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서,
하늘과 태양(太陽)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롭은 환희(歡喜)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다시 한 번(番) 활기(活氣)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란히 가즈란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어, 오오 생명(生命)의 향상(向上)이여.

일리우는 : 일렁거리는.
가즈란히 : [부] 가지런히. 나란히. 평북방언.
소월시는 시간적 배경이 주로 저녁이나 밤이다. 또한 달, 비, 눈물(울다), 무덤 등 하강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건강한 노동과 휴식, 생명의 강인한 의지가 생동하고 있다. 의지와 소망이 명시된 밝음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의 화자는 '우리'(8행)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밝음의 세계는 이미 실현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다. 3연에서 화자는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9행) 라고 말한다. 바로 자애의 하늘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진술이다. '우리'들은 폐허가 된 빼앗긴 땅에서, 강인하고 건강한 노동을 통해 생존과 공존의 뿌리를 내려 정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좌절과 고통이 사방을 압박해 오던 1920년대의 상황에서 '우리'라는 집단이 가꾸고 개척해 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월시가 도달했던 최고 높이의 '정치적 낭만성'이다.

 

김 소월(본명 :廷湜, 필명/아호: 素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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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 네티즌본부
글쓴이 : 최 신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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