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친구 앙트낭 푸르스트에 의하면 <풀밭에서의 점심>은 애초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원의 연주>(당시에는 조르죠네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티치아노 작품으로 되어 있다)의 현대판을 그리고 싶다는 마네의 바람에서 탄생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티치아노의 그림은 두 명의 벌거벗은 여인을 전원풍경 속에 배치하고 옷을 입은 남성 두 명, 류트 연주자와 양치기를 주변에 배치했다.
그런데 마네는 작품의 주요 인물 포즈를 다른 작품,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모방한 판화에서 빌려온다. 마네는 당시의 많은 미술가들이 이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작품을 차용했음을 알아차리고, 거장의 작품 이미지와 현대 생활의 융합을 꾀한 자신의 의도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리스와 여신의 신화적인 장면을 당대 파리의 피크닉 풍경으로 옮겨온다. 과거의 예술을 패러디화해 작위성을 강조하고, 권위에 도전한다. 나체의 여인을 그릴 때는 현실이 아니라 신화의 여신으로 표현, 시공간을 뒤섞음으로 시간과 공간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오래된 미적 규범을 타파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런 과거 예술작품에서의 인용은 드문 일은 아니며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곤 한다.
조슈아 레이놀즈(1723~92년)는 이 수법을 활용해 동시대의 초상화에 르네상스기의 작품이 지닌 위대하고 당당한 효과를 더했다. 그와는 반대로 20세기의 화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반대의 효과를 노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콧수염과 턱수염, 추잡한 서명을 그려 넣어 기존 원작을 훼손시키는 듯한 작품으로 틀에 박힌 예술의 양식에 대해 도전장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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