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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정희의 전처 김호남 1

감효전(甘曉典) 2012. 5. 1. 13:42

어머니의 친구분 김호남


우리 어머니는 1919년 선산군의 의성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1920년생인 김호남이라는 이름의 친구와 둘도 없는 친구로 다정하게 자라났고 거의 자매와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에 의하면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미인인데다 성격도 서글서글하였으며 굉장히 총명한 구석이 있었으며, 반촌에서 가정교육을 받아 예의범절도 깍듯했고 나무랄 데 없는 처녀였던 모양이다.


우리 어머니와 김호남, 둘은 어디를 가도 같이 다녔으며, 심지어 반촌인 그 동네의 어른들이 금지시킨 언문학교를 몰래 다닐 때도 같이 붙어 다니곤 하였으니 일생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사이였으니  성장한 이후 거의 한 번도 만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셨으나 몇 번 수소문해서 찾아가 보면 그 절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전갈만 오곤 하였던 것이다.


왜 한번도 만나지 못하셨을까? 이 김호남이라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으로 박정희의 첫째 딸이자 닭그네의 배다른 언니인 박재옥의 생모로서 비구니가 되고 박정희가 독재권력을 행사할 때는 일부러 세상에서 은폐시켜, 일생을 눈물 속에서 남의 눈을 피해 살아야만 하였던 불행한 여인으로 몇 년 전 강화도인가?의 절에서 쓸쓸히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여인이다.


알려진 대로 젊은 시절 일본 문화에 쩔어 겉멋들은 박정희의 비뚤어진 눈에는 전통 조선 처녀는 갑갑하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으로 당시 적지 않은 액수였던 교원 봉급을 받으면 혼자 다 써버리고  딸까지 낳은 젊은 아내에게 생활비도 주지 않았으니 젊은 아내는 어린 딸을 데리고 이집 저집 허드렛일까지 하며 생활하면서도 시부모에게 효도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반면 천황 폐하를 위해 충성한다고 소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 입학허가를 받은 이후에는 모처럼 집에 와서는 이제 대 일본제국의 장교가 되었으니 다른 집안이 하는 것처럼 일본도를 대도와 소도로 한 벌을 사달라고 처가집에 떼를 쓰며 그 것이 싫으면 자기는 이혼하여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급기야 김호남 여인은 귀여운 딸은 시댁에 둔 채 박정희의 형수 김종필의 장모 손에 크게 되었다.


김호남 여인은 친정에 죄 없이 쫓겨 와서는 어린 딸을 못 잊어 상모리의 시댁 근처를 서성이다, 박정희네 집사람들의 눈에 띄면 강제로 동네 밖으로 쫓겨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고 아시는 것처럼 당시 아직도 엄격히 지켜지던 유교의 법도에 따라 재혼길도 막힌 채로 그 무렵 새로운 신여성을 만난 후, 법적 이혼을 요구하는 박정희의 성화에 쫓겨 불가로 귀의하게 되었으며, 박정희가 권력자가 된 후로는 정보기관의 감시 하에 생활하는 몸이 되고 말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우리 아부지와 결혼 하신 후, 대구로 나와 살게 되었고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내가 중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어디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어린 나를 몇 번 앞세워 옛 친구를 보기 위해 몇 번이고 찾아갔으나, 전술한 것처럼 어느 권력기관의 차단막에 가려 그 뜻을 이룰 수 가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선산에 있는 외가에서 지낼 때면 당시까지 많이 생존해 계시던 마을 노인들은 멀쩡한 규수의 일생을 망쳐 놓은 박정희와 그 일가에 대한 원망이 사그라지지 않고 남자 노인들은 마을 정자에서, 여자들은 대청마루에서 모이기만 하면 박정희는 인간이 덜된 사람이며 잔인한 사람이라고 숨죽여 가며 두런두런 애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노인들은 점잖은 표현을 쓴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인간 말종이라고 해야 제격이다.


필자가 박정희를 싫어하는 이유


필자는 박정희를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곤 한다.


누가 당신 딸이나 여동생에게 박정희같이 행동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도 조국 근대화 사업처럼 가정을 근대화 시킨 과정인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는 공적인 일도 김호남 여인에게 한 것처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한 사람이라고….


어찌 보면 나는 박정희와 보통사람보다는 가까운 인연에 있는 처지인 것 같으나, 내가 박정희를 끔찍이 싫어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따뜻한 체취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토록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왜? 김형욱이나 다른 부하들을 그토록 잔혹하게 다스려야 했으며, 자신은 심복부하의 손에 총 맞아 죽는 것이 과연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박정희와 김일성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가지고 박정희와 김일성을 비교하면 박정희는 김일성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옹졸한 인간이었다.


경제치적으로 비교해도, 박정희의 집권기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북한의 경제가 대한민국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였으니 박정희의 열세이며, 강력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치면 김일성은 부하들의 신망 속에 자연사한 반면 박정희는 부하에게 총 맞아 죽었으니 이 부분은 박정희가 김일성에게 K.O. 패한다.


엄격히 애기해 지금 남북의 경제력의 차이는 박정희 사후 대한민국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으나 박정희가 죽을 무렵부터 북한의 경제가 고립되었기 때문에 성장이 막힌 탓인 것이다.


필자는 김일성 흠모하는 사람이나 박정희 흠모하는 사람이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본다. 독재희구형 정신적 메조히스트(피학대도착증 환자)로 오랜 식민지배와 정신적 학대로 인해 그에 고착된 심리구조를 지닌 정신분열증 환자들로 보인다는 말이다.


어쨌든 내겐 박정희나 김일성이나 그들을 존경하거나 흠모하거나 찬양하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박정희를 흠모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의미로는 더 우월한 김일성을 더 흠모하여야 하는데, 그들은 김일성을 증오한다고 하니 그 특이한 뇌구조가 내겐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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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딴산
글쓴이 : 한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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