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 풍경 73 x 54 cm. 1888년 6월, 유화
테오에게
요즘은 밀밭이 보이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하얀 과일나무 그림보다 못한 그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그림은 앵데팡당 전에 출품했던 두 점의 풍경화 <몽마르트르 언덕>과 비슷하다. 그러나 오늘 그린 그림이 더 강렬하고 맵시있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과 한쌍을 이루게 될 그림의 소재도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농장과 건초더미를 그린 그림이다. 고갱이 어떻게 하려는지 몹시 궁금하다. 나는 그가 이곳에 올 수 있기를 바란다. 너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건 소용 없는 짓이라 하겠지만, 그림은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어서 예측을 잘 해야 한다.
고갱의 그림이 팔린다면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도우이 될 것이다. 그리을 그리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필요하다.
고갱과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문다면, 점점 더 개서적인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이 지역 특유의 소재를 깊이 고민하게 될 테니까.
남부에서 시작한 이상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지역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너무 작은 그림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보다 스케일이 큰 소재에 도전하는 쪽이 성공할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사업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때문에 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려고 과감하게 30호 크기의 캔버스를 사용할까 한다. 여기서는 이 캔버스 하나에 4프랑씩 하는데, 운송료를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최근에 그린 캔버스는 다른 그림을 눈에 띄지 않게 압도해버린다. 푸른색과 노란색의 커피주전자와 커피잔, 접시 등을 다룬 정물화에 불과한데도, 아마도 데생이 잘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제 타는 듯한 날씨가 시작될 것이다. 봄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이 낡은 황금이나 청동, 그리빛깔을 띠게 될 테고, 창백하고 뜨거운 청록색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처럼 달콤하고 조화로운 색이 될 것이다.
고갱이 동참한다면, 우리에게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가 된다. 우리는 남부의 개척자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고, 누구도 그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다는 그 그림 속 색의 힘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포르티에 씨는 자신이 소유한 세잔의 그림을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캔버스 옆에 놓고 보면 그것을 압도한다고 말했지. 세잔의 그림은 황금색 배경에서 훌륭해 보이는데, 그것은 그림의 색조가 뛰어나고 모든 단계의 색이 아주 짙게 칠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래, 어쩌면 나도 옳은 경로를 밟고 있는 것이고, 내 눈도 이곳의 자연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더 기다려보면 알게 되겠지.
최근에 그린 그림은 작업실 바닥의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해도 색감이 죽지 않는다. 그림을 벽돌처럼 짙은 빨간색 바닥에 두고 본 적이 있는데, 그림의 색이 바래거나 창백하게 보이지 않는다.
1888년 6월 12일~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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