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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20.12.27 의열단원 최수봉, 밀양경찰서 투탄

감효전(甘曉典) 2012. 3. 11. 17:17

1920.12.27  의열단원 최수봉, 밀양경찰서 투탄

 

 

 

 

 

 

1920년 12월 27일, 밀양 출신의 의열단원 최수봉 선생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경찰서장이 중상을 입었다. 오전 7시 30분경 밀양경찰서 서장실에서 전 경찰서원이 모여 서장 와타나베(渡邊)의 훈시를 듣고 있을 때, 최수봉 선생은 경찰서 창밖에서 이 기회를 노려 폭탄 2개를 잇달아 던졌다.

 

이에 일본경찰이 추격하자 그는 경찰서 근처 민가로 피해 들어가 길이 막히자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경찰에 붙잡혔다.

 

1894년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1919년 ‘밀양 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 만세시위로 수배를 받게 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에서 義烈團(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은 1919년 밀양 출신의 김원봉을 중심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파괴와 암살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방침을 정한 단체.

그는 의열단에서 폭탄제조법을 배우고 밀양으로 돌아와 기회를 엿보던 중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투탄사건 소식을 듣고 거사를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1921년 7월 최수봉 선생은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매일신문

 

 

 

 

 

 

최수봉 [ 崔壽鳳 ]

 

 

 

1894(고종 31)∼1921. 독립운동가. 일명 경학(敬鶴). 경상남도 밀양 출신. 밀양의 사립 동화학교(同和學校)에 들어갔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폐교되자, 1912년 동래 범어사 안에 있는 명정학원(明正學院)을 졸업하고 1913년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서 수업하다가 중퇴하였다.

 

1916년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는 사금광에 가서 날품팔이 노동을 하다가 1919년 고향으로 돌아와 윤세주(尹世胄)·윤치형(尹致衡)과 더불어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수배를 받게 되자, 윤세주·윤치형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奉天)과 안동(安東) 사이를 다니다가 길림(吉林)으로 가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 동료들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우고 밀양으로 돌아왔다.

 

1920년 임태호(林泰昊)의 격려와 그해 9월 박재혁(朴載赫)의 부산경찰서투탄사건 소식을 듣고 거사를 도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해 12월 밀양경찰서장이 경찰서 직원 19명을 사무실에 모아놓고 훈시하고 있을 때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고 말았다. 이에 일본경찰이 추격하자 경찰서 근처의 황씨 집에 들어가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검사가 불복, 대구복심법원에 상소되어 1921년 4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시 경기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당하고, 7월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騎驢隨筆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참고문헌≫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참고문헌≫ 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國家報勳處, 1997)

 


 

/네이트 백과사전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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