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日記

할아버지前 上書.

감효전(甘曉典) 2015. 4. 21. 20:58

할아버지前 上書

 

 

 

할아버지.할아버지, 아, 아, 할아버지...!!!

이 머리깎은 손녀가, 이 머리깎은 손녀딸이 엎드려 큰 절을 올립니다.

할아버지를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할아버지의 살과 뼈를,그리고 정신을, 피를 물려 받았음을

너무나 너무나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위패속의 할아버지는 젊디 젊은 서른 일곱의, 청년의 모습으로 서 계시고 할아버지보다

50년 늦게 세상에 나온 저는 이제 쉰을 넘겨 머리에 흰 서리가 많이도 앉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일을 알고 나서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는데 할아버지께선 이런 저를 보고 계시겠지요.

할아버지와 저는 무슨 억겁의 인연이 있어 할아버지와 손녀로 만났을까요?

할아버지가 다니셨을 고향의 언덕과 산과 들을, 그리고 할아버지를 그리며 종남산에 가서 좀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달빛이 고운 밤이면 할아버지를 만나러 괭이바다에 가는데 할아버지도 저처럼 좋으시지요?

 

할아버지,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머리깎고 열 아홉살에 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였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놓아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어리석어 마음을 잡지 못하고 그 많던 집안 살림을 다 말아먹고 亡家를 만들었을 때

찬 바닷물속에 엎드려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셨을지 저는 그 마음을 마음으로 짐작하여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그 누구보다도 慧가 밝으셨으니 할아버지께선 벌써 오래전에

좋은 곳에 빛을 따라 가셨을겁니다.

四大肉身은 본래 허망하여 누구 할 것 없이 일단 한 번 태어난 것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결국에는 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 생전에 애지중지 애착하던 이 몸도 숨이 넘어가면 나무토막일 뿐이고 인연따라 모인 것은

인연 따라 또 흩어지니 태어나는 것도 인연이고 다시 돌아가는 것도 인연이니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또 슬퍼하겠습니까?

 

몸뚱이를 가진 이는 그림자가 따르듯이 살다보면 어느 누구라도 죄없다고는 말 못할 겁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은 이는 억겁이 넘도록 아무도 없었고 이후로도 영원히 없을 겁니다.

공자 맹자 부처 예수, 그리고 왕으로 태어나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온 세상을 다 가졌다고 웃고 다녔어도 

결국에는 죽는 것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100년전엔 어느 곳에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셨고 65년전 그 날은 또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고 다시 내(川)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돌고 도는

인생길에 태어났다 죽는 것은 윤회의 흐름이라 앞산에 진달래가 곱게 피면 태어나고

뒷산에 갈잎이 지면 돌아간다 생각하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부모형제 처자가 아무리 좋다하지만 죽는 길엔 아무도 소용없고 대신 할 이 없으니

이 생에 온갖 슬픔 괴로움 그리고 피맺힌 여한은 이제 미련없이 모두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할아버지에게 천인공노할 몹쓸 짓을 저질렀던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악업을 그대로

그 자손 천대 만대에 걸쳐 다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이미 生과 死를 다 뛰어 넘었는데  더 이상 그 무엇을 슬퍼하겠습니까?

두레박이 천길 우물안을 오르락 내리락 하듯이 생사를 오르내리는데 생사의 물을 긷는 바로

그 우물가에서 할아버지와 저는 극적으로 이렇게 다시 또 만났습니다.

100년전 증조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낳기전엔 할아버지는 어디 계셨으며 그리고 또

그 증조 할아버지를 낳았던 고조 할머니가 증조 할아버지를 낳기전엔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누구셨습니까?

 

저는 할아버지가 저의 할아버지인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 다음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히 할아버지의 자랑스런 손녀로 다시 꼭 태어나기를 빕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너무 외로워 마십시오. 언제나 제가 할아버지 곁에 꼭 있겠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마음 다해 깊이 깊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진달래 붉게 핀 어느 봄날에 할아버지를 눈물로 그리는 손녀 효전 올림.

 

'창작 >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4.23  (0) 2015.04.23
퍼즐  (0) 2015.04.22
2015년 4월 18일 오후 10:18  (0) 2015.04.18
2015.4.12  (0) 2015.04.12
2015.4.10  (0) 201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