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 역의 김민서씨가 입은 당의)
1-2. 당의란 무엇인가?
그러면, 시작하면서 당의라는 의상의 명칭의 뜻부터 알아보도록 합시다.
당 - 唐(당나라 당)
의 - 衣(옷 의)
명칭이 아주 쉽죠? '당나라 옷'이라는 뜻이 있는 당의입니다. 물론 당의라고만 부르지 않고, 당저고리, 당적삼, 당한삼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근데 아니, 무슨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군대 갔다오신 분들은 이런 이야기 한번쯤은 들어보셨을듯..)라는 생각을 하실수도 있는데요. 그러면 도대체 당나라 옷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와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3. 당의의 역사
아주 빠른 순서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바짝 긴장타세요!
당의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 될수가 있겠습니다.
가장 먼저 당의라는 명칭에서도 볼수 있듯이 ‘당나라 당(唐)’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국 당나라의 옷이 삼국시대 때 들어온 것이 아니냐~?는 설도 존재합니다만, 이는 확실치 않구요. 다만 확실한 것은 실존하는 유물들이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착용했다는 것만큼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당의라는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광해군 2년(1610)에 기록된 내명부 예복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입니다.
「명부의 모임에 입참하는 사람의 복식은 평시라면 마땅히 장삼에 수식을 써야 하지만, 날짜가 임박하여 미처 마련하기 어려우니, 임인년 가례 때 하던 예절대로 양 이엄을 쓰고, 당의를 입고 입시를 하라.」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2년 기록 발췌.
이러한 기록을 보면 내명부의 부인들이 가례 때 착용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처음 당의의 형태는 저고리와 형태가 매우 흡사한 형태였는데요. 18세기에 들어서자 점차 길이 좁고, 옆선의 가운데가 오목하게 휘면서 둥근 곡선을 유지하는 요즘의 당의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게 됩니다.
이후의 기록 중에서 관심을 둬야할 부분은 숙종 때 인물인 ‘이재’가 썼던 「사례편람」에서 ‘관혼상제’의 사례에 대한 예제를 올린 것으로 헌종 10년(1844)년에 그의 증손인 이광정이 간행한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숙종조부터 ‘삼자’를 ‘당의’라고 부른 것으로 보이는데, 삼자라고 하는 것은 저고리를 이르는 말인데, 저고리 중에서도 길이가 무릎까지오고 옆이 터진 저고리를 속칭으로 당의라고 부른것 같습니다(<관례조(冠禮條)>에 보면 “삼자(衫子)는 속칭 당의라고 하며 길이는 무릎까지 닿고 소매는 좁다. 여자의 상복(常服)이다”라고 하였다.). 이 당의는 여자의 상복이라고 하였으니, 이 무렵에는 당의가 예복으로 입혀진게 아닌, 상복으로서 입는 저고리를 지칭하는 말로 보입니다. 그런데 차츰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당의는 단저고리 위에 입는 간소한 예복으로 자리를 굳혀 갔습니다.또한 영조 때 인물인 송문흠이 쓴 「한정당집」을 보면, 단배자와 당의는 같은 것으로 볼수 있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출토된 유물들과 기록들 중에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수가 있는데, 당의는 삼자, 저고리, 단배자와 같은 옷으로 볼 수 잇으며, 이러한 형태를 유물에서 찾아ㄷ본다면 과천에서 출토된 광주 이씨가의 며느리인 청주 한씨(1590~1600년도)의 유저고리에서 찾아볼수 있으며, 이 유 저고리는 갈색의 명주로 솜을 둔 저고리인데, 그 길이가 매우 길고, 옆이 터져 있는 상태이므로, 이러한 저고리가 당의로 발전하고 있는 당저고리로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자, 저고리, 단배자, 당의의 구별 없이 막 썼던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시대에 꾸준히 입어온 여성의 저고리를 당의와 동일하게 본것 같으며, 우리가 사극에서 볼수 있는 흔한 형태는 18세기 이후에 볼수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저고리 형태로, 그때는 궁중의 평상복으로 여인들이 입었지만, 18세기 이후부터 궁중 여인들의 소례복으로 착용한 것 같습니다.
1-4. 당의는 왕비만 입었는가?
(의녀 대장금의 이영애씨가 입은 당의와, 약간 퓨전형식의 당의를 입은 한가인씨)
역대 가례도감의궤를 보면 시녀나 보행나인, 대함비, 의녀등의 여인들이 당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당의는 궁중에서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죠. 사극에서 상궁이나 왕비, 후궁 가릴것 없이 대부분이 당의를 입는데요. 민간에서는 함부로 입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입을수 있는 것은 궁중에 출입할 때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때만 입는 것으로 한정되었습니다. 또한 궁중의 여인들도 다 왕비와 같은 장식을 한 당의를 입는것이 아닌, 왕비, 공주, 옹주는 옷에 금박을 하였고, 금박 무늬는 꽃잎, 박쥐, 수(壽), 복(福), 희(囍) 등의 글자를 통해 장수와 다복과 기쁨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금박을 달고, 그것을 기원하였습니다. 상궁이나 사대부 부인의 당의에는 금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서는 왕비, 공주, 옹주, 후궁 이하 계급에게서는 금박이나 무늬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 것 같습니다.
1-5. 당의를 갈아 입는 시기
궁에서는 오월 단오 전날에 왕비가 흰 당적삼으로 갈아입으면, 단오날부터 모두 당적삼으로 갈아입으며,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겹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 궁중의 여자들은 모두 겹당의로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사절복색자장요람》에도 동지 전후에는 녹색 직금수복자당의, 정월 망일 전후에는 공단 당의, 삼월 망일에는 녹색항라당의, 5월 단오에는 초록 광사깨끼당의, 5월 10일엔 백광사당의, 6월 순망간에 날이 몹시 더울 경우에는 저포당의, 8월 10일에는 초록깨끼당의, 8월 이후에는 초록광사당의, 9월 초하루부터는 항라당의, 9월 망일에는 공단당의, 10월 초하루에는 겹당의를 입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계절별로 다양한 원단의 당의를 통해 추울때는 따뜻하게, 더울때에는 시원하게, 봄, 가을에는 적절한 원단을 이용하여 입었다는 상례가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1-6. 당의의 다양한 색깔
당의의 색깔은 매우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 유물로 남은것이나, 대표적으로 많이 쓰였던 당의의 색깔들을 구분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두색당의
· 자주색당의
· 남송(南松:노랑색)당의
· 아청색 당의
· 백색 당의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색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연두색’ 당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겉감은 초록색 길에 같은 감으로 깃을 만들고, 안감은 진한분홍색이나 다홍색으로 잡았습니다. 겉고름과 안고름은 자적색이나 홍색을 사용하였으며, 소매 끝에는 창호지속을 넣은 흰색 천의 거들지를 덧대었습니다.
그 중, 나머지 색은 제외하더라도 백색 당의는 여름철이나 상중(喪中)에 한해서만 입은 당의라고 하네요.
1-7. 당의에 들어가는 문양들
(당의 금박 부분과 다양한 문양들)
당의에 들어가는 다양한 금박들이 있는데, 몇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전에 당의에 들어가는 금박 위치와 무슨 문양을 찍는지부터 알아봅시다.
1번은 깃부위에는 깃꽃, 깃수복등의 무늬를 찍습니다.
2번은 소매부위로, 중간꽃과 수복꽃 등의 무늬를 찍습니다.
3번은 고름부위로 중간꽃, 수복꽃 등의 무늬를 찍습니다.
4번은 어깨부위로 용보를 수놓거나, 봉황이 수놓여진 보, 또는 꽃무늬의 보를 붙이거나 금박을 찍습니다.
5번은 자락부위로 용무늬, 봉황무늬, 화무늬로 아래 완자의 무늬를 제거한 후 찍습니다.
6번은 몸판으로 수와 복의 문자 무늬로 전체적으로 드문드문 찍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시다시피 수복꽃 또는 용,봉황,꽃, 아니면 수, 복 문자를 금박한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모두 수,복,희는 위의 설명과 같이 장수를 희망하구요. 용과 봉황은 왕 또는 왕비를 상징하는 왕실의 상징입니다.
(조선 말기에 들어가야 금박이 일반층에서도 사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대한금박 홈페이지(http://www.daehangold.com/)
1-8. 현존하는 당의 유물들
(1) 전왕비 당의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전왕비 당의는, 순정효황후 윤씨가 입었을 것으로 추정만 되는 당의 유물로, 겉감은 담록색의 운봉문단을 썼고, 안감은 홍색의 주로 오조원룡보를 앞,뒤 양어깨에 달아놨습니다. 소매 끝의 백색단의 거들지를 달고, 겉깃은 당코깃에 안깃은 목판깃이며, 자적색단으로 된 고름이 달려 있습니다.
(2) 수복칠보석류보상화문황갈단당의
황갈색 바탕에 수와 복, 그리고 칠보석, 그리고 석류, 꽃 등의 다양한 문양이 섞여있는 당의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정말 길죠? 수복은 수복무늬, 칠보는 칠보석무늬, 석류는 석류무늬, 보상화문은 꽃무늬 중 하나로 앞의 대부분 글자가 문양을 설명하기 위한 명칭입니다.
조선중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당의로, 당의란 조선시대 궁중과 사대부 여인들이 저고리 위에 덧 입었던 예복으로 모양은 저고리와 비슷하지만 앞과 뒤의 길이가 길고 겨드랑이부터 아래로 트여있는 옷이다.
이 당의는 본래 색을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옷의 안과 밖이 모두 황갈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황갈색 바탕에 수(壽)와 복(福)자 그리고 칠보석(七寶石), 석류나무(榴) 등의 무늬가 섞여져 있는데 특히 금실로 수놓은 수와 복자는 다른 무늬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깃은 너비가 넓고 깃머리가 뾰족하게 각이 져 있으며 소매는 어깨부터 소매끝까지 곡선이 없는 직선배래로 소매끝에는너비가 7㎝정도의 한삼이 달려 있다. 허리부분까지 원만하게 휘어져 곡선을 이루다가 밑으로 퍼졌고 양옆은 완전히 트여져 있다.
이 당의는 앞쪽이 2폭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 점이 이 옷의 특징이다.
(문화재 검색 결과 발췌)
(3) 광해군비 당의
조선조 15대 임금 광해군의 비 유씨의 옷으로, 푸른색의 꽃과 새가 그려진 홑저고리이다.
길이가 길고 소매의 아랫부분이 직선으로 되어있으며, 짧고 좁은 자주색 명주 옷고름이 달려있다. 깃과 동정은 넓고 당코깃으로 되었으며, 양옆이 진동선 바로 밑부터 터져 있고 색채나 형태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겉깃의 안쪽에 10자의 글자가 있어 저고리의 내력을 알 수가 있는데, 중요민속자료 제 3호인 홍삼(해인사소장)도 왕비였던 유씨의 유물로 형태와 기법이 같고 모두 무병장수를 비는 글이 쓰여있다.
이 옷은 370년 전의 왕실유물로 연대와 인적 사항이 확실하여 복식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 2006.4.21. 지정명칭이『광해군비단배자(光海君妃短褙子)』에서 『광해군비당의(光海君妃唐衣)』로 변경됨.
(4) 덕온공주 당의
조선시대 순조(재위 1800∼1834)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입었던 당의이다. 이 옷은 그녀의 손녀인 윤백영이 저고리, 노리개, 원삼 등과 함께 아버지인 윤용구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7세 되던 해에 대궐에 입궐하면서 자신의 몸에 맞게 고쳐 입으면서 개조하였다.
당의란 조선시대 궁중과 사대부 여인들이 저고리 위에 입던 예복으로, 모양은 저고리와 비슷하지만 앞과 뒤의 길이가 길고 옆이 터져 있는 옷이다. 자주색 비단에 옷 전체에 수(壽)·복(福)이라는 글자를 금실로 새겼다.
이 옷은 착용자 신분이 뚜렷하고 연대가 확실한 왕실의 유물로서 조선 후기 상류층의 복식제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