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규(甘東珪)와 密州徵信綠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간기(刊記) 및 등재자 명단 (洗川)]
아래는 밀주징신록이 저작되었던 1936년 이전에
세천(洗天)마을에 세거(世居)하면서 밀주징신록에 등재된 유림(儒林)들의 명단입니다
밀주징신록은 지금의 예림서원(禮林書院)을 관리했던 당시의 공공단체인 예림재(禮林齋)에서 인쇄되었습니다
예림재(禮林齋)는 일제식민통치기간에 밀양에 설치된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모든 하부기관을 제외한
조선인이 경영한 유일한 공공단체입니다
즉, 예림재라는 공공단체의 구성원인 유림들은 당시 밀양지역의 최고의 지식인에 해당했으며
징신록의 향약(鄕約) 등을 솔선수범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등
민족정기 함양 및 보존을 위해 또 지역사회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단체에 효전스님의 고조부(高祖父)인 감동규(甘東珪)가 가입하여 활동한 것은
그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기에도 그를 포함한 회산감씨(檜山甘氏) 문중원 11명과
또 나아가 그당시 문망록에 등재된 밀양지역의 지식인 704명(회산감씨 문중원 11명 포함)과 함께
지역과 민족을 위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
이러한 지역과 민족을 위하는 애민 민족주의 정신은 그 하대(下代)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감동규(甘東珪)의 손자 감영생(甘泳生)은 장래의 민족을 위한 스스로의 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지식의 갈구가 일본국 명문 와세다대학 정치학부의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을 것이라 보아진다
즉, 그가 입신영달과 더 많은 부(富)를 위했다면 결코 "정치학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조]
19번글 : 웅부(雄府) 밀양의 “밀주징신록과 밀주지”를 통해 본, 일제치하 마을별. 성씨별(본관별) 문망록 등재 숫자 분석 [1]
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간기(刊記)
著作 : 1936년(昭和11) 5월 12일
發行 : 1936년(昭和11) 5월 16일
著作 兼 發行者 : 安秉禧
밀양군 부북면 전사포리 248
印刷者 : 權永漢
밀양군 부북면 후사포리
인쇄 겸 발행자 : 禮林齋
형태 : 목판본
2. 밀주징신록 등재자 명단 (洗川)
01. 감래성 (甘來聖) 字 希孟 三烈公 甘景人 後孫
02. 감창일 (甘昌一) 字 致萬
03. 감창기 (甘昌基) 字 亘萬 號 黙齋
04. 감기혁 (甘基爀) 字 文玉
05. 감수정 (甘守正) 字 德瞻
06. 감수근 (甘守根) 字 進元 號 三友齋
07. 감태정 (甘台廷) 字 士文 號 溓谷
08. 감갑정 (甘甲廷) 字 敬老
09. 감봉정 (甘鳳廷) 字 暻瑞 號 竹軒
10. 감동길 (甘東吉) 字 起玉
11. 감동규 (甘東珪) 字 明玉 號 毅齋
밀주징신록 등재자 명단 (洗川)
향토 사학자 도재국 글
고조 할아버지 감동규(甘東珪),밀양 유림 자,明玉, 號 의재(毅齋)
毅齋의 의(毅)는 떳떳하다, 굳세다라는 뜻이고 재(齋)는 흔히 집이나 호에 붙이는 말.
사도세자의 호가 의재였는데 왜 고조부께선 의재란 號를 쓰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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