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章愛硯復愛石 探瑰抉奇久爲癖
石兄足拜自寫圖 乃知顚名傳不虛
(원장애연부애석 탐괴결기구위벽
석형족배자사도 내지전명전불허)
미불(米芾)은 연석(硯石)을 좋아했고 또 괴석을 사랑해
오래도록 빼어난 것을 찾고 기이한 것을 파내다가 습벽이 되었네
돌을 석형(石兄)이라 부르며 절을 올렸고 그 모습 그림으로 그렸지
이제 알겠네, 그 이름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 예진(倪鎭/원), <제미남궁배석도(題米南宮拜石圖)>
※ 元章은 미불의 자(字). 호(號)는 양양만사(襄陽漫士), 당대 사람들은 그를 미남궁(米南宮)이라 불렀다.
※ 명말청초(明末淸初) 화가 진홍수(陳洪綏)의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
※ 송나라 때의 저명한 서화가 미불은 남다른 '돌사랑'(嗜石)으로 유명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기이한 바위를 찾아 나섰고 괴석을 보면 석형(石兄)이라 불렀다.
그가 안휘(安徽)성 무위(無爲)현에서 관직에 있을 때다. 어느 날 기괴하게 생긴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저 바위는 나의 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며 관복을 벗은 뒤 홀(笏)을 잡고 몸을 굽혀 경배(敬拜)를 올렸다.
그의 배석(拜石)은 전설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훗날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 명(明)나라 때 화가 시여택(施餘澤)의 <배석도(拜石圖)>. 미불의 배석(拜石) 고사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시여택(施餘澤)은 북경 출신의 화가로 산수(山水)·인물(人物)·사녀(仕女) 등을 잘 그렸다.
※ 미불 자신이 <배석도(拜石圖)>를 그렸고 명대(明代)에 진홍수(陳洪綏)가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 청나라 때 임이(任頤)가 <배석도(拜石圖)>라는 그림을 남겼다.
훗날 장대천(張大千)과 유국휘(劉國輝), 서조(徐操) 등도 각각 <미전배석도(米顚拜石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산관(華山館) 이명기(李命基, 18세기)가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를 남기고 있다.
※ 이명기(李命基)의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
여말선초의 문인이었던 석정(石亭) 신창보(申昌父)도 돌 사랑이 지극했던 인물이다. 정도전(鄭道傳)의 ≪삼봉집(三峰集)≫에 관련 이야기가 전해온다.
"…성품이 돌을 사랑하여 밖에 나갔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생긴 돌을 보면 바로 가져왔다. 큰 것은 수레에 싣고 그보다 작은 것은 말에 싣고, 더 작은 것은 하인에게 지거나 겨드랑이에 끼게 하여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면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석정(石亭)이라 자호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서조(徐操)의 <미전배석(米顚拜石)>(1945年作)
※ 청대(淸代) 화가 정대(鄭岱)의 <미전배석도(米顚拜石圖)>
※ 청대(淸代) 화가 고락(顧洛)의 <미전배석(米顚拜石)> (1843年作)
※ 청대(淸代) 화가 왕소(王素)의 <배석도(拜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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