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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령(團領)

감효전(甘曉典) 2012. 2. 13. 14:45

단령(團領)
 
 조선시대 관복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쉽게 말하면 베이스, 기본인거죠.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관복이 아닐까 싶어요. 신라때부터 조선 말기까지, 대례복서부터 관원의 상복, 그리고 지금 우리네 결혼식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단령포에 대해서 지금부터 하나하나 시대별로 따져보고 들어가기전에 앞서서, 단령이란 무엇인지, 왜 그런 명칭이 붙은건지 알아보고 그 다음에 단령의 역사에 대해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왜 단령이라고 부르는가?
 
 단령(團領)이라는 한자를 해석하면 이런 한자가 나옵니다.
 
단 - 團(둥글 단)
령 - 領(옷깃 령)
 
바로 둥근 옷깃이라는 말인데, 이게 무슨 소릴까요? 사진 자료 들어갑니다.
 

(해를 품은 달에 나온 단령)
 
(여러분 지금 제가 드라마 주인공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감히 배우들의 턱선에 흠이 가게 한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체크하신 네모부분을 보시면 매우 특이한것이 있습니다. 바로 흰색 카라 부분(동정)말고, 그 바로 밑에 받쳐주고 있는 부분을 잘 보세요. 왕의 것이나 관원의 것이나 모두 같은 원형을 띠고 있죠? 누가보면 U자 아니냐고 하실수도 있는데, 입체에 대한 생각을 해보신 분이라면 뒤도 똑같은 U자로 되어있다는 것, 그래서 원형이라는 것을 아시겠나요?
 
이런 목 받침 부분의 모양이 둥글면 학술적 용어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용어로도 '단령'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래서 옷깃이 둥근 의상은 한복에서는 단령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쉬운 예가, 집에서 편하게 입는 흰색 티 있으시죠? 아니면 런닝구(헛^^) 같은 경우도 단령에 속한다고 볼수가 있겠죠? 좀 억지스럽긴 합니다만 예시가 가장 쉬운게 그런 부분이네요 ㅎㅎ.
 
 
- 신라시대의 단령포
 
 신라시대의 단령포에 대한 첫 기록은 바로 삼국시대의 김 춘추(우리가 아는 유 승호!), 유 승호군이 당나라 황제인 태종 황제에게 가서 얻어온 옷이 바로 단령포 였습니다. 당시 신라는 삼국 중 가장 국력이 약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의해 쌈싸먹히고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당시 그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하여 중국에 원병을 청하러 간 김 춘추가 당 황제 태종이 원병을 보내주겠다고 허락하자 이에 감사해하면서, 자신의 나라의 관복 대신 당나라의 것을 입고 싶다고 아부 아닌 아부를 떨자 태종도 그냥 아부로 들으면 될 것을 괜히 너스레를 떨면서 눈치도 없이 관복을 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함께 보시죠.
 
『어느 날은 조용히 불러 황금과 비단을 더욱 후하게 주면서 물었다. "그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하자, 춘추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신의 본국이 멀리 바다 한구석에 떨어져 있으면서 천조를 섬긴지 오래인데, 백제가 포악, 교활하여 자주 침략만 일삼으며, 더구나 지난 해에는 대군을 거느리고 깊이 들어와 수십성을 함락시키고 대국에 입조하는 길조차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군사를 보내 흉악한 무리를 없애지 않으신다면 저희 나라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될 것이며, 험한 육로와 바다를 거쳐 조공 바치는 일도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은 깊이 동감하고 출사를 허락했다. 춘추가 또 관리의 복식을 고쳐 중국의 제도를 따르겠다고 청하자 내전에서 값진 의복을 내어다 춘추와 수행원들에게 주고, 또 즉시 명령하여 춘추에게는 특진을, 문왕은 좌무위 장군으로 삼았다 환국 할 때에는 조서를 내려 3품 이상의 관원들로 하여금 잔치를 베풀게하여 극진히 대우하였다.』
 
- 삼국사기 진덕왕 편
 
『신라 초기의 의복제도는 그 색을 상고할 수 없다. 23대 법흥왕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6부 사람들이 복색에서 존비를 구별하는 제도를 규정했는데, 오히려 동이(東夷)의 풍속대로였다. 진덕왕 재위 2년에 김춘추가 당나라에가서 당의 복색 제도를 따르겠다고 청하니, 당 태종이 허락하고 겸하여 의복을 주었다. 김춘추가 돌아와 이를 시행하여 동이의 제도를 중국의 것으로 바꾸었다. 문무왕 재위 4년에 또 부인의 의복을 고치니, 이때부터 의관제도가 중국과 같게 되었다.』
 
- 삼국사기 복색조 편
 
 
보시는 바와 같이 그 이전에는 붉은색 밑줄을 보시면 아시다 시피 법흥왕 때 시행된 관복제도는 예전 우리 나라 전통식으로 되어있었으나, 이후 진덕왕때 당 나라에 다녀온 김춘추가 관복을 사여(하사)받은 뒤로는 우리나라의 남자 관원의 복색이 중국 당나라의 것과 같아졌고, 이후에는 무문무왕 때엔 여성들의 복식도 당나라의 것과 같아졌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옷의 시작이 당나라에서 시작된 이 단령, 그러면 고려시대에는 어떠했을까요?
 
우리 태조(고려 태조 왕건)가 건국한 후 국가 제도에서 신라의 옛 제도를 많이 따랐으므로, 지금 조정과 상류 남녀의 의복 대개가 역시 춘추가 청해 온 옛 당의 제도일 것이다. 신(김부식)이 세번 사명을 받들고 중국에 갔었는데, 우리 일행의 의관이 송나라 사람과 다름 없었다. 일찍이 조정에 들어가다가 아직 시간이 일러서 자신전 정문에 서있으니, 한 합문원이 와서 "누가 고려 사람이냐"고 물으므로, "나다" 했더니, 그가 웃으며 갔다.
 
- 삼국사기 복색조 편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시기에는 관복 제도가 신라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려 초기에는 당나라의 것과 똑같은 관복제도가 유지가 되었는데요. 이후 고려 초기 왕권 강화에 큰 힘을 쏟은 광종 11년 3월에(960년) 사색 공복 제도를 시행하였는데요. 당시 이 사색은 (자색,단색,비색,녹색)으로 시행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외형의 공복제도가 시행이 되었습니다. 지금 정성모님이 입으신 관복이 바로 자색의 공복입니다. 이 또한 지금 보시다시피 검은색 목판, 즉 옷깃이 둥근것을 알수 있지요?
 

(정몽주가 입은 려말 선초 단령)


이후 고려의 관복제도는 꾸준한 변화를 거치다가 원나라의 집권기 때에는 원의 관복인 질손을 입게되었고, 이후에는 고려 말에 또다시 단령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 형태는 지금 정성모님이 입으신 공복과는 달리 우리가 흔히 볼수 있었던 형태입니다.
 
바로 S 방송국에서 했었던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는데 반대파에 의해 고생 좀 하는 사극이랑, K 방송국에서 옛날에 했던 왕의 눈물이나, 세종 하고 대왕을 거꾸로 해서 나왔던 작품 기억하시죠? 관복에 수놓는 흉배도 없고, 관모뿔도 아래로 축 쳐져 있는 그 관원들의 관복을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 형태가 고려말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관복의 모습입니다.
 
이전에는 정성모님이 쓰고 있던 복두를 쓰고 있었으나, 고려 말기 우왕 때 설장수가 명 태조 주원장에게 가서 받아온 관모가 지금 정몽주 초상화에서 쓰고 있는 사모라는 모자입니다. 복두와 외형은 차이가 없어보입니다만, 그래도 사모가 좀 더 둥근 모자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복두는 각진 형태라는 차이점과, 뿔이 양 옆으로 쭉 뻗은 복두와는 달리 사모는 축 쳐져있는게 차이점이죠.
 
이렇게 고려의 관복제도를 대략 정리해보았고(그 사이 사이에 중요한 복색의 변화는 있으나, 그러면 글이 더 어려워지므로, 난이도를 낮춰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의 관복은 정몽주가 입었던 단령과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해서 려말 선초 단령이라고도 부르는데요. (려말 선초는 고려 말 조선 초기 의 준말입니다.) 이 단령의 형태에서 점차 진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흉배입니다.
 

(신숙주 영정)

 

조선 초기에 계유정난 등으로 세조를 보필했던 세조의 장자방, 신숙주 영정입니다.

신숙주의 영정을 보시면 정몽주의 영정과 큰 차이가 보이시죠? 사모뿔이나 관복색은 그렇다치더라도,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가슴과 등 부분에 있는 흉배라는 것입니다. 단종 때 시행된 이 제도는 조선 말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흉배에 대한건 차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구요.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었다는것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김륙 초상화)

 

조선시대에는 이후에 차츰차츰 관복 소매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후엔 김륙의 초상화를 보시면 소매가 굉장히 넓고 품 또한 넓어졌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소매의 크기는 자연스럽게 각대도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것처럼 사각으로 만들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낳아보는데요. 이러한 변화는 이후 국말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신헌 영정)

 

우리가 요즘 사극에서 가장 많이 보는 형태로, 흉배가 작고, 소매가 넓긴 합니다만, 김륙의 초상화에 비할바가 못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외형은 국말 대원군의 의복 개혁령(간소화)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대표적인 폐백의상인 활옷과 단령)


그렇다면 요즈음의 결혼식때 쓰는 단령은 어떨까요?

조선시대에는 양반들만 단령을 입는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백성들도 단령을 입어볼 기회가 일생에 딱 한번 주어졌는데요. 바로 '결혼식' 때 였습니다. 요즘이야 당연히 동, 서양의 문화가 교류되면서 전통 결혼이나 서양식 결혼 등, 다양한 결혼 예식 방법도 있고, 옷도 요즘에는 한복이 아닌 양복을 입기 때문에(뭘 입든간에 그건 지나치지만 않다면 자유기 때문에), 결혼식은 서양식으로, 폐백은 전통식으로 하는 집이 흔할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런 양복도 없을 뿐더러, 서양식 결혼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 날 딱 하루만 관복인 단령을 입도록 허락해주었는데요. 흉배는 단학 또는 쌍학을 사용하였구요. 옷 색은 청색으로 제한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뭐 색이 뭐가 중요하고 입은게 뭐가 중요하겠으며 의미가 가장 큰것 아니겠냐고 하시겠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대표적으로 단령을 입어도 청색으로 많이 입죠^^;;

 

대충 조선시대에 관원들의 단령도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그렇다면 왕의 곤룡포라고 해서 다를게 있었을까요? 지난번에 모셨던 3분의 영정을 모시겠습니다.


(태조, 영조, 고종 어진)

 

차례대로 보신다면 정몽주, 신숙주의 단령포와 같이 태조의 용포도 소매가 매우 좁습니다. 단령의 특징이라면 조선 초기에는 목판이 아주 위에 치고 올라와서, 목 안에 입고 있는 직령(철릭)의 동정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는 것인데요. 소매가 좁고 목판이 위에 치고 올라가있다는 점, 잊지 마시구요. 영조의 어진을 봅시다. 영조의 어진은 소매도 무진장 클 뿐더러 보의 크기도 참 크죠? 이성계 어진과는 달리 단령의 목판 부분이 어느정도 내려와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정도 파이는것이 조선 후기의 특징입니다. 국말 고종의 어진을 보시면 소매는 줄어들었고, 보도 작아졌으며, 다만 목판은 영조의 어진과 같이 많이 내려와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3차의 특징은 곤룡포에만 해당되는것이 아닌, 조선시대 단령포의 유행이자 시대별 특징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대충 보시다시피 삼국시대(신라)부터 조선 말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령은 꾸준히 우리가 입고 있으며, 일반 백성서부터 왕까지, 그 자수의 문양만 달랐을 뿐 단령이라는 옷은 관복으로 모두가 입었던 옷입니다.

 

그렇다면 단령은 중국 당나라에서 우리나라가 직수입 해온것인데, 단령은 중국의 옷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4~5세기, 중국은 당시에 의복에 있어서 큰 바람이 불게 되는데요. 바로 '단령'이라는 옷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 원천은 중국에서 유행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서역, 몽골 쪽에서 자연스럽게 유행을 타고 번지던 호복, 즉 오랑캐의 옷이었는데요. 이 옷을 후주라는 나라에서 관복으로 채택하더니, 수나라에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해서 관복으로 이어서 썼고, 당나라에서 이걸 그대로 또 이어 받아 쓰게 된 것입니다. 중국은 서역에서 들어온 단령을 자기 식으로 잘 소화해냈고, 우리나라 또한 이를 물려 받아 썼으며, 일본에서도 단령은 관원의 관복으로 채택되었지요^^.

 

(중,한,일의 관복인 단령)

 

각국 별로 화려하거나, 수수하거나, 너무 없는 듯한 단령의 모습 다 보이시나요? 지나치게 화려한 중국과, 너무 수수한 느낌의 일본, 그리고 그 중간에서 아름다운 색을 내는 우리 한복, 단령. 삼국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닌 서역에서 수입해온 오랑캐의 옷이었지만, 그 옷만큼 자기식으로 다 소화해내는 모습이야 말로 문화와 전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 국민성이 어떠한지를 잘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세 분 다 거의 동시대급 인물입니다.. 척계광, 이원익,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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