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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편지, 새처럼 날고 말처럼 달려서 가다.

감효전(甘曉典) 2012. 7. 21. 12:16

 

 



편지, 새처럼 날고 말처럼 달려서 가다.

모든 편지에는 우표가 붙는다. 그런데 몽골은 그 우표 자리에 다른 재미있는 문양을 새겨 편지를 보낸다.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해 급히 전송할 편지 봉투에는 새를 그리고, 조금 덜 급한 편지에는 말을 그려 넣는 것이다. 우리로 보면 지급이나 속달 편지를 의미하는 문양인데, 새 문양에는 ‘날아라, 날아라’라고 쓰고, 말 문양에는 말굽 그림과 함께 ‘달려라, 달려라’라고 기록한다. 그런 편지는 새처럼 날고 말처럼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은 역참제라는 몽골제국의 정보전달 시스템에서 기인한 것이다. 몽골 제국은 한 시절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했고, 수도 카라코롬은 세상의 수도, 문명의 중심을 이루었다. 또한 유럽보다 400년이나 앞선 13세기 이미 지폐를 발행해 사용했고, 구텐베르그 요한(1397~1468)이 책을 인쇄하기 100년 전에 책을 인쇄했던 사실이 있다. 또한 칭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 시절에는 육지에서만 쓰던 대포를 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냄으로써 초원에 머물던 유목 사회를 바다까지 확장시켰다. 이를 서양인들이 받아들여 대포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유목민이 인류에 남긴 유산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의 우편제도에 큰 영향을 미친 역참제이다. 인터넷이 생기기 700년 전에 몽골제국은 세계를 연결한 통신 네트워크, 즉 역참제도와 우편국을 만들어 세상을 보다 가까이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포장도로와 역참제도는 몽골만이 가진 최고의 발명이자 시스템이었다. 당시 몽골 역참제도 조직에 대한 정보는 1240년에 기록된 몽골 최고(最古)의 문헌인 [몽골비사] 제279절에서 제281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베네치아의 상인이자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칸 아래에서 17년 동안 신하로 있다가 귀국한 후에 몽골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동방견문록]이란 책으로 남기게 된다(마르코 폴로는 1260년에 베니스를 출발해 1295년 귀향한다. 이는 1261년 시작해 1294년에 끝나는 쿠빌라이칸의 치세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35년의 시간 중 마르코 폴로는 약 18년을 여행에 보내고, 나머지 17년을 쿠빌라이칸 아래에서 지방 군수를 비롯해 신하 생활을 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책에서 몽골인들의 역참과 우편국에 대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감탄하여 기록한 바 있다. 그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도 역참 덕택이었는데, 그는 당시의 도로와 역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어디로 가는 길인 것을 도로마다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는 사람마다 길을 잃을 리가 없다. 황제의 사신이 왕도에서 어디로 가든 25~40마일마다 역(驛, 몽골말로 잠인데 Zam은 길을 뜻한다)과 우편국이 있다. 역마다 황제의 사신이 묵고 갈 수 있는 큼직하고 아름다운 건물 게르(몽골 전통 천막집)가 있다. 그리고 사신이 이용할 수 있는 말과 말안장, 굴레 등 모든 제구가 배치되어 있어서 묵고 가기가 정말로 편하다. 역참마다 말이 400마리가 있다. 이는 황제의 명령대로 정한 숫자이다. 황제가 언제 전사를 파견하든, 역참에는 말이 늘 준비되어 있다. 사자들이 묵고 가는 여관의 숫자는 만 개나 된다. 그 모두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용품이 완전하고 그 놀라운 장식품을 다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 역참들을 거쳐서 10일 안에 100일 거리 떨어진 곳에서 소식이 전해져 온다. 역참마다 서기가 있어서 사신이 도착한 날짜를 일일이 기록하고, 출발한 날짜도 틀림없이 적으며 이는 다른 역 모두가 이렇게 지켰다.”


먼 곳에서 여행을 하고, 견문을 넓혔던 마르코 폴로가 몽골 제국의 그런 역참과 여관의 화려하고 안락함을 감탄하며 기록할 그 당시 중세기에 유럽 습기찬 성곽 속의 궁전도, 기사들의 회의실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기에 그 때의 봉건제 유럽은 몽골 역참과 우편국 조직이 그렇게 매우 화려하고 편리했음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몽골 제국의 우편처럼 빨리 전송하는 우편이 없었으니 백일 거리의 곳에서 십일 만에 소식이 온다는 것은 유럽인들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각 역참간의 거리가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함을 몽골인들은 수 백년의 경험을 통하여 매우 잘 맞추었고, 특히 말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 역을 통하여 공문서를 보낼 때는 봉투위에 표시를 하곤 했는데, 그 표시가 지금까지 우표의의미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일칸국의 아르곤칸이 몽골제국의 수도로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때 그가 편지 위에 날아가는 새를 그려서 “날개를 달고 달려라”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양을 사용한 것이다. 누구든 그런 표시가 찍혀 있는 편지를 보면 밤낮으로 달려서 전달했다. 그것이 연유가 되어 지금의 독특한 우표가 생겨난 것이다. 

 

 

 

 

 

 

 

<출처;eroom.korea.com/bs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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