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李白憶舊游詩帖(宋ㆍ黃庭堅)
이는 황정견이 쓴 초서 지본이다.
<이백억구유시첩(李白憶舊游詩帖)>는 황정견 초서 대표작의 하나로 앞부분의 80자가 없고 서사한 연관(年款)이 없으며, 뒤에 원나라 장탁(張鐸)과 명나라 심주(沈周)의 발문이 있는 묵적이다.
황정견의 초서는 송나라 초서의 최고 성취를 대표하며, 초서에 있어서는 그가 평생 존경했던 소동파도 그만 못했다. 심주는 발문에서 “원우(元祐, 1086-1094) 연간에 소동파는 전목부(錢穆父)와 같이 황정견이 보범승사(寶梵僧舍)에서 초서를 쓰는 것을 보고 아주 감탄했다.”라고 했다. 만약 송나라의 행서가 소식과 미불이 대표한다면, 초서는 감히 황정견 혼자 영광을 독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송사』 본전에서도 황정견을 전적으로 칭찬하여 “초서를 잘 쓴다[善草書].”라고 했다.
황정견은 자신의 초서를 말하면서 “나는 초서를 30여년 배웠는데, 처음에 주월을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에 20년간 속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만년에 소순원(蘇舜元)과 소순흠(蘇舜欽)의 글씨를 보고 옛사람의 필의를 얻었다. 그 후에 장욱?회소?고한의 묵적을 얻어 필법의 묘한 경지를 터득했다[余學草書三十餘年, 初以周越爲師, 故二十年??俗氣不脫, 晩得蘇才翁子美書觀之, 乃得古人筆意. 其後得張長史?懷素?高閑墨跡, 乃窺筆法之妙].”라고 했다. 그가 사천성으로 폄적가면서 협곡을 지날 때 장년이 노를 젓는 것을 보았고, 또한 석양휴(石揚休)의 집에 소장한 <회소자서첩>을 보고 회소 필법의 삼매를 깨달아 속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황정견 만년에 쓴 것으로 광초의 풍격은 회소의 <자서첩>과 일맥상통하다. 얼른 보면, 종이 가득히 구름과 연기가 가득하고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며 먼지가 날리는 듯 완전히 풍요로운 자태가 질탕하고 기이하면서 표일한 풍격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법도가 매우 엄하고 하나의 필획도 가볍고 소홀하지 않았으니 이른바 “법도를 넘나들며 광괴한 곳도 필법에 맞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전의 장욱ㆍ회소와 다른 점이고, 또한 이후 축윤명과도 다르다. 성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말하면 미친 듯 방종하여 구속받지 않는 점이 적은 것 같고, 예술적 규율로 말하면 더욱 심미요구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그는 서예를 논하면서 “해서 필법은 쾌마가 진에 들어가려는 것 같고, 초서 필법은 좌우로 법도를 돌아보려고 해야 한다[楷法欲如快馬入陣, 草法欲左規右矩].”라고 했다. 이는 일종의 모순적 통일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이 작품의 특징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도와 자유의 통일로 이는 앞에서 이미 서술했다. 둘째,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통일로 전자는 언덕과 뫼가 높았다 낮았다 하면서 기이한 봉우리가 험함을 다투는 것 같고, 후자는 마치 구름이 산굴에서 나와 변화가 끝이 없는 것 같다. 셋째, 강함과 부드러움의 통일로 부드러운 곳은 강남의 버드나무가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다양한 자태를 나타내는 것 같고, 강한 곳은 길게 휘파람불며 달려 올라가 그칠 수 없는 것 같다. 넷째, 방종과 수렴의 통일로 방종한 필획은 마치 바람이 남긴 구름을 말아 일사천리로 내달리며 기운은 웅장하면서 함축적인 것 같고, 수렴한 필획은 또한 소심하게 이루어 주옥이 둥글고 윤택하며 필치는 짧고 필의는 긴 것 같다. 다섯째, 시의 내용과 서예의 기운과의 통일로 마치 하나의 낭만주의 교향곡처럼 정말 천변만화를 다하면서 글씨가 모두 사람의 뜻과 같다.
황정견의 초서는 그의 서예 조예에서 근원했고, 특히 그의 학양과 흉회에서 나온바가 크다. 『장자ㆍ각의(莊子ㆍ刻意)』를 보면, “뜻을 높이지 않고도 고상해지고, 어짊과 의로움이 없이도 몸이 닦여지고, 공로와 명성이 없이도 다스려지고,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고도 한가로워지고, 기운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오래 사는 사람은, 잊지 않는 것도 없고 갖추고 있지 않은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담담히 마음은 끝 이 없지만 모든 미덕은 그에게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도이며 성인의 덕이다[若夫不刻意而高, 無仁義而修, 無功名而治, 無江海而閒, 不導引而壽, 無不忘也, 無不有也. 澹然無極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라고 했다. 이른바 법이 없으면서 법이 있고, 규율과 자유의 통일이라는 것은 이미 장욱과 회소의 작품에서 보았다. 여기에서 다시 황정견의 작품을 통해 이를 재삼 확인하고 옛날부터 다른 서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초서에서만 이러한 진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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