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관 기생과 만나다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에 소장된 명월관 기생의 그림
그냥 아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특별관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명월의 얼굴은 땅거미 밀려드는 어둔 저녁, 해가 뉘엿뉘였 저버리고 殘光만 남아 숨넘어가는 서산 마루이거나, 먹물이 풀어지듯 스러져가는 저녁 날의 어스푸레한 색깔로 눈에 들어 왔다. 아무 표정없이 멍하게 풀려 있는 눈빛에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처지를 겪은 자에게서 배어나는 침묵의 쓸쓸함이 담뿍 묻어 나왔다. 그건 식민지 조선여성의 슬픔이었을 게다.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쓰모토 시였다. 밤새 알지 못할 설레임에 뒤치락 대며 맞은 아침은 이국의 여행자의 피로로 조금 힘들었다. 약간 충혈된 눈으로 나간 아침 식사자리, 다른 일행들에게도 엷은 고단함이 얼굴에 깔려 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고산준령들이 위치한 나가노현은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설산의 장엄함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곳곳에 만발한 벚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봄날의 따뜻한으로 평화롭게 해주었다. 그렇게 평안한 휴양도시에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간직한 한 장의 그림이 존재하리란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쓰모토 시립 박물관의 큐레이터 호소가와상은 의심에 가득찬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 한국에서 이곳까지 와서 이 그림을 굳이 보려고 하시는 이유는 뭐죠? 그림속의 여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우리가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셨죠? ”
일본 화가 이시이 하쿠테가 그린 ‘홍련화’라는 그림을 신청한 나에게 마쓰모토 미술관은 시종 의아심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았다. 상설 전시하고 있는 그림도 아니고, 존재자제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그림을 찾아내서, 특별 열람을 신청하는 이유가 미심쩍었던 듯 하다.
한참의 설명이 지나고 나서, 호소가와 상은 우릴 데리고 특별 열람실로 안내했다. 거시서 나는 처참하게 짓밝힌 조선 여인의 얼굴과 만나고 말았다. 나무 관세음 보살마하살.
국과수에는 ‘조선여인의 생식기 표본’이 하나 존재한다. 일제시대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를 일제시대 경찰이 적출한 것이라고 한다. 속칭 ‘명월이의 생식기’라 알려진 이 표본에는 우리가 무심코 놓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 여인의 비극이 숨어있다. 이 표본은 일제시기 명월관 기생 ‘명월’의 생식기로 ,그녀의 사후 일제에 의해 적출되어 표본화된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현재까지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녀 사후 일제 경찰이 ‘성적 호기심으로 생식기 적출’ 지금까지 그 표본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8일 나는 뜻을 같이 하는 불교 신자들과 함께 서울 중앙지법에 ‘여성 생식기 보관 금지 청구의 소’를 제출했다. 여성의 생식기를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표본화하여 보관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우가 아닐뿐더러, 남성의 노리개로 불행하게 살다간 여인에 대해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성적 노리개’로 만드는 ‘심각한 인격적 침해’이다.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국과수에 보관된 인체표본 역시 비참한 시기를 살다간 슬픈 여인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이런 표본을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보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분명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일제의 만행이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아무리 식민지 시기 벌어진 일제의 반인륜적 만행이라지만, 피고가 현재까지도 보관하며 인도적인 합당한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사유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쓰모토 시립 미술관에서 만난 명월이는 아름다웠다. 현대적 미인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세련된 자태에 최고에 오른자만이 풍겨내는 도도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그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 보면서 망국이란 무엇인지, 식민지라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에 도달했다.
명월관 기생과 일본 화가 이시이의 관계는 이미 세상에 회자되는 이야기고, 그 기생이 사후 생식기가 적출되어 표본으로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도 구전상이나마 떠돌아 다니는 말이었다. 이 소문을 모티브로 2003년 강수연 주연의 ‘써클’이란 영화가 만들어 지기도 한 만큼, 거의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 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 생식기 표본을 없애거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사람이 없었을까?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조선여인에 대한 미안함도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이었을까? 오히려 일제가 남기고 간 표본을 보면서 ‘음침한 웃음’으로 키득대며 추잡한 말들을 지껄여 왔던 우리 모습에 눈이 질끈 감긴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마쓰모토 미술관의 그림 ‘홍련’이 국과수의 인체표본이라는 것을 정황상 추정할 수는 있지만 확정하기에는 지나친 무리가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확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없다. 그러나 모든 정황이 그 그림이 국과수 표본과 일치한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백번을 양보해서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여인을 일제가 인체 표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자체는 변함없는 일일 것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해, 누군가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인터넷에서 안중근을 검색하면‘도시락폭탄’이란 연관 검색어가 뜨는 나라에서 ‘경술국치 100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안중근과 윤봉길을 구별하지 못하는 그런 슬픈 우리의 모습이 ‘명월관 기생’의 초상화 그리고 국과수 보관된 ‘조선여인의 생식기 표본’이 무슨 의미를 던질 수 있겠느냐고..
.그러나 이 한 장의 그림, 이 한 장의 사진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빼앗기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공공연히 논의돼는 우리 사회에 일제에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를 이 여인의 그림에서 느끼게 될 수 있기를 , 그리고 조선의 아름다움을 유린당하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식민지 근성을 밝히는 달빛이 되기를....
이제 찬을 짓는다.
.
조선아! 이제 고개를 들어
동산위에 차오르는 저 둥근 보름달을 보아라
망국의 슬픔마저 잊고 키득거리는
경망한 네 나라의 사내를 깨우치러
100년의 세월을 넘어 떠오르는 명월(明月)
나라잃은 못난 사내들의 시름겨운 취기를
어르고 달래던 기생의 몸은 그만 버리고
본래의 네 모습, 관음보살의 정신만 추슬러 오너라
노예의 어둠을 거두러
식민지 조선의 어리석음을 깨치러
두둥실 두둥실 하늘 높이 떠올라
네 나라 곳곳에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노래로 구비치거라
明月이 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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