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948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소속 좌익계열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사건. |
설명
여순사건으로 인해서 피해를 본 것은 정부, 군, 좌익 등... 한마디로 전부 피해자였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현지 주민이었다. 좌익 반란군은 반란군대로 우익인사와 경찰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고, 진압군은 현지를 수복하고 나서 살벌한 보복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약 1년 반뒤에 벌어질 6.25의 예고편이었다. 이래저래 고생하고 피해만 보는 것은 죄 없는 민중이었다.
여수 주민들이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이탈하고 하고 있다. 여수 1948년
원본 설명에는 한국군이라고 설명이 나와 있지만, 장비가 일본군 철모에 일본군 소총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정규군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철모에 흰천을 두른 것으로 보아 진압군측으로 생각된다. 사태를 주시하며 경계를 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나와서 초조하게 구경을 하고 있다. 여수 1948년
위험지역을 떠나서 모여있는 주민들. 여수 1948년
진압군이 붙잡은 가담 용의자들, 중학생들인데 버클을 살펴보면 여중(여수중?)이라고 적혀있는 것 같다. 당시 사건으로 여수중학교 3, 4학년 학생수가 대폭 감소했다고 하니, 이들의 운명도 장담하기는 힘들 것 같다. 1948년
반란군 용의자가 손을 들고 경찰에 의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새끼줄로 매달은 소총끈이 이색적이다. 여수 1948년
반란군 가담 용의자가 진압군 병사들에게 심문을 받은 직후,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있다. 1948년
여성 용의자들이 진압군에 의해서 억류되어 있다. 1948년
주민들이 신문을 받기 위해서 운동장에 모여있다. 진압군 장갑차위에서 병사가 cal.30 기관총으로 엄중히 감시중이다. 1948년
반란에 가담했던 14연대 장병들이 생포된 후 결박당하여 트럭위에서 대기중이다. 1948년
반란군 용의자(??? 원 설명은 그렇게 되어있으나, 확대 해석으로 보인다. 그냥 주민들인 것 같다)들이 진압군 병사들에 의해서 이동하고 있다. 여수, 1948년
매맞은 자국이 선명한 반란군 가담 용의자가 진압군에 의해서 운동장에 억류당해 있다. 1948년
경찰과 우익 민간인 무장대원이 운동장에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신문중이다. 1948년
총에 맞아서 벌집이 된 반란군들의 시체를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1948년
일가족이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체로 방치되어 있다. 여수 1948년
공산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남자의 가족들이 바라보며 슬퍼하고 있다.(Dead South Koreans who were killed by communist rebels, are looked over by grieiving relatives) 1948년
...둘째 딸로 보이는 어린이는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놀란듯 처다보다 두번째 사진에서 결국 울음을 떠뜨린다. 가슴이 아픈 사진이다.
반란군에 살해된 민간인의 시체가 텅빈 거리에 버려져있다. 1948년
반란군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울고있다. 1948년
반란군에게 살해된 시체가 거적에 싸여 길에 누워있다. 1948년
학교 창고에서 반란군의 사격으로 집단 총살된 시체가 쓰러져 있다. 창고벽에 무수히 나있는 총탄 자국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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