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대사 재조명

[스크랩] 고흥 남양장담리 전봇대절단사건의 생존자 증언

감효전(甘曉典) 2012. 3. 22. 23:38

 

▲ 고흥군 남양면과 과역면 경계지점. 전봇대절단사건이 시작된 장소. 이곳에 세워진 전봇대가 절단되면서 남양면 장담마을 청년들이 의심을 받고 결찰의 고문과 총살이 발생했다.

 

생존자의 증언


1. 생존자

   성명 : 송  홍  기  만77세  주민번호 : 240000 - *******

   주소 : 전남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 899번지

     

   성명 : 유  병  휴  만79세  주민번호 : 220000 - *******

   주소 : 전남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 1025번지

      

   성명 : 김  미  봉  만74세  주민번호 : 270000 - *******

   주소 : 전남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 863번지

     

   성명 : 장  한  석 


 

2. 사건명 : 전신주절단사건 으로인한 양민학살


3. 발생시기 : 서기1949년 5월 3일(양), 4월 6일(음) 야간


4. 발생장소 : 고흥군 남양면과 과역면 국도변 경계지점


5. 증언내용

  (1) 1949년 5월 3일밤(양) 고흥군 과역면 도천리 하송마을과 남양면 노송리 경

     계 지점 (국도변)에서 과역쪽으로 전신주 10여주가 밤사이 절단되었습니다

     당시 마을마다 청년단이 조직되어 부락민들의 재산과생명을 보호하기 위하

     여 자체 야경근무를 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여순반란 사건 전후로 도처에서

     반란군들의 전신주 절단 사건이 발생 하므로 마을마다 자체경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5월 4일 새벽 5시경에 장담마을을 경비한 사람들이 과역면 하송마을 전신       주 10여주가 절단된 것을 확인하고 남양면 지서에 도보로 신고하고 마을로

     돌아온후 과역면 지서 순경들이 전주절단 소식을 듣고 현장 확인을 나왔습

     니다

  (2) 그당시 노송에는 조그만 술집(주막) 하나가 있었는데 술집주인이 하는말이

     “방금전에 장담청년들이 전주절단현장을 확인하고 남양지서에 신고를 하고



     돌아 갔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소식을 들은 과역 지서 순경 들이 장담으로

     와서 장담청년 들을 소집 시켰습니다

     이어 경찰20여명등 토벌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마을회관앞

     과 당산등에 총소리와 함께 마을 전주민을 집합시켜놓고 무서움에 떨게 한

     후 청년들만 연행해 갔습니다

     “전주절단장소가 과역면 관할인데 왜 남양면지서에만 신고하고 과역지서에

     는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그이유로 장담청년 다수를 연행해 갔습        니다

  (3) 그때부터 과역면 지서에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사현장은 눈뜨고는 보지못할 강압수사로 쇠뭉치로 치고 칼로찌르면서 수

     사를 하는데 어느누군들 진실을 말해도 통하질않고 거짓말을 안할 수가 없

     습니다

     과역면 지서에서 고문으로 하루밤을 세우고 다음날 사망자8명과 현생존자

     “장한석”1명은 남고 그외 사람들은 고흥경찰서로 이송되었습니다

     강압에 못이겨 누명을 쓴 8인은 3일만에 고흥경찰서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다시 3일만에 모진고초를 당하다가 “송하봉”은 5월 8일(양) 남양면 장담과

     덕촌마을사이 야산에서 총살되었고 7명은 5월 9일(양) 고흥 점암면 운암산

     에서 총살되었으며 사망자 시신에는 수발의 총탄자국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체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는데 이런사실은 고흥경찰서에서 32일만에 석

     방된후 알았습니다

  (4) 사건이 일어난지 2년후 과역면 신앙리에 거주하는 “박종남”(사망)이 당시

     좌익계 반란군 두목급으로 전주절단 사건을 자수 하였습니다

     자수내용 - 좌익계 “박종남“ 일당들은 보성에서 배를타고 도야 해변에서

                내려 자기들의 집결아지트인 고흥 팔영산으로 향하던중 전신

                주를 절단했다고 실토하였으며 장담마을 청년들이 억울하게

                희생 되었다고 진술 하였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도야해변에서 전주절단위치 까지는 약1.5km)


  (5) 그당시 고문 담당 경찰관 두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시 고흥경찰서 수사계 주임인 “한태조(근)”는 사망하였다 하며 수사를

     맡은 수사계 “이재명”씨가 현생존자로 고흥군 나라도에 거주 하고 있으며

     돈이많고 언변도좋은 지역 유지급 이라합니다

     주소 : 고흥군 동일면 백양리 양화마을 693-1번지

     주민번호 : 260000-*******

     

  (6) 위 증인 4인은 고흥경찰서로부터 29일에서 1개월 2일만에 출소 하였으며

     당시 고흥전주사건은 그야말로 억울한 누명을쓰고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과역면민들 남양면민들이 더잘알고 있습니다


  위 증언내용은 사실과 틀림이 없으며 이에 서명날인 합니다


                      2001년 7월    일

 

출처 : 大 / 通 / 하 / 는 // 세 / 상
글쓴이 : 빛너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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