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몽마주를 배경으로 73 x 92 cm. 1888년 6월, 아를
테오에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이상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사실이 나에게 그림을 그릴 권리를 주며, 내가 그림을 그리라는 이유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래,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림은 나에게 건강을 잃은 앙상한 몸뚱아리만 남겨주었고, 내 머리는 박애주의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돌아버렸지. 넌 어떠냐. 넌 내 생활을 위해 벌써 15만 프랑 가량의 돈을 썼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계획한 일의 배후에는 늘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계획을 짠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않을 테니, 우리 처지가 불 안정하다는 걸 걱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상황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면 눈을 크게 뜨고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행동하면 잘못을 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무언가 남겠지.
고갱이 난관에 봉착한 걸 볼 때, 아무런 예상도 하지 말자. 그저 그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출구가 있기를 바라자. 불길한 가능성을 미리 생각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림에 나 자신을 완전히 던져버린 채 작업을 하다가, 습작을 완성할 때 비로소 깨어난다. 작품 속에 있던 비바람이 계속해서 휘몰아칠 때면, 잠시 취하기 위해 한 잔 마시곤 한다. 그것은 미련과 후회 앞에서 미쳐버리는 것과 같다.
전에는 내가 화가라는 생각을 지금처럼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그림은 기분전환으로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미친 사람들에게 토끼 사냥이 의미하는 것과 같게 되었다.
집중력이 좀더 나아졌고 손은 더 확신에 차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거라고 감히 너에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겐 그림밖에 없다.
공쿠르 형제의 글을 읽어보면, 쥘 뒤프레도 미친놈처럼 보였다던데, 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니? 쥘 뒤프레는 그를 후원해주는 예술애호가를 만났다지. 나도 그럴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너에게 지우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이곳에 오면서 겪었던 발작 후에 나는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건강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희망이나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이제는 오직 필요에 의해,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그림을 그릴 뿐이다.
1888년 7월
'관심사 > 고서화(古書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고흐의 편지 - 색의 힘 (0) | 2012.02.15 |
---|---|
[스크랩] 고흐의 편지- 별까지 가는 길 (0) | 2012.02.15 |
[스크랩] The Boating Party Lunch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 (0) | 2012.02.15 |
[스크랩] Gustav Klimt / Death and Life, painted before (0) | 2012.02.15 |
[스크랩] Gustav Klimt / Unterach on lake atter (0) | 2012.02.15 |