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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섣달 그믐날 밤에 치는 제야(除夜)의 종(鐘)

감효전(甘曉典) 2011. 12. 29. 12:54


 

 

제야의 종(除夜)의 종(鐘)”은 왜 33번을 칠까요?

 

 

제야(除夜)란

제석(除夕), 세제(歲除)과 같은 말로 섣달 그믐날 밤을 가리킨다. “제(除)”는 “덜다, 없애다. 버리다. 숙청하다(肅淸--), 가다, 지나가다. 청소하다(淸掃--)... ”의 뜻이 있으니, 묵은 해의 나쁜 것을 다 털어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새해에는 다시 새로운 각오와 희망으로 맞이한다는 말이 아닌가?

 

 

해마다 12월31일이 되면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의 타종을 들으며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종각을 간다. 이 때문에 종각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제야의 종소리는 어째서 33번을 울려 퍼질까?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치게 된 유래는 조선시대 초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양의 4대문(崇禮門(南), 興仁之門(東), 弘智門(숙정문,北), 敦義門(西))과 4소문(혜화문(東小門), 소덕문(西小門), 광희문(南小門), 창의문(北小門) 을 열고 닫을 때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기 위해 종을 쳤다. 집집마다 시계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종각에는 그러한 실용적 목적을 위한 종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오전 4시에 여덟 개의 문이 열리면서 새벽종을 치고 오후 7시에 문을 닫으면서 저녁 종을 쳤다. 저녁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고 하는데 이때 33번을 쳤으며

저녁에 치는 종을 인정(人定)이라 하며 28번을 쳤다.

 

 

이것을 불교의 우주관인 "33천"에 기인한 것,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우주의 일월성신 28수(宿)에게 고(告)하여, 밤 동안의 안식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게 종을 치던 전통을 이어받아 1953년부터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제야의 종을 치기 시작했다.

 

원래 재야의 종은 불교의 행사로 각 절마다 음력 12월말일 자정에 108번의 종을 쳤지만

보신각종은 33번 친다.(독립선언문 33인을 상징한다는 것은 그릇됨)

 

 

그의 의미는 조선시대 새벽에 치던 "파루"와 같다.

보신각이라는 이름은 1895년 고종이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하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그 전에는 그냥 종각이었다.

지금의 종은 조선시대 때부터 매달려 있던 종이 아니다.1985년 시민의 성금으로 새로 만든 종이다. '에밀레종' 의 모조품 이라 한다.

원래 있던 종은 파손되어 박물관으로 보내졌다.

 

 

*파루罷漏: 조선시대 때, 오경五更 삼 점에 큰 쇠북을 33번 치던 일(서울에서 인정人定으로 야간의 통행을 금하다가 새벽에 북을 쳐서 야간의 통행을 해제했음)

 

*33天:도리천(忉利天, Trāyastriṃśa)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欲天) 중의 두번째 하늘로,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산봉우리에 천인(天人)들이 사는 각각 8개씩의 성(天城)이 있으며, 중앙에는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어 33천이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죽은 뒤 다시 태어난 곳이 바로 도리천이다. 수명은 1000세이고, 하루가 인간세상의 100년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했다.

 

 

 

묵은 해를 보내는 종소리, 새해를 맞이하는 종소리는 귀로 듣기보다는 마음으로 듣는다.

 

제야에 울리는 33성(聲)의 종소리는  울릴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람은 일생중에 생일을 네번 맞는다고 한다.

 

자기를 성찰하고 번뇌에서 해탈시켜주는 순간이다.

 

제야의 범종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때묻은 마음을 씻어보자.

 

 

 

 

출처 : 아차반
글쓴이 : 나물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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