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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크?] 박 여사, 그 많은 작은 엄니들 오데 계실까!?ㅡ[댓글] 필독 요함,,,**

감효전(甘曉典) 2012. 5. 1. 20:14

 

  

  꽤 오래전에 그 책을 가슴에 잔잔한 봄 햇살이 포근히 내려쬐는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하지만 지금 쓸 얘기는 그런 가슴 아련한 얘기가 아니라, 가슴을 할퀴고 난도질하는 얘기입니다.

 

  각설하고ㅡ,
정신대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서 조선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꽃다운 처녀들에게 일본정부가 저질렀던 짐승만도 못한 만행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 할머님들이 일본대사관을 향하여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고 있지만, 일본대사관은 묵묵부답이고, 이 정권은 마지못해 시위는 막지 않지만 눈엣 가시 보듯 하고, 시나브로 한 서린 할머님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이제 몇 분 남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대위안부는 일본정부에 의해서만 저질러졌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도 일본군 출신이기는 하지만 김재규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로, 박정희의 위안부는 서울시내 8개 곳에 200여명 미모의 여성이 분산 배치되어 항상 박정희의 행차를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죄라면 얼굴을 예쁘게 타고났다는 죄밖에 없습니다.  대학교에 들른 정보부요원이나, 길거리 지나가다 우연히 정보부요원의 눈에 띠거나, TV에 출현하여 예쁜 얼굴을 자랑하다 박정희가 침을 생키면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비서관이나 경호원이 정보부에 알려, 쥐도 새도 모르게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서 박정희의 성노리개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재벌회장은 하룻밤 자고나면 아파트 한 채라도 주어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고 하지만, 박정희는 그것도 없고 어디 나가서 박정희에게 당한 사실을 말했다가는 그게 세상에 남기는 유언될 수도 있으니 대밭에 가서 말 못 알아듣는 대나무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듯 지나가는 바람에게 “박 아무개 거시기는 쇠말뚝 거시기”하고 속삭였을 뿐입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삭여야 했고 재수 없으면 뻔질나게 불려 다녔어야 했겠지요. 1979. 10. 26일 박정희의 궁정동 최후의 만찬자리에 옆에서 술시중을 들었던 “신모”라는 여성은 그 1/200이 세상에 알려진 것일 뿐입니다.

  오죽했으면 김재규가 보다 못해 즉결 처형을 했겠습니까? 지금은 50줄에 들어섰을 그 “신모”여인, 한국 땅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미국인지 어디로 이민을 가서 한 많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한 번 각설하고 ㅡ,청와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 늙은 생과부여! 수신제가(修身齊家) 한 다음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했거늘 그 수많은 작은 어머님들을 왜 나 몰라라 하는가?  나라 걱정할 시간 있으면 자신보다도 어린 분도 수두룩할 작은 어머님들을 우선 찾아뵙고 아비의 죄를 대신해서 빌고, 그 주체 못할 장물을 풀어 작은 어머님들께 효도부터 해라! 이제 생모도 없고 세월도 지났고 작은 어머님들을 찾아뵙는 게 별로 쑥스러울 것도 없지 않은가? 이미 돌아가신 분은 산소를 찾아가 무릎 끓고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절 두 번 하고, 살아계신 분은 찾아가서 어깨와 팔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손에 용돈도 두둑이 쥐어 드리고, 얼마나 보기에 좋겠나? 그러고서도 시간이 남으면 그 때에나 나라 걱정을 하시라!

   내 말 똑똑히 새겨듣기 바란다. 내 말 안 들었다가는 요행히 나중에 대통령 후보가 되어도 그 유세장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이 절규를 토해내는 일본대사관의 정문이 될 각오를 하라! 그 때에서 후회해봐야 이미 때는 늦는다.

 

나하나별

박정희에게 고인이라는 말은 넘 과분해요. 뒈졋다구 해주세요.
05/26 20:15:33 (124.xxx.14.170)
 순필  통쾌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 했으면 금상첨화 이었을 텐데, 박근혜 장물 얘기도 좀더 구체적으로 해주시면 좋았을 것을
05/27 06:10:27 (121.xxx.187.62)
덧글
우수희 신선혜

 별이야!
왜? 날 욕하더니 글을 지웠냐??? 창피해서???
할배가 덧글 달때마다 정체성이 의심된다구???
나! 6.3 한일협정반대시위때도 경찰신세졌던 놈이여!
제발 나마큼만이라도 똑바른 자유민주주의를 알고 몸소 실천해여! 이 원주 촌 할멍아!
내 모든글(요즘은 하도 한심해서 글도 안 쓰지만)의 어느 구석에 반 민주적인게 있고
현정권 지양성이나 잘못된 대통령관이 있는지 말해봐여!
박정희나 그네에관한 한은경이의 글에 윗 본문과 유사한 내용이 있어 설득력없는소리는 집어치우고 까댈것을 까지 그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부분을 들추어 욕 아닌 욕을 하냔거여!그네와 그 애비를 까는게 흥미 오락 위주여??? 가십거리로 안까도 굵직한게 책으로도 모자랄판에,,, 그리고 그런걸로는 까는게 아녀! 은경이의 덧글에서도 그런소릴하더니 여기서도 그런 소릴해여? 나야 글쓰는 재주가 없어 언제라도 사라지겠지만 막써님과 별이는 글재주가 있어 계속하리라 보네만 언젠간 모든 속셈이 다 드러날게 아닌가! 나 역시 잘 못된것은 그냥 못 지나치는 성깔이니 덧글은 달터이구,,,,그런점을 지적한것이지 추접하게 양비론적인것으로 본 모양인디,,,본인들의 글에 이론을 다니 기분이야 더럽겠으나 나의 덧글들을 바로 이해하게나!


.
05/27 04:41:49 (124.xxx.4.230)

덧글
우수희 신선혜  님의 글중

" 어디서 지나가는 얘기 들은 것을 내 경험인양 말하지 말라는 것이오."
꽤나 도전적인 말투네여!! 당신의 부정확한 주장은 다 사실이고 나의 말은 거짓이란거군!
윗글에 쓴 내용과 지금 당신의 말이 일치하는지 보시요!
어디서 보기는 마니 본 모양이오!
나라고 이런 지엽적인걸로 님과 얘기 하고 싶겠소???
나의 당신에 대한 첫 덧글은 그네의 그 많고 많은 다른것을 까지 그녀가 할 필요도 없는 작은어미에게 어쩌고 하는 그런식의 글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였소!
한마디로 얘기하겟소,,,당시 포승줄에 묶여 나와 재판받던 사람중의 한사람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요!
더 이상은 누구에게 관한것은 삼가고 위와같은 언사는 아무에게나 통할 그런 사람에게나 쓰시요!
혹여나 연이 닿으면 자세한 얘기 나눌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
05/27 03:15:10 (124.xxx.4.230)
덧글
그냥막써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한테 들은 얘기라고 하고서 내가 누구냐고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은 안 하고 왜 엉뚱한 소리요. 여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자리의 생존자 중 한명과는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2-3년 지냈던 사람이오. 그리고 박정희의 유신과 저 변강쇠놀음에 근혜가 책임이 없다고 보시오?
박근혜가 성인이 되어서 육영수가 하던 역할을 할 때 다 일어난 일이요.자기아비의 사생활이 그렇게 문란하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이고 차지철이나 김재규로부터 어느 정도 귀띔을 들었을 박근혜가 자기아비 앞에 무릅끓고 빌면서라도 저 짓을 말렸어야 하오? 인터넷이나 신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재판기록 갖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이하면 안 되오. 내 대답을 보면 당신도 내가 사건의 내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대충 짐작할수 있는 것 아니오? 그리고 박근혜가 정치인으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을 꼭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만 써야 된단말이요? 당신이 쓴 글 많이 봤지만 시위현장에서 외치는 단발마의 구호에 지나지 않았소!
논쟁을 벌일 상대가 되지 않으니 내 답글은 더 이상 없소!
05/27 05:38:21 (122.xxx.111.27)
덧글
우수희 신선혜

 

신재순이 자기발로 찿아간 진술이요! 참고하시고 님이 관제보도나 류머를 듣고 하는건 아닌지!!
내가 님의 말대로 지나가는 소리나 듣고 나의 직접경험인양 해댄 소린지 잘 보시요!
님은 관련자 누구에게 직접 들은적이 있습니까??

참고인 진술조서 육군검찰
(직업)학생(C.F.모델) 주민증번호: ******-*******
신재순(일명 신혜정) 연령: **.**.**생(**세)
  위 사람은 김재규 등에 대한 내란목적 살인 등 피의 사건에 관하여 1979.11.18.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서 임의 진술 하겠다고 하여 검찰관 소령 이병옥은 서기 이승근을 참여케 하고 아래와 같이 임의 진술케 하다. " 본인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재학중에 C.F.모델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1979.10.26. 대통령각하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기에 잘 알고 있어, 임의로 진술하겠습니다".
이때 진술의 취지를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문답을 행하다.

문: 진술인이 신재순임에 틀림없나요.
답: 그렇습니다.
문: 진술인은 중앙정보부 궁정동 식당에서 대통령각하가 시해된 사실을 목격한 사실이 있지요.
답: 있습니다.
문: 그 일시는 언제 입니까.
답: 1979.10.26. 19:40경 입니다.

문: 진술인은 어떻게 그 자리에 가게 되었나요.
답: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의 안내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 진술인은 어떻게 하여 박선호 과장을 알게 되었나요.
답: 본인의 친구이며 같이 C.F모델로 있는 경희란 친구로부터 서울 서교동 소재 숙경마담(큰 언니, 약수동 소재 00 쌀롱 주인)을 소개 받았으며 그때가 10월 초순 추석 직전 2~3일 께 입니다.
10.24. 14:00경 위 숙경 언니가 “좋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할 테니 일루 오라”고 하여 10월24일 위 약수동 집으로 갔더니 중정과장이라면서 박선호 과장을 소개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문: 만찬장소에 가게 된 경위를 말하시오.
답: 10월25일 저녁 17:00경 박선호 과장으로부터 “내일(26일) 15:30에 프라자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하여 다음날 나갔더니 나오질 않아 그대로 집으로 왔는데 다시 16:30경 전화가 와서 17:10경 프라자호텔 같은 곳에서 만나자 하여 나갔더니 차 타고 가자고 하면서 “오늘 저녁 만찬이 있으니 가자”고 하여 같이 뉴내자호텔 커피숍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심민경이 나타나 같이 만찬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문: 궁정동 식당에서 도착한 다음부터 만찬장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말하시오.
답: 도착 즉시 소파가 많은 대기실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신사 두 사람을 소개 받았는데 각서를 쓰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나와 안내하기에 따라갔습니다.
문: 만찬장소에 들어 갈 때의 상황을 말하시오.
답: 들어가서 차지철 실장이 저와 심민경을 이쪽은 “신이고, 저쪽은 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여 대통령각하 오른쪽에 앉았는데 당시 만찬장소에는 대통령각하,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정보부장이 있었으며 TV는 켜져 있질 않았습니다.

문: 그 후 사고가 날 때까지 있었던 상황을 말하시오.
답: 그 때 대통령 각하께서 김재규 부장께 총재도 아닌 사람을 만나서 뭐하겠느냐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본인에게 아버지 어머니 고향이 어디냐 등 가정환경을 물으시면서 음식을 주고 술도 권하였습니다.
그 때 대통령 각하께서 웃저고리를 벗 길래 본인이 받아 실내 화장실 부근에 있던 옷걸이에 옷을 걸었는데 당시 김재규 부장, 김계원 실장 등이 웃저고리를 벗으면서 잠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곧 모두 들어오면서 자리에 앉아 대통령께서 TV를 켜자고 하여 차실장이 원격조정장치로 KBS TV를 켜자 삽교천 뉴스가 나왔으며 그때 각하께서 “저 곁에 노인의 가위질이 서툴더라” 고 하였으며 곧 카터이야기 (선거이야기)를 하셨고 대통령께서 헬기로 와보니 다리가 많이 놓여져 있더라는 등 말씀이 계셨으며 잠시 후 김재규 부장이 자리를 떴습니다. 위 뉴스가 거의 끝날 무렵 김재규 부장이 다시 들어와 TV를 끄자고 하여 차지철 경호실장이 TV를 껐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김재규 부장에게 통금해제 등, 부산이야기를 하시고, 사진을 크게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김부장이 술을 잘하니 많이 권하라고 말씀하셨고, 김재규 부장이 시계를 자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각하께서 노래나 한번 듣자고 하여 심수봉이 대기실에 가서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부른 사람이 지명한 사람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로 하였으며 심수봉이 ‘그때 그사람’을 부르고 다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후 차지철 실장을 지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차지철 실장이 ‘도라지’를 부르고 흘러간 노래를 한 곡 불렀는데, 두 번째 노래를 부를 때 남효주가 들어와서 어깨를 치면서 김재규 부장에게 무슨 말을 귓속으로 하자, 김재규가 다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차실장의 노래가 끝나고 본인을 지명하기에 본인이 ‘사랑해’를 하겠다고 심수봉에게 전주곡을 부탁하자 대통령께서 콧노래로 하므로 차지철 실장이 “각하께서 그 노래도 아시는 군요” 하자 대통령께서 “우리 애들이 불러서 안다”고 하여 본인이 노래를 부를 쯤 김재규가 들어와 앉았고, 당시 남자와 같이 노래를 불렀기에 톤이 안 맞아 다시 노래를 부를 때 옆자리에서 ‘빵’ 하는 총소리가 나자 본인이 놀라서 옆으로 보니 “피” “피” “왜 이래”하고 일어서면서 “경호원” “경호원” 부르면서 실내화장실로 뛰어 가버렸고 “피 피” 하기 전에 “버러지 같은 놈” 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 후 차지철을 쳐다 볼 때 ‘빵’ 하는 총소리가 나서 멍멍한 순간 옆으로 보니 대통령 각하께서 머리를 상에 기대고 있어 본인은 당시 대통령께서는 총에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김재규가 다시 대통령에게 총을 쏘는 것 같더니 소리도 안 나고 김재규가 밖으로 나갔는데 그 무렵 전기가 나갔으며, 비록 전기는 나갔지만 대통령을 식별할 수 있어 본인은 대통령 각하의 뒷등을 만졌는데 그때 본인은 심수봉 앉은 자리 부근에 갔기 때문에 오른쪽 손으로 만졌는데 피가 말도 못하게 많이 났으며, 그때 김재규가 다시 들어와 대통령 각하의 머리에 총을 겨눌 때 화장실에 있던 차지철이 문쪽으로 뛰어갈 때 본인은 정신이 없어 화장실로 뛰어 갔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도망가려고 창문을 열어보니 문이 여러 겹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데 총소리가 ‘꽝’하고 몇 발 (약 4발 정도) 나서 안절부절 하다보니 조용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각하를 업고 빨리 병원으로 가야지 하면서 업고 나가는 것을 화장실에서 보고서 방으로 나오니 차지철 실장이 살아서 누워 있는데 본인과 누군지는 모르지만 남효주인지 아닌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남효주같은 사람과 둘이서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는데 “나는 못 일어 날 것 같다”고 하여 멍하니 서 있는데 남효주가 본인을 대기실 방으로 안내를 하여 가 보니 심수봉이 그 곳에 있고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으로 기억 됩니다.

문: 그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은 어떻게 하든가요.
답: 언제쯤 나갔는지 본인은 김계원 비서실장을 보지 못했으며 화장실에서 나와 남효주가 안내하는 방으로 갈 때까지 김계원 비서실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 그 후 부속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시오.
답: 남효주가 방에서 꼼짝 말라고 하여 방바닥에 심수봉과 같이 앉아 있는데 한참 후 총소리가 약 7발 정도 났습니다. 한참 있다가 남효주가 들어와서 본인들을 안내하여 길 건너 화장실에서 손과 옷을 대충 빨았습니다.

문: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답: 박선호 과장이 나와 경비원 대기실에 가서 담배와 커피, 주스를 주면서 나가지 말고 화장실 갈 때도 똑똑 두드려 사람이 오면 같이 화장실로 가라고 하면서 못가게 하였고 한참 후 돈 20만원씩을 주면서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은 밖에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하였고, 남효주가 차를 태워 뉴내자호텔까지 갔는데 차에서 내릴 때 남효주가 앞으로 만날 일도 없겠지만 모르는 걸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문: 어떻게 귀가하였습니까.
답: 뉴내자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심수봉 차로 저의 집으로 갔습니다.
문: 이상의 진술에 허위는 없나요.
답: 없습니다.
문: 더 할 말은 없나요
답: 없습니다.

05/27 02:29:14 (124.xxx.4.230)

덧글
우수희 신선혜

 님의 주장대로 8처 200명 상시대기에 관하여"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처럼 여자들을 합숙시키는 곳은 없었다." 는 증언 입니다!

안가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
"원래는 대통령 경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사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경우 술자리를 하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이다. 10·26 사건으로 여성이 접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가의 운영 목적이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다. 외국에서도 대통령 암살에 대비해 안가를 운영하면서 침실을 바꿔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청와대 경호실이 아니고 왜 중정에서 직접 관리했나.
경호실은 군처럼 경직된 조직이어서 안가 관리에 적합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딱딱한 분위기에서 술자리를 하는 걸 원하지 않아 중정에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적인 행사는 경호실이 담당하지만 사적인 행사는 중정이 담당함으로써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정보와 주변 권력의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대통령은 안가를 돌아가면서 이용했나."10·26이 난 궁정동이 가깝고 규모가 커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머지 안가 가운데는 아예 가지 않은 곳도 있다. "

연회 접대 여성은 어떻게 준비하나.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처럼 여자들을 합숙시키는 곳은 없었다. 여자들을 조달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마담’들을 활용했다. ‘손이 컸던’ 마담 2명 정도가 주거래처였는데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100여명씩 보유하고 있었다. 마담들이 추천하면 중정 직원이 ‘면접’을 봤고 외모와 경력 등을 따져본 뒤 입이 무거울 것으로 보이는 여성 위주로 선택해 수발을 들게 했다.

연회 원칙 같은 것은 없었나.
술과 음식은 경호실에서 선택하고 준비까지 책임진다. 안가에는 조리시설이 있었지만 모든 음식 재료는 경호실에서 준비해온다. 접대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다. 대통령 눈에 들어 혹시 임신을 하거나 대통령이 여성에 빠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찾으면 만류해보다가 잘 안 되면 추가로 딱 1번만 더 접대하도록 한다.

안가에서 대통령은 주로 누구를 만났나.
무척 다양해 특정할 수 없다. 수출을 많이 했거나 해외에서 큰 공사를 수주한 기업인을 불러 격려하기도 했고,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학자 등을 불러 얘기를 듣기도 했다. 고인이 된 한 그룹 총수와 자주 접촉했는데, 그 총수는 대통령에게 격려를 받으면서 지원을 부탁해 기업을 눈부시게 키워나갔다.

안가 관리자들의 근무 형태는 어떠했나.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이 아니면 모든 안가는 24시간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하루 중 언제라도 불시에 대통령이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대기해야 한다. 청소를 비롯한 관리 상태는 항상 최상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박 과장은 항소심에서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의 술자리에 대해 1심 때보다 상세한 진술을 한 것이다. 1980년 1월23일 열린 고등군법회의 2차 공판에서 박 과장은 ‘대통령의 여인’들에 대해 “지금도 수십명이 일류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명단을 밝히면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킨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박 과장은 항소심 마지막 공판에서는 좀더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각하께서 평균 한달에 열번 (궁정동 안가에) 나오셨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의 진술은 온전하게 끝나지 못했다. 법무사(당시 군사법정의 판사)가 “재판과 관계없는 내용”이라며 그의 진술을 제지하고 나섰다.


05/27 02:17:38 (124.xxx.4.230)

덧글
우수희 신선혜  "대통령 술자리에 한번씩 왔다 간 여자들은 당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입을 벌릴만한 TV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계의 일류 스타들이었다고 대통령 박정희의 채홍사는 증언했다." 신재순도 자기 스스로 즁간 역할하는 마담을 통하여 박선호를 소개받고 그날 몸팔러 나간것이 군 검찰조서에 나옴!ㅡ,이러한 잡스런 창녀들을 변호하는것인가! 그 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스스로 돈과 권력 더러운 출세욕에 사로잡힌 쓰레기들 뿐임

8군데 200명이 대기???????? 금시초문이며 5군데의 중정안가로 대행사나 소행사를 치루던곳임 여인은 대기상태가 아니라 필요시에 사전연락을 통해 불려간것임
더구나 재판과정에선 군검찰의 제지와 법무사의 제지로 최후진술시에도 제대로 할말을 못했고 박선호는 말하려고 시도했으나 김재규의 만류와 제지로 입을 다물었던 사실을 모르십니까?? " 야! 말하지마! 이런 문구가 기억 안나십니까??? 박선호가 입을열자 김재규가 외친소리입니다!

그날 사태현장이란 연회장만 있습니까???
중정애들과 경호실애들과의 총격전은 사건현장이 아닙니까??

님은 술판만 사건현장이라 보시면 더 이상 말을 않하고 싶네요!
05/26 23:58:47 (124.xxx.4.230)
덧글
그냥막써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위 2명의 여인과 경호실 직원과 안기부 직원입니다. 그런데 안기부 직원은 나중에 김재규와 같이 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청와대경호실 직원은 그 자리에서 모두다 안기부직원이 사살했는데 단 한사람 살아 있었오. 그 사람은 안기부직원이 난사할때 허리띠 바클에 총을 맞아 죽은 척 하고 있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서 뒷날 김영삼정부 시절에 경호실장을 한 박상범이라는 사람이오.
박상범씨는 입이 만근인 사람으로 그날 그 자리 일을 재판정 이외에는 입에 담지 않는 사람이오, 그래서 뒷날 경호실장까지 하게 되었오.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날 그 현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준 사람은 심수봉이오 아니면 박상범씨요? 내 이런 하찮은 것 같고 논쟁할 필요는 없지만 댁의 덧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실상을 잘못 알까봐 몇 번씩 사실에 입각한 반론을 다는 것이오. 신재순은 신도환의 딸로 몸 팔러 다닐만큼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소, 그리고 박정희 성노리개를 안기부가 데려가더라도 백주에 치한이 여성 납치해가듯 했겠오? 다 중간에 그런 뚜쟁이를 걸쳐서 접촉을 했던 것이오. 그렀지만 거기에 낙점되었으면 그 청을 들어 주던지 세상을 버리던지 둘 중에 하나였오. 어디서 지나가는 얘기 들은 것을 내 경험인양 말하지 말라는 것이오.
그리고 당신말이 다 사실이라해도 그 자체로서 박정희는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요. 천하의 바람둥이라 해도 박정희 정도면 용서못할 인간이요,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그게 될 말이요? 당시는 부마사태로(보도를 안 해서 부산마산시민이 아니면 알지도 못했음)북한이 휴전선에 총력을 집결시키고 남한의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상황이요. 국군통수권자라는 자가 2-3일 간격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술에취해 흥청거릴 때 북한이 밀고 내려왔으면 6.25와는 비교도 안될 참화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을 것이오.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임기동안은 자기의 사생활 까지 모든 것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없는 자는 오를 수가 없는 자리요, 그렇지 않은 것들이 계속해서 청와대에 들어가다보니 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꼴이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10년 20년을 할 수가 없는 자리입니다. 내 글에 반론을 달아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덧글을 달고난 뒤에 읽으실 분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며 당신의 대통령관이 매우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바이오! 대통령! 그거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오. 그런 자리을 이명박이 같은 당치도 않은 것이 하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오! ㅡ,8군데 200여명 분산 배치되어 있었단는 것은 당시 모든 신문에도 났던 사실이고 그 당시의 신문기사를 검색해보거나 인터넷 어딘가에도 나와 있을 것이오. 당신만 금시초문인 것이오. 당신하고 더 이상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소!

05/27 02:05:04 (122.xxx.111.27)
덧글
공돌이  맞습니다, 맞고요!
효(孝)는 삶의 근본이지요!
그래서 사람과 짐승을 구분 짖는 것 아니겠습니까?
궁가리에 두른 금테와 김옥윤의 발가락 다이야라도 빼서 작은 어머니들에게 다이야 금반지라도 하나씩 해드리며 효(孝)로서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야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안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국보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북한의 김정일과 비밀스럽게 단독면담을 한 내용이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동생도 마약에 빠졌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어 믿을 데가 없구나!
내가 여태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냐? 내가 남한의 정권을 잡으면 결혼을 하자!
해서, 우리들만의 영원한 제국을 만들어 보자!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의 완결판이다.
사실 아버지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한 분이 김일성 주석이다.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를 보며 늘 부러워했지! “

 05/26 20:56:10 (113.xxx.23.134)
덧글
식물의은혜  박정희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랬다고 그의 죄가 사해진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막큰애는 그런 자의 딸인데, 막큰애의 장점이 지 애비 후광뿐이라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05/26 19:51:22 (125.xxx.45.88)
덧글
나하나별  박정희에게 고인이라는 말은 넘 과분해요. 뒈졋다구 해주세요.
05/26 20:15:33 (124.xxx.14.170)
덧글
우수희 신선혜  그의 그러한 행위를 정당했다는것은 절대로 아니나 그 날 사태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에게 직접 들은 얘기지만 내가 알기론 연예가나 고급 비밀요정에 출입하던 애들이 대다수인걸로 알고 있는데,,,여염집처녀나 유부녀 정조를 지키는 과부를 보쌈을 한것도 아니구 창녀노릇 할만한 것들을 상납한걸로 아는데,,,8군데 200여명?? 인근 안가에서 박정희가 볼일 보던곳이였지여,,,그런애들을 작은 어미 ?????????그네의 지 애비에게서 물려받은 장물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은걸 욕하는건 당연하나 이런식의 주장은 좀 그러네요!
은경이란 닉의 글에서 똑 같은 주장을 본적이 있어 본인이 그런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니 제대로 깔것을 까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부언하면, 하필 이런 글에다 고 박 완서님의 얘기를 매치하다니 보기에 좀 그렇네요!,
덧글
그냥막써 그 "신모"는 당시 한양대학교 학생이었고,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제1야당의 최고위원으로 여기에 이름을 밝히면 다 알만한 사람이며 낯에는 야당하고 밤에은 여당하는 소위 "사꾸라"의 대명사였던 사람의 딸입니다. 물론 신선혜님이 말한 그런 사람도 더러 있었기는 하겠지요.그리고 200여명이 8군데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 김재규 재판과정에서 채홍사 노릇을 했던 안기부 직원이 밝힌내용이 신문에 실렸던 사실입니다. 박정희도 인간이고 더우기 홀아비로서 왜 여자생각이야 안 났겠습니까? 하지만 연산군도 아니고 더더우기 자기 딸보다도 어린여자들을 그렇게 했다는 것은 짐승과 다름없지요!
05/26 19:04:46 (122.xxx.111.27)
그냥막써  그리고 또 하나
내 지옆말단적인 것 가지고 내 글을 읽어주신 분과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박정희, 비서실장 김계원,경호실장 차지철 , 김재규, 그리고 심수봉, 신모 뿐입니다.모두다 고인이 되었고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 현재도 살아 있는 사람은 심수봉과 신모뿐인데 신모는 오래전에 이민을 갔으니 그 말을 들었다면 심수봉뿐인데 그도 그날 그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수사기관에서 밝힌 것 이외에는 일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좀 앞뒤가 맞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의 엽색행각은 이것뿐이 아니고 그래서 육영수가 살아서도 맨날 그것 때문에 아옹다옹했고, 육영수가 윤모라는 배우를 파리로 쫒아낸 것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내 글에 대한 오류는 지적할 수 있으되 흘려들은 것이 아닌 사실에 입각한 지적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05/26 19:50:56 (122.xxx.111.27)
덧글
식물의은혜  맞습니다, 저도 윤모라는 배우 이야기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욕망의 노예였던 파렴치한 자였습니다.

05/26 19:54:47 (125.xxx.4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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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막써  또 하나
신선혜씨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요정출입하는 여자하고 그 짓을 하면 입을 닫아 버리기 전에는 어떻게던 말이 새 나갑니다.
그래서 가급적 그 말을 입밖에 낼 수 없는 사람들을 고르다 보니 대부분 처녀였던 것입니다.

 

 

                                                                                            *** 한토마 게재글,,,***

출처 : 산들사랑
글쓴이 : 산골 處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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