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父 甘泳生이 쓰시던 벼루
벼루 크기
가로 14cm× 세로 21cm× 두께 3.5cm
벼루 보관함 (오동나무,옻칠)
가로 18.5cm×28cm ×두께 6cm
벼루 뒷면에는 단기 4240년 1907년이라 송곳같은 것으로 긁어 쓴 글이 있다.(할아버지의 필체로 추정)
당시 쌀 2섬(80kg×4가마니)을 주고 산 질이 아주 좋은 것이라 한다.
1907년이라면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당시 증조부가 사신거냐고 하자 분명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어쩌면 증조할머니가 고조할아버지가 이 벼루를 샀느냐고 묻는 걸로 착각해 <할아버지>라고 했을 수도 있는데
왜 벼루 밑에다가 1907년이라고 단기까지 정확하게 적어두었는지는 모른다.
여러 각도로 생각하면서 이 벼루의 제작시기를 할아버지가 적어둔 것게 아닌가 추정도 해보았지만 그건 좀 아닌거 같다.
적어도 110년 이상을 쓴 것으로 보며 1965년이라고 나무 케이스에 쓴 글은 아버지의 필체로 추정된다.
오동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나무 케이스가 낡아 새로 짜서 옻칠한 거라고 들었다.
이 벼루의 특징은 다른 벼루보다 확실히 면이 상당히 부드럽고 먹물이 잘 마르지 않는데
다른 벼루하고는 확실히 특이하고 질이 아주 뛰어난 벼루이다.
아홉살 때부터 내가 붓글씨에 취미가 있었고 늘 학교에 가지고 다니며 이 벼루를 사용했다.
출가후 속가에 처음 갔을 때 이 벼루를 달라고하여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초서를 잘 쓰셨으며 神筆이었다. 또 영어 일어 쓴 것을 본 적 있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글씨였다. 그리고 주역을 초서로, 세필(細筆)로 한 권을 쭈욱 쉬지않고 달아 쓴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과연 神筆이 확실하였다.
할아버지는 놀라운 神童이었는데 5개 국어에 능통하였다.
나는 이 벼루를 볼 때마다, 여기에 먹을 갈 때마다 여기에 먹을 갈고 있는 고조부 고조모 증조부 증조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큰고모 작은 고모 작은 아버지 오빠, 남동생,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13살때 세상을 떠난 나와 우애가 남달랐던 남동생이 자기 이름을 벼루 케이스에 연필로 써둔 것을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동생을 만난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훗날 좋은 날이 오거든 이 벼루는 길이 보존하고 싶다.
文集에 할아버지의 이 벼루도 실어 세상에 알리게 되어 너무 기쁘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즈음 마땅한 곳에 기증을 하여 오래도록 할아버지의 기록물로
남기고 싶으며 그럴 생각이다. 아버지가 살림을 다 날리고 유품등을 전혀 챙기지 않아 여기저기
흩어졌는데 이 벼루를 만약 내가 30년전에 챙기지 않았다면 이것도 없어졌고 여기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챙기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이 벼루를 볼 때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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