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默念)
이슥한 밤, 밤기운 서늘할 제
홀로 창(窓)턱에 걸어앉아, 두 다리 늘이우고,
첫 머구리 소리를 들어라.
애처롭게도, 그대는 먼첨 혼자서 잠드누나.
내 몸은 생각에 잠잠할 때. 희미한 수풀로써
촌가(村家)의 액(厄)막이 제(祭)지내는 불빛은 새어오며,
이윽고, 비난수도 머구 소리와 함께 잦아져라.
가득히 차오는 내 심령(心靈)은……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무심히 일어 걸어 그대의 잠든 몸 위에 기대어라
움직임 다시없이, 만뢰(萬?)는 구적(俱寂)한데,
조요(照耀)히 내려 비추는 별빛들이
내 몸을 이끌어라, 무한(無限)히 더 가깝게.
걸어앉아 : 걸어앉다(높은 곳에 궁둥이를 붙이고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다)의 활용형. 늘이우고 : 늘이우다(늘리다. 아래로 두 다리를 길게 늘어지게 하다)의 활용형. 먼첨 : 먼저. 액(厄)막이 : [명] 앞으로 닥칠 액운(厄運)을 미리 막는 일. 비난수 : [명] 소망하는 것을 귀신에게 기원(祈願)하며 공을 드리는 일. 만뢰(萬?)는 구적(俱寂)한데 : 만뢰구적(萬?俱寂: 밤이 깊어 아무 소리도 없이 적막하고 고요함)을 풀어 쓴 말. 조요(照耀)히 : [형] 빛이 밝게 비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주객의 경계가 소멸된 혼연일체의 상태는 서정시들이 갖는 일반적인 특성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바로 그런 경지로 들어가고 있다. '가득히 차오는 내 심령은'(8행) 대자연('하늘과 땅 사이')속에 깃들이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간다.
머구리는 개구리의 옛말이라고 한다. 머구리의 첫 소리를 듣는다면 밤이 깊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고, 비난수가 머구리 소리와 함께 잦아지는 시간이란 자정도 훨씬 지나 새벽이 가까워 오는 시간일 것이다. '액막이 제'(6행)를 통해 모든 부정함과 사악함이 물러간 이 새벽까지, 시적 화자는 온 밤을 '묵념'에 잠겨 있다. 묵념은 다름 아닌 존재의 무게를 털어버리려는 구도의 행위이다. 존재의 무게가 사라지면, 대상과 나는 합일의 상태에 이른다.
주객분리의 시간과 주객합일의 시간이 나뉘는 곳에 '무심히'(9행)라는 시어가 놓여 있다. '무심히'라는 시어는, 모든 의도와 생각이 무화되는, 대자연의 비밀스런 정령을 만나는 바로 그 순간을 지칭한다. '무심히'의 상태에 들어섰을 때, 화자는 모든 존재의 무게를 털어버리고 별빛처럼 가벼운 몸으로 돌아간다. 이는 만물과 교감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의 상태인 것이다.
'별빛들이 내몸을 이끌'(13, 14행)어 가는 순수 영혼의 상태에 도달하는 데는 '묵념'이라는 구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합장'이라는 시에서 그랬듯이, 이 시 역시 맑고 가벼운 영혼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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