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현대 중국화가 섭만숙(葉曼叔)의 <매처학자(梅妻鶴子)> 성선(成扇) (1945年作)
寺裏掇齋餓老鼠 林間咳嗽病彌猴
豪氏遺物鵝伸頸 好客臨門鱉縮頭
(사리철재아로서 임간해수병미후
호씨유물아신경 호객임문별축두)
절에는 잿밥 훔치려는 굶주린 쥐가 있고
숲 속에는 콜록거리는 병든 원숭이가 있네
부호가 물건을 건네주면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친한 손님 오면 자라처럼 머리를 움츠리네
※ 북송(北宋) 때의 인물인 화정(和靖) 임포(林逋)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매화(梅花)를 아내로, 학(鶴)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은사(隱士)다.
그런 임포(林逋)가 평소 허동(許洞)에게 거만하게 굴자 허동이 임포(林逋)를 조롱하여 지은 시(詩)라 한다. 북송(北宋) 때의 인물인 강휴복(江休復)이 지은 ≪강린기잡지(江鄰幾雜志)≫에 실린 얘기이다(※ 鄰幾는 강휴복의 字).
※ 掇: 줍다, 노략질하다, 약탈하다.
※ 咳嗽: 기침
※ 근현대 중국화가 이방원(李芳園)의 <매처학자(梅妻鶴子)> 成面(1944年作)
※ 중국에서 역대로 은사(隱士)는 부귀와 공명이 보장되는 환로(宦路)의 길을 마다하고 강호(江湖)에서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했다. 또한 고결한 인품과 굽히지 않는 절개로 뭇 사람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때로 학문과 경륜을 인정받아 황제로부터 높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은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 인사들은 황제가 은사를 예우하고 높은 관직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관리로 입신하기 위한 방편으로 은사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이른바 '종남첩경(終南捷徑)'이다.
≪대당신어(大唐新語)≫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노장용(盧藏用)은 처음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였다. 나중에 관직을 받고 조정에 나갔다. 중종(中宗) 때는 여러 차례 요직에도 올랐다. 예종(睿宗)이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도사를 경사(京師)로 불렀다.
그가 돌아가려 하자 노장용이 종남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에도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어찌 꼭 먼 곳까지 가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사마승정이 "내 소견으로는 저 산에 사는 것은 관직에 오르는 첩경일 뿐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장용이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노장용 이전 수(隋)나라 때 은사 두엄(杜淹)도 종남첩경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이런 은사들은 당대(唐代)에 가장 많았다고 한다. 중조산(中條山)에서 은거하다가 어느 날 황제의 부름을 받고 달려가 병부시랑이 된 ≪시품(詩品)≫의 저자 사공도(司空圖)가 전형적인 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사좌(沙佐)의 <매처학자(梅妻鶴子)> (1933年作)
종남첩경이란 요컨대 몸은 강호에 있으나 뜻은 조정에 가 있는 은사들의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구당서(舊唐書)≫ <은일전서(隱逸傳序)>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몸은 강호에 있으나 마음은 조정에 노니네. 은사라는 신분에 의탁하여 요행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고, 거짓으로 암자나 골짜기에서 살며 명성을 얻으려 하네. 물러나도 여유 있게 은거하는 절개가 없고, 벼슬을 해도 세상을 구제할 그릇으로는 부족하네. 산으로 옮겨 들어와도 비난을 받고, 바닷가에서 살더라도 질책을 받는구나. 덕이 부족한 사람이 많도다!"
사람들은 위선적인 종남첩경의 은사들을 멸시하고 비아냥댔다. 마치 허동(許洞)이 임포(林逋)를 조롱한 것처럼.
임포와 허동의 얘기를 기록한 강휴복(江休復)이 "항주 사람으로서 (허동의 말이) 맞다"(余杭人以爲中的)고 한 것을 보면 임포(林逋)에게도 은사로서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 청말근대 화가 서림(徐林)의 <매처학자(梅妻鶴子)> (1921年作)
수준 미달의 인물이 은사(隱士)인 체 하며 명예를 훔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절취(竊吹) 또는 남건(濫巾)이라는 말도 있다.
육조(六朝)시대 송(宋)나라 은사인 주옹(周顒)이 북산[北山: 지금의 남경 근처 종산(鐘山)]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남제(南齊)의 조정에 출사(出仕)해 회계(會稽)군 해염(海鹽) 현령을 지냈다.
이에 함께 은거하던 친구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그의 변신을 조롱했다. 그는 출사 이전 주옹의 은거(隱居)를 두고 "竊吹草堂 濫巾北岳"(절취초당 남건북악: 몰래 초당에서 피리를 불면서 북악에서 함부로 두건을 쓰고 다녔다)고 비꼬았다.
여기서 '절취(竊吹)'는 "악기 부는 행위를 훔친다"는 뜻으로 거짓 명성을 훔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악기를 불지도 못하면서 악사로 행세하며 국록(國祿) 축낸 남곽(南郭)선생의 고사[≪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에서 유래한다.
북악(北岳)은 북산, 곧 조옹이 은거했던 종산(鍾山)을 가리킨다. 건(巾)은 은자들이 쓰는 두건. '남건(濫巾)'은 가식적으로 은자처럼 두건을 쓰고 돌아다녔다는 뜻이니 절취(竊吹)와 같은 맥락이다.
※ 명(明)나라 때 그려진 작가미상의 그림 <매처학자도(梅妻鶴子圖)>
'관심사 > 고서화(古書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입골상사지부지(入骨相思知不知) (0) | 2012.01.12 |
---|---|
[스크랩] 죽리(竹裏) (0) | 2012.01.12 |
[스크랩] 무정설법(無情說法) (0) | 2012.01.12 |
[스크랩] 백운여대속산요(白雲如帶束山腰) (0) | 2012.01.12 |
[스크랩] 불경동풍도리화(不競東風桃李花)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