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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도무아(伯道無兒)

감효전(甘曉典) 2012. 1. 13. 03:15

중국 진(晉)나라 때 사람인 등유(鄧攸)는 자(字)가 백도(伯道)로 하동(河東)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영가(永嘉) 말년에 석륵(石勒)의 난이 일어나자 아내와 어린 아들, 조카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곧 적을 만나 자식과 죽은 아우의 동생인 조카 가운데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등유는 처에게 말하기를 "내 동생이 일찍 죽어 오직 이 아이 하나만 남았으니 이치를 버릴 수 없소. 그러니 우리의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소. 다행히 우리가 목숨을 건진다면 훗날 다시 아이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라 하니 처가 울면서 등유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나중에 부부가 온갖 방법을 다해 후사(後嗣)를 얻고자 했으나 얻지 못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 일을 의롭게 여기면서 슬퍼하여 말하기를 "하늘은 무심도 하구나 등백도로 하여금 자식이 없게 하다니"라고 했다(☞ ≪진서(晉書)≫ <등유(鄧攸)>전).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지만 내용구성이 약간 다른 이야기도 있다.

 

등유가 피난길에 배로 강을 건너는데 배가 가라앉으려 하자 죽은 아우의 자식을 두고 자기 자식을 물에 던져 무게를 덜었다. 아내와 함께 눈물로 의(義)를 지키고 훗날 다시 자식 볼 것을 기약했으나 소실까지 두고도 끝내 자식을 얻지 못했다.

 

세인들이 이를 애달프게 여겨 하늘(天道)의 무심함을 한탄하니 일컬어 백도무아(伯道無兒)라 했다는 것이다. 백도가 근심 끝에 후사(後嗣)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후세 사람들이 백도와 같은 무사(無嗣)의 처지를 일컬어 백도지우(伯道之憂)라 하기도 했다.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逍遙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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