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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통 생활문화 특별 우표

감효전(甘曉典) 2012. 7. 21. 12:24

 

전통 생활문화 특별(첫 번째 묶음)전통 생활문화 특별(첫 번째 묶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생활용품들을 통해 선조들의 생활의 멋과 지혜를 배우고자 전통 생활문화 특별 우표를 발행한다. 그 첫 번째 묶음으로 발의 보호와 장식을 위해 착용하였던 신발을 소개한다. 신발은 성별과 신분, 직업, 복장에 따라, 재료와 형태를 달리 하여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운혜(雲鞋)=여인네들이 신는 목이 짧은 신으로 온혜(溫鞋)라고도 하며, 비단과 융으로 가죽 위를 입히고, 코와 뒷꿈치에 구름무늬의 비단을 대거나 수를 놓기도 하였다. 바닥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바닥에 징을 박기도 하였다. 주로 공주나 옹주의 신발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궁중이나 상류층 여인들의 신발로 사용되었다.   목화(木靴)=목이 긴 신으로 관복과 함께 신었으며 바닥은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다시 가죽으로 감쌌다. 목부분은 검정색 천으로 만들었는데 전(氈)·가죽·융(絨)·금단(錦緞)으로 겉을 씌우고, 솔기에는 색깔이 있는 천으로 선을 둘렀으며 모양은 반장화와 비슷하게 생겼다. 오늘날까지도 전통 혼례나 폐백 때 신랑이 입는 관복과 함께 신는다.   짚신=짚을 엮어 만든 신으로 비구(扉 )·초혜(草鞋)라고도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신발로 먼 길을 갈 때나 들일을 할 때, 또는 평상시에 주로 신었다. 신코가 짧고 엉성하게 짜여져 있으며 앞의 총이 굵직굵직하고 26∼30개의 총을 세웠다. 삼이나 삼으로 꼰 노끈, 왕골이나 부들로도 만들었다.   나막신=주로 비나 눈이 올 때 신는 신발로, 나무로 만들었다. 굽이 있는 것과 굽이 없는 것이 있는데 굽의 용도는 발에 물이나 진흙이 튀어 들어가는 불편을 막기 위한 것이다. 나무는 주로 오동나무나 버드나무와 같이 단단하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방수를 위하여 밀랍을 칠하기도 했다. 신분이나 나이에 구별 없이 많이 신었고, 아이들의 나막신은 색깔을 칠하여 치장하기도 한다.
 

 

전통전통 생활문화 특별(두 번째 묶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생활용품들을 통해 선조들의 생활의 멋과 지혜를 배우고자 전통 생활문화 특별 우표를 발행한다. 그 두 번째 묶음에서는 운송수단이었던 가마를 소개한다.

어연(御輦)=임금이 타는 가마로 난가(鸞駕), 난여(鸞輿)라고도 한다. 원래 연(輦)과 여(輿)는 구별이 있어, 연은 임금이 타는 것으로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끌게 되어 있고, 여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다. 앞과 좌, 우에 주렴(珠簾: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을 늘이고 보장(寶帳: 화려한 휘장이나 장막)을 올렸으며 손잡이가 길다. 초헌=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외바퀴 수레로 일륜거(一輪車), 명거(命車), 또는 초차라고도 불렸다. 쇠로 된 외바퀴 위에 의자가 높이 올려져 있고 손잡이가 앞뒤로 길게 달려 있다. 여섯 명 내지 아홉 명이 끌고 밀며 의자 등받이에는 해와 구름, 물결무늬 등이 새겨졌다.  사인교(四人轎)=민간에서 혼례 때에 신부를 태우던 가마로 앞뒤에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명이 메었다. 색색의 술을 달고 화려하게 수놓은 막을 쳐서 장식하였다. 가마를 메고 갈 때에는 네 명이 서로 발을 맞추어야 하고, 또 먼길을 갈 때에는 피로를 덜기 위하여 권마성(勸馬聲: 발을 맞추기 위해 부르는 노래) 소리를 하면서 간다.  남여(籃輿)=뚜껑이 없는 작은 가마로, 의자와 비슷하고, 위를 덮지 않아 주로 산길 등 좁은 길을 갈 때 이용하였으며 앞뒤에서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나무를 이었다. 교꾼이 네 명인 것은 종이품 참판 이상, 두 명인 것은 정삼품 이상의 당상관이 탔다.
 

 

전통전통 생활문화 특별(세 번째 묶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생활용품들을 통해 선조들의 생활의 멋과 지혜를 배우고자 전통 생활문화 특별 우표를 발행한다. 그 세 번째 묶음에서는 등기구(燈器具)를 소개한다.

조족등(照足燈)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주로 궁중의 빈전(殯殿)이나 순라군(巡邏軍)이 야경을 돌 때 사용하던 것으로, 위쪽에는 손잡이를 붙이고 등의 내부에는 초를 꽂는 철제의 회전용 돌쩌귀가 있어, 등을 상하좌우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뼈대는 댓가지나 쇠로 만들고 표면에는 누비 주름 무늬의 기름종이를 두껍에 바르고 밑은 잘라 틔워 발 밑을 비추도록 하였다.   나무등잔(木製燈)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나무등잔은 적당한 높이에 등잔을 얹도록 되어 있는 등경(燈 )과 걸이용 단이 없이 상반부에 등잔을 얹도록 만든 등가(燈架)로 나눈다. 이 나무등잔은 8각형의 받침 위에 기둥을 세우고, 등잔걸이에 등잔을 걸고, 그 밑에 기름받이를 달았다. 나무등잔은 상하귀천 없이 가장 애용되던 실내 등기구이다.  
주칠목제육각제등(朱漆木製六角提燈)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제등은 밤에 다닐 때나 의·예식에 사용하던 휴대용 등기구로, 보통 철사·놋쇠·대나무 등으로 골격을 짜 맞추고, 표면에는 한지나 깁(紗)을 바르고, 윗부분에 손잡이를 달아 이동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이 등은 골격을 나무 육각형으로 짜 맞추고 궁중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주칠(朱漆)로 마감하고 한지를 발라 멋을 내었다. 놋촛대(鍮器燭臺)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촛대는 일상생활과 의·예식용, 이동용인 수초(手燭)가 있다. 기본형태는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과 같은 모양의 받침 위에 기둥이 서고, 그 위에 짧은 초꽂이 촉이 달린 받침접시가 있고, 뒤편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불후리(火扇)가 부처님 광배(光背)처럼 달려 있다. 이 놋촛대는 나비모양의 불후리가 달린 놋쇠로 만든 촛대이다.  

 

전통전통 생활문화 특별(네 번째 묶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생활용품들을 통해 선조들의 생활의 멋과 지혜를 배우고자 전통 생활문화 특별 우표를 발행한다. 그 네 번째 묶음에서는 소반을 소개한다. 우표에 소개된 소반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족반(狗足盤) - 19세기. 높이 28.7cm. 지름 39.5cm.
개의 다리와 같이 다리가 안쪽으로 휘어져 있어 구족반이라 부른다. 느티나무 통판으로 된 둥근반에 자개로 수(壽)자와 천도(天桃), 학(鶴)을 새겨 넣고 흑칠을 엷게 입혔으며, 변죽의 안팎에 붉은 칠을 엷게 하여 문양을 강조하였다. 장식이 없는 굵은 다리는 남성적인 느낌을 주며 기능적인 구조가 특징인 구족반에 화려한 자개가 장식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풍혈반(風穴盤) - 19세기. 높이 27.5cm. 지름 43.5cm.
관청으로 점심을 나르거나 야외에서의 식사를 위하여 머리에 이고 나르며 또 식사를 하기도 하는 다목적 소반으로 번상(番床)이라고도 한다. 음식을 나를 때 앞을 볼 수 있고 또 손잡이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뚫린 창은 풍혈장식의 아름다운 선으로 조각되어 기능과 장식을 겸하고 있다.
일주반(一柱盤) - 19세기. 높이 26.3cm. 지름 36.5cm.
한 개의 기둥으로 반을 받치고 있어 단각반 또는 외다리소반이라고도 부른다. 간단한 주안상이나 한 그릇의 물, 약, 과일 등을 받치는데 사용한다. 기둥은 마치 네 가닥의 줄을 꼰 듯이 투각하여 경쾌하게 처리하였고 네 발에는 당초문(唐草紋) 조각으로 화려함을 주어 균형의 미를 보여주고 있는 명품이다.
해주반(海州盤)- 19세기. 높이 25cm. 넓이 32.4 x 28.8cm.
황해도 해주 지방에서 주로 만들어졌던 해주반은 간결하면서도 귀족적인 멋을 풍기지만 장식성이 강하여 구조적으로 약한 단점이 있다. 상판에는 은행나무 통판을 사용하였고 두 개의 판각에는 卍자를 투각하였으며 두 판각을 연결하는 족대(足臺)는 긴 것을 사용하지 않고 짧은 족대를 대어 더욱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통 생활문화 특별(다섯 번째 묶음)전통 생활문화 특별(다섯 번째 묶음)   

 전통 생활문화 특별 다섯 번째 묶음에서는 우리의옛 바느질 도구를소개한다. 예로부터 바늘,실, 자,골무, 가위, 인두, 다리미를 규중칠우(閨中七友)라 하여 여인네들이 항상 곁에두었다. 우표에 소개된 바느질 도구들은 조선 후기의 것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반짇고리-바늘. 바늘집. 실패. 골무. 가위. 자. 인두 등을 넣어 두는상자로 대나무. 종이. 나무 등으로 만든다. 상자형, 서랍 달린 것, 포개는거,손바구니형 등이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에서는 자개 화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서민층에서는 대부분 종이로 만든 지함을 사용하거나 고리버들이나 대를 가는게 잘라 만들었다.  골무-바느질을 할 때 검지의 끝에 끼고 바늘귀를 밀어주는 도구로 바늘귀에 손이 상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늬있는 헝겁, 색비단, 가죽 등으로 만들고 표면에 수를 놓은 것도 있다. 예전에는 혼례 직전에 대게 4~5죽을 만들어 이웃 아낙들이 혼수구경을 오면 바늘과 함께 골고루 선물로 주었소, 또 인사차 골무를 돌려 신무의 솜씨를 뽐내는 풍속이 있었다.   실패-바느질에 쓰는실을 감아 두는 도구로 대개 나무로 만들었다. 형태는한 쪽이 긴 장방형이나 네 귀퉁이가 튀어나와 있는 구뿔형,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절구통형 등이 있다. 화각장식, 나전칠기 등 화려한 무늬가 있는 상류층 실패와 투박하고 장식이전혀 없는 민간용 실패가 있다.   바늘집-바늘을 담아 보관하는 도구로 백동 대모 헝겁으로 만든다. 백동 바늘집은 위 뚜껑을 올리면 아래 부분에 머리카락이 채워있어 바늘을 꽂도록 되어있다. 형태는 조롱박형을 비롯하여 다양하며, 문양을 넣거나 술을 달아 노리개로도 사용하여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하였다. 여인네들은 의생활을해결하라는 뜻에서 항상 바늘빕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전통 생활문화 특별(여섯 번째우표)전통 생활문화 특별(여섯 번째 묶음)   

 전통생활문화 특별 마지막 발행인 여섯 번째 묶음 에서는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거나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쓰던 관모(冠帽)를 소개한다. 관모는실용적 장식적 상징적 의미를 담아 다양한 형태로 발당되어 왔다. 우표에 소개된 관모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금관(金冠):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원단, 국경일, 대제례(大祭禮), 조칙의 반포 시에 조복(朝服)과 함께 착용하던 것으로 이를 금관조복이라고 한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이며 관 전체의 머리둘레 부분과 후면 전체에 당초무늬를 하였으며, 여기에 금칠을 하고 나머지는 흑색이었다. 여기에 목잠(木箴) 이라는 관을 가로지르는 비녀가 있어 그 목잠에도 금칠을 하였다.   패랭이:대나무 가지로 성글게 엮어 만든 조선 초기에 흑립(갓)이 양반층의 전유물이 되면서 역졸, 보부상,백정 등의 신분이 낮은 이들이착용하거나 상복(喪服)으로서 상주(喪主)가 외출 시에 두건에 쓰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착용하기도 하였다. 역졸은 흑칠한 것을 쓰고, 보부상은 갓끈을 꿰어 단 꼭대기에 주먹크기 만한 목화송이를 언져 �다.  사모(紗帽):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문무백관이 평상복에 착용하던 관모로 서민들도 혼례 때에는 사모를 착용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사모는 뒤가 높고 앞이 낮아 중간에 턱이 진 형태로 뒷면이는 좌우로 각(角)을 달았다. 겉면은 죽사(竹絲)와 말총으로 짜고 그 위에 얇은 비단을 덮었다.    :세죽사(細竹絲)나 말총으로 만드는갓은조선시대를 이어 내려온 대표적인 관모로 흑립(黑笠)이라고 불리며, 조선 초에는 백관 조복(朝服)에 사용되기도 했고, 나중에는 사대부와 서민의 통상 관모로 말엽까지 착용되었다.  갓 끈을 맬 때는 다는 정자를 백옥 정자, 수정 정자(頂子) 등으로 다르게 하여 그 사람의 직품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출처;minbs2000.com.ne.k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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