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古典

훈조막(熏造幕)

감효전(甘曉典) 2012. 4. 12. 11:09

 

훈조막               


소의문(昭義門)(서소문(西小門)) 밖의 홍생원은 홀아비로 두 딸과 함께 살았다.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항상 훈조막(熏造幕)(관청에 공납(貢納)하는 메주를 만들던 곳)의 역부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밥을 빌었다. 역부(役夫)들은 저마다 한술 밥을 덜어서 주었고, 홍생원은 겨자 잎사귀에 싸들고 가서 두 딸을 먹이었다.
 어느 날 홍생원이 또 밥을 빌러 왔을 때 훈조막 역부가 취중에 욕지거리를 해댔다.


"홍생원은 도대체 훈조막 부군당(府君堂)(각 관아에서 신령을 모시던 곳)이오? 우리들 상전 나으리요?

무슨 까닭에 날마다 와서 밥을 내라 해요? "
홍생원은 누물이 글썽해져 돌아섰다.

그리고 자기 집안으로 들어간 후 5,6일이 지나도록 삽짝이 닫힌 채로 있었다. 


 한 역부가 삽짝을 밀치고 들어가서 보니 홍생원과 어린 두 딸이 정신을 못 가누고 누웠는데

눈물만 주르르 흘릴 뿐이었다. 그 역부는 가련한 마음으로 급히 나와서 죽을 쑤어 가지고 갔다. 
 홍생원은 13세 된 큰딸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얘들아, 이 죽을 먹겠니? 우리 세 사람이 간신히 주림을 참는 데 엿새 동안의 공부가 있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웠다. 전공(前功)이 가석(可惜)하지 않느냐? 지금 이 죽 한 그릇을 받아먹고,

저이가 계속 가져다 준다면 좋겠지만 내일부터 매일 치욕을 어찌 다 당하겠느냐?"
홍생원이 말하는 동안에 다섯 살 된 막내딸이 죽 냄새를 맡고 일어나려고 머리를 들었다.

큰딸이 동생을 따독따독하며 눕히면서 "자자, 자자" 하고 달래는 것이었다.
이튿날 역부들이 다시 가 보았을 때는 모두 죽은 다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눈물을 흐리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었다.

직접 목격하였던 훈조막 역부들의 그 때 심경은 어떠했을까?
심하도다, 가난이여! 나의 집에 있어서도 가난이 지극히 서글픈 일이지만

여기 홍생원에 비한다면야 슬퍼할 것이 있겠는가.

 
   이조한문단편소설선(일조각. 이우성 임형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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