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그러고 그 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 몇 가지 설이 있다.
1. "섧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이 '달도일(??日)'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본다.
2.다음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歲時記)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3.'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 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생각되어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어졌다는 말이다.
나이를 말하는 즉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연세설(年歲說)도 있다.
한국말을 유래시킨 우랄 알타이어계(語系) 중에서 산스크리트어(語) 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솟는다'는 뜻과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두 설날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나이를 댈 때 몇 살... 하는 '살'에서 비롯된 연세설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를 '살(산스크리트어) · 잘(퉁구스어) · 질(몽고어)'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正初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 대· 수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됐음직하다.
4. 한 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까치설날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설날' 노래가 있기 전에는 까치설이 없었다고 합니다.옛날에는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했습니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것의 근거는 음력으로 22일 조금을 남서 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합니다. 이렇게 아치조금이 까치조금으로 바뀌었듯이, 아치설이 까치설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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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신일(愼日)이라 함은 한자 뜻 그대로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날이란 말이다.
설날을 다른 말로 원일(元日), 세수(歲首), 연두(年頭),연시(年始)라고 하는 말도 한자 그대로 모두 한 해의 첫날이란 말이다.
따라서 설이란 묵은 해를 떨쳐 버리고 맞는 날로 이 날은 삼가하고 조심해야 할 낯선 날이다. 그래서 '낯설다'에서 '설'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근신한다는 뜻인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다.
설을 맞으면 한 살을 먹는다. 설과 나이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언어학에 모음교체(母音交替,ablaut)란 말이 있다. 상반된 두 모음이 서로 바뀌어 의미 분화를 주는 낱말들이 있다.
'갓'이 '겉', '맛'이 '멋'으로 모음 'ㅏ'가 'ㅓ'로 바뀌어 뜻을 분화하는 것처럼 한 살 더 먹는 '살'에서 '설'이 유래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영덕 지방 사람들은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이 서러웠던가 '섧다'에서 설이 나왔다고 하는 옛 기록도 보인다.
혹자는 신정, 구정으로 나누는데 설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제 강점기 우리들의 설을 비하하기 위해서 우리 민족의 설을 구정(舊正)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왜 1월 1일 설날은 길일(吉日)일까.
우리나라 명절로는 설, 대보름, 한식, 초파일, 단오, 유두, 백중, 추석 ,동지 등이 있었다. 이 명절은 보름마다 한번씩 있는 절기와 구별되는 날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오면서 설, 대보름, 추석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명절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서구의 바렌타이데이,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같은 새로운 날들이 명절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명절날을 음양(陰陽)으로 풀어보면 그래 그랬었구나 하고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숫자에서 홀수는 양(陽)이요, 짝수는 음(陰)이다.
홀수(3=1+2, 5=1+4,/3+2, 7= 1+6/2+5/ 9=1+8/2+7/3+4 등)인 양(陽)은 음양(陰陽)이 조화되는 숫자라 하여 좋아하였으나 짝수.(2=1+1 양양, 4=1+3/2+2, 6=1+5/2+4/3+3 등)는 어떤 경우에도 음양(陰陽)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옛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달의 홀수와 날의 홀수가 같은 날로 그날은 최고의 길일로 쳤다.
1월 1일이 설이고, 3월 3일이 삼짇날이요, 5월 5일이 단오, 7월 7일이 칠석, 9월 9일이 중양절이다.
설날에 왜 떡국을 먹는가.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은 정조(正朝) 차례와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날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이라고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민족이 광명사상의 백의민족임이 흰떡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떡국이 둥근 것도 태양이 둥글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세배는 어떻게 해야 옳은가
정월 초하룻날에 어른께 하는 첫인사로 세배를 하는데 정월 보름(15일)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절을 주고받은 다음에 서로 잘 되기를 빌어주는 덕담(德談)을 한다. 덕담은 축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진 것으로 단정하여 축하하여 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입시생에게 "00대학에 합격했다지?" 하는 식이다. 이런 세배는 경로사상이나 장유유서의 미풍양속으로 언어에서는 경어법을 발달시켰고, '절'을 중심으로 그것을 확인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이요 자랑인 것이다.
절은 어떻게 하는 것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을까?
몇 해 전이던가. 어느 높은 사람이 그 부모에게 절하고 받는 것이 TV에 방영된 일이 있는데 일반적 상식에 어긋나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공수하는 것이 잘못되었고 의자에 앉아 받는 부모의 자세가 잘못되어서다.
절하는 손이 고두배 하는 식이었다. 고두배란 두 손을 나란히 벌리고 하는 절로 두드릴 고(叩) 머리 두(頭) 신하가 왕에게 머리를 두드리며 간할 때 드리는 절이다.
공수(空手)란 두 손을 맞잡는 것을 말하는데 두 손의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서 편 다음 앞으로 모아 포갠다. 엄지손가락은 엇갈려 깍지를 끼고 식지(食指) 이하 네 손가락은 포갠다.
엄지손가락을 깍지를 끼는 까닭은 손등을 덮은 소매 사이로 두 엄지만 내놓아 맞은 편 소매 끝을 눌러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또 옛날에 벼슬아치들이 들고 다니던 홀(笏)을 쥐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라 한다.
어른에게 술을 따를 때 오른 팔소매를 왼손으로 받치는 것이 음식에 도포가 닿지 않도록 하는 것데서 시작된 것이다.
왼손을 가슴에 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주의 할 점은 평상(平常) 시와 흉사(凶事) 시의 오른 손 왼손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평상시는 남자는 왼손이 위고, 여자는 오른 손이 위다. 좌는 양(陽)이요, 우는 음(陰)이기 때문이다. 혼동이 되거든 남녀 각기 자기가 입은 옷의 윗도리의 단추나 옷고름의 위치와 손의 위치를 같이 하면 된다.
흉사 시에는 그 반대로 해야 한다. 흉사(凶事) 시란 사람이 죽은 순간부터 약 백 일간(졸곡 전까지)이다.
제례에는 절사(節祀)와 기제(忌祭)가 있는데 모두 조상을 기억하는 기념일이지 흉사일이 아닌데 이를 혼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때 또 유념할 일은 큰절을 드릴 때는 거안제미(擧案齊眉)란 말처럼 맞잡은 손을 눈높이까지 할 것이다. 마주 잡은 손 높이는 상대에 대한 존경의 격을 표시하는 것이다. 병자가 누워 있을 때는 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는 왜 두 번이나 네 번 절해야 할까? 산 사람은 양(陽)이니 홀수인 한 번을, 죽은 사람은 음(陰)이니까 짝수로 2번 절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큰일이 있을 때는 평시의 2배라 하여 3배 4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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