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신문을 보지만 소설이나 만화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성미다. 그러니 어떤 신문에 어떤 소설·어떤 만화가 실리는지도 잘 모른다. 누가 얘기를 하면 그때 "아∼ 그런 게 있었던 같다"며 겨우 맞장구를 치는 정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숫놈들의 영원한 화두인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주제란다. 그렇겠지. 삼류통속극이거나 물정 모르는 여인네 등치는 최루형(催淚型) 아니면 신파조(新派調)려니 하고는 돌아서 금방 잊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 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제목이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왔다. <강안남자(强顔男子)>. 강안남자? 무슨 뜻이지? '강한 남자'도 아니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인공이 워낙 사기와 협잡, 공갈에 능수능란하고 치마 두른 동물만 보면 자동으로 '작업'모드에 걸려버리는 천하의 난봉꾼, 뻔뻔니스트여서 그런 제목이 붙었단다. 한마디로 얼굴을 특수철판으로 도배한 천하의 불한당, 시대의 탕아(蕩兒)라는 얘기다.
'강안남자'는 작가가 지어낸 억지춘향의 조어(造語)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강안여자(强顔女子)'라는 어엿한 족보가 있다. 작가가 '강안여자'라는 원전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꿔치기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원전이 있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선왕(宣王)이 다스리고 있던 제(齊)나라에 종리춘(鐘離春)이라는 아주 못생긴 여자가 있었다. 절구통 머리에 퀭하니 들어간 눈, 남자 같은 골격, 들창코, 목젖이 불거진 두꺼운 목, 적은 머리숱, 허리는 굽고 가슴은 튀어나왔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것 같았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내로 사가는 남자가 없어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짧은 갈옷을 입고 직접 선왕(宣王)을 찾아가 만나기를 청했다.
그는 안내하는 사람(謁者)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나라에서 팔리지 않는 여자입니다. 원컨대 후궁으로 들어가도록 해주십시오. 왕께서는 허락하실 것입니다."
송나라의 손광헌(孫光憲)이 지은 ≪북몽쇄언(北夢瑣言)≫에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그는 고관의 습작시를 보고도 "이태백(李太白)도 감히 미치지 못할 신운(神韻)이 감도는 시"라고 극찬하곤 했다. 한 번은 고관이 취중에 매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대감의 매라면 기꺼이 맞겠습니다. 어서 치시지요…"
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질책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게 없지."
친구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광원의 낯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光遠顔厚如十重鐵甲)고 했다. 왕광원이야말로 철면피(鐵面皮)이자 강안남자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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