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놀랍다. 알고보니 약산 김원봉 장군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83)이 우리 큰고모(83) 감몽운과 동갑일 뿐 아니라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급생.
같은 밀양사람으로 부산으로 유학해 경남고녀를 나온 것도 놀랍다. 큰고모도 독립군들에게 편지 심부름한 건으로 보도연맹 명부에 올랐다가 당시 미군정포고령위반으로 5년 구형,
마산형무소에 복역중이던 할아버지가 내 딸은 그저 아버지인 나의 심부름을 한 것밖에 없으니 명부에서 빼라고 하여 간신히 학살을 면했다.
큰고모도 삼문동에 사셨고 나도 삼문동에 살았었다.
만나뵈오면 여쭤봐야겠다.
김원봉 장군집과 우리집의 운명이 너무나 흡사하다.
내가 아홉살경부터 줄곧 어른들로부터 이런 이야길 들었으며 그 때마다 어른들은 가만히 내게 절대 어디가서 이런 말하면 안된다며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으며 우리집에는 이 말 꺼내는 자체가 금기였었다.
늘 어른들은 이런 현대사를 이야기해주시며 너의 할아버지는 아주 훌륭한 분이며 무슨 잘못이 있어 그리되신 것이 아니라 애국을 한다고 애썼으나 세상을 잘못 만나 역적이 되어 김원봉 장군집이나 우리집이나 망가가 되었다.
너희는 왕대나무니라. 훌륭한 조상을 두었고 피를 물려받았고 자긍심을 가져라,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새 세상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 할아버지를 알아주게 될 것이며 너희 할아버지가 만들려고 했던 좋은 세상이 오게될 것이다.
용기백배하거라.하셨다.
나는 11살때 결심하기를 공부 열심히 해서 반드시 와세다가서 할아버지의 후배가 되고 할아버지의 기록을 샅샅이 다 찾아 글을 쓰고 와세다에서 강의할거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나는 학습첫날 일본 히라가나 가다가나를 단숨에 그 자리에서 다 외워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고 천재란 소릴 들었었다.
(할아버지는 5개국어 능통 신동이셨는데 나는 그냥 IQ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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