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지의(天經地義)
[내용] 기원전 520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이 죽었다. 왕실의 법도대로라면 마땅히 적자(嫡子)인 희맹(姬猛)이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으나, 경공이 생전에 서자(庶子)인 희조(姬朝)를 세자로 세우려고 대부 빈맹(賓孟)과 상의를 하던 중 결정을 못 내리고 죽고 말았던 것이다.
경공이 죽은 후, 일부 귀족들은 빈맹을 제거하고 희맹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그가 주 도왕(悼王)이었다. 이후 주나라 왕실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귀족들의 암투가 심각하였다. 도왕이 병으로 죽자 경왕(敬王)이 즉위하였지만, 일부 반대 세력들은 왕자조(王子朝)를 별도로 왕으로 세웠으니, 두 세력 간의 싸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 후 진(晉)나라 경공(頃公)은 각 제후들을 흑양(黑壤; 지금의 산서성 심수현 서북쪽)으로 불러모아, 주나라 왕실을 어떻게 안정시킬까 논의하고자 하였다. 회합에서 진나라의 조앙은 각 제후국의 대부들에게 주나라 왕께 쌀을 보내도록 명하고, 천자를 보호할 군대를 창설하기로 하였다. 한편 정나라의 유길이 조앙을 찾자, 조앙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 "주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을 예(禮)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유길이 대답하였다.
'예라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고, 땅의 덕(德)이며, 사람이 행하여야 할 일이다(禮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라고 하였습니다. .... "
이어서 조앙은 주나라 경왕을 위하여 군대와 양식 등을 보내 그를 도성으로 복귀하도록 돕자고 제의하였다. 송나라 측이 이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진나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주나라 경왕을 복위시키고, 왕자조의 난을 평정하였다. [출처] 천경지의(天經地義) |작성자 몽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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