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궁제현변 약일호치어태허
갈세추기 사일적투어거학)
온갖 현묘한 말솜씨를 부리더라도
마치 터럭 하나 허공에 둔 것과 같고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을 다 이루어도
물 한 방울 큰 골짜기에 떨어뜨린 것과 같네
※ 덕산선감(德山宣鑒) 선사가 처음 용담(龍潭) 화상을 참문하고 대오(大悟)를 이룬 뒤 했다는 말이다.
덕산 선사는 ≪금강경≫에 해박한 지식을 지녀 한때 '주금강'(周金剛: 그는 俗姓이 周씨였다)으로 불렸다. ≪금강경≫ 주석서라면 거의 외다시피 통달했다. 그러니 본인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당시 용담(龍潭)의 숭신(崇信) 선사가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크게 선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가 이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평소 연구해오던 ≪금강경≫ 주석서를 짊어지고 용담에 도착해 숭신선사를 찾아 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눈밝은 고승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불원천리 찾아온 자신에게 이렇다할 가르침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용담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숭신선사를 뵙고 떠나기로 했다.
그가 선사를 뵙고 나오다가 밖이 칠흑같이 캄캄해 다시 들어갔더니 선사가 호롱불을 주었다. 호롱불을 막 받고 돌아서려는데, 숭신이 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吹滅紙燭). 그 순간 덕산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고 선사에게 엎드려 절을 하였다.
다음날 그는 평생 연구해왔던 ≪금강경≫ 주석서 <청룡소초(靑龍疏鈔)>를
꺼내들고 법당 앞으로 가 횃불 한 자루를 들고서 "그림의 떡으로는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畵餠不可充飢)고 말한 뒤 이내 불태워버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바로 위의 문구다.
그는 한 소식 크게 깨우친 뒤 훗날 학인(學人)들이 찾아와 법(法)을 물으면 다짜고짜 몽둥이부터 휘둘렀다. 유명한 '덕산의 방(德山棒)'이다. 한 생각 일으켜 세상의 지식과 고정관념, 망상과 망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몽둥이로 얻어맞고 정신부터 차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일 게다.
※ 원대(元代) 서화가 조송설(趙松雪)의 서법(書法)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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