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초(徒然草) /요시다 켕코오(吉田兼好)
제 7 단
묘지를 뒤덮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사라질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반짝이고 있으며, 화장터에서 연기가 흩어질 줄도 모르는 채, 인생의 목숨이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머물러 살아남는 그러한 것이라면, 아마 애련의 정서같은 것도 없으리라.
이 세상은 무상하다고 하나 바로 그 무상한 데가 좋은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의 생물을 보더라도 사람만큼 수명이 긴 것도 없다.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을 다 못 기다리며, 한 여름의 수명뿐인 매미는 봄도 가을도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에누리없이 춘하추동 한 해를 살아가는 것만도 더없이 흐뭇한 일이다.
아쉽고 섭섭하다 생각하면 천 년을 산다 해도 하루밤의 꿈과 같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살아남지 못할 이 세상에서 보기 흉하게 노쇠한 자기의 몰골을 보아서 무엇하리.
명이 길면 망신살이 뻗치게 마련이다. 길어도 40을 다 못 채우고 죽는 것이 보기 싫지 않고 적당하다 하겠다.
그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면, 염치없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기를 원하고,
석양이 지는 황혼의 주제에 자식 손자를 귀엽다 어루만지며, 그들이 번영하는 장래를 볼 때까지의 수명을 바라며
덮어놓고 속된 욕심을 탐하는 마음만 깊어져, 인생의 정취나 세상의 인정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12 단
기분이 잘 맞는 사람과 차분히 마주앉아서 흥취가 있는 이야기건 대수롭지 앟은 이야기건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랜다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이 맞는 사람도 드물려니와, 조금도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상대를 하는 것은 혼자 고독하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심정이 되리라.
또 서로 주고받는 말은 어떤 일이건 간에 과연 그렇구나 하고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손 치더라도, 약간 의견이 다른 사람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논쟁하고 "그러니까 이렇다"라고 반발도 한다면, 마음에 도시리고 있는 쓸쓸한 고독감 따위도 약간은 위로가 될 듯도 싶으나, 실은 약간의 불평을 말할 때에도 자기와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은 보통 막연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동안은 그런 대로 좋겠지만, 진실로 마음이 맞는 벗과 비교한다면 큰 차이와 간격이 있음이 분명한 일이어서, 어떻든 간에 마음은 쓸쓸할 따름이다.
제 19 단
절후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어떠한 일에서나 감흥이 있는 일이다.
사물의 정취는 가을이 으뜸이라고 누구나가 말함 직한데, 그것도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보다 한층 마음이 들뜨는 것은 역시 봄의 경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새의 울음소리도 한결 봄기운이 감돌고 화창한 양지 쪽의 울타리 밑에 풀 싹이 돋아날 무렵부터, 또 봄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벚꽃도 봉오리 끝이 터지게 될 무렵이면, 공교롭게 비바람이 계속되어 꽃은 피는 둥하다가
성급하게 져버리고 만다. 벚꽃나무가 푸른 잎으로 덮일 때까지는 공연히 애가 쓰이게 마련이다.
귤나무 꽃은 그 냄새를 맡으면 옛사람이 그리워진다고 해서 이름이 났지만,
역시 매화의 향기라야 더욱 옛일들이 회상되어 그리운 추억이 되살아나게 된다.
또 황매가 곱게 피고 등나무 꽃송이가 송이송이 드리워진 모양 등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어려운 정경들이 많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4월8일의 관등회 무렵부터 신록이 우거져 나뭇가지가 무성해질 때가 되면
모든 정취도 그리움도 쌓여가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대로다.
오월 단오 명절에 창포잎을 처마 끝에 꽂을 무렵, 못자리에서 모를 찌어 옮겨 심을 무렵,
뜸부기가 요란스레 울어대는 등, 무엇 하나 심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유월경 가난한 시골 집에 박꽃이 하얗게 보이는 가운데 지펴놓은 모깃불에서 매콤한 연기가 맴돌고 있는 것도 정취 있는 일이다. 유월 그믐께 마나즈키바라이( 가지의 신사에서 참배인을 찌로 만든 테 속으로 지나가게 해서 부정을 씻어준다는 행사)도
재미있다.
가을이 되어 7월 칠석을 제사하는 행사는 진정 우아하고 품위있는 일이다.
차차 밤기운이 차가와질 무렵 기러기 울며 날아올 무렵, 싸리나무의 밑줄기 잎이 단풍이 질 무렵, 올베를 베어 말리는 일 등 이것저것 마음이 끌리는 일이 겹치는 것은 역시 가을철에 제일 많다.
또 태풍이 분 다음 날 아침 등은 퍽 흥미로운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늘어놓다 보니 그들은 모두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마쿠라노소오시(枕草子)에서 이미 써먹은 것이지만, 새삼스럽게 그것을 다시 말한다고 해서 안된다는 법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을 털어놓지 않으면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아서 좋지 않기 때문에 붓 가는 대로 적어내려 가는 수필이라는 ,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고 보면, 언젠가 찢어 없애면 남이 볼 것도 아닌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겨울의 메마른 풍경이 또한 가을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가 풀포기에 단풍잎이 떨어져 걸려 있는데 거기에 서리가 하얗게 온 날 아침, 마당으로 낸 가느다란 도랑이 졸졸 흐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은 참으로 풍치가 있는 일이다.
해도 다 저물어서 설맞이를 서두를 무렵이면 각별히 감흥이 깊다.
살풍경한 것으로 여겨져 보는 사람도 없는 겨울 달이, 차갑고 맑은 스무날 지나서의 밤하늘은 어쩌면 그다지도 을씨년스러우랴. 궁중의 세말 행사는 무척 존엄하게 느껴진다.
조정의 의식 등이 빈번하고 신춘의 준비가 다망한데, 거기에 겹쳐 불명회니 노자키노쓰카 등이 개최되는 모양은 실로 대단하다. 섣달 그믐날 밤의 쓰이나의 의식에서 곧바로 신년 원단의 시호오하이로 이어지는 것이 흥미 있게 여겨진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관솔에 불을 붙여 야반이 지나도록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찾아다니며 무슨 일인지 떠들썩하게 떠들어 대고, 발이 건공중에 뜬 것처럼 허둥대다가 새벽녘부터는 역시 잠잠해지는 것도 가는 해의 애착이 남아 마음 쓸쓸한 일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오는 밤이라나 해서 그믐날 밤 영혼에 제사지내는 것은 이젠 쿄오토에서는 없어진 풍습인데도 칸토오 지방에서는 아직도 행하고 있는 것은 감회 깊은 일이다.
이렇게 해서 밝아가는 새해의 하늘 풍경은 어제와 별로 달라졌다고는 생각되지 않건만, 어제와는 달리 한결 청신하고 신기한 기분이 든다. 쿄오토의 큰 거리에도 집집마다 대문 앞에 소나무가 세워지고, 명랑한 즐거움이 넘실거리는 것 또한 각별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제 194 단
달관(達觀)한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세사(世事)를 허위(虛僞)로 꾸며대어 남을 속이는 일이 있을 경우, 아주 순수하게 받아들여 그 사람의 말대로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보다 한층 더 번잡하게 거짓말을 덧붙여서 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별로 마음에 두지도 않고 유의(留意)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약간 이상하구나 하고 느끼기는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사람도 있다.
또 이렇게 저렇게 추측하고, 제법 알기나 하는 양 매우 지혜로운 체하며 수긍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싱그레 웃기까지 하지만,
기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맹탕인 사람도 있다.
또 생각나서, 거짓이겠지 생각하면서, 그래도 무슨 잘못이겠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또 허위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별로 색다른 일도 아니지 않느냐 하며 손뼉을 치고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지도 않고,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라고,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이 시치미를 떼고 지나쳐버리는 사람도 있다.
또 그 허위의 진상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비방하거나 하지 않고 그 허위를 날조(捏造)한 사람과 동조(同調)하고 협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조차도 사리에 밝은 사람 앞에서는 그 각양각색의 허위를 내포한 정도가
말끝에서나 또는 표정에서 완전히 노출되고 거짓말의 탈이 벗겨지고 마는 법이다.
하물며 달관한 경지에 있는 무슨 일이나 통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미혹에 빠진 우리들 범인의 심정을 꿰뚫어
알아차리는 것은 손바닥 위의 물건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추(類推)를 가지고 불법(佛法)에까지 미치어 논해서는 안된다.
일본 중세(1330년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며, 에도 시대 초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독자를 지니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는 일본의 고전이다.
잠언(箴言)적 성찰과 인생에 대한 관조적 자세로 삶이 지혜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글로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파스칼의 팡세나, 라 로시푸꼬의 잠언과 성찰이나, 쌩 떽쥐베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나, 쇼펜하우어의 소중한 삶의 예지를 위한 잠언이나, 우리 나라에서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야언(野言)과 같은 글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글들은 최근 00가 알아야할 00가지라는 제목의 글로 나타나고 있다.
<발췌.편집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