洗川

[스크랩] 밀양의 비하인드 스토리...................................타짜

감효전(甘曉典) 2011. 12. 25. 17:48

 

      밀양의 비하인드 스토리.....(타짜 1)  / 龍運(칠득이)

       

       

       

      1970년대 초 어느날

       

      밀양 남보극장 앞 청자다방

       

       

      밀양 제일의 주먹 최핵봉은 

       

      다방 마담과 음담패설이 섞인 농담을 주고 받으며

       

      출입문 쪽으로 눈길을 자주 주는 것을 보니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때 그 시절 그당시 밀양사람들은 판탁이를

       

      밀양 건달의 오야붕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신문지상을 떠들석하게 한 그의 매형 전국구 주먹

       

      밀양 강산동네의 김아무개의 후광 때문이라는 사실을

       

      밀양의 주먹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끼리는  알고 있는 이바구다.

       

       

      강산동네 김 아무개

       

      당시 경부 고속도로가 생기기전 장거리 이동의 유일한 교통수단

       

      서울 부산을 왕래하는 경부선 열차 전체가 그의 나와바리였다.

       

      전국 제일의 주먹 명동 신상사와도 호형 호제하던 김아무개 

       

      달리는 기차를 맘대로 올라타고 뛰어내렸다는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보다 더 날랬다는 밀양의 주먹

       

      박대통령 군사정권 초기에 건달세계를 떠난다며

       

      검찰에 스스로 자수한 사진이 동아일보 1면을 장식 하여

       

      사회에 큰 이슈를 던진 인물

       

       

      그뒤 5.16혁명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며

       

      전국의 건달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내고

       

      교화 사업에 힘쓴 댓가로 얻어낸 도로사업

       

      그는 그것을 이용하여 밀양을 교통의 요충지로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로 뛰어 다니며 고생하다

       

      야시 궁뎅이 처럼 조석으로 변하는 정치권에 배반을 당하고

       

      홧병으로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했던 밀양사람들은

       

      그의 처남 판탁이 그리고 지금 밀양 삼문동 예식장 부페를 운영하는

       

      당시 어린동생 김모씨를 밀양 건달들이 예우했다'

       

      그것은 김아무개를 향한 밀양 건달들의 존경심이었다.

       

       

      다방문이 열리면서

       

      밀양에서 폼 쪼매 잡는다는 건달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최핵봉의 근처로 자리잡고 앉기 시작한다.

       

       

      주먹은 별로이지만

       

      밀양 제일의 모사꾼 읍사무소 앞 삼덩이와

       

      뻐스간의 영민이와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아니하는 대 여섯명

       

      그리고 맞짱은 밀양에서 최고라는 판식이와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꼬맹이 을영이와 감영이도 뒷자리에 앉는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사람은

       

      근래 밀양,울산,마산,창녕,김해의 라인계를 평정하고 

       

      영남 제일의 노름꾼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은 무안의 장조석.

       

       

      오늘 밀양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이들이 청자 다방에 모인 이유는

       

      부산 부산진역 건너편 윤락가 금호여관에서

       

      토착 건달들의 비호속에서 큰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의 쩐을 쓸어담기 위해 작전회의를 여는 자리였다.

       

       

      당시 부산은 20세기 파와 칠성파가 태동하기 시작한 때라

       

      주먹들의 춘추 전국 시대였다

       

      해방이후 부산의 주먹을 통일한 마사오가 6.25 피난시절

       

      이정재를 혼쭐 내어주다 시라소니에게 깨어진 이후

       

      그의 위세가 꺽여 그냥 상징적인 주먹으로 있을 때

       

      조방앞에는 쌍둥이 형제 길호,일재~ 서면에는 외팔이~ 구포에는 타잔,

       

      남포동에는 칠성파의 이 아무개 광안리 해운데는 고영길 ~

       

      여러 주먹들이 난립하여 날마다 나와바리 타툼으로 전쟁이었다.

       

       

      당시 밀양은

       

      광안리 주먹들과 결의형제를 맺고 서로 교통하는 때였다.

       

       

      광안리 해운대의 보스 고영길이 남포동 칠성파와 충돌하는 사건이 있어

       

      검찰의 눈을 피해 밀양으로 피신와 밀양 주사기 공장에 머물며

       

      밀양 건달들에게 은혜를 입은 이유도 있었지만

       

      밀양이 왜 경상도 하와이라 불리는지 실제 몸으로 체험했기에

       

      그 효용가치를 나중에 이용하려는 계책이 있었음이리라.

       

      그 고영길이 밀양 건달들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소개한 것이

       

      부산의 노름판이다.

       

       

      자기 조직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이 자기 나와바리가 아니고 남포동 조직과 조방앞 조직의

       

      중간지대에 있어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부산진역

       

      만약에 부산의 다른 조직이 그곳에 뛰어들면

       

      피 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번질지 모르는 곳이었기에

       

      고영길이 밀양에 은혜의 떡 고물을 던진 것이다.

       

       

      이리하여 밀양에서 내노라 하는 신구세대 주먹들 중

       

      엄선된 자들이 부산 광안리파의 안내를 받으며

       

      일확 천금을 노리며 부산 원정길에 올랐다.

       

       

      땅거미가 질때 광안리 주먹 고영길의 동생 고영만의 안내로

       

      부산진역에 내린 밀양 사나이들

       

      그들이 촛불동네라는 윤락가로 들어서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의 옷 깃을 잡고 히빠리를 하던 윤락녀들은

       

      범상치 아니한 그들의 기운에 눌려 창뒤로 숨어 분위기를 살핀다.

       

      거리가 조용해진다.

       

       

      모두들 팔자 걸음으로 윤락가 한가운데 있는 금호여관으로 들어가자.

       

      다시 윤락가는 시끌벅적 해지고

       

      여관에 여장을 푼 밀양 건달들은 투숙객들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이일은 제일 꼬맹이 을영이가 맡았다.

       

      을영이 친구 감영이도 있었지만 그는 망잽이로

       

      이 도박 여정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참여 했다는 것을 알기에 

       

      을영이는 불평불만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여 밖으로 나간다.(계속)

       

       

      밀양의 비하인드 스토리.....(타짜 2)

       

      투숙객 중 앞 무릎이 튀어나온 옷을 입은 건달풍의 사나이 뒤를 밟는 을영이

       

      그런데 앞 무릎이 튀어나온 것을 왜 보느냐구? ㅎㅎ

       

      그 당시 노름꾼들은 주로 앉아서 장 시간 노름을 하기 때문에

       

      옷의 무릎 부분이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들의 뒤를 따라 부산진역에 도착한 을영이 놀라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밀양의 을영이가 누군가

       

      밀양에서 동생뻘 되는 애들의 삥을 최고 많이 뜯은 사나이

       

      을영이 이전에도 을영이 만큼 후배들의 돈을 많이 갈취한 사람도 없었고

       

      그 후에도 삥 뜯는데는 을영이를 당할자가 없었다는 삥의 전설적인 인물

       

       

      아마도 밀중 24,25,26,27,28회 졸업생들 중 

       

      을영이에게 삥을 뜯기지 아니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의 삥 뜯는 쏨씨는 신의 경지였다.

       

      23회는 을영이에게는 한해 선배가 되는데 선배들중 쪼매 얌전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은 을영이에게 삥이 뜯겼다.

       

      을영이가 돈을 요구할 때 순순히 돈을 주면 행님! 행님하며

       

      아양을 떨고 돈이 없다고하면 욕설로 심한 모욕감을 주었지만

       

      건달들과 어울려지내는 을영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일이 들통나 별난 23회 선배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삥이 버릇이 되어버린 을영이에게는 소귀에 경읽기..

       

       

      그가 부산진에서 도시 건달들의 삥 뜯는 솜씨를 목격하게 되었으니

       

      나중에 그를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차표를 끊기 위하여 매표구에 길게 나래비선 줄 사이로

       

      부산 건달 아니 부산 양아치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은단 일곱알을 포장한 비닐 봉지를 어리숙하게 보이는 사람이나

       

      귀대길의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그것을 뜯어 맛보게 했다.

       

      그리고는 당시 화폐가치가 높아 은단 한통에 200원을 했는데

       

      그들은 강제로 윽박질러 은단 한통에 2000원을 받는 것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시대,

       

      은단을 사지 아니하면 화장실로 데려가 죽도록 패주고 ...

       

       

      숙소로 돌아온 을영이 핵봉이 형에게 그 상황을 보고하는데 

       

      을영이 눈을 반짝이며 그들의 행동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며 신통해 하고 있었다.

       

       

      그때 양아치 같은 부산건달들이 있는

       

      이층방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판식이 눈짓을 감영에게 보내자

       

      감영이 이층으로 올라가 방문에 귀를 기우리고 엿듣는다. 

       

      꿀장수 할머니들이 양아치들에 매 맞는 소리였다.

       

      그들은 설탕으로 제조한 가짜꿀을 할머니들을 고용해 팔고 있었는데

       

      그 방법이 밀양촌놈이 보기에는 신기하고 악랄 했다.

       

      할머니들이 가정을 방문하여 시골에서 딸내미집을 찾아 왔는데

       

      이사를 가버려 집을 찾을 수 없다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가려하는데

       

      차비가 없어 딸에게 줄 꿀을 싼 가격으로 줄테니

       

      사 달라는 방법으로 파는데, ...............

       

      적게 팔면 밥값만 축낸다며 할머니들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이었다.

       

      전화?? 그때 그 시절에는 아무집에 전화가 잇는 것은 아니었다.

       

      행세께나하며 아주 잘 사는 집에만 있는 전화~~

       

       

      그 광경을 엿 보던 감영이 밖에서 술 안주를 사 오는

       

      양아치 똘마니 놈과 부딪히게 되었는데 꼬맹이 양아치가 눈을 부라리며

       

      " 시펄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여기가 어디라꼬" 하며

       

      주먹이 날라오자 감영이 그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난다리(헤딩)로 그놈의 미간을 받아 버리자

       

      그놈 그자리에 주저 앉으며 아이쿠 하며 비명을 지르며 꺼꾸러진다.

       

      그때 방안에 있던 양아치들이 뛰쳐나오고 감영이를 심부름 보낸

       

      밀양 건달들이 이층으로 올라 오는데 감영이 이층 방에서

       

      제일 먼저 뛰쳐 나오는 놈을 또 난다리로 보내버리자

       

      양아치들이 소매치기에 사용하는 면도칼을 꺼내어 감영이에게 겁을 주는데

       

      난다리를 받는다고 안경을 떨어뜨린 아주 눈이 나쁜 감영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그대로 양아치들에게 돌진하자

       

      겁을 주기 위해 면도날을 들고 있던 양아치들은 어쩔 줄울 모른다.

       

       

      그때 이층으로 올라온 판식이가 나서 싸움을 말리고

       

      날뛰는 감영이 뒤통수를 때리며 감영이에게 사과를 시킨다.

       

      또 범상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 핵봉이가  그들에게 사과를 하자.

       

      많은 인원들이 출타중인 관계로 현재 쪽수에서 밀리는

       

      부산진 양아치들이 수그러진다 .

       

       

      그 사건으로 서로 통성명을 하게된 핵봉이 건달들은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족보를 따지는 버릇이 있는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자의 대표 지도관까지 지낸

       

      최핵봉이를 그들이 얼굴은 몰라도 성함 석자는 알고 있어

       

      급속으로 친근을 표시해 온다. 

       

       

      그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간구하던 밀양 건달들이

       

      뜻하게 아니한 감영이의 소란으로 그들과 가까워지니

       

      그들의 노름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함께 술도 마시며

       

      노름판에 끼어들 작전을 짠다.(3부에서 계속)

       

       

       

       

      밀양의 비하인드 스토리.....(타짜 3) 

                                                        / 龍雲(칠득이)

       

      화투를 손에서 손등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장조석

       

      그 옆에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을영이

       

      코를 골며 잠든 판식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핵봉이는 감영이를 데리고 자갈치 시장으로 나가고

       

      밀양 삼광택시에서 기사 노릇하며 손님 태우기 보다

       

      고동껍질로 하는 윷놀이를 더 좋아하던 김씨는 삐요도시를 치자고

       

      옆에 삼덩이를 꼬시며 앞으로 다가올

       

      큰 노름판에 대한 긴장감을 극복하고 있을때

       

      윗층으로 부터  오늘 저녁에 한판 벌려보자는 연락이 왔다.

       

       

      을영이와 감영이는 분주히 움직인다.

       

      윗층 노름판에 끼여들려면 100만원이라는 돈을 준비해야 하는데

       

      준비하고 온 돈이 턱없이 모잘랐다. 당시 공무원 봉급이 2만원 내외 였으니

       

      100만원~ 아주 큰 거금이었다.

       

      핵봉이의 명령대로 신문지를 1000원 크기만큼 올려서

       

      (당시는 1000원이 제일 큰 화폐단위 였음) 묶음을 만들고

       

      아래 위로 진짜 돈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 돈다발을 만들었다.

       

       

      이층 노름방의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밀양식구 모두가 올라가지 못하고 밀양 대표선수 장조석

       

      그리고 핵봉이 막내 심부꾼 감영이 셋만 이층으로 향했다.

       

      이층에는 벌써 노름판의 열기가 달아올라

       

      노름꾼이나 구경꾼 모두 얼굴이 탐욕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부산진 건달 1명 부산건달들이 섭외한 매춘굴의 포주둘

       

      그리고 노름은 운이 좋으면 언제든지 남의 돈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맨날 돈을 잃는 핫바지 봉이 둘 합이 다섯~ 도리짓고 땡을 돌리고 있었다

       

      밀양의 건달들은 작전대로 핵봉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노름에 참석 했는데 서너 바퀴가 돌고 핵봉이가

       

      선을 잡을  차례가 가까히 오자

       

      핵봉이는 저녁 먹은게 잘못 되었는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가면서 장조석에게 자기 대신 노름을 하라며 자리에서 일어 섰다.

       

       

      밀양 무안의 장조석 그가 누구인가

       

      얼굴은 알려지지 아니한 경상도 최고의 타짜가 아닌가

       

      현란한 손 놀림으로 몇차례 공방전으로 상대편의 마음에 오기를 심어

       

      약을 올리니 약빨을 받은 호구들은  무리 수를 두기 시작하자

       

      장조석은 쩐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장조석이 쩐을 쓸어갈 때 마다 푼돈을 바라는 꼬맹이 감영이

       

      사장님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아니한다.

       

       

      길게갈 것 같았던 노름판 벌써 파장 분위기다.

       

      부산건달들 돈을 구해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자

       

      장조석은 감영이보고 돈다발을 셈하라 한다.

       

      돈을 세어보니 우~아~     500여만원이 밀양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밖으로 쩐을 구하러 나간 부산 건달들의 소식이 없자

       

      장조석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돈이 구해지는 대로 아래층으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윗층의 소식을 전해들은 아래층의 밀양 촌 건달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찍꼬박꼬 까불고 있을 때 최핵봉이 다급한 목소리로 모두들 짐을 챙기란다.

       

      빠른시간내 여기 촛불동네를 빠져 나가야 한다며 빨리 빨리를 외친다.

       

      새벽 5시 밀양으로 떠나는 첫 기차시간에 맞추어 금호여관을 나서는

       

      밀양패거리들을 가로막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계속)

       

       
       

      그들은 촛불동네를 무대로 창녀들의 피를 빠는 치사한 건달들과

       

      그들을 도우기 위해 달려온 조방 패거리들 이었다.

       

      어림잡아 3~40명 정도가 밀양 건달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에워쌌다.

       

      긴장감이 흐른다.

       

      그때 땅딸막한 사내가 나서며

       

      "최핵봉 니가 나를 잘 알듯이 나도 니를 잘 안다. 오늘 니 제삿날이

      안될라카몬 여기서 딴돈 다 내놓그래이"

       

      쪽수(사람 수)에서  밀리는 밀양 건달들 겁에 질려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절마가 누고"

       

      "절마가 바로 조방 보스 길호 동생 일재 아이가"

       

      "좃 됐다. 핵봉이 형 성질에 한판 붙을라 카겠는데"

       

      "일재 절마 힘이 항우 장사라 누구던지 조 던지가꼬 밟아뿐다 카더라"

       

      그때 감영이 앞으로 나서며

       

      "일재 형님

      형님을 지가 상대해 드려도 되겠습니꺼?

      지가 만약에 형님을 이기면 우리 그냥 보내 주이소"

       

      감영이 말에 화가난 조방 똘만이 하나가

       

      "씨펄놈 어른들 말하는데 좃만한 알라가 어디 나서노 하며"

       

      웃통을 벗고 문신을 자랑하며 뛰쳐 나오자

       

      일재는 그를 만류하며

       

      "일마들 한놈 한놈 뿌사주께 (감영이를 카르키며)

      그래 우선 니 부터 ㅎㅎ" 하며 대뜸 감영이 목을 잡고 비틀자

       

      (감영이가 누군가?  나중에 서울로 상경하여 80년대 초

      조양은, 김태촌 전라도파가 서울 바닥을 잡고 휘 저을 때 

      영화인들의 골목 충무로에서 영화배우 도금봉과 염문을 뿌린 이름난 권투선수

      강세철이 아들 무쇠주먹 강춘식(허버드 강)을 업어치기 한방으로

      날려 보내고 전설의 주먹 조일환씨와 그의 의형제 영화배우 최병철의

      비호를 받으며 군부독재 서슬이 퍼렇던 그 시절에 충무로에서 성인 오락실을

      운영하며 원로 주먹들의 자금줄이 된 사나이가 아닌가)

       

      그래 우선 니 부터 ㅎㅎ" 하며 대뜸 감영이 목을 잡고 비틀자

       

      감영이 그 손을 잡고 업어치기 한방으로 사항이 끝났다.

       

      일재가 떨어진 곳이 마침 뽀쪽한 돌맹이가 있던 자리라

       

      그 돌맹이에 허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사건이 이렇게 흐르자 전세는 뒤 바뀌었다.

       

      화를 참지 못하는 부산 건달들~

       

      기세가 오른 밀양 건달들~~

       

      그때 최핵봉가 나서며

       

      "감영이 니가 감히 일재형님을~"하며 감영이 귀사대기를 때리며

       

      부산 건달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노름판에서 딴돈 절반을 내 놓자

       

      그것으로 체면을 세운 부산 건달들 밀양 건달들이 지나 갈 수 있는 길을 내준다.

       

       

       

      기차를 타고 밀양으로 오면서 핵봉이 감영이 뺨을 만지며

       

      "오늘 니 클날 짓을 했다, 그렇게 내가 해결하지 아니 했다면 우리 모두

      초상 났다.ㅋㅋ"

       

      그렇게 부산 도박 원정은 끝이 났다.

       

      꼬맹이 감영이가 다른 사람보다 배당금을 많이 받은 것은 당연지사....(끝)

       

       

       * 개인 정보 보호와 그분들의 명예를 생각하여 부득히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선배님들 중 이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있어 만약에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기지 마시고 쪽지를 주십시요.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목격한 칠득이

      다시 기억을 더듬어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밀양 최고 미남이며, 영화배우 윤정희에게

      영남루를 자기 별장이라고 치던 그 유명한 이대슥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개 됩니다. 기대하고 고대 하시라)

       

       더 많은 밀양의 옛 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은 <클릭>=>내 고향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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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송산서원
글쓴이 : 龍雲(칠득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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