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현대 중국화가 정오창(鄭午昌)의 <답설심매(踏雪尋梅)> (1939年作)
數九寒天雪花飄 大雪紛飛似鵝毛
浩然不辭風霜苦 踏雪尋梅樂逍遙
(수구한천설화표 대설분비사아모
호연불사풍상고 답설심매낙소요)
아득한 겨울 하늘에 눈꽃이 나부끼고
많은 눈 내려 거위 털처럼 흩날리는데
호연은 바람 서리 추위를 무릅쓰고
눈 밟으며 매화 찾아 즐겨 떠도네
- 동진(東晉) 때 형주(荊州) 목사 유표(劉表)가 호북(湖北)성 양양(襄陽) 동쪽 20리에 있는 녹문산(鹿門山)아래 어량주(魚梁洲: 일명 大王洲)에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매(鷹)를 길렀다. 이 누대를 응대(鷹臺)라 불렀으며, 경승대(景升臺)라고도 했다.
훗날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고향인 이곳에서 오랫동안 은거했다. 그가 눈을 밟으며 열심히 매화(梅花)를 찾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이 그에게 타유시(打油詩: 운율(韻律)에 얽매이지 않는 통속적인 해학시) 한 수(首)를 보내니 바로 위의 시(詩)다.
이곳 어량주(魚梁洲)는 맹호연(孟浩然)의 <야귀녹문산가(夜歸鹿門山歌)>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 근현대 중국화가 오자정(吳子亭)의 <踏雪尋梅> 선면(扇面)
※ 청대(淸代) 화가 왕성사(王星槎)의 <踏雪尋梅> 扇面
- 당(唐)나라 때 수도 장안(長安)을 끼고 흐른 위수(渭水)에는 세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동쪽, 중앙, 서쪽의 소위 삼위교(三渭橋)다. 동쪽에 있던 다리가 유명한 파교(灞橋)로 장안성 동쪽에 있다 하여 달리 '동교(東橋)라 불렀다.
맹호연(孟浩然)이 이른 봄 매화(梅花)를 찾아 나귀를 타고 설산(雪山)으로 들어갈 때 건넜다는 다리다. 그의 이런 모습은 탈속하고 고아한 선비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그림의 주제로도 널리 차용됐다.
※ 청대(淸代) 화가 장배돈(張培敦)의 <尋梅圖>
※ 명대(明代) 화가 심주(沈周)의 <尋梅圖>
답설심매(踏雪尋梅)·파교기려(灞橋騎驢)·파교풍설(灞橋風雪)·설중기려(雪中騎驢)·파교탐매(灞橋探梅)·파교심매(灞橋尋梅) 등이 대표적인 화목(畵目)으로 꼽힌다.
파교(灞橋)는 당나라 재상(宰相) 정계(鄭綮)가 "눈보라 휘날리는 날 파교에서 당나귀 등에 타고 있을 때 시사(詩思)가 떠오른다"(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라고 읊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북송(北宋)의 문호(文豪) 취옹(醉翁) 구양수(歐陽修)는 그의 ≪귀전록(歸田錄)≫에서 시상(詩想)을 가다듬는데 가장 좋은 곳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첫 번째로 나귀의 등(驢上)을 꼽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잠자리(枕上)와 뒷간(厠上)을 열거했다.
※ 청대(淸代) 화가 고락(顧洛)의 <답설심매(踏雪尋梅)>
※ 청대(淸代) 화가 황신(黃愼)의 <답설심매(踏雪尋梅)>
※ 청대(淸代) 화가 소신(蕭晨)의 <답설심매(踏雪尋梅)>
※ 명대(明代) 화가 진홍수(陳洪綬)의 <답설심매(踏雪尋梅)>
※ 명대(明代) 화가 곽순(郭純)의 <답설심매(踏雪尋梅)>
※ 청대(淸代) 화가 사복(沙馥)의 <踏雪尋梅>
※ 사복(沙馥)의 <尋梅圖> (1906年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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