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광해군 때 판원(判院)으로 있던 김효성이라는 걸물이 있었네.
대단한 통뼈에다 배포까지 갖춘 위인이었던 모양인데, 남달리 여인의 아름다움을 아껴 신분의 귀천과 출신의 양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색(姿色)을 쫓아 경향 각지를 누볐다 하네.
어디에 누가 한 미모 한다는 소리만 들리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불원천리 달려가서는 끝장을 보곤 했다는군. 공교롭게도 부인의 질투 또한 만만치가 않아서 이 걸물의 행로에 시시때때로 태클을 걸었다 하는데, 글쎄 그게 승부가 되는 겨룸이었는지…
하루는 김효성이 바깥에서 한 계집하고 느긋하게 들어와 보니 부인 곁에 검정물을 들인 모시 한 필이 놓여
있는지라. "이 검은 베는 어디다 쓸려고 부인 곁에 놓아두었소?" 하고 물었겠다.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정색을 하고는 "당신이 여러 첩한테 빠져서 본처를 원수같이 대하니 저는 결연히 중이 될 마음을
먹고 옷을 물들이려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아∼, 이쯤 되면 웬만한 간뎅이들은 마누라의 서릿발같은 기세에 눌려 꼬리를 한껏 내리고는 연신 헛기침을 뿌려대며 아첨을 피울 법도 하련만.
상대가 누군가. 천하의 김효성이 아닌가. 낯짝에는 특수 철판으로 도배를 한 지 오래고, 양심은 동네 개울가에서 잘
씻어 선바위에 위에 내다 널어두고 다니는 천하의 풍류남아 아니던가.
김효성이 웃으며 "내가 색을 좋아하는 남자인데 기생(妓生), 여의(女醫)로부터 양가(良家)의 부인들, 종년 할 것 없이 여자라면 신체 사이즈와 교태 유무를 막론하고 다 섭렵하였지만 아직 비구니(比丘尼)는 건드려보지 못했소. 그대가 여승이 될 것 같으면 아직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오" 하고 입맛을 다셨다네.
오 마이 갓!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나오네. 어디 농아학교 아는데 없수? 황당무계의 극치를 보는 것 같구만.
일찍이 어느 고인이 "이 땅에 세 가지가 없다"(此地三無)고 탄식한 바, 그 세 가지란 어이·어처구니·터무니라고 하네. 어이없고,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더라는 얘기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부인이 말 한마디 못하고 그만 승복을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하네.
이륙(李陸)이라는 사람이 쓴 <청파극담(靑坡劇談)>이라는 글에 나오는 얘기인데. 약간의 사족을 달긴 했지만 원전을 손상시킬 정도는 아니라네. 야담이기는 하나 기록에 남을 정도이니.
장안의 껄떡쇠와 자타공인 호색지한(好色之漢)들이여! 그대들 평소의 소신과 염원대로 명당호혈에 이 선배의 사당을 짓고
영정과 위패도 모시고, 못해도 하루에 두 번씩 조석으로 문안 올리며 성심과 경의를 다해 높이 받들고 섬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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