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직령(直領)
직령은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도포, 두루마기, 철릭 등 단령과 반대되는 'y자 형태'의 동정이 있는 옷입니다. 한자를 일일이 해석을 해볼까요?
직 - 直(곧을 직)
령 - 領(옷깃 령)
즉, 곧은 옷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옷깃이 곧게 생겼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죠. 그럼 직령포의 대표적인 예를 사진에서 한번 볼까요?
(직령포의 대표적인 예(시계 방향) 당의, 철릭, 도포)
직령포의 대표적인 예로서 등장하는 도포와 철릭, 당의 입니다. 직령의 역사로는 그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우왕 13년(1387) 6월에 명나라 제도에 의해 단행된 관복개정 때 처음 나타나게 됩니다. 조선 세종 임금 때 단령이 관복으로 승격 된 후 직령은 천민과 서민의 옷으로 되었습니다. 양반층은 세조때부터 양반들의 편복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고종 21년(1884)과 32년(1895)의 사복개혁령에 의해 폐지되었으나, 순종은 세자 때 관례복으로 입었다고 하네요. 별감이나 향리들의 상복(常服)으로도 입었다고 합니다.
형태로는 약간의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요. 조선 초기에는 소매가 좁고 목판 깃이며 무가 좁았습니다. 중기에는 소매가 차츰 넓어지면서 옷깃은 칼깃으로, 무는 넓어지면서 무의 윗쪽을 뾰족하게 접어서 뒷길에 젖혀서 입었습니다. 후기에는 소매가 매우 넓어지고 깃 궁둥이가 완만한 현대의 두루마기 깃이며, 무는 완전히 뒤르 젖혀 뒷길에 무의 왼쪽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런데 굳이 직령 이야기를 곤룡포에서 왜 하냐구요?
바로 곤룡포 안에 직령포를 받쳐 입었기 때문입니다. 확인해보실까요?
(세종의 어진, 훗날 재현한 어진입니다.)
지금 우리는 곤룡포를 입고 상상화로 그려진 세종대왕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인자한 모습이 참 보기 좋죠? 세종 대왕께서는 살아생전에 육식을 좋아하셨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후덕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그 고기 때문에 평생을 당뇨와 같은 병으로 고생하셨죠)
용포의 하단부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겉감은 홍색 구름무늬가 그려진 원단을 썼고, 안감 또한 파란색 구름 무늬가 그려진 원단을 쓰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한복의 안감을 이런 반대색(홍색이면 청색, 청색이면 홍색 이런식)으로 배색을 했다고 하네요. 극과 극의 색으로 배색을 한게 오히려 더 이뻐보기오 멋집니다. 그런데, 저기 벌어진 틈 사이로 하늘색의 옷 색깔이 보이시나요? 그리고 단령 목깃 부분에 살짝 드러나는 하늘색 옷색깔이 보이시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옷 색깔이 바로 직령포의 옷색깔입니다. 조선 시대 국왕의 곤룡포의 직령은 조선 말기를 제외하곤 다 겹겹이 입어서 예의를 갖췄는데요.
곤룡포만해도 겉의 룡포 속에 청색 철릭이나 청색 직령을 받쳐 입었고, 그 안에 중치막이라는 포를 또 한벌 더 입습니다. 그 안에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속에 또 속옷을 입으니, 얼마나 겹겹이 입었는지 잘 아시겠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즘에도 한복 입는거를 덥다고 꺼려하니...조선시대 사람들이 들으면 관속에서 일어날 일이겠죠?ㅋㅋ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국왕의 관복 속에는 왜 직령포를 입었을까요?
아마도 일종의 규칙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확하게 왜 입어야하는지는 이유가 나와있지 않지만, 추측해볼때 일단 요즘과 같이 추운 겨울에는 겹겹이 입는게 당연한것처럼, 조선시대에도 겹겹이 입는게 일종의 규칙이자 방한을 위한게 가장 일차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옷 중에서 방한을 위해서 만들어진 원단이 누빔 원단인데요. 이 누빔 원단은 매우 따뜻하고 보기 좋은 대신에, 관복과 같은 외의로서는 좀 이쁘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세종이 입고 있는 저런 원단들도 2겹으로 한다고 해도 그렇게 방한용으로는 훌륭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데요. 그 속에 똑같은 원단으로 되어있는 직령포를 받쳐 입는다면 그나마 더 따뜻하고 방한용도 되겠지요.
그런데 여름엔 어떻게 하냐구요? 일단 여름에 곤룡포는 저런 화려한 '단' 원단을 쓰지 않고 '사' 계열의 원단을 쓰게 됩니다. 더운만큼 그만큼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원단을 써서 체내의 열을 내보내고, 밖의 바람을 받아들이기 쉽게 하는 원리가 있죠.
그래서 영조 대왕께서 평상시 용포 안에도 받쳐 입고, 또 자기 전에도 외투로 입던 도포 한벌이 있는데요. 이 도포 한벌이 얼마나 얇은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조 대왕의 도포)
자 지금 여러분들은 밖의 반대쪽 벽이 보일 정도로 얇디 얇은 도포 한벌을 보고 계십니다.
어떤가요? 마치 우리가 영화에서 여자의 야한 한복을 볼때 보는것 같은, 마치 실루엣 같이 얇은 한복이죠?
한복이 무조건 두껍고 덥게만 느껴지는 옷은 아니랍니다. 영조 대왕이 평소에도 입었던 도포니, 그 몸값이 참 대단했겠지요.
물론 발굴된거라서 팔고 자시고 할것도 없습니다만, 여름 한복이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도 한복이 두껍고 더워보이시나요? 원단은 고르기 나름이랍니다.
곤룡포 속에 바로 받쳐 입는 철릭이나 직령포는 아니지만, 도포 또한 직령포이기 때문에 참 색깔이 매혹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구한말이 되면 조금 다르게 바뀌는 경우가 있으니, 의복 개혁령으로 간소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국말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 어진과 영친왕의 곤룡포 유물)
국말 고종 황제를 뵌건지, 아니면 사진을 보고 그린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가 1898년에 그린 그림으로서, 고종 황제의 어진입니다. 그런데 목 부분을 보면 우리가 배운대로 단령 목깃이 깊게 파여져 있는데, 안에 직령포를 입은것 같지가 않죠? 다 홍색이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실겁니다.
그렇습니다. 조선 말기에 들어오면 일일이 그걸 다 입기가 귀찮으셨던건지, 좀 춥거나 덥더라도 예산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단령에 동정 부분만 저렇게 형식화해서 붙혀 나오는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것입니다. 지금 옷고름 부분을 보시면 붉은색이 나와있죠? 그게 바로 안감색이 홍색을 썼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다보니 황룡포에는 홍색 동정을 일부러 붙혀서 나오고, 홍색 곤룡포에는 하늘색 동정을 일부러 붙혀 나오게되는데요. 영친왕의 곤룡포도 보시면 동정 부분은 하늘색으로 붙혀서 나왔고, 안감은 청색으로 써서 배색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더라도, 구한말에는 의복을 화려하게 하기 보다는, 최대한 형식을 갖추면서 실리를 택한 모습도 보인답니다.
(우리가 전통행사, 사극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동정이 붙은 형태의 단령)
그래서 이 의복의 형태가 변하면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한복의 단령도 모두 동정이 붙어서 나오는데요. 이러한 점은 구한말에나 등장했다는 점, 그 이전에는 다 직령포를 일일이 갖춰 입었다는 점 명심하시구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뭐가 실리 추구냐구요?
1차적으로 말씀드리면 겹겹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으니, 옷 한벌 값이 줄어들고, 두번째는 동정이 붙어 나오니 형식적으로 관복을 입은 것은 됬고, 세번째는 더러워진 동정은 언제든 뗏다가 다시 새걸로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세탁료가 필요 없으니, 이렇게 간소화한 의복이 실리를 추구한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자 오늘 배운 내용을 한번 정리 해볼까요?
- 단령과 반대로 표현되는 말은 직령이다.
- 직령은 동정이 소문자 'y' 형태의 옷을 말한다.
- 직령의 한자 표기는 직령(直領)이다.
- 직령에 속하는 의복은 '철릭', '두루마기', '도포', '당의' 등 다양한 우리 한복이 속한다.
- 곤룡포 바로 밑에는 직령포(철릭 또는 다른 직령의)를 받쳐 입는게 정석이다.
- 구한말에 단령포에는 직령포를 따로 받쳐 입지 않고 동정을 일부러 붙혀 실용성을 더했다.
- 직령포는 현재 두루마기로 진화했다.
- 역사적으로 볼때 직령의 최초 기록은 명나라에게 관복을 사여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며, 별감, 향리들의 상복으로도 입었고 처음에는 하층민들이 입었으나, 이후에는 단령의 속 받침 옷으로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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