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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감효전(甘曉典) 2012. 8. 3. 17:40

 

 

                ***우리의 숨 결을 그려낸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취옹(輒醉翁)이다

안산시 단원구는 그의 호 단원을 따온 이름이다.

정조 시대 때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등과 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렸으며 서당, 씨름 등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시도 써서 아들 김양기가 출판한 《단원유묵》이라는 문집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조선 최고의 화가 즉

조선의 4대 화가(현동자 안견,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보통 조선화가에 대한 최대칭송이 시와 글씨와 그림을 동시에 잘 하는 '시서화 삼절(詩書畵 三絶)'인데, 단원은 여기에 음악을 더한 '시서화악 사절(詩書畵樂 四絶)' 로 불러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즉 예술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퓨전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특히 단원은 자신이 남긴 '단원풍속화첩'에 들어 있는 탁월한 25점의 풍속화 때문에

우리들에게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원이 남긴 한국화는 풍속화 뿐만이 아니다. 

산수화, 도석인물화(신선도 등), 영모화(화조화, 동물화) 등 거의 모든 회화 영역에서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고금을 막론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사실주의 즉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화가 바로 단원이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그림크기는 90.4 x 43.8cm)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한국미술의 가장 뛰어난 비평가이며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자 평생을 노력해 온

고 오주석 선생이 지은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출판사)"이란 책을 주로 인용하고,

여기에 현대인의 눈으로 옛그림을 느끼고자 노력하는 동화작가인 최석조 선생이 지은

 "단원의 그림책(2008, 아트북스)"이란 책을 덧붙이고자 한다.

 

오주석은 이 그림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호랑이 그림이라고 극찬하면서,

현재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국보급 작품이며 즉각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도 이 주장에 200% 동의하는 바이다.

 

오주석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 호랑이를 화폭에 가득 차게 하는 균형 잡힌 구성과 여으로 호랑이의 위엄이 절로 넘친다는 것.

 

위 그림에서 표시된 것과 같이 다리 좌우의 여백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나 둘 셋 하고 점점 커지며, 소나무 잔가지의 여백도 아래서 위로 또 하나 둘 셋 커지고 있다. 굵고 긴 꼬리로 나뉘어진 여백 또한 엇비슷한 크기로 하나 둘, 그렇게 해서 모두 8개의 균형 잡힌 여백이 화폭 바깥쪽에 포진하고, 육중한 호랑이 몸통 위에는 또 그만큼 크고 시원스럽게 터진 여백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다가 느닷없이 쓰윽 하고 머리를 내리깔았는데 그 굽어진 허리의 정점이 그림의 정중앙을 꽉 누르고 있다. 화폭이 호랑이로 가득 차 있으며, 그 구성이 호랑이의 위엄을 절로 넘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소재로 삼은 조선 호랑이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것.

조선 호랑이의 특징은 추운 산악지대를 이동하는데 유리한 체형인 짧은 다리와 긴 허리 즉 다리에 비해 동체가 큰 것이다. 귀는 다부지게 작은 반면, 꼬리는 아주 굵고 길며, 발이 소담스럽게 크다. 

입을 크게 벌려 혓바닥과 날카로운 이빨을 내 보이고 있지 않더라도 얼굴과 형태만으로도 육중하고도 민첩하고 유연한 위엄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셋째, 그림 자체의 초사실성에 있다. 다음 사진은 실제 크기가 15cm도 채 안되는 호랑이 머리 부분만을 확대한 것으로, 여기에 나타난 호랑이 털은 실바늘(반짓고리 속에 든 제일 가는 바늘보다도 더 가는 획) 같은 선을 수천 번이나 반복해서 그렸다.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결코 없다고 오주석은 단언한다.

그리고 묘사력은 그림 그리기 이전에 정신 수양이 먼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섬세한 필획을 검정, 갈색, 연갈색, 그리고 배쪽의 백설처럼 흰 터럭까지 수천 번 반복해서 그렸지만 전혀 파탄이 없을 뿐더러 묵직한 무게는 무게대로, 문양은 문양대로, 생명체 특유의 유연한 느낌까지 다 살아 있는 것이다.

 

넷째, 호랑이의 생태가 그림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는 소나무 부분을 확대한 것인데 소나무 둥치 한가운데에 가는 잔가지처럼 보이는 것(긴 타원형 흰선안)이 평행으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잔가지가 아니라 호랑이가 발톱으로 긁어내린 자국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호랑이는 다섯살에 어른이 되는데 세살까지는 엄마랑 살면서 사냥을 배우고,

세살에서 다섯살까지는 대개 자기 혼자서 영역을 개척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사냥에 아직 서툴러 어렵사리 사냥에 성공해서 배부르게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가지고 나무 줄기에다 발톱을 세워서 이렇게 북북 긁어 내려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데 이때 긁어내린 자국이 아물어서 생긴 흔적인 것이다. 그리고 줄기 아래의 검고 동그란 것(동그란 흰선 안)은 호랑이가 긁어내린 소나무껍질이 줄기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랑이는 영물이어서 아무 나무에나 긁는 것이 아니고 꼭 우리 토종인 줄기껍질이가 붉으면서 거북등처럼 생긴 소나무에만 영역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호랑이 자체의 사실성 뿐만이 아니라 은밀한 생태의 사실성까지도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오주석은 이렇게 송하맹호도를 우리나라 최고의 사실주의 그림으로 평가하면서,

이 그림이 단원과 단원의 스승인 표암강세황(豹菴姜世晃: 1713~1791)의 합작품이라는데 반론을 제시하면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반론은 이 그림의 낙관에서 비롯된다. 아래 확대사진에서 보듯이 왼쪽 아래에는 '사능(士能)'이라는 김홍도의 자가 있다. 이 글씨는 직선으로 빠르고 패기만만하게 씌여져 있고, 오른쪽 어깨가 들려 있어서 오주석은 사십 전후의 단원글씨라고 추정하고 있다. 반면 오른쪽 위의 낙관은 '표암화송(豹菴畵松)'이라고 적혀 있는데, 표암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렸다는 의미다.

 

그런데 '표암화송(豹菴畵松)'의 네 글자를 찬찬히 뜯어보면 위 두 글자인 '豹菴'과 아래 두 글자인 '畵松'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두 글자는 왼쪽 낙관인 '士能'이란 글자와 먹색이며 필치까지도 똑 같은데 위 두 글자  '豹菴'은 글씨가 흐릿할 뿐만 아니라 애초 잘못 쓴 엉터리 글씨라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탕 비단도 좀 긁힌 흔적이 보인다. 아마 원래 쓰여져 있던 글씨를 지우고 새 글씨를 쓰려고 무리하게 바탕을 긁어낸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 그림값을 높히기 위하여 단원과 표암의 합작품으로 만들려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이런 조작을 했을까? 오주석은 '송하맹호도'를 표구한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송하맹호도'는 다음 사진과 같이 표구되어 있다.

반면 노무현정부때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은 오주석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표구된 송하맹호도는 그 기막힌 걸작품이 째째해 보인다.

즉 철창에 갇힌 호랑이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림은 조선그림인데 표구는 일본식이기 때문이다. 일본문화는 화려하고 표현적인 것을 좋아하고 직정적이며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조선그림은 은은하고 점잖은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표구도 우리나라에선 비단에 이렇게 무늬가 요란한 것은 절대 쓰지 않고 그저 단색으로 옅은 옥색 바탕을 위아래에 민패로 깔고 만다. 그랬던 것을 이렇게 그림 바깥쪽에 온통 정신사납게 금빛 국화무늬며 구름 문양 등을 가득 둘러놓았으니 그만 그림이 갇혀 가지고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이를테면 조선사람이 기모노를 입고 있는 꼴이며, 작품보다 료구에 더 신경이 쓰인다.

이건 비록 '송하맹호도'만의 문제는 아니란다. 우리나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된 옛그림의 70%가 다 이런 일본식으로 표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때 우리의 품위있는 옛그림이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인다.

 

그럼 왜 이런 조선식으로 뜯어고치지 않는가?

그것은 표구할 때 그림이 반드시 상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일본의 표구실력은 뛰어난 편이라서 그림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훌륭한 표구 값은 그림 값에 버금갈 정도로 비싸다.

 

이런 오주석의 비평에 더하여 최석조는 이 그림에서 '나노(nano)'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1천만 화소짜리 디카의 사진도 이렇게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미에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과 같은 극단적인 사실성도 있다. 따라서 이런 사실성이 한국미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최석조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송하맹호도의 호랑이와 같은 이런 걸작 미술품들이 박물관에만 걸려 있을 게 아니라 우리 피부에 살갑게 와 닿는 '촉촉한 생필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 휘장 엠블럼이 단원의 풍속화 '무동'에서 무동이의 팔놀림을 형상화하였듯이,

우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붙는 마크를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해피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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