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粉) 얼굴
불빛에 떠오르는 새뽀얀 얼굴, 그 얼굴이 보내는 호젓한 냄새, 오고가는 입술의 주고받는 잔(盞), 가느스름한 손길은 아른대여라. 검으스러하면서도 붉으스러한 어렴풋하면서도 다시 분명(分明)한 줄 그늘 위에 그대의 목소리, 달빛이 수풀 위를 떠 흐르는가. 그대하고 나하고 또는 그 계집 밤에 노는 세 사람, 밤의 세 사람, 다시금 술잔 위의 긴 봄밤은 소리도 없이 창(窓) 밖으로 새여 빠져라
호젓한 : [형] 호젓하다. 고요하고 쓸쓸하다. 아른대여라 : [동] 아른거리다.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다. 줄 그늘 위에 그대의 목소리 : 가야금 등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표현한 대목이다. |
1연에 제시된 술집의 분위기는 2연에서 환상적 분위기로 바뀐다. 술기운 때문에 사물의 형체가 아른대는데, 달빛(많은 소월시에서 달빛은 환상적 분위기의 매개자였다)마저 '수풀 위를 떠 흐르'(8행)고 있다. 이럴 때, 모든 사물의 견고한 외양과 속성은 해체되고 허물어진다. 술집 여자인 '분 얼굴'도 그 외양과 속성이 바뀌면서 '그대'(7행)로 다시 태어난다. 즉 가야금을 타면서 부르는 '분 얼굴'의 노래가, 화자에는 '그대의 목소리'(7행)로 들리는 것이다.
3연에 등장하는 세사람, '그대하고 나하고 또는 그 계집'(9행)의 정체를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화자고, '그대'는 '나'의 연인이며, '그 계집'은 술집 여자인 '분 얼굴'이다. '그 계집'과의 만남이, 술기운과 달빛이 만들어내는 환상적 분위기 때문에, '그대'와의 만남으로 전화된다. 결국 '그대'와 '그 계집'은 동일인이다.
임을 만나는 시간을 짧고,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 연에서는 의인법을 통해 시간 경과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님과 함께 하던 환상의 시간이 화자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감을 '창(窓) 밖으로 새여 빠져라'(12행)와 같은 감각적 이미지로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
김 소월(본명 :廷湜, 필명/아호: 素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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