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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유산등록 특별 우표

감효전(甘曉典) 2012. 7. 21. 12:23

 

세계유산등록특별(첫번째 묶음)세계유산등록특별(첫번째 묶음)   

  세계문화유산이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세계유산위원회가 협약 가입국의 문 화유산중에서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 고 인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람표에 등록하는 문화재를 말합니다. 불국 사와 석굴암, 해인사 대장경판 및 판고, 종묘 등 3건의 우리나라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19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위해 2종의 우표를 발행합니다.

  신라인이 꿈꾸던 이상의 세계, 불국사-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A.D. 751)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에 의해 기공 되고 혜공왕 10년(A.D. 774)에 대가람(큰 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조 선 선조 26년(A.D. 1593) 왜병의 침입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 후 대 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다시 세움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 습니다.   불국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창건 했다고 하나 그가 죽은 후 국가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원찰(願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불국사는 그 가 람배치에 있어 이상적인 불국정토(佛國淨土-부처와 보살이 함께 머물고 있 는 세계)를 현세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균형의 미를 잃지않은 아름다움을 불국사에서 느껴보십시오.

숭고한 깨달음의 경지, 석굴암- 불국사와 더불어 신라 경덕왕 10년(A.D. 751) 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 굴암은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 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석굴암의 내부에는 이상적인 인간상의 구현인 여래좌 상불상을 중심으로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석굴의 구조는 그 평면과 입면이 과학적이고도 철학적인 수리체계를 이루어 부분과 부분의 조화, 전체에 의한 부분의 통합이 빈틈없 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석굴의 방향이 동짓날 해뜨는 방향(29.4°)과 일치한 다는 사실, 그리고 현대의 과학도 풀지 못할 정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팔각 형 등 기하학적 수리의 완벽한 조합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석굴암, 이는 신 라인의 불심(佛心)이 이뤄낸 경이로움입니다.

 

세계유산등록특별(두번째묶음)세계유산등록특별(두 번째 묶음)  

  국난극복을 위한 간절한 염원, 해인사 장경판전......     

 가야산의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典)에는 불심(佛心)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혼이 담긴 불교유산, 대장경판(8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장경판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8만 1258장의 글자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고 마치 한사람이 조각한 것처럼 통일을 이루고 있어 그 당시의 조각기술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장경판전은 판전내의 온도와 습도, 통풍 등을 그 입지와 건물자체로 자연적으로 조절하여 경판을 온전히 봉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조상들의 과학적 사고와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15세기의 건축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고 동·서쪽에도 작은 규모의 동사간전<東寺刊殿>·서사간전<西寺刊殿>을 두고 있습니다. 1488년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화재나 전란 등의피해를 입지않았으며 1622년에 수다라장을 중수하고 1624년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습니다.      #  우표와 함께 선인들의 고귀한 정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유산세계유산등록특별(세 번째 묶음)  

이번에 소개되는 종묘는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에 이어 세계유산등록 특별 그 세 번째로 선보이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흐르는 공간,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왕과 왕후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고 제향을 행하는 신전으로 제례를 위한 공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건축은 결코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으며 대신 유교의 검소함으로 완성되어 있다. 종묘의 정전은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의 건축양식으로 동 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건평 2,270㎡)로서는 세계에서도 연건평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로 추정된다. 종묘제도의 발생지인 중국과도 다르며 서양건축에서는 전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유형이다.
500년전의 선율이 전해지는 종묘제례-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향을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제례라는 제향의식이 거행되고 있는데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을 포함하는 종묘제례악이 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와 악무에 나타난 의례절차, 의례음식과 제기, 악기와 의장물, 그리고 의례음악과 의례무용 등은 중국의 고대문명을 바탕으로 형성된 의례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고대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동양 고대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유산등록 특별세계유산등록특별(네 번째 묶음)  

우리의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등록 특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은 각 나라의 주요문서나 필사본, 구비전승 세계기록자료, 시청각자료 가운데 세계적으로 보존할만한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되어 국제목록으로 등재된 기록물로서, 유네스코는 1997년 처음으로 22개국의 38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였다.
백성을 일깨우는 글 - 훈민정음=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은 1443년에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워 사용할 수 있도록 독창적인 우리문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글'을 한문으로 해설한 책으로 1446년에 세종의 명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새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용례를 담고 있다. 훈민정음의 출판일을 '한글날'로 제정하였으며, 유네스코에서는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이라 명명하여 이를 기리고 있다.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는 훈민정음은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살아 숨쉬는 500년의 역사 -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정치, 경제, 사회, 풍속, 종교 등 각 분야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또한 실록의 원고가 되는 사초(史草)는 사관(史官)이외에는 군주라 해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함으로써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실록이 완성된 후에는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등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각각 1부씩 보관하였다. 정족산본 등 2,077책은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어 서울대 규장각, 정부기록보존소 등에 보관 관리되고 있다.

 

문화유산세계유산등록 특별(다섯 번째 묶음)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궁궐의 미학...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년)에 지어진 궁궐로 먼저 건립된 경복궁의 동쪽에 조성되어 경복궁의 이궁 또는 동궐이라 불린다. 광해군 이후 고종 때까지 왕이 정사를 보았던 법궁으로 오랜 기간 소실과 중건, 개수, 보수를 반복해 왔다. 선정전과 인정전, 평시 임금이 정사를 보던 희정당, 왕비의 침소인 대조전, 돈화문 등 많은 중요 문화재가 남아있는 창덕궁은 인류 역사상 널리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선정전(宣政殿)=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국가의 정치를 의논하던 창덕궁의 편전(便殿)이다. 아홉칸 밖에 안 되는 단층의 낮고 아담한 건물로 중앙에 임금이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를 배경으로 앉고, 동쪽엔 문관이, 서쪽엔 무관이 자리를 잡으며 한쪽에 사관이 앉아 문답하는 내용을 기록하여 사초(史草)로 삼는다. 보물 제814호
인정전(仁政殿) =왕의 즉위식이나 신년하례, 사신 접견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가 펼쳐지는 창덕궁의 정전(正殿)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중층으로 세워진 전각이며 내부는 아래 위층이 트여 있다. 뜰에는 양 옆 두 줄로 품계석이 늘어서 있어 만조백관이 도열하게 된다. 국보 제225호

 

세계유산세계유산등록특별(여섯 번째 묶음)    

화성(華城)은 조선조 제22대 정조의 효심과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화성을 건축하게 되었다.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3여 년에 걸쳐 완성된 화성은 성문(城門)과 비밀 출입문인 암문(暗門), 감시장소인 적대(敵臺), 전망대이자 공격장소인 공심돈(空心墩), 적을 공격하는 장소인 포루(咆樓)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며, 수해와 전란으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학자 정약용에 의해 건축된 화성은 동서양의 건축술과 과학기술을 아울러서 축조된 군사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라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불규칙적인 형태를 지니면서도,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룬 건물로,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동북각루(東北角樓)라는 원래의 이름처럼, 유사시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의 기능을 지닌 장소이다. 방화수류정은 목조와 벽돌을 결합한 건축물로, 상부는 기존 목조건축의 구조를 살리고 있고, 하부는 기단벽면의 테두리는 석재로 짜고 그 내부를 벽돌로 채워 넣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동북공심돈은 화성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로 꼽히는데, 원통형으로 축조되어 내부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공심돈이란 전시에 사용되는 관측소로 위, 아래에 구멍을 뚫어서 바깥 동정을 살필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포를 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성벽 상부에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세계유산등록 특별세계유산등록 특별(일곱 번째 묶음)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지난 2000년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강화·화순·고창의 고인돌 유적은 밀집분포도나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장례 및 의식유적을 만들어냈던 선사시대 기술 및 사회발전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어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강화 고인돌=강화에는 덮개돌의 길이가 7.1m, 높이가 2.6m인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내가면에 있는 고인돌에서는 돌칼·돌화살촉·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순·고창 고인돌=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약 10㎞에 걸쳐 500여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또한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기류, 토기류, 청동기류, 장신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전라북도 고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약 1,764m 범위에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 442기가 분포하고 있다.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산면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남쪽 한계선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유산등록 특별  세계유산등록 특별 

  신라 천년(B.C. 57-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할 만큼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경주역사유적지구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유적의성격에 따라 남산지구와 월성, 대릉원, 황룡사, 산성지구 등 모두 5개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불교의 성지로 여겨진 탓에 수많은 불교 유적이 남아 있는 남산지구는 고대 불교 미술의 보고로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과 포석정, 미륵곡 석불좌상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그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월성은 천년왕조의 궁궐터로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첨성대 등이 월성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고분군 분포 지역인 대능원지구에서는 250여 기가 넘는 신라왕과 왕비, 귀족들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신라 최대의 가람이었던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는 황룡사지구는 신라시대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40,000여 점의 출토유물과 함께 신라불교의 정수로 불리고 있다. 이와 함께 왕경방어 시설인 산성지구에는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과 서형산성, 남산성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뛰어난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우표는 대릉원의 모습과 서수형토기(瑞獸形土器), 금관총 금관, 양산 금조총(梁山 金鳥塚 )에서 출토된 금제이식(金製耳飾), 그리고 안압지 납석제(蠟石製) 사자향로, 금동삼존판불, 금동가위의 모습을 각각 담고 있다.

 

세계유산등록 특별  세계유산등록 특별 

   저잣거리 한가운데 고수의 장단에 맞춰 신명나는 판소리 한자락이 구성지게 울러 퍼진다. 때로는 서민들의 아픔과 기쁨 등 삶의 이야기가, 때로는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의 노래가 소리꾼에 의해 구수하게 불리어 왔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노래해 온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인규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으로 선정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표를 발행한다.

 '많은 청중들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공연으로 그 이름처럼 청중들의 추임새와 흥이 더해지며 무대와 객석이 어우러지는 판으로 완성된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전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충, 효, 의리, 정절 등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얘기들은 계층을 망라하고 사랑받아 왔으며 현재 심청가, 홍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만이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정착되었다. 판소리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어 왔는데 전라도 동북지역의 소리제를 동편제(東便制)라 하고 전라도 서남지역의 소리제를 서편제(西便制)로, 경기도와 충청도의 소리제를 중고제(中古制)라 불렀으나 현제는 제(制)에 대한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우표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흥보가 창본(唱本)과 기산풍속도첩(19c, 김준근, 숭실대학교 박물관 소장) 중 소리꾼이 판소리를 하는 모습을 그린 '가객창장(歌客唱場)', 그리고 평양도십첩병풍(19c,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중 조선시대 최고명창이라고 손꼽히던 모흥갑을 그린 부분을 소개하였다.

 

 

 

 

 

 

 

<출처;minbs2000.com.ne.k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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